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471954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Code Z 전체글ll조회 1005




- 작성자가 우지호

- 상황은 원하는 걸로 들고오시면 됩니다. 하드한 건 어렵지만 그 외 장르 안 가림.

- 주로 쓰는 건 괄호체와 소설체 (후자 아는 분(?) 환영)

- 끊겼다 이어지는 것도 상관 없습니다. 작성시간 기준 새벽이라 더 상관 음슴.


[상황] (선톡내용)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상근이
이 곳에선 연예인/모델/축구선수 상황/역할톡만 가능합니다, 일반 사담/연애/기타 톡은 사담톡 메뉴를 이용해주세요
카톡, 라인 채팅 아이디 교환시 이용 정지됩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
쓰니 잠?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지금은 안 잠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내가 잤다 미안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잘 잤어?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Code Z에게
응 엄청 지금이라도 해도 돼?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에게
해도 돼.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4
Code Z에게
미안 많이 늦었다 지금도 있어?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4에게
아직 있어.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4에게
계속 할 거야?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0
Code Z에게
집이 아니라서 들어오질 못했다. 미안. 글 새로 팠네. 좋아하는 장르 같은 거 있으면 알려줘. 그거 맞춰서 다음에 찾아갈게.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0에게
언제 들어와. 거기에 맞춰서 올리든가 할게.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1
Code Z에게
오늘 저녁이나 밤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볼게. 하고 싶은 상황으로 글 올리든지, 아니면 여기다가 대충 댓글 달아놔.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1에게
모델이랑 사진가 사이. 누가 모델이든 상관 없고. 썸 타는 사이. 시작 배경은 화보 찍던 스튜디오 휴식시간. 씁, 지금 것도 아깝긴 하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2
Code Z에게
계속 안 왔어? 중간중간 들어와서 계속 필명 검색해봤는데.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2에게
올려놨어. 기다릴게.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3
Code Z에게
오랜만에 시간 좀 비니까 저 때처럼 또 하고 싶네. 나중에 또 만났으면 좋겠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3에게
꼭 접속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만나네. 바빴나보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4
Code Z에게
어. 있었네. 거의 한 달 만이구나.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잘 지냈나. 나는 개강하고 나서부터 영 바쁘네. 오랜만에 시간도 비고 생각나서 와봤는데 좀 반갑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4에게
나도 뭐 내 생활 하느라. 새로 올렸던 거에 답글이 계속 안 달리길래 아 잊었나보다 하고 지워버렸어. 아까웠는데.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5
Code Z에게
미안해. 컴퓨터 앞에 앉아도 다른 일 한다고 바빠서 들어올 틈이 없더라. 많이 기다렸나. 미안. 기다렸을 네 생각을 못 했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5에게
힐끔 보면 생각나는 정도. 라고 하면 좀 이상한가. 우리 지훈이 바빴어요? 오구.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6
Code Z에게
많이 바빴어요. 미안해요, 오구오구. 좀 이상하긴 한데 공감은 된다. 나도 그러니까.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6에게
엉덩이 토닥거려줘야지. 수고했으니까. 이제 평일이라 또 바빠지겠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7
Code Z에게
토닥이다 조물조물 만져도 괜찮고. 그럼 더 기분 좋을 것 같기도. 주말에 시간 내볼까. 너도 주말에 시간 낼 수 있으려나.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7에게
난 빡센 편이 아니라서 언제든지. 그리고 조물거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끝이 없어.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8
Code Z에게
그것도 좋다고 말하면 도망가려나. 그럼 주말에 올 수 있으면 평일에 여기로 연락할게.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8에게
안 가. 내가 잡을 건데?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 지운 건 어쩔 수 없으니 이 글이라도 하자.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9
Code Z에게
이거 쭉 이을까. 아니면 아예 새로 팔까.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39에게
쭉.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40
Code Z에게
그래, 그러자. 연락할게.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40에게
매일 습관적으로 들어왔는데도 답글 있던 건 지금 알았네. 이번 주는 바쁜가보다. 몸 챙겨.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41
Code Z에게
오늘 저녁쯤에 시간 되는데.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41에게
밤까지 있을 건가? 지금 밖이라.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42
Code Z에게
집 언제 가는데.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42에게
어째 계속 엇갈린다. 시간 될 때 남겨놔.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43
Code Z에게
다음 주 일요일은 어쩌면 풀로 시간 될 것 같은데.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43에게
간만에 정주행하니까 근황이 궁금하네. 존나 미련쟁이 같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5
학생 시절부터 이어온 우리 연애. 권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기를 여러 번. 몇 년 전 관계를 끝맺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우리. 그동안 난 지방으로 발령이 나 있었던 상태.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곳. 공교롭게도 돌아온 직후 친구들과 재회하는 술집 바로 옆 테이블에 있는 너. 새로운 애인이 생겼는지, 마음이나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그건 모름. 하지만 확실한 건 너를 본 후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분간이 안 간다는 거.

조그마한 시에서 근무하기를 몇 년. 다시 본사로 복귀하라는 말을 듣고 기쁘게 짐을 챙겨 돌아와 텅 빈 집에 짐을 대충 쌓아두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예전에 자주 가던 술집으로 향했다. 먼저 모여있는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근황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을 마시다 낯익은 얼굴이 스쳐 술잔을 내려놓고 옆을 봤더니 정말 낯이 익다. 누구지, 누구더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머릿속이 분명하게 떠오른 네 이름 석 자. 우지호. 우지호다. 저건 분명 우지호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내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네 고개가 돌려지는 것을 보고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손에 잡히는 빈 병을 옆에 가득 쌓아 보호벽이라도 쌓듯 세워놓고 자라처럼 고개를 숙여 쭉 내밀었다. 꽤 이상한 자세로 친구들의 농에 멋쩍게 웃으며 눈알만 살살 굴려 너를 훑다 네가 자리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친구들에게 말을 건넸다. “야. 우리 이제 자리 옮길까. 여기서 마실 만큼 마신 것 같은데.”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얼마만에 모이는 고등학교 동기들인지 모른다. 아마 졸업 후 처음. 간간히 연락하거나 개인적으로 만나는 놈들은 몇 있었어도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기가 쉽지가 않았다. 라고 얘기하기에는 사실 누가 오는지 관심도 없어서 연락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콜을 외쳐버렸다. 바쁜 일상 와중에 그나마 짬내는 여유를 술로 채우게 생겼지만 결코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당일이 되어서야 누가 오고, 누가 오는 지 그나마 연락하고 있던 놈한테 들었다. 김 아무개, 정 아무개, 누구 누구,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두루두루 모이는 덕에 어색함 따위는 느끼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대인원 예약 탓에 길게 붙어 늘어진 테이블을 훑어보는 와중에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탓에 감도 못 잡을 상대방이었지만 어쩐지 다가오는 촉은 썩 좋지 않았다. 그 옆 라인으로 앉아 인사를 나누던 도중 느껴지는 시선에 힐끗 돌아보니 급하게 돌아가는 고개가 보이고,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알아본 얼굴은 기억하기 싫은 얼굴이었다. ……표지훈. 소리없이 이름을 입술로 읊었다.

 “야. 나 잠깐 깨고 올게.”

 피실 웃으면서 손을 들어보이곤 어지러워지는 머리에 잠깐이나마 술을 깨려 밖으로 나왔다. 누구, 누구, 누구, 기억하던 이름 끝에 표지훈이 있었다. 변하지 않은 얼굴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조목한 얼굴이며 특이하게 생긴 입술마저도 그대로였다. 문득 아랫입술이 쓰렸다. 그 언젠가 나눴던 감촉이 쓸데없이 되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들어왔을 때의 테이블 분위기는 다음 장소로 옮기든가- 마무리를 하든가 하는 분위기였다. 한 명이 ‘야, 우지호. 가자!’하고 어깨를 팍하고 걸쳐오는 탓에 거의 끌려가는 분위기가 되었고 다시 곁눈질로 돌아본 그와는 시선이 마주쳐 표지훈이나 나나 당황스런 얼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6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친구놈 하나가 계산서를 가지고 카운터로 향했다. 벗고 있던 외투에 팔을 끼워 넣으며 네가 나가고 텅 빈 자리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인 생머리. 내가 늘 네게 강요했던 스타일이었다. 잘 어울렸으니까. 외모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네가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철없이 사랑을 나눴던 너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꽤 강인하게 성장한 것 같은 네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무튼,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돌아오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을 보면 참 끈질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을 끝냈다고 나가자는 친구의 말에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너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내 시나리오가 모두 망가졌다.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피할 수도 없었다. 맞댄 서로의 눈에 서로가 비치고 있었으니까.

‘표지훈. 뭐하냐. 가자.’
“어. 어, 가야지.”

잠시 멈추어진 너와 나의 시간이 친구의 목소리로 인해 깨졌다. 친구의 부름에 휴대폰과 가방을 챙겨 꽤 멍청한 자세로 여러 테이블 사이를 지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끝이겠지. 고의로 돌아본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을 뿐.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표지! 우죠! 너네는! 말야, 끅. 학교 다닐때 그렇-게 붙어다니더니…….’

 술이 꽤나 들어간 한 명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듯 찡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꾹 감았다 뜨고는 녀석을 돌아보니 비틀거리면서 다른 놈에게 부축을 받은 채 걸어나가고 있었다. 나 오늘 니네 인사하는 거 못 봤는드에에―. 꼭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절레며 밖으로 따라나왔다. 저도 모르게 표지훈을 찾으려 시선을 돌렸다. 뒤에서 쳐다본- 표지훈의 뒤는 어렸던 그날과는 달리 꽤 차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옷 스타일이 많이 바뀐 탓일 지도 모르겠다.
 빠른 생일 탓에 학교를 일찍 들어왔던 녀석은 다른 놈들에게는 이름으로 잘도 부르면서 내게는 꼭 형이라고 불렀다. 있잖아요 형, 지호 형. 이거 봐요 지호 형. 변성기를 막 지난 녀석의 목소리-무리하게 써서 너무 깊게 낮아진 목소리를 나는 처음에 싫어했다-가 귓전에 들리는 기분이 들자 갈대로 갔구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절레였다.

 “표…….”
 ‘야! 표지훈! 2차 가냐? 가자! 어? 요 근처래.’

 겨우 목소리를 내려는 찰나, 다음 장소를 어디로 갈 지, 한참 하던 이야기가 끝났는지 표지훈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한다. 녀석은 표지훈보다 키가 작아선 어정쩡한 다리로 걸쳐진 채 등을 팍팍 쳤다. 곧이어 다른 놈이 내게 다가와 갈 거지? 하는 물음에 조금은 얼버무린 끝에 No 를 택했다. 표지훈의 대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7
마주했던 시선을 거두려는 찰나 조그마한 몸뚱이 하나가 옆에 착 감겨왔다. 술에 떡이 돼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뒤처지는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옆에 붙은 놈. 친구의 허리춤을 팔로 감아 힘을 실어 붙잡고 술집 밖으로 나갔다. 앞서 나가 있던 친구들과 아직 나오지 않은 친구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우지호. 문이 몇 번이나 열리고 닫히는 걸 보면서 네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멍청하게 뭘 기대한 건지.
2차로 정해진 장소는 술집에서 그닥 멀지 않은 노래주점이었다. 이곳이 익숙한 친구들을 뒤따라 옆에 엉켜있는 거추장스러운 놈 하나를 끌고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쇼파에 내팽개쳤다. 꽉 묶어져 있던 넥타이를 잡아 느슨하게 풀고 외투를 벗었다. 술에 잔뜩 취해 흥에 겨운 친구들이 노래를 선곡했다. 곧 반주에 몸을 맡겨 어릴 적 아저씨들 춤이라고 놀렸던 춤을 추고 목에 힘을 잔뜩 줘 핏대를 세워가며 노래를 불렀다. 그 사이에서 조용히 술잔을 비우다 외투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눈부신 조명과 시끄러운 노랫소리로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밖은 차분한 밤이었다. 아직 싸늘한 날씨에 외투를 어깨에 대충 걸치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네가 그렇게 피지 말라던 담배인데 너와 헤어지자마자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일하면서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많이 폈던 것 같다. 입에 문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쭉 들이켜고 뱉어냈다.

“끝까지 안 오네.”
“오랜만이라 반갑긴 했는데.”

조금 전 친구들과 난리를 쳤던 술집이 있는 길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혹시나 하는 기대. 담배가 다 타들어 가는 순간까지 넌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너는 내게 미련이 없구나. 확신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7에게
 무리에 섞여 돌아가는 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미련없이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 문득 주머니가 빈 느낌이 들었다. 뭐에 홀린 듯-정확히는 표지훈에게- 정신없이 지갑을 술집에 두고 온 탓이었다. 애매한 거리랍시고 차를 끌기에는 뭐하고, 걸어서 왔다갔다 하려 했건만 집 앞을 얼마 안 남기고 생각이 난 게 어디일까. 다시 방향을 틀어 급하게 술집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보관되어 있었던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감사합니다, 하며 짧게 목례로 인사했다.
 밖에 나와- 항상 담배를 넣어놓던 반대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나오는 건 라이터 뿐이었다. 아아, 안 사놨나. 안 가지고 나왔나. 되짚어보기에도 이젠 골치가 아팠다. 밤 공기에 섞여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니 조금씩 술이 깨기 시작했다. 제가 길을 걸어온 기억 상으로 집에 가는 길에는 마땅한 편의점이 없었다. 반대쪽, 녀석들이 비틀비틀 걸어가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 형. 담배피지 말라니까.」

 방과 후에 아는 형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을 향해 담배를 사러 갈 때면 꼭 녀석은 한 마디 씩 하면서 매달렸다. 담배는 몸에 나쁘네, 또 피면 헤어질 거네, 뽀뽀 안 할 거네, 키스도 안 할 거네. 애정행각의 선까지 넘어왔을 때 돼서야 나는 담배를 조금씩 느슨하게 잡았다. ‘그럴 거면 나도 필 거예요.’하고 언젠가 얘기했던 날이면, 넌 내가 뒈지고 나서도 안 된다며 극단적으로 말리곤 했었다. 아 왜요! 형은 피는데 나는 안 된대! 그 굵직한 목소리로 깩깩. 하지만 그 반항하는 모양새가 마냥 귀여워서 웃음만 지었던 어린 날이었다.
 밝게 불이 들어온 편의점을 향할 때 쯤 인도 위에 멍청하게, 아니, 허수아비처럼 멀뚱하게 서있는 인영이 보였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록 상대방의 인영이 걷히고 윤곽이 보이며 누구인지도 보여서야 나는 다시 걸음을 멈춰버렸다. 힐끔, 눈동자를 굴려 건물 층마다 걸린 간판들을 위에서부터 내려보니 노래주점이 눈에 띄었다. 아, 여기 갔구나.

 “…….”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 역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저 쪽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있었을 거다. 외투 주머니에 꽂힌 양손, 손 안의 라이터를 괜스레 잡았다 놓으며 바싹 말라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표지훈.”

 어느 방해꾼도 없는, 새벽 한 시. 그제서야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8
Code Z에게
지난날을 회상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래서 너와 헤어진 후로 네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면 일을 찾거나 사람을 찾았다. 물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려고 노력도 해봤다. 꽤 괜찮은 직장에 나쁠 것 없는 나, 수많은 소개로 여자를 만나봤지만, 우리의 특별했던 연애가 생각나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우린 특별한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남자였기 때문에. 그래서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며 남들에겐 우정, 우리에겐 사랑으로 연애를 이어갔다. 그만큼 제약도 많았지만 유리한 점들도 많았다. 비밀이라는 단어 아래 스릴을 느낀 짜릿한 연애였다. 그래서 장기간 그런 연애를 이어갔던 나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꺼내 본 추억 상자에서 나와 정신을 차렸을 땐, 입술 앞까지 바싹 타버린 담배가 약간의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침을 뱉듯 담배를 아스팔트 바닥 위로 뱉고 구두 굽으로 짓이겼다. 화단에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켜 다시 그 길을 쳐다보는데 길 끝에 삐쭉하게 솟은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누구지. 점점 가까워지는 실루엣, 그리고 명확해진 형체. 우지호다.

“아. 헛것이 보이나.”

차갑게 식은 손바닥으로 눈을 비볐다. 숨을 참았다가 내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깨달았다. 진짜 우지호다. 조금 전 내 추억의 주인공, 너다. 사랑을 속삭이며 맞추었던 네 두툼한 입술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호형. 오, 오랜만, 이다.”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미안. 별그대 본다고 많이 늦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8에게
 더듬으면서까지 어색하게 뱉는 답변에서의 녀석의 목소리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진작에 변성기는 끝났을 텐데, 말 없이 표지훈이 서있는 지점을 쳐다보다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에 좀 더 다가가 ‘담배 좀 빌리자.’라고 말을 건내면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손에 있던 담배갑을 내밀다 멈칫하며 자신에게 눈치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새끼, 약한 거 피고 있네. 손에 들린 것에서 한 개비를 뽑아내 입에 물었다.

 “내가 언제까지 혼낼 입장은 안 되잖아.”

 이미 너도 나도 어른이었다. 애초에 있었던 것도 아니였지만- 흡연을 하냐마냐를 막을 수 있는 권리는 진즉에 없어졌다. 끝에 불을 지펴 한 모금을 들이켰다 뱉으면 평소에 물던 것보다 약한 독성에 입이 괜히 입이 심심했다. 그리고 내가 꽤 독한 걸 피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는 괜스레 육성으로 어쩐지 머리가 많이 아프더라, 하며 혼잣말을 궁시렁거렸다.
 한 마디도 없이 옆에 어색하게 서있던 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직은 저보다도 작은 것 같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끼가 꽤나 컸다. 항상 mp3에 힙합곡을 넣어다니며 후드티만 고수하던 녀석의 패션은 온데간데 없고 차분한 컬러로 말끔하게 입은 모습이 마냥 예뻤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아있던 통통한 얼굴도 살이 쪽 빠져선 턱선이 드러나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 시절의 녀석과 오버랩이 되는 탓에 잠시 고개를 절레었다. 추억해봤자 돌아오는 건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

 “늦게 들어가도 되냐?”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9
Code Z에게
괜한 기대를 했다.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알면 네가 조금이라도 잔소리를 던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꼴 좋게 빗나갔다. 담뱃갑을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떨리는 것을 감추려 손에 힘을 더 주었으나, 힘을 실을수록 손은 더 떨렸다. 추워서 떨린 것이 아니었다. 꽤 가까이 다가온 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보니 예전부터 담배를 쉽게 끊지 못하던 네가 떠올랐다. 늘 옆에 붙어서 먹히지도 않을 협박을 뱉으며 애정어린 말들로 널 걱정했던 시절. ‘여전히 담배 피우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었다. 네가 나에게 아무 말을 않은 것처럼 나도 너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린 끝난 사이니까. 헤어지고 수일이 지났는데 익숙하게 옆에 서 있는 너를 보니 헤어졌다는 사실을 자꾸 망각한다.

“어. 애들 어차피 다 떡 돼서 나 없는지도 모를걸.”

침묵 속에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생각하고 뱉은 말보다 꽤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고요함 속에 얼어가는 몸. 어깨에 대충 걸치고 있던 코트를 제대로 껴입고 풀어진 셔츠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 넥타이를 다시 졸라맸다. 밤 공기 냄새와 담배 냄새, 그리고 익숙한 네 냄새. 화단에 기대어 코트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손에 잡히는 담뱃갑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손안에서 굴리며 한참을 생각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 걸까.

“잘 지냈어?”

내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리는 너를 보고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9에게
 잘 지냈어? 다시 어색하게 들려오는 말소리에 대답을 위해 녀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씩 입꼬리를 올린다. 한참을 말 없이 쳐다보고만 있으니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재촉하듯 아 말 좀 해봐라, 하며 괜히 자신의 뺨을 긁적인다. 그제서야 어. 하고 짤막한 대답을 뱉었다. 정작 표지훈이 긴 기다림 끝에 원하는 대답 같은 것은 이게 끝이 아니었을 텐데. 필터를 곱씹다 톡, 하는 느낌과 함께 입안에 싸하게 시원한 느낌이 퍼져왔다. 그제서야 아이스블라스트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표지훈과 꽤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생겨졌다. 너.”

 마냥 못생긴 놈인 줄 알았는데. 언뜻 밝은 조명 아래에서 봤던 어두운 갈색의 머릿결이 어둠에 삼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진짜? 푸스스 웃음 짓는 표지훈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따라서 웃음이 났다. 몇 년이 지났다. 지났지만, 돌아간 기분이 들어 어딘가 씁쓸해졌다. 이대로 가면 너와 나의 거리를, 지금의 관계를 잊을 것만 같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0
Code Z에게
잘 지냈다는 말이 썩 좋진 않았다. 그렇지만 예상은 했다. 누구나 겪는 이별이라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망가트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내 예상을 빗겨가지 않고 잘 지내준 것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아쉽기도 했다. 나는 우지호한테 있어서 꽤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없어도 잘 지냈다는 말에 아쉽지 않다면 그건 내가 우지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우지호는 몰라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

우지호 입에서 내가 잘생겨졌다는 말이 나왔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늘 품이 큰 후드나 맨투맨에 꾸러기스럽게 입고 그걸 멋이라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단정하게 수트를 입고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구두까지 신고 있다. 지방으로 발령이 난 후, 따지고 보면 이별 후. 식욕이 없어 음식과는 거의 안녕을 고했던 상태였다. 그랬더니 살은 저절로 빠졌고 끝없는 야근으로 인해 살은 당연히 빠질 수밖에 없었다. 참 괴로웠는데 네가 잘생겨졌다고 말해주니 그때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 사실 과장이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내 웃음에 따라 웃는 너를 보다 순간 온몸에 짜릿-하며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본 네 웃음은 예뻤다. 가느다랗게 접히는 눈과 시원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 여전히 예뻤다. 화단에 기대었던 몸을 떼 옆에 붙어 서서 얼굴을 마주했다.

“형은 그대로네. 예전에도 코는 주먹만 했고 입술도 곱창처럼 두툼했고. 여전히 못생겼어.”

장난스럽게 농을 던지고 눈썹을 씰룩이며 쳐다보는 네 얼굴에 또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어 보였다. 네 웃음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0에게
 그 누구든간에 헤어진 연인과의 인사에 잘 지냈냐는 안부를 물었을 때 'yes'라고 답하는 사람은, 과연 정말로 '온전한 yes'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에 빠져 살면서 표지훈과의 결별 후 나는 그를 잊으려 더 하드하게, 쉴 틈도, 여유를 생각할 것도 없이 빡세게 작업에 작업을 가해온 몇 년을 밟아올라 어느덧 꽤 지분있는 프로듀서가 됐다. 그와의 기억을 담고 있는 물건을 작업실 어딘가에 세워놓아도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정도가 됐다.
 그리고 그 잊혀짐은 오늘이 돼서야 깨졌다. 헤어진 이후로 어디서 뭘 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관심에 빠져있던 탓에 녀석과의 만남은 쇼크가 컸다. 술집 문에 들어서 녀석의 존재를 알았을 때, 빨리감기를 하는 것처럼 지나가는 추억이 술기운보다 더 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녀석의 말에 저는 괜히 욱씬, 하고 표정을 굳혔다. 콤플렉스는 아니었지만 글쎄, 내가 너보다는 덜 했을텐데.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겨우 가라앉히며 미간을 좁히자 제 표정 변화가 재밌기라도 한 듯 또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표지훈은 입술이 본래 특이하게 생겼다. 누가 말하길 하트모양이라고 했다. 그래, 하트처럼 그려진 입술이 이가 드러나도록 크게 웃으면 마냥 예뻤다. 어른스러운 얼굴을 해놓고도 마찬가지였다.

 “뭐라냐…….”

 녀석의 말이 새삼 또 어이없어서 픽 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물어 슬몃 들이켰다가 훅 뱉듯 녀석의 얼굴로 연기를 뿌렸다.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 켈록, 켈록, 제 얼굴 앞에서 손사레를 치는 녀석에 ‘그러게 진작 멈췄어야지.’하며 웃음을 띄였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1
Code Z에게
모순. 난 분명 흡연자인데 네가 뱉어내는 담배 연기를 정통으로 맞고 기침을 반복했다. 진정이 되고 나서야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눈을 치켜떠 너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네 손끝에 걸려있는 담배를 보고 한 개비 가지고 꽤 오래 핀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네 습관인듯했다. 그래서 네가 담배를 피우면 진짜 제대로, 스트레스받는 무언가를 잊으려고 피는 건가? 하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일차적인 것만 생각했기 때문에 네 입에 담배가 물려있는 것만 봐도 유난을 떨며 담배를 모두 부숴버리곤 했다. 참, 어렸었다.

장시간 밖에서 차가운 공기와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니 골이 시렸다. 코끝과 귀가 붉게 물들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다. 코트에 찔러 넣은 손도 이미 얼어 마디를 구부리는 것이 조금 괴로워지기 시작했고 구두 속 발가락도 살살 얼어가고 있었다. ‘아, 존나 춥다.’ 무의식중에 뱉은 말. 네 인상이 살짝 구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예나 지금이나 비속어는 줄이질 못했다. 지방에 있으면서 더 심한 것을 배우면 배웠지, 덜 사용하진 않았다. 멋쩍게 웃으며 괜히 발장난을 쳤다. 뒤에 어떤 말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에 잔소리를 않는 것처럼 비속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다 태운 담배를 아스팔트 위로 던지는 너를 힐끔 쳐다보다 네가 걸어온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네가 날 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인지,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날 맞닥뜨린 것인지.

“근데, 형. 나 보러 여기로 온 거가?”

또 실망할 것을 알면서 기대를 해본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1에게
 가만히 있어서 그런지 더 심하게 와닿는 추위를 느끼는 와중에 꿍얼거리는 표지훈의 말에 얼핏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에이, 아, 그러니까, 하며- 저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제 발 앞의 눈덩이만 툭툭 찬다. 그것 역시 아무 소리 하지 않기로 했다. 찌들긴 되게 찌들었네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근데, 형. 나 보러 여기로 온 거가?”
 “풉.”

 어색한 사투리가 들려 마치 목에 남아있는 연기에 사레가 들린 것마냥 콜록거리며 끅끅 웃음이 터졌다. 아. 사투리를 들은 건가 방금. 표지훈이 슬슬 저가 웃는 이유를 알았는지 히익,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선 아 아니야, 아니라고! 하며 양손으로 손사레를 친다. 아니기는 미친 놈아. 겨우 웃음을 참아가며 말하고 나니 계속 억양이 생각나 손등으로 입을 막는 방법을 택했다.

 “어. 보러 왔다. 됐나.”

 언뜻 들은 어딘가의 사투리 억양을 따라하며 말한다. 자신이 이 길로 온 의도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2
Code Z에게
풉하고 터진 네 웃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추웠던 것도 잊고 온몸에 열이 나 꽉 조였던 넥타이를 풀고 셔츠를 잡아 흔들며 찬 공기를 잔뜩 속으로 당겼다. ‘아. 시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주먹을 쥐어 내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조금 베이긴 했으나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사투리. 최대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하루에 한 번씩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꼭 통화했는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잘하면 몰라. 어색하기 짝이 없는 걸 저도 잘 알기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어. 보러 왔다. 됐나.”

날 놀리기라도 하듯 뱉은 네 말의 억양이 거슬려 고개를 획 돌려 눈을 날카롭게 찢어 쳐다보며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끅끅대며 웃는 네가 얄미워 입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네 손목을 우악스럽게 쥐어 잡고 내팽개치듯 던졌다. 여전히 씩씩거리며 너를 흘기는데 네가 뱉은 말을 다시 곱씹어보니 더욱 부끄러워졌다. 내 기대가, 이뤄졌다. 손바닥으로 눈을 한 번 가렸다가 손을 다시 코트에 찔러 넣고 괜히 구두 끝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별것도 아닌 말에 웃음이 지어졌다. 사실이든 아니든 뭔가 기분이 좋았다.

“뭔데. 나 보고 싶었나.”

일부러 어울리지도 않는 사투리를 써가며 말을 뱉었다. 여전히 웃는다고 돌아오지 않는 대답. 가만히 서 있는 네 어깨를 괜히 툭툭 쳐가며 다시 물었다.

“내 보고 싶었냐니까.”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2에게
 나 보고 싶었나, 내 보고 싶었냐니까. 사투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는 탓에 웃음은 끊기지를 못했다. 아아아 형, 대답 해보라니까. 그제서야 한 손을 들어 표지훈의 얼굴을 확 막아 밀어냈다. 그만 해 인마. 괜히 뚱한 얼굴을 하고선 대답이라도 좀 해 주지... 하면서 불만을 뱉었다. 한참을 웃은 탓인지 술기운 탓인지, 외투로 입고있던 레더 재킷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몸에 열이 올라서였다.

 “넌 꼭 어딘가 허술했어.”

 겨우 사그라든 웃음기를 떨치며 녀석을 보며 말한다. 그리고 처음 질문의 답을 새삼 되짚었을 때 전혀 의도된 답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이제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가게 불빛에 비쳐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남아있던 본심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시 예전 어딘가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헤어져 있었던 몇 년 간의 공백을 다시 잊어가고 있었다.

 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헤어짐을 고하기 전의 불안함을 뒤로 하고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들어하는 네 얼굴을 마주했다.
 보고 싶다. 음악에 열중하려 해도 머릿속을 꿰차는 네 글자를 떨쳐내려 했다.
 보고 싶었어. 그 예전의 마음을 되짚고 지금- 추위 탓에, 방금 전의 놀림 탓에 또 얼굴이 새빨개져있는 네게, 목 안에서 듣지 못하도록 뱉었다.

 이 관계의 끈을 어찌 연결해야할 지 나는 아직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 다시 재회한 지 여섯 시간도 채 안 됐으니까.

/ 나중에라도 불마크 달 거야? 그냥 물어보는 거.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3
Code Z에게
어딘가 허술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실이니까. 늘 이 퍼센트가 부족해서 내가 무슨 말을 뱉거나 어떠한 행동을 하면 그 빈틈을 꿰차고 들어와 너는 내 의도를 금방 알아차리곤 했으니까.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일할 때도 완벽하지 못해 기획안을 올리면 꼭 한 번은 퇴짜를 맞는다. 네 말을 곱씹으니 허술함은 내 모습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장난스럽게 뱉은 말이었지만 네 대답을 기다렸다. 한 번은 장난이었고 한 번은 진심이었다. 가만히 서서 본드를 붙여놓은 것처럼 딱 붙어있는 네 입술이 벌어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대답이 한 번쯤은 나와주길 기도했다. 네가 침을 삼켰다. 그걸 보고 네 입술을 더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달싹이기만 할 뿐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솔직히 나는 종종 네가 보고 싶었다. 이 이별은 내가 불리했다. 너는 내 지인들과 연락하지 않으면 내 소식을 알 길이 없었겠지만 나는 매스컴을 통해서 네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휴일에 집에서 쉬고 있으면 꼭 한 번쯤은 네 이름을 보았던 것 같다. 술에 떡이 돼 집에 온 날에는 내가 의도적으로 네 이름을 검색해 네가 만든 노래를 듣고 네 사진이 담긴 기사를 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네가 어떻게 사는지-최측근의 이야기들-는 몰라도 점차 네 이름을 알리며 명성을 얻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맨정신일 때에는 네가 잘나가는 것에 배알이 꼴려 괜히 주변 사람들이 네 칭찬을 하면 싫은 소리를 뱉곤 했는데 술만 취하면 주변 사람들한테 네 노래를 권했던 것이 기억난다. 잊은 듯했지만, 나는 너를 잊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아, 춥다. 형은 안에 안 들어갈 거지?”

추억을 회상하고 나면 꼭 더 허전하고 마음이 시리다. 다시 맞닥뜨린 현실에 너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답은 뻔했다. 넌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고 나는 코트를 더욱 여미며 대답했다.

“난 들어가 봐야겠다. 나 번호 안 바꿨어. 그대로니까 종종 연락해.”
‘꼭 연락해.’

차마 마지막 말은 뱉지 못했다. 마주 서 있던 자리에서 먼저 등을 돌린 건 나였다. 네가 먼저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잊지는 못했어도 담고 살진 않았는데, 갑자기 휩쓸고간 너 때문에 머리도 마음도 뒤숭숭했다. 명확하지가 않다.

/딱히 상관없어.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3에게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있으니 녀석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괜스레 제 뺨을 긁적이며 안에 안 들어갈 거지? 하며 다른 주제로 돌렸다. 그제서야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생각났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야했었는데, 졸지에 녀석의 한 개비를 빌려서 계속 잊고 있었다. 한 자리에서 길게 피더라도 꼭 두 개비는 떨쳐야 직성이 풀렸는데. 헤비 스모커인 제 지인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혹은 자신이 결핍되어있는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면 담배 생각이 나지 않더라. 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놓으며 어, 안 가. 하고 답을 하자 들어가보겠다며 코트를 여민다.

 “나 번호 안 바꿨어. 그대로니까 종종 연락해.”

 손을 가볍게 흔들며 등을 돌리는 녀석을 물끄러미 보다 마른 목을 삼키며 손을 주춤했던 것도 잠깐, 주먹을 꾹 쥐고 있지도 않았는데도 식은땀이 나는 기분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잡을까, 잡아야 하나. 아니, 아직 정리는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관계의 정리는 헤어졌던 그 순간 깨끗하게 되었어야 할 것을, 얼키고 설켜진 채 복잡해진 창고마냥 방치되어 있던 건 아니었을까.
 지훈- 하고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같은 음악을 하고 있던 지인이었다. 예 형. 하고 전화를 받으며 곁눈질로 주점 입구를 보면 이미 표지훈은 들어가있었다.


-

 그 날 밤은 술기운이 채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든 터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깨지도록 두통이 밀려왔다. 심하게 마신 것도 아니고, 도수가 그렇게 강하지도 않았는데-거의 대부분이 맥주였으니까-. 푸석해진 얼굴로 일어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곤 깊게 한숨을 쉬었다. 뒤늦게 몰려오는 갈증으로 목이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담배……. 손을 뻗어 침대 옆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한 개비를 들어 물고는 라이터를 찾으러 거실로 나왔을 때, 소파 앞 테이블에 펼쳐진 몇 맥주 캔과 무슨 정신에 딴 건지 모를- 언젠가 선물 받았던 조니워커 블루가 올라가있었다. 돌았지 내가 진짜.

 “하아…….”

 불행 중 다행인 건 내가 집 안 어디에도 술 마신 후처리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 담배고 자시고 식탁 위에 입에 물고있던 레드를 잠시 내려놓고 무작정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마셨다. 타들어가던 갈증이 사라졌다. 소파 위에 널부러져 있던 핸드폰을 집어들면 배터리 용량이 15%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어디에 뭐 잘못 보낸 건 없었나. 하고 뒤적거려보면 분명 최근기록에는 '표지훈'이라는 이름을 향해 몇 개의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남아있었지만 메시지함에는 어디에도 발신메시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아, 나 대체 뭐라고 보낸 건가... 술버릇이 딱히 있는 내가 아니었는데.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4
Code Z에게
너와 헤어지고 곧장 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창문이 없어 룸 안에서 맴도는 매캐한 담배 냄새와 맡기만 해도 취할 것 같은 술 냄새가 훅 풍겨왔다. 이미 몇은 취할 대로 취해 구석에 꼬꾸라져 누워있고 몇은 서로 마이크를 쥐겠다며 한 마이크에 두 명이 붙어 노래를 부르고 있고, 정말 아비규환이었다. 조금 전 너와 차분하게 나누던 대화가 급격히 그리워졌다.

“어휴. 병신들. 이제 해산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방 기계 앞으로 가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마이크를 잡고 있던 친구들의 손이 내 등을 내려치며 시끄럽게 꿍꿍 울리던 노랫소리는 사라지고 나에 대한 원망 가득한 목소리가 룸을 가득 채웠다. 해산하자는 말을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는 친구들에게 이미 필름이 끊겨 구석에서 헛구역질하는 친구들을 보여줬더니 그제서야 마이크를 내려놓고 외투를 주섬주섬 주워입는다. 제일 멀쩡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 조금 멀쩡한 친구들과 아주 시체처럼 힘이 없어 축축 처지는 친구들을 2인 1조로 택시에 태워 보내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술을 권하다가 결국 테이블 위에 전사한 친구를 들춰 매고 룸에서 나왔다. 매정한 놈들. 단 한 명도 계산하고 간 놈이 없다. 주머니에서 힘겹게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더니 글쎄, 몇십만 원이 나왔다.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한테는 너무 큰 지출이었다. 이를 빠득빠득 갈며 뻗은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커버가 씌워져 있지 않은 침대에 친구를 눕히고 박스에서 이불을 꺼내 대충 덮어준 뒤,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고요함을 맞이하자 정신이 좀 들었다. 그리고 너와 함께 있었던 그 짧은 시간이 떠올랐다. 복잡 미묘한 감정만 남기고 끝낸 대화. 그러던 중, 휴대폰이 경쾌한 알림 소리를 내며 울렸다.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더니 액정에 최근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네 이름 석 자가 떠 있다. 네 번호도 그대로였구나.

“뭐야, 이거.”

내용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와 오타 가득한 문자, 거기다가 네가 치를 떨며 싫어하는 이모티콘까지. 최대한 머리를 굴려 내용을 유추해보는데 연달아 문자가 도착했다.

“아. 우지호, 진짜. 이게 다 뭔 소린데!”

조금씩 내용을 알아볼 수는 있으나 여전히 의미는 알 수 없었다. 괜히 짜증이 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툭 던져놓고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골며 자는 친구 옆에 누웠다. 자야지, 자야지. 나에게 최면을 걸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잠이 들었다.

-

아침부터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해장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혹시나 또 문자가 왔을까, 내심 기대를 하며 휴대폰을 보는데 온 연락이라곤 없다. 알 수 없는 외계어만 잔뜩 보낸 그 문자가 끝이다. 놀리는 건가?

「형.」

단순히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보낸 것인지.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4에게
 다시금 입에 레드를 문 채 끝에 불을 지피곤 지난 밤을 되짚었다. 녀석을 그렇게 들여보내고, 담배 살 틈도 없이 음악 얘기에 열중할 수 밖에 없었던 통화내용, 걸어가면서 땡기는 담배 탓에 죄 없는 아랫입술만 고생했던 귀가길. 피곤이 쌓이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필름이 끊기나보다. 집에 들어오고나서 긴장이 풀렸던 탓인지 내가 냉장고에서 어떻게 맥주와 보드카를 꺼냈는지 그 과정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아, 연기를 뱉으며 한껏 미간을 좁히고 있는 동안 다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형.」

 표지훈에게서 온 문자에 문득 아까 전 확인했던 최근기록이 떠올랐다. 아, 녀석이 문자를 보긴 봤나보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보냈디. 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한참동안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대기시간이 지나 어느새 까맣게 전환해 잠금화면으로 되돌아간다. 누가 해결방안을 툭하고 뱉어줬으면 좋겠다.

 「어 왜」

 수신 시각을 기준으로 5분. 이상하리만치 길게 느껴진 5분. 겨우 쓴 답변이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5
Code Z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이 오질 않아 ‘아직도 자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내 방에서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인상을 마구 구기며 나오는 친구에게 해장할 의사를 묻고 집 문 앞에 붙어있던 홍보용 전단지 하나를 가져와 대충 주문했다.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소파에 길게 누웠다. 소파 팔걸이를 베개 삼아 누워 새하얀 천장을 보며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지루하게 시간이 지나가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잡으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어 왜」

“어, 왜? 아, 뭐야. 밤에 이상한 문자만 잔뜩 보내놓고. 어제 술도 얼마 마시지도 않았더구만.”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네가 보낸 무심한 문자 내용을 훑고 또 훑었다. 별것도 아닌 두 글자가 담긴 문자인데 쉽사리 대답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제 문자 뭐야? 라고 묻기도 애매했고 문자 왜 보냈어? 라고 묻기도 애매했다. 충분히 그냥 전송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네가 너무 당당하게 보낸 문자에 차마 이런 말을 이어가기가 민망했다. 그냥 실수로 보낸 문자에 의미 부여해서 나만 괜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죄 없는 휴대폰을 잡고 마구마구 흔들며 으-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친구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 얌전히 앉아 손가락으로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해장 콜?」

전송 버튼을 누르고 소파에서 일어나 악! 소리를 지르고 소파에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필 보내도 저따위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5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보낸 문자는 존나 멍청했다. 평소 말투대로 보낸 건 맞지만 전날 밤의 내가 무슨 실수를 했을지 몰라 내심 불안했던 탓이다. 이상한 소리 해놓고 뻔뻔하게 보이는 건 아니겠지 싶고. 언제쯤 답이 오려나 조급해진 마음에 평소 천천히 피던 속도와는 달리 담배는 금새 짧아졌다. 눈 앞의 재떨이에 비비곤 컵에 물을 담아 벌컥 마셔 넘겼다. 다시 지잉, 하고 울리는 핸드폰과 상대방의 새로운 말풍선이 생겼다. 해장 콜? 뜬금없는 내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아니. 어디서?”

 정말로, 어디서? 표지훈의 집을 아는 것도 아니였다. 녀석이 여기로 올 것도 아니였고. 벙찐 얼굴로 화면을 내려보다 「어디서?」 하고 보낸다. 그리고선 방에 들어가 데스크톱을 키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기를, 지금 이렇게 자연스럽게 문자를 나눠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표지훈도 아마 저와 나누는 게 꽤 어색할 텐데. 지난 밤 그렇게 웃어놨지만 아직 나는 거리를 잊지 않았다. 좁히는 쪽을 선택한다 한들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멍하게 천장을 보고 있으면- 어차피 단순히 문자 나누는 건데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잖아.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6
Code Z에게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러그 위에 주저 앉아 멍하게 거실장을 바라봤다. 어젯밤 네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넌 꼭 어딘가 허술했어.’ 제기랄. 몸소 인증했다. 저 엄청 허술합니다. 모래사장 위에 죽어 널브러진 해파리처럼 축 늘어져 주먹을 쥐고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멍청이. 똥 멍청이. 띵동- 초인종이 울리고 조금 전 배달 시킨 해장국이 도착했다. 어제 술값을 내가 다 낸 것이 아까워 술병으로 두통에 시달리는 친구 지갑을 가지고 나가 계산한 후 해장국 두 그릇을 가지고 들어와 식탁 위에 대충 펼쳤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아, 나 우지호한테 해장할 거냐고 물었는데. 내 앞에 놓인 해장국을 한 번, 포장되어온 비닐을 뜯어 숟가락을 휘휘 젓는 친구를 한 번, 마지막으로 휴대폰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알림이 울렸다.

「어디서?」

“헙. 어디서, 어. 어디서. 어디서 먹지. 내 해장국, 어. 아…….”

혼자 중얼중얼 식탁 위 해장국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다 눈을 질끈 감고 감으로 내용을 찍어 보내고 휴대폰을 휙 던졌다.

「커피킹 옆 오피스텔. 708호.」

의자에 앉자마자 몇 날 며칠을 굶어서 뱃속에 거지가 든 것처럼 뜨거운 해장국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내 플랜은 이러했다. 네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 해장국을 다 먹어치우고 그릇은 다른 집 앞에, 네가 오면 자연스럽게 해장국을 주문해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에서 천천히 맛을 음미해가며 먹는 친구를 보니 속이 뒤집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고개를 돌리니 아직 정리를 시작도 못 한 온갖 박스와 짐 더미들이 보였다. 집으로 오라는 건 엄청난 미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형. 잠시만. 아직 안 나왔지?」

오지 않는 답장에 손톱을 물어뜯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6에게
「커피킹 옆 오피스텔. 708호.」

자신이 알고 있는 커피킹, 그리고 그 옆 오피스텔이라면 바로 앞 건물이였다. 아, 신님.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요. 저는 아직 표지훈을 이웃집으로 맞이할 준비가 덜 됐습니다만. 부팅이 끝난 컴퓨터를 확인하곤 전날 밤 지인과 연락했던 내용 탓에 프로그램 몇 개를 키고 확인작업을 진행했다. 수정을 마치고 확인차 메일로 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대학 휴학과 함께 잠시 옮겨온 지 이제 3개월 정도 됐는데, 녀석은 저보다 더 오래 거기서 지냈을 수도 있겠다. 답변을 깜빡했단 걸 깨우쳤을 때 출발했냐며 들어온 문자에 아니. 아직. 하고 보낸다. 답변을 재촉하는 거면 어쩌나 싶었다.

"가긴 가야겠지..."

옷을 갈아입고 외투를 챙겨들며 슬쩍 내다본 거울에는 초췌함 반, 피곤함 반으로 엉망인 얼굴이 보였다. 나름 정돈도 하고 세수도 했는데.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7
Code Z에게
혹시나 네가 온 것일까 마음을 졸이며 걱정하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인터폰을 통해 문 앞의 상대를 확인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누구세요?’하고 묻는데 다행히도 전날 주문해놓은 전자제품 배송이었다. 안심하며 문을 활짝 열어주고 그새 한 그릇을 다 비운 친구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나도 나지만, 저놈 처리가 더 급했다. tv를 놓을 위치와 냉장고 위치를 대충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지켜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짐이 가득 들어있는 박스를 열어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꺼내 소파 위에 대충 던져놓고 칫솔에 치약을 가득 묻혀 입에 쑤셔 넣었다.

「아니. 아직.」

네 답장에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1차 안심. 손에 힘을 줘 칫솔로 입안을 마구마구 헤집다가 손을 떼고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집은 안 되겠어. 근처에 괜찮은 해장국집 알아. 거기로 가자.」

괜찮은 해장국집? 방금 내가 배달시켜 입에 꾸역꾸역 쑤셔 넣은 그 해장국집이다. 앞에서 꽤 깊은 감탄을 내뱉던 친구를 보면 맛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으니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급한 대로 개수대에 거품을 뱉고 물을 틀어 입을 헹궜다. 자고 일어나 붕 떠 있는 머리카락에 대충 물을 적셔 정리했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입을 헹구고 손끝에만 물을 적셔 고양이 세수를 했다. 나쁘진 않았다. 어제만은 못하지만.

“야. 나 나간다. 이거 설치하면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문자 보내고 집 가라.”

소파 위에 던져놨던 옷으로 대충 갈아입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나와 신발을 구겨 신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생각보다 양호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7에게
몇 호랬더라, 몇 호랬더라. 아무래도 건물 입구에서 호출을 해야하니까. 디시금 핸드폰을 켜 문자를 확인하고 인터폰으로 7, 0, 8, 그리고 호출을 누르려던 참에 엘리베이터에서 표지훈이 나왔다. 어제보단 덜하지만 그래도 단정한 복장에 와...하는 짧은 혼잣말 같은 감탄사만 튀어나왔다. 어떻게 저렇게 훅 꾸미고 나올 수가 있지 싶어서. 자동문이 열리고 형! 하는 부름소리와 함께 가시지 않은 술냄새에 잠시 미간을 좁혔다 풀었다. 자신이 지어야 할 표정은 아닌 탓이었다.

"잘 잤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됐다. 해장국집이 어디라고? 표지훈이 먼저 가도록 앞장세웠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8
Code Z에게
어제 잠은 잔 건지. 눈 밑이 시커멓게 물든 네 얼굴을 한 번, 퉁퉁 부어서 더 커진 네 코를 한 번 쳐다보고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쑥 밀어 넣었다. 옆에 나란히 섰더니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제 분명히 얼마 안 마셨는데. 집 가서 혼자 더 마시기라도 한 건가.

“뭔데. 어제 2차로 누구랑 마셨어.”

내 물음에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떠보이기만 할 뿐, 대답을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보았다가 이내 궁금증을 거두었다. 왜냐면 해장국집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내가 아는 집으로 가자고 말했지만, 위치를 정확히 몰랐다. 전단지에 작게 그려져 있던 약도 하나에 의존해 가는 중인데 생각보다 먼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길을 잘못 찾은 거일지도. 개인적으로 전자이길 바랐다.

계속해서 같은 곳을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만 눈치챈 것이 아니었다. 머쓱하게 나를 쳐다보는 네 눈을 피해 ‘마지막으로 저 코너 돌아보고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하고 생각하며 코너를 돌았는데 마법처럼 찾아 헤매던 해장국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쁜 마음에 오예!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만세를 부르며 뒤를 돌았는데 뭐 저런 병신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보는 네가 보였다. 뻘쭘.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해장국 두 그릇을 주문했다. 이걸 또 어떻게 다 먹나. 벌써 걱정이 앞섰다.

“근데. 진짜 어제 나랑 헤어지고 또 마셨냐.”

집에 물이 없던 탓에 갈증이 심했다. 식당에 오자마자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물을 받고 두 컵을 들이킨 후에야 너에게 말을 건넸다. 궁금했다. 진짜 마신 거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18에게
 벙찐 얼굴을 하고선 2차를 갔냐며 묻는 표지훈의 질문에 멈칫해서 잠시 꾹 감았다 뜬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지훈에 손사레를 치며 얼른 가자. 하고 대답을 대신했다. 분명 아침에 물을 마셨는데도 목소리는 꽤 갈라져있었다.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아직 찬 공기 때문에 외투에 양 손을 꽂고 싶었지만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이 근방 골목은 눈이 아직 덜 녹기도 모자라 인도 곳곳이 얼어서 까딱하면 미끄러지기 쉽상이었다.
 전단지를 양 손에 꼭 붙들고 조잘조잘, 여기가 친구가 진짜 맛있대요. 그래서 전단지를 던져줬는데, 왱알왱알. 힐끔 흘겨본 전단지에는 해장국 위주로 그려진 메뉴와 신메뉴를 알리는 듯 더 크게 박혀있는 다른 음식, 전화번호, 쿠폰제 안내, 뭐. 다를 바 없는 것을 천천히 훑어보다 좀 더 다른 곳으로 옮기면 녀석의 손이 보였다. 희고 곱다. 작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큰 손, 섬섬옥수마냥 길게 뻗은 손가락. 일 탓이었는지 검지 끝에는 굳은살도 생겼다. 조심 좀 하고 다니지. 물끄러미 보면서 걷다가 발이 돌에 걸려서 휘청 하고 몸이 기울어졌다. 한참 걷던 녀석이 뒤돌아보며 '형?' 하며 눈을 꿈뻑이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었다. 집중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이게 아닌데... 하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잠시 멈춰서서 전단지 구석에 그려진 약도와 주변을 비교하듯 눈동자가 오락가락한다. 녀석은 또 제 허술함을 보였다. 한숨섞인 웃음이 나온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휙 고개를 푹 숙인다. 살금살금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간판에 오예! 하고 펄쩍 뛰는 것에 잠시 한 발 짝 물러서며 지그시 쳐다본다. 그래, 고생했다. 그래. 얼굴 한가득 신나서 본 녀석은 다시 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가요, 가요. 먼저 쪼르르 들어가 주문을 마친다. 컵 두 개, 생수통 하나가 나오자마자 녀석은 그간 목이 꽤 탔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선,

 “근데. 진짜 어제 나랑 헤어지고 또 마셨냐.”

 하고 묻는다. 지난 밤의 문자 실수가 다시 불현듯 떠올라 미간을 좁혔다.

*

 예, 예. 보내드릴게요.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전화 내용이 마쳤다. 지인에게서 들어온 피드백은 우지호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나 복잡했다. 술기운에 해결할 자신이 없어 괜히 제 뒷머리를 박박 흐트렸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누워있자니 어딘가 허전함을 느낀다. 이 곳에 온 지 3개월, 혹은 그 보다 더 긴 이 전 집에서의 생활. 혼자라는 것이 익숙해졌고 일 밖에 모르던 우지호가 허전함을 느낀다. 담배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았는지 다시 벌떡 일어나선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은 남은 맥주캔을 털어내듯 꺼내놓고 무슨 정신인지 선물 받아놓고 두고두고 아꼈던 조니워커를 꺼내왔다. 소파 앞에 앉아선 제 앞에 펼쳐진 술들을, 무엇부터 처리해야하나 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Code Z에게
 안주 없이 먹기에는 제 몸에 쌓일 알코올 수치가 만만치 않을 텐데, 우지호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재미없는-새벽에는 정말 재미가 없다. 영화채널은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뻔한 스토리 진행의 야한 영화만 하든가 서 너 번은 재탕했을 액션물 뿐이었다- 것들을 소리 삼아 어느덧, 세 캔이나 꺼내왔던 맥주를 다 마시고선 얼음이 거의 녹아내려가고 있는 유리컵 안으로 위스키를 담아낸다. 화면에 무엇이 지나가는 지 관심도 없으면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으면 머릿속은 새하얘져서 표지훈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마시라고 했던 지인의 말을 무시하고 그 도수 높은 것을 우지호는 잘도 넘겼다. 이미 끊긴 정신, 보다 질려서 꺼버린 텔레비전. 눈을 느릿이 꿈뻑인다. 손에 잡히는 핸드폰 잠금화면을 열어 화면을 옆으로 이리저리 넘기며 왜 켰을까, 왜, 하며 읊조린다. 그렇게 들어간 메뉴는 메시지였다. 오락가락하는 정신 속에 수신인 이름칸에 표지훈을 입력했다.

 ‘종종 연락해.’

 웃으면서 얘기하던 마지막 말을 되짚었다. 이렇게 연락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자판을 두들겨 쓰기 시작했다. 딱히 정해진 내용 없이 손 가는대로 써지는 입력칸에는 오타가 가득했다. 손이 풀린 탓이었다. 우지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않고 MMS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적기 시작했다.

 「안 아파서 다행이다 왜 이렇게 예뻐졌는지 몰라」
 「지훈아 표지훈」

 쿼터라는 특성 탓, 잘못 눌러 특수문자도 섞여간다. 몇 개인가의 문자를 보내놓고 마지막을 장식하려듯 손을 머뭇거린다. 술이 올라 열이 가득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믹스테이프에 적었던 가사를 적는다.

 「다음부터 잘 할게.」


 침침해진 시야를 뚜렷하게 보고 싶어 잠시 고개를 절레이고 나서야 화면을 본 우지호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의도한 글은 온데간데 없고 외계어마냥 이상한 말만 잔뜩 적혀있었다. 잠금화면으로 돌아가기 전 괜히 메시지 목록에서 자신이 보낸 것들을 지워버렸다.

*


 “마시긴 마셨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술을 마셨단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쿨하게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문자메시지를 뭐라고 보냈는지 물어볼 것이다. 그것도 기억에 없는데. 대답해야할 거리가 필요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1
Code Z에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건지. 별것 아닌 물음인데 허공에 눈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는 모양이 어젯밤 단순히 2차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게 하였다. 턱을 괴고 앉아 네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어제와 대조된 다크서클, 그리고 퉁퉁 부은 코, 건조하게 터버린 입술. 눈이 붓지 않은 걸로 봐서 운 것은 아닌 것 같고. 잠을 좀 설쳤나, 아니면 잠을 한숨도 못 잤나. 역시 술을 마신 건가. 이런저런 유추를 하며 네 얼굴을 훑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안색이 어두워진다. 얼굴이 잿빛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형.”

지금 네가 있는 세계에 내 목소리는 차단된 것 같았다. 아랫입술까지 깨물며 생각하는 모습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네 눈앞을 손바닥으로 휘휘 저어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움찔하는 것도 없었다. 내 질문이 그렇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나. 턱을 괸 상태로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마시긴 마셨는데.”

드디어 네 입에서 대답이 나왔다. 마시지 않았다고 말해도 난 마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모양새를 해놓고 마시지 않았다는 건 모순이니까.

“그럴 줄 알았다. 얼마나 마신 건데.”

네가 술을 마셨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조각나있던 어제의 상황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맞춰지고 있는 듯했다. 술을 마셨고 나한테 술김에 문자를 했고. 그런데 왜? 주사가 거의 없어 양반이라 불리는 사람이 왜 굳이 나한테. 집에 가서도 나와의 만남을 곱씹고 있었던 걸까.

여러 생각을 하며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휴지를 깔고 그 위에 수저를 놓는데 해장국이 나왔다. 순간 느껴진 포만감. 이걸 어떻게 다 먹지. 미련한 놈. 애초부터 그런 멍청한 멘트를 날리지만 않았어도 이 사단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허술함은 역시 나랑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수저를 먼저 들지 않고 너를 보다 네가 숟가락으로 해장국을 휘휘 젓는 것을 보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제 네가 보낸 메시지를 켜 네 옆으로 쑥 밀었다. 해장도 해장이지만 궁금증도 풀어야 했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1에게
 “그럴 줄 알았다. 얼마나 마신 건데.”
 “그…….”

 괜히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기억 안나는 그 상황 속에서 위스키를 땄다고 하면 아마 벌떡 일어나서 뭐?! 하고 소리칠 게 뻔했다.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새 주문했던 해장국이 저와 표지훈 앞으로 놓였다. 평소에도 해장국을 한 번 씩 먹곤 했지만 이 가게는 다른 곳 보다 유독 양이 많은 거 같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멍하게 쳐다보며 숟가락을 들고 국을 휘휘 젓고 있으니 제 눈 앞으로 불쑥 핸드폰이 들어와 뒤로 주춤 물러난다.

 “이거 봐.”
 “…….”

 -dkvkㅓ @4ㅣ냐 dㅐ닡케붓느지 볼ㅏ

 “……이게 뭐야.”
 “내 말이!”

 뭐라고 적혀있는 지 스스로도 알아볼 수가 없어 미간이 좁아졌다. 제 대답에 발끈해서는 답답한 마음을 표하려 더 소리지르려는 녀석의 입을 손으로 턱, 틀어막았다. 그만. 거기서 스톱. 대형견을 훈련시키는 기분이 들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2
Code Z에게
저런 문자를 보낸 건 자신이면서 이게 뭐냐고 되묻는 이 상황은 뭘까.

“내 말이!”

갑자기 손을 쭉 뻗어 내 입을 틀어막는다. 내 목소리가 좀 컸나. 눈을 이리저리 굴려 식당 안을 살펴보니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와 우지호를 번갈아 보는 사람이 몇 보이긴 했다. 민망했다. 막힌 입이 답답해 네 손목을 잡고 내리는데 네 손이 입술을 스쳤다. 순간 머리에 열이 쫙 오르면서 공기가 답답해졌다. 이 망할 몸뚱이가 네 손길을 기억하나 보다. 네 손끝만 스쳐도 발정 난 개처럼 너한테 매달렸던 것이 확 떠올랐다. 허공에서 네 손목을 잡고 한참을 있다가 떨어트리듯 확 놨더니 네 손이 테이블 위로 툭 떨어진다.

“형. 뭐해.”

아침에 만난 후부터 저렇게 멍한 눈을 한 모습만 보인다. 휴대폰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대기 시간이 지나 불이 꺼지면 또 켜서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자신도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숟가락을 들어 해장국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조금 전보다는 맛도 음미하게 되었지만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아무리 쑤셔 넣어도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아, 형. 그만 보고 먹어.”

무시하는 건지 들리지 않는 건지. 저대로 두면 내 휴대폰이 뚫릴 것 같아 휴대폰을 가져와 주머니에 넣고 네 손에 숟가락을 쥐여줬다.

“먹어. 식는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2에게
 사실 말로써도 녀석의 격분을 막을 수 있었다. 녀석의 입을 막은 건 지난 날에 배여 무의식적으로 나온 습관이었다. 제 앞자리에서 저와 마주보도록 거꾸로 앉아 이것저것 따지고 들던 어린 녀석을 입으로 막은 채 끙끙거리는 모습을 즐겼던 기억이 어렴풋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손은 식탁 위로 내려가있고 녀석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당황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안절부절해 보이는 것이 너와 나의 손장난을 회상시켰다.
 휴대폰에 들어온 여럿 문자는 정말이지, 해독가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아, 이게 뭐냐 대체... 아무리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원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혹시 담담한 겉을 풀어헤치고 내 스스로 속마음을 내비친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제 핸드폰의 자판을 되짚어 가만히 짜맞춰가는 동안 표정이 꽤 굳어졌는지 지훈이 조심스레 내 손 안에서 휴대폰을 빼가고 자신이 해장국을 휘젓던 숟가락을 쥐어준다.

 “먹어. 식는다.”
 “…어? 어.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곤 그제서야 해장국을 섞고 밥까지 말았다. 서로의 대화 없이 밥을 떠먹는 동안 힐끔 본 표지훈의 음식은 좀처럼 줄을 생각을 안 했다. 힐끗 표정을 보니 곤란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넌 왜 안 먹냐. 잠시 숟가락을 내리고 쳐다보며 말하니 먹어야지...하고 말 끝을 흐린다. 아침부터 뭐 군것질이라도 했나.

 “표지.”
 “응…….”

 또 천천히 한 숟갈을 떠 제 입에 넣는다. 억지로 먹는 거 지나가던 초딩도 알겠네. 지그시 보다 저도 다시 식사를 비우고는 상대방이 다 먹길 기다린다. 반 쯤을 비웠을까, 그제서야 표지훈은 으어. 못 먹겠어. 하며 숟가락을 내려놨다. 만나기 전에 뭘 먹고 온 모양이었다. 물도 겨우 마시는 녀석을 보다 일어나 계산대에서 미리 두 사람 분의 값을 계산하려니 뒤에서 헐, 내는 거야? 하는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어쩐지 눈이 반짝이고 있는 착각이 든다.

 “어. 왜. 줄래?”
 “허, 아니. 아니. 그…….”
 “사는 거야. 가만히 있어.”

 어쩐지 들떠있는 것 같다. 실실 웃으면서 지갑을 다시 제 외투에 챙겨드는 모습에 아무래도 지난 밤에 지출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3
Code Z에게
한계에 도달했다. 그래도 꽤 자연스럽게 먹었다고 생각했다. 거북한 포만감 때문에 속을 다 게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은 헹궈야겠다 싶어서 꾸역꾸역 컵을 들어 물을 꼴깍꼴깍 마시는데 앞에 앉아있던 우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 괜히 신이 났다. 어젯밤 큰 지출로 재정상황에 출혈이 생겼는데 이걸 대충 눈치챈 것 같았다. 이를 다 드러내고 씩 웃어 보이며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형, 땡큐.”

자리에서 일어나 빠트린 것은 없는지 자리를 훑어보고 계산을 끝낸 네 옆으로 가 카운터에서 자연스럽게 박하사탕 한 움큼을 쥐었다. 아주머니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머쓱하게 웃어 보이고 앞에 서 있는 네 허리를 손바닥으로 밀며 밖으로 나갔다.

“우지호. 손.”
“……뭐?”

늘 형이라고 부르다가 한 번씩 네 이름 석 자를 부르는 날에는 넌 꼭 인상을 썼다. 애초부터 형이라고 부르지 말았어야 했나 하고 종종 후회하곤 한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네 손에 박하사탕 하나를 올려주고 두 개를 내 입에, 나머지는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예전부터 습관이었다. 꼭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박하사탕을 한 움큼 챙겨 나와 집에 가서도 꺼내 먹었다. 마트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꼭 식당만 가면 그랬다.

어느덧 해가 내 머리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전보다 한기가 덜 느껴졌다. 너도 그런지 잔뜩 움츠리고 있던 몸을 조금씩 펴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바로 집으로 보내기는 뭔가 아쉬웠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기도 이상했다. 그러던 중 주머니에 넣어놨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에 두고 온 친구였다.

‘나 집 간다. tv는 뭐 잘못 가져와서 다시 해야 된다는데.’
“야. 조금만 더 있다가 되는 거 보고 가. 나 아직 멀었는데.”
‘나 어제 말도 없이 외박했다고 집에서 난리거든. 간다.’
“야, 야. 야!”

지금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널 집으로 보내긴 싫었다. 이상한 심보다. 아쉬움이 컸다.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답답했는지 네가 가보라고 말을 건넨다. 나만 이렇게 복잡하지 우지호는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같이, 갈래?”

아무렇지 않은 거라면 이 제안에 대답도 쉽게 하겠지.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3에게
 우지호, 손.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뱉는 녀석에게 대꾸를 하려는 찰나 손 위로 박하사탕이 쥐어졌다. 녀석의 오랜 습관이었다. 넌 또... 하며 꿍얼거리며 사탕을 입에 문 채 그렇게 헤매던 길을 되짚어 큰 길로 나온다. 우리가 헤맸던 곳은 그렇게 복잡한 길이 아니었다. 주변 건물을 봐도 꽤 익숙한 곳이었다. 집으로 가자는 말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하는 녀석의 대각선 뒤로 따라다니다 녀석에게 오는 전화에 잠시 멈춰 기다렸다.

 “……야. 조금만 더 있다가 되는 거 보고 가. 나 아직 멀었는데.”

 녀석, 당황한다.

 “야, 야. 야!”

 길지 않은 통화가 상대방 측에서 일방적으로 끊겼다. 급한 볼일인 것 같은데 녀석은 저와 핸드폰을 번갈아보며 우물쭈물거리고 있기만 해선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뭐, 무슨 일이길래 저럴까. 급한 일이면 튀어가야 하는 게 맞을텐데.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고 답답해져선, “얼른 가 봐.”하고 얘기했다. 좀 더 있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싶다.

 “같이, 갈래?”

 제 집으로의 초대였다. 눈을 꿈벅이며 한참을 쳐다보니 녀석이 무안한듯 아니... 하고 또 자신감을 잃어선 고개를 숙였다. 아직 애기티를 못 벗었다. 아니, 내 눈에만 그런 지도. 가도 되는가 하고 머뭇거리게 됐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 다시 저를 보는 얼굴에 그, 음. 하고 얼버무렸다. 갈 입장이 못 되잖아. 제 기억에는 학창시절에도 분명 자신은 표지훈의 집에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니다. 저와 표지훈의 거리를 다시금 되짚었기 때문이다.

 “그, ……가도 되는 거냐?”

 조심스레 물었다. 표지훈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어제의 만남 이후로 다시 떠올린 질문이었다. 무덤덤하게 생각한다면 녀석은 분명 어깨를 으쓱이고 말 것이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4
Code Z에게
“그, ……가도 되는 거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 말은 자신도 복잡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뜻이 그렇든 아니든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 안될 것도 없잖아.”

오피스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너를 힐끔 쳐다봤다. 꽤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렇게 쉽게 행동해도 되는가 싶지만, 꼭 불편하게 굴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지호보다 두 걸음 정도 앞서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가자.”
“……어, 어.”

나란히 섰다가 어깨동무하고 네 발을 억지로 떼어냈다. 이 동네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를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오피스텔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 블럭을 지나 코너를 돌았더니 커피킹이 보였다.

처음이다. 너를 데리고 내가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은. 학창시절 때에도 난 너를 단 한 번도 우리 집에 초대하지 않았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집에 들이지 않았다. 큰 이유는 없었다. 집안 분위기는 조금 엄한 편이었다. 때문에 집에서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꾸미고 다니길 희망했지만 나는 늘 편안하게-양아치처럼- 입고 다녔다. 때문에 부모님은 내 친구들을 양아치라고 단정 지었고, 집으로 데려갈 순 있었지만 내 친구들이 우리 부모님 눈치를 보는 게 싫어 단 한 번도 데리고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는 집에 사람을 들이기 시작했다. 허전해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우지호와 헤어진 후, 지방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지낼 때였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을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곤 했었다.

오피스텔 로비에 도착해 익숙하게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여전히 불편한 모양새로 따라오는 네 모습이 웃겨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타 열림 버튼을 꾹 누르고 서 있었더니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네가 쏙 들어왔다. 7층. 안내음이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더니 현관문은 열려있고 집 안은 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머쓱하게 목덜미를 검지로 긁으며 너를 쳐다보는데 네 표정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야, 이게 무슨…….”
“좀 지저분하지. 어제 짐만 넣어놓고 바로 술 마시러 나갔던 거라……. 허허.”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네가 걸을 수 있는 길을 뚫는 것처럼 발로 쌓여있는 짐들을 쓱쓱 밀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그나마 앉을 수 있는 소파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앉아있어. 금방 정리해.”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4에게
 머뭇거리는 자신을 이끌어 얼른 가자며 녀석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이래야하나 싶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훈의 집을 거부하는 게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어색함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천천히 높아지고 7층에 띵, 하고 멈춘다. 한 쪽 집 문이 활짝 열려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둑이 든 줄 알게 생겼다. 아나 미쳤네. 당황한 표지훈이 한 마디 툭 뱉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다. 집 안은 혼자 살기 충분한 크기에, 몇 개의 상자가 쌓여선 우리 집 정리 안 됐어요. 라고 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야, 이게 무슨…….”
 “좀 지저분하지. 어제 짐만 넣어놓고 바로 술 마시러 나갔던 거라……. 허허.”

 머쓱하게 웃으면서 신발을 쏙 벗고 현관부터 쌓여있는 자잘한 것들을 밀고 들어간다. 아, 이게 있잖아, 내가 어제 집에 와서, 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술술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소파에 앉아있으란다. 앉으라는데 서있을 수도 없어서 대충 소파 한 쪽으로 앉아서 분주하게 오가는 녀석을 시선따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안 도와도 되는 건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한숨을 쉬곤 일어나 상자를 옮기는 녀석을 도왔다.

 “어어. 안 도와도 되는데.”

 벙찐 얼굴로 상자를 뺏긴 녀석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째서인지 녀석과 그냥 한가롭게 있고 싶었다. 맘같아선 이런 거 다 발로 차서 무너트리고 아예 정리도 못하게 만들고 싶기도. 그러면 표지훈이 소리지를 테니 돕는 쪽을 택했다.

 어느덧 정리가 끝났다. 표지훈도 나도 풀썩 제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푹 쉬고는 동시에 웃음이 터져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보니 왜 왔더라. 어쩌다보니 표지훈의 집에 끌려와서는 오자마자 한 건 짐정리 뿐이었다. 녀석의 짐이 적어서 생각보다 빨리 끝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표지훈. 왜?”
 “어?”
 “왜, 불렀어.”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5
Code Z에게
짐정리를 돕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굳이 돕겠다고 팔 걷고 일어난 사람을 앉히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혼자 정리하긴 좀 막막했다- 큰 박스를 가지고 몇 번 왔다 갔다 했더니 눈에 걸리는 것들은 없어졌다. 세부적으로 정리하는 건 네가 가고 난 후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마주한 눈은 잔뜩 휘어져 웃고 있었다. 다리를 테이블에 걸터 올리고 기지개를 쫙 켰다. 그러고 보니 해장국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 거북했던 속이 개운해졌다. 살짝 허기지는 것 같기도 하고. 꽤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손바닥으로 통통 쳤다.

“……그래서 표지훈. 왜?”
“어?”
“왜, 불렀어.”

맞다. 내가 널 불렀던 이유를 잊었다. 문자는 그저 내용이 궁금했던 것이었고 해장을 권한 건 얼굴을 좀 봤으면 좋겠다 싶어서, 집으로 데리고 온 건 이대로 보내기 아쉬워서. 무슨 이유를 가져다 대야 네가 납득할까. 애꿎은 손의 거스러미만 만지작거렸다. 따끔. 거스러미가 있던 자리에 피가 고였다.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내 옆구리를 툭 치는 너를 쳐다봤다. 아, 대답?

“그냥. 얼굴도 좀 보고. 어, 어젠 잘 들어갔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형이 먼저 연락 했길래. 어. 아마도?”

급한 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대답을 다 쏟아냈다. 듣는 너도 말한 나도 고개를 저었다. 이게 무슨 소린지. 이럴 땐 웃으면 알아서 무마된다. 예전부터 써먹던 수법이다. 머쓱하게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씩 웃어 보였다. 부끄럽다는 뜻이다.

“사실 좀 보고 싶기도 했고.”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들었을지 못 들었을지는 미지수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5에게
 질문을 듣자마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땅한 거리가 없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아, 음, 그게. 손 거스러미를 긁어내듯 매만지다 뜯은 듯 아야, 하며 입으로 가져가는 걸 쭉 따라가 보다가 질근질근 깨무는 행동에 야, 대답. 하며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자 손이 떨어지며 저를 쳐다본다.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횡설수설 대답하는 녀석의 말에 하? 하고 한숨 섞인 허탈함에 고개를 절레였다. 표지훈 역시 어색하게 웃으면서 뺨을 긁적이고 귓불에 손을 가져가 만지작인다. 녀석이 슬쩍 오리발을 내밀 때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사실 좀 …….”
 “뭐라고?”
 “아니야!”

 뒷말을 흐리는 녀석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한 마지막 말에 대꾸를 하니 또 황급하게 손을 휘젓는다. 뭐라는 거야. 피실 웃으면서 다시 등받이에 기댄 채 위로 기지개를 켰다. 침묵도 잠시, 야. 폰 좀 줘봐. 왜요? 얼른. 다시 뺏어내듯 가져온 녀석의 휴대폰을 풀고 메시지함을 들어가 자신이 보냈던 정신없는 메시지를 쭉 훑어본다. 마지막에서는 그나마 알아보라고 쓰려는 듯 덜한 오타에 지그시 쳐다보기를-다행히도 특수문자가 심하지 않았다- 천천히 읽히기 시작했다. 다-음-부-터-잘-할-게. 눈으로 한 글자씩 맞춰지자 괜히 그 문자 하나가 풀리는 것에도 열이 올라서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왜?”
 “아? 어? 아니야.”

 어색하게 웃었다. 야, 물 없어? 없어. 어제 왔다니까. 갑자기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에 뭐든 좋으니 마실 게 필요했다. 괜히 침으로 겨우 축이곤 어지러워졌다. 별 거 아니다. 믹스테잎 가사였다. 하지만 그건 표지훈을 떠올리면서 썼던 가사의 일부였다. 더 쓰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이었다. 아 뭔데요- 하고 재촉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아니라니까. 하고 단호히 잘라버리곤 괜히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잔뜩 인상을 썼다.
 왜지. 왜였을까. 하필 너와 나의 거리를 실감시키는 듯한 대목이었다. 다시 소파로 돌아와서는 표지훈과는 약간 떨어져 앉아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갈증 대신 이걸로라도 해결했어야 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6
Code Z에게
담배 참 독한 거 피네. 몸에 뭐 좋은 거라고. 팔을 쭉 뻗어 쇼파 끝에 앉아있는 네 입에 물려있는 담배를 뺏어 들었다.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네 눈을 마주하다 정신을 차렸다. 아, 시발. 나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공손히 두 손으로 네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조용히 창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아니. 창문 열고 피라고.”

내 말에 얼떨떨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는 네 모습을 보고 등을 돌려 앉아 주먹을 쥐고 머리를 내려쳤다. 아! 하고 앓는 신음이 튀어나왔다. 무식하게 세게 내려친 탓이다. 조금 전 물을 찾던 네가 생각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투를 껴입고 지갑을 주워들었다.

“집에 재떨이 없다. 꽁초 변기에 버려.”
“어. 어디 가?”
“목마르다며, 물 사올게.”

도망가기라도 하듯 신발에 발가락만 찔러 넣어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신발도 제대로 신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편하게 행동만 해야지, 정신까지 놓아버리면 어쩌냐. 끝없는 자책이 계속됐다.

사실 집 근처 어디에 마트가 있는지 모른다. 멍청하지. 알아보고 나올 생각도 안 했다. 그만큼 내가 당황했었다는 것이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골목에 있는 마트를 찾았다. 조금 전 우지호와 함께 갔던 해장국집 근처다. 어지간한 마트와 음식점은 이 골목 안에 다 있는 듯했다. 대충 마트를 돌아보고 마트에 온 목적인 생수만 가득 담았다가 한 병만 남겨놓고 모조리 뺐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음료수를 넣고, 술도 집어넣고, 과자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 몇 개를 대충 담았다. 바구니를 카운터 위에 턱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휴대폰이 없다. 네가 보고 기겁한 문자를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계산을 마치고 꽤 익숙해진 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그거 보고 있냐.”

두 손으로 내 휴대폰을 꼭 쥐고 여전히 메시지에 목매다는 네가 보였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6에게
 물 사올게, 하며 나가버린 녀석의 자취를 한참동안 쳐다보다 고개를 절레였다. 생각해보니 새집이었다. 첫날, 아니, 둘째날부터 독한 냄새가 집에 배이게 하는 것도 이쪽에선 사양이었다. 창밖으로 연기를 뱉고는 아래를 내려보니 조금 안 보이는 각도로 녀석이 오피스텔을 나가는 게 보였다. 아, 새끼, 길다. 폼 나네. 가만 내려다보고 있다 다시 녀석의 휴대폰으로 눈이 간다. 다른 문자도 마저 스스로 해독해야 했다. 내가 본 건 마지막 문자를 제외 하고 네 개 정도 됐다. 나새끼는 그 술에 꼴은 와중에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았을까. 필터를 입에 문 채 집 안으로 들어와 녀석의 휴대폰을 쥐고 다시 창가에 기대 서서 한참을 쳐다봤다. 표지훈이 제일 처음 보여줬던- 알 수 없는 문자는 정말로 해독이 안 된다. 그럼 그 다음은?

 - ㅈ;훈ㅇ 펻.흔

 대체 내 손은 무슨 폭격을 맞은 걸까.

 - ㅡㄴ이ㅏ
 - 주ㅡㄱ겟ㄷ@

 아. 세 번째는 알아보겠다. '죽겠다'. 흔하게 나는 오타 방식이었다. 다섯 개 중 두 개를 끼워맞췄다. 차라리 표지훈이 해석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보고, 나 혼자 쪽팔려 하는 게 나았다. 어느새 담배가 입 앞까지 타들어온 탓에 녀석의 말대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훅 던졌다. 얼마 안 남은 불씨가 물과 마찰해 치익, 하고 꺼지는 소리를 냈다.
 ……확 지워버릴까. 술 기운에 보낸 건데 뭐 어떤가. 표지훈도 그렇게 미치도록 신경쓰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양손으로 휴대폰을 잡은 채 내려보다 부분삭제를 하려는 순간 비닐봉지 소리와 함께 녀석이 집에 들어왔다.

 “아직도 그거 보고 있냐.”

 아. 어. 황급하게 취소를 누르고는 자연스럽게 옆에 휴대폰을 내려뒀다. 녀석의 말마따나, 아직도 보고있다. 그리고 표지훈의 말투를 봐서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 듯했다. 10초라도 더 늦게 왔으면 진작에 지웠을 거다.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채우는 표지훈의 옆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기 물 있어. 하며 생수통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는다. 차라리 지금 한 눈 팔 때 지우는 게 낫나. 멀뚱히 지켜보다 다시 부분삭제를 해보려는 순간 휴대폰으로 누군가의 연락이 들어왔다.

 “……야. 전화 왔어.”

 씨발. 타이밍 거지.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7
Code Z에게
그만 좀 보고 내려놓지. 그래야 나도 좀 볼 텐데. 풀고 싶은 수수께끼이기도 하고 재밌는 구경거리이기도 하고. 생전 술에 취해서 연락한 적 없는 너인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테이블 위에 물을 올려놓고 네가 휴대폰을 놓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냉장고에 넣었던 음료수를 꺼내 한 모금.

“……야. 전화 왔어.”

나이스 타이밍.

‘팀장님,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하세요?’

전화는 본사에 있다가 같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가 다시 본사로 같이 복귀를 받은 사원이었다. 뭐 당연한 걸 물어. 대충 대답을 몇 번 던져주고 ‘어, 어. 출근하고 보자. 어, 그래.’라며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자 조금 전까지 네가 보고 있던 메시지가 보였다. 식탁 옆에 서서 물을 마시는 둥 마는 둥 입구에 입만 가져다 대고 있는 너를 힐끔, 휴대폰을 힐끔 보다가 네가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네가 뭔가 찔린다는 게 있다는 말인데, 그럼 더 봐야지. 식탁 의자를 당겨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턱을 괴고 메시지를 뚫어져라 봤다. 맨정신으로 살펴보니 꽤 해석이 가능한 것들도 보였다.

-dkvkㅓ @4ㅣ냐 dㅐ닡케붓느지 볼ㅏ = ?
- ㅈ;훈ㅇ 펻.흔 = 지훈아 표지훈
- ㅡㄴ이ㅏ = ?
- 주ㅡㄱ겟ㄷ@ = 죽겠다

대충 몇 가지가 해석되고 나니 절대 해석할 수 없는 첫 번째 문자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턱짓으로 앞에 앉으라고 눈치를 줬더니 알아서 쓱 앉는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네 얼굴 앞에 들이밀고 살살 흔들었다.

“내 이름은 왜 부르셨대.”
“그……냥?”

“죽겠다는 왜. 내가 형 죽이기라도 한대?”

잔뜩 구겨지는 얼굴이 꽤 재밌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7에게
 전화를 마쳤을 때 다시 휴대폰을 뺏어올 생각이었다. 앞의 네 개는 고사하고 마지막-문자로는 「3ㅏ음ㅜ벝 잘1ㅏ세」 라고 적혀있었다-은 정말로 지워야 했다. 잘하긴 뭘 잘 해. 씨이발. 내가 표지훈과 다시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난 밤 계속 된 과거 회상 탓에 정말로 나는 타임리프라도 한 듯 다툼의 연속이었던 그 날로 돌아가 네게 문자를 남기는 시간의 꿈을 꾸기라도 했나보다. 어, 그래. 녀석이 전화를 끊자 조심스레 다가가 물을 마시는 척 했지만 녀석과 눈이 마주쳐선 속을 들키고야 말았다. 이런 데엔 쓸데없이 운이 없다. 아예 앉아버리는 녀석을 내려보니 뚫어져라- 내 쪽에서 보낸 다섯 개 남짓의 문자메시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
 “…….”

 어딘가에 장식으로나마 세워놓은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이 째, 깍, 째, 깍, 넘어가는 소리만이 침묵을 채웠다. 또 눈이 마주쳤다. 앞에 앉으라는 녀석의 움직임에 꼼짝없이 앉아서는, 물을 마셔도 식도로 빠지는지 기도로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물을 마셔도 목이 타들어가기만 했다. 곁눈질로 녀석의 표정을 보니, 점점 풀어진다. 뭔가의 내용을 봤나보다-라고 생각한 순간 핸드폰 화면이 눈 앞에 들이밀어져선 턱을 괸 녀석이 저를 응시한다.

 “내 이름을 왜 부르셨데.”
 “그……냥?”

 그냥은 개뿔이. 내 성격에 맞지 않게 폭발해버린 그리움이 죄요.

 “죽겠다는 왜. 내가 형 죽이기라도 한대?”

 그럴리가.

 술을 더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귀찮음을 핑계삼아서라도 그 자리에서 잠들었어야 했나보다. 미간을 좁히고 이마를 짚으니 어째서인지 표지훈은 즐기는 듯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웃기냐? 조금은 곤두선 목소리로 중얼이니 아니, 하며 또 어깨를 으쓱였다. 이 팽팽한 줄다리기는 점점 표지훈 쪽으로 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측정하고 있던 녀석과 나의 거리도 이상하리만치 좁아져선, 이건 순전히 아직 너를 잊지 못한 탓에 벌어진 대형사고였다. 표지훈은 아마 진작에 어떤 감정이든 버린 지 오래였을 텐데.

 “됐어. 간다.”
 “어어, 얘기는 해주고 가. 응?”

 녀석을 외면하고 벌떡 일어나니 식탁에 붙어있던 손목을 녀석이 잡았다. 찡그리면서 내려보니 고개를 기울인다. 왜 죽겠는데. 재차 물어오는 녀석에 괜히 니가 알아서 뭐하게. 그 방법으로 죽이게? 라고 대답했다. 술을 마셨던 나는 뭐 때문에 녀석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내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연인 사이에 헤어진 후의 고통이라면 진작에 없어진 지 오래다. 표지훈을 향한 갈증이 무슨 원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잡힌 손목을 털어내고 그대로 녀석의 눈을 가렸다. 아침의 그것과 같은 뉘앙스의 방법이었다. 천천히 5를 세고 그대로 미끄러지듯 내려와 입술 위를 손바닥으로 덮은 채 시선을 마주했다.

 “봐, 얌전해졌잖아 또.”
 “…….”

 손목의 시작하는 부분과 손가락 끝이 어쩐지 표지훈의 얼굴에서 열을 느꼈다. 아침처럼 또 녀석은 얼굴이 붉어졌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8
Code Z에게
“됐어.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너를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마다 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난 그때마다 너를 놓치거나 잡거나 둘 중 한 가지를 했는데 오늘은 붙잡았다. 매번 너를 그냥 보냈을 때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했던 것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우리가 이별하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때, 네 표정은 꽤 덤덤했는데 나는 그 표정에 더 상처를 받았었다. 조금은 네가 슬퍼하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상처를 받았던 것도 그 순간뿐. 금세 잊혀졌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순간을 맞이하면 자꾸 떠오른다. 그때의 통증이.

“니가 알아서 뭐하게. 그 방법으로 죽이게?”
“뭐, 그럴 수…….”

눈앞이 깜깜해졌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데 속눈썹이 네 손바닥에 스친다. 거창한 스킨십도 아닌데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안 봐도 뻔했다. 분명 목, 얼굴, 귀까지 붉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눈만 깜빡였다. 그럴수록 네 손바닥에 속눈썹이 더 스쳤고 열은 더 올랐다. 팽-하고 돌아버릴 것 같았다. 갑자기 눈에 빛이 들어왔다. 인상을 쓰며 밝기에 눈을 적응하는데 네 손이 입을 막는다. 더 위험하다. 스치지 않으려 입술에 힘을 줘 말아 넣는데 뭔가 아쉬운 기분, 힘을 가득 주었던 입술을 풀어 제자리에 놓으니 네 손바닥이 스친다. 아, 뜨겁다. 네 손바닥도 내 입술도 뜨겁다.

“봐, 얌전해졌잖아 또.”
“…….”

더는 위험하다. 더 지속하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으로 네 손을 탁 쳐냈다.

“입을 틀어막으니까 그렇지. 답……, 답답하게.”

네가 담배를 핀 후 열어둔 창문 앞으로 가 목을 쭉 내밀고 바깥바람을 정통으로 맞았다. 그래도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꽤 몽롱한 눈을 하고 널 봤던 것 같은데 부디 네가 몰랐길 빌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다시 식탁 앞으로 와 너를 마주했다. 그렇지만 자꾸 네 손을 보면 조금 전 느낌이 기억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조절이 안 된다. 답답함에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아예 병에 볼을 비볐다. 식어라, 식어.

“집에 가고 싶으면 얘기해주고 가. 왜 저렇게 보냈는지.”
“아, 그냥 술 먹고 보낸 거지.”
“그니까. 왜 그냥 술 먹고 이걸 굳이 나한테 보냈냐니까.”

“뭐야. 술 먹고 내 생각했어?”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8에게
 어떻게든 표지훈을 얌전하게 만들고 싶을 땐 양 손으로 녀석의 눈과 입술을 덮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코만 겨우 빼꼼 보이는 걸 보며 웃어버리곤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세고 난 후에 착하다, 하고 대형견을 칭찬하듯 턱을 간질이며 떼었을 것을 언젠가 한 번, 단 둘이 있을 때 입술을 덮은 손을 내리고 진하게 키스를 나눴다. 눈을 가린 반대쪽 손바닥으로 속눈썹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눈이 감겼다 뜨는 것도, 인상을 찡그리느라 찌푸리는 눈썹의 움직임도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그런 반응이 예뻐보여서 굳이 녀석이 까불지 않을 때도 심심할 때면 그런 방식으로 입을 맞췄다. 몇 번인가의 반복 끝에- 녀석의 눈에 손만 덮어도 금방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침 식사 때도 그렇고 방금도 그렇다. 녀석의 숨은 언제나 열을 가지고 들떠있었다. 풀어진듯 얌전해진 눈동자와 한참을 마주보다 먼저 손이 내쳐지고 나서야 나 역시 그 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말을 더듬으며 황급하게 일어나 창가로 향하는 녀석의 뒷모습에 난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아 턱을 괸 채 응시만 하고 있었다. 진정한 듯 다시 돌아온 녀석이 앉으려다 또 움찔해선, 아까 전에 사 온 음료수 병을 뺨에 비비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어디에 시선을 둬야할 지 헤맨다.

 “집에 가고 싶으면 얘기해주고 가. 왜 저렇게 보냈는지.”
 “아, 그냥 술 먹고 보낸 거지.”
 “그니까. 왜 그냥 술 먹고 이걸 굳이 나한테 보냈냐니까.”

 그건 나도 알고 싶었다. 술 마셨을 때의 내가 제 3자로 있었다면 어깨를 붙잡아 흔들면서 욕지거리를 뱉었을 거다. 미친 새끼. 돌았지. 뭔 정신으로. 왱알왱알.

 “뭐야. 술 먹고 내 생각 했어?”

 사실이다. 부정할 수는 없는데 대놓고 예. 라고 하기도 싫다. 더군다나 술에 꼴 정도로 마셔도 어디에다가 주정같은 거 부리지 않던 내가 한 짓이다. 그간의 그리움이 쌓였던 걸 창고 어딘가에 찢지도 못하게 박스테이프로 칭칭 휘감아놓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을 넣어놓다시피 잊고 있었던 건데. 언젠가는 한 번이라도 만나겠지, 하고 생각했던 표지훈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나타났고, 녀석은 내 기억의 박스테이프를 가위로 끊어 풀어내버린-정확히는 내가 풀었다. 표지훈이 풀었다고 합리화 시키고 싶다.- 탓에 안 하던 짓을 하고 앉아있다.

 “아니거든.”
 “아, 아니면 왜!”

 이런 걸 보내는데! 라는 말을 생략하고 이미 잠금화면으로 꺼진 휴대폰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또 빽빽거린다. 술 마시고 보낸 걸 어쩌냐며 대꾸해도 자신이 술버릇이 없는 것을 표지훈도 잘 알고 있는 거였다. 핑계거리가 안 됐다. 계속 바락바락 대드는 녀석에 인상을 찡그리며 한 손으로 귀를 막고는,

 “막는 걸로 안 멈춘다.”

 라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뱉었다. 학창시절 키스를 협박하던 말이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숨을 쉬곤 의자에서 일어났다.

 “넌 인기 많을 놈인데 왜 여친도 없어서….”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Code Z에게
 여친도 없어서, 없는 것 같아서, 우리의 지난 시간을 되돌리고 싶게 만드냐고. 마른침을 삼키고는 또 다시 벙쪄있는 녀석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아! 하며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원망스런 눈빛을 보내는 표지훈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 때에 울리는 제 휴대폰 벨소리는 가히, 술 마신 자신의 정신상태를 또 욕하고 싶었다. 뭔 정신에 만들어놓은 벨소리며 왜 설정해놨나 싶다. 제 믹스테이프 곡의 후렴이었다.

 /다음부터 잘 할게, 더 변명 안 할게. 네 예……/
 “여보세요.”

 이마를 문지르는 녀석을 돌아봤다가 급하게 녀석에게서 떨어졌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9
Code Z에게
/다음부터 잘할게, 더 변명 안 할게./

귀에 익은 노래다. 뭐지, 무슨 노래지. 누구 노래더라. 여러 믹스테잎이 담겨있는 파일을 다운 받았다가 스쳐 가며 들어본 적 있는 노랜데. 아! 하고 육성이 터졌다. 긴 추궁 끝에 나온 답은 네 노래다. 제목이 다음부터 잘할게 였던가. 그랬던 것 같다. 제목과 싸비 첫 마디가 동일해 깔끔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스쳐 들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바로 옆에서 들어왔던 네 목소리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괜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지만, 자꾸 나 자신을 대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얼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전화에 집중한 네 옆모습을 응시했다. 그리고 네 노래를 곱씹었다. 노래 분위기는 제목과 다르게 많이 어두웠던 것 같다. 제목만 봤을 땐 밝은 분위기에 화해를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예 반전이었다. 그날 홀로 방에서 노래를 듣는데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나를 대입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예전에 그랬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런 말을 들었으니 당연히 저 곡의 상대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 노래를 듣던 그 찰나뿐이었다. 진전없는 관계에 아예 끝났다고 단정 짓고 정리를 시작했으니까. 가사에 사랑한단 말도 나왔던 것 같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잘할게. 어, 이 말도 듣고 싶던 말이었다. 지금은. 딱히 모르겠지만, 썩 듣기 싫은 게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아, 네. 알겠습니다.”

라는 말로 통화는 끝이 났다. 뒤엉켜 풀어지지 않는 감정과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을 후회했다. 애초부터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과거를 끄집어내지도 추억하며 저릿한 통증을 느끼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보내고 싶진 않았다. 정해진 답은 하나인데 그 답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뭐래?”

네가 전화를 끊으면 늘 습관적으로 묻던 질문이었다. 쉽게 뱉어놓고 아차.

“아, 그냥. 저 전화 때문에 맥 끊겼잖아.”
“맥은 무슨 맥.”
“가야 하는 거면 얼른 대답하고 가. 나 아직 답 못 들었어.”

짓궂다. 어떤 대답이 나와도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건 나 자신인데. 나 자신에게 짓궂다.

“대답 안 하지.”
“그럼 밤새 내 생각한 거라고 생각한다.”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29에게
 표지훈은 마지막 문자를 놓친 듯했다. 그냥 느낌에 그랬다. 노래를 들었지만 아무 기색이 없는 걸 보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전화를 하는 내내 이상하게 그에게 신경이 쓰여선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마 나중에 뭐라고 했죠, 하고 물어보면 된통 깨질 게 분명했지만 지금 당장은 집중할 게 필요했다.

 “―네. 알겠습니다.”

 무슨 내용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끊는다는 상대방의 말에 예의 차리듯 대답하고 끊은 전화에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이마를 문지르던 손으로 어느새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뭐래? 라고 질문해오는 녀석에 고개를 들었다. 눈을 두 어 번 꿈뻑이더니 아, 하며 탄식을 뱉는다.

 “아, 그냥. 저 전화 때문에 맥 끊겼잖아.”
 “맥은 무슨 맥.”
 “가야 하는 거면 얼른 대답하고 가. 나 아직 답 못 들었어.”

 무슨 얘기를 하는 중이었더라. 앞에 서서 가만 생각하다 아아... 하고 또 한숨 섞인 외마디를 내뱉었다. 생각, 네 생각……. 표지훈에 대한 고민으로 술을 마셨고, 그리움으로 기억도 못하는 문자를 쓰고, 괴로움과 후회로 휴대폰을 쥔 제 손을 원망했다. 표지훈이라는 놈으로 가득했던 새벽이었다. 혹시 나는 잠자리에 들고 나서 기억하지도 못하는 꿈에서도 표지훈과 만난 건 아니었을까. 그 어렸던 날처럼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말로써 애정표현을 하거나, 키스를 하거나, ……이제는 담을 수 없는 서로에의 간절함으로 섹스를 하거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또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지호 미친 놈. 생각하는 거라도 선이라는 게 있다.
 
 “대답 안 하지. 그럼 밤새 내 생각한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야, 진짜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까지 얘기하는 녀석에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 걸까 싶다. 아, 감정이 없으니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건가. 나쁜 기억을 좋은 것으로 승화시켜서 그땐 그랬지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다 저를 향한 손을 눌러 내리곤 아니야. 하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순간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다른 답을 기다렸던 것 같다. 농담이라든가.

 “……했다. 했어. 1%.”
 “엑.”

 자신의 했다는 말에 또 표정이 풀어지는가 싶더니 짜게 주는 비율에 또 실망한 얼굴을 비친다. 녀석의 표정은 정말이지 시시때때로 변해서 놀리기 충분한 녀석이었다. 칫,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녀석과 사귀는 사람-아, 나를 빼고-은 꽤 피곤하겠다 싶었다. 대답했지?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현관으로 향해 신발을 신는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9
너무 늦은 것 같은데 혹시 지금 해도 돼?
11년 전
대표 사진
Code Z
나중에 만나자.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0
그래 나중에 보자
11년 전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18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4
21:14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10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08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04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04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59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57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56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47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45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44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43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40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1
20:39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38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36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4
20:29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27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25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23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19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19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
20:19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10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10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08


12345678910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