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장미 ; ⑴비극적인 사랑, 슬프고 애절한 사랑
⑵당신은 내 소유입니다.
「운아.」
네가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었던 모양인지 예쁜 미간이 슬쩍 찌푸려지며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귀에 꽂혀 있던 자그만 이어폰을 잡아뺀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네 얼굴 앞에다 웃어보였다. 나는 웃는 얼굴이 선해 보인다 했다. 그리고 나는 네게, 선해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거.」
「…이게 뭔데.」
대답 대신 나는 너를 그저 바라보았다. 너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장미였고, 네 눈이 신기함으로 슬쩍 물든 것은 제 손에 쥐인 것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새빨간 장미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먹에다 담가 놓은 것마냥 칠흑같이 새카만 그 흑장미는, 네게 꼭 쥐어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너는 하얗다. 태생부터가 희지 못했던 나와는 전혀 달랐다. 태생이 희고, 여리고, 투명하다. 그러면서도 붉어, 묘하게도 너는 늘 장미 한 떨기를 연상시켰다. 연약하디 연약하지만 성질은 고고하여,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는 남이 제 몸에 손대는 것을 결코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알까, 줄기에 박혀 있는 그 가시 사이의 틈에 손가락을 무사히 얹는 걸,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생각했다. 너는 장미화라고. 너는 분명히 희고 붉어, 새빨간 장미를 연상시키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네게 붉은 장미보다는 새카만 장미를 안겨다 주고 싶었다. 너의 붉음을 사랑하였으나 그 붉음을 온전히 유지하기보다는 나의 검은빛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갑자기 왜?」
「그냥, 니 생각나서.」
「…….」
생기 넘치는 보드라운 꽃잎을 만지작거리는 너는 대답이 없다. 때가 되면 건네주어야지 하며 벼르던 꽃을 건네주고 나니 한결 후련해진 것 같았다. 이거 볼 때마다 내 생각해, 운아. 애교 섞인 말투로 네 앞에서 알짱거리니 네가 고개를 슬쩍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새초롬하니 고양이과의 동물을 연상시키는 그 눈꼬리가 예쁘다. 칠흑같이 새카만 눈동자의 색과 흑장미는 미치도록 어울렸다. 저 눈동자에 오직 나만이 들어차도록, 너를 물들이고, 너를 잠식한다.
「운아, 흑장미 꽃말이 뭔 줄 알아?」
「…….」
「비극적인 사랑이래.」
「…….」
「슬프지 않아?」
네가 가만히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 움직임이 놀랍도록 아름다워 잠깐 넋을 놓았다. 천천히 공기 중을 가르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 선이 아름답다.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 애통한 사랑. 흑장미의 대중적인 꽃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네게 전해주고픈 그 감정의 일렁임은 슬픔과 애통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슬픔에 의한 눈물은 축축하고 기분이 나빴다.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습기란 질색이었다. 어쨌든, 네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네게 전하려 하는 마음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는 너 또한 알게 될 것이고, 나는 조급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너는 영원한 내 소유이니.
*
너는 그 흑장미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누구에게 받았냐며 물어오는 멤버들과 주위 사람의 질문에도 너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늘 그러던 너였으니 사람들은 더이상 그것에 관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말을 잘 하지 않는 네 성격이 답답한 적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네 새하얀 손 안에 온기를 전해주기라도 하듯 꽉 붙들려 있는 새카만 장미화 또한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흰색과 검은색의 그 대조가 정택운과는 지독하게도 어울렸다. 생크림 같은 너의 육신, 너의 살결에 골고루 퍼져가는 초콜릿 같은 나의 육신. 우리는 신께서 맺어주신 것임이 분명하다 생각한다.
네가 내게 찾아왔다.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마냥 축 처진 얼굴이 귀엽다. 습기를 싫어하지만, 너의 습기라면 소금기 섞인 눅눅함이 아니라 새벽의 장미화 위에 맺힌 이슬 한두 방울 정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너를 울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장미가 시들었어.」
「시들었어?」
우쭈쭈, 우리 택운이. 장미가 시들어서 속상했어요? 식의 어투로 너를 어르니 네가 특유의 그 눈빛으로 나를 째려본다. 그럼 나더러 이 이상 어떤 반응을 해 달라는 건지. 늘 제가 이런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표정을 짓고 행동을 하면서 막상 그에 맞게 어르고 달래면 애 취급 받는 기분이라고 꼴같잖은 자존심을 부린다.
「물에 설탕 두 스푼 넣고 꽂아 놔.」
「그럼 살아?」
「그럼 살아.」
그렇게 말하며 문득 든 생각은 설탕과 장미의 관계가 마치 너와 나 같다는 것이었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설탕은 시든 흑장미를 다시 살려낸다. 물을 매개로 삼기는 하지만 어쨌든 네가 녹아들어 내게 배여오면 나는 시들었다가도 다시 피어나고는 한다. 세상의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한 직업, 내가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끊임없이 입가에서 웃음을 배제할 수 없고 행동 하나하나에 머리가 아플 만큼 온 신경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 직업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해 오면서 내게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피로가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분출하지 못하여 속으로만 삭이다 속으로부터 천천히 썩어들어가는 나를 느낄 때에는 늘 네가 필요했다. 너를 찾았다.
너의 새하얀 피부, 달큰한 향내, 그리고 보드라운 살결은 내게 해독제였으며 안식처였다. 그 목에 얼굴을 가득 파묻고 꽉 안겨 숨을 들이키면 후각을 자극하는 네 살냄새는 편안하기도 했고 동시에 욕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너를 닮은 네 살냄새를 나는 좋아했다.
「꽂아놓을게.」
「운아, 장미 좋아?」
「…….」
네가 또다시 대답 않고 고개를 까닥인다. 이 고개의 까닥임 또한 내가 너를 좋아하는 수만 가지 이유 중의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데,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가만히 고개를 두 번, 때로는 세 번 주억거리는 그 실루엣과 정수리부터 목선에 이르기까지의 그 곡선의 향연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 움직임을 사랑한다 하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까, 너는.
너는 흑장미가 마음에 든다 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다음 날부터 숙소의 네 방, 그러니까 너와 내가 쓰는 방 한 켠에는 투명한 유리잔이 놓였고, 그 속에는 찰랑거리며 잔 가득 차오른 물과 거기에 꽂힌 시든 흑장미가 자리를 잡았다. 내가 생각해도 내 스스로가 웃기기는 한데, 그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내가 너에게 남긴 자국이나 낙인 같기도 했다. 나를 생각하라며 네게 건넨 흑장미였으니, 그것이 너의 곁에 자리하는 것이 내가 너의 곁에 자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나의 치기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나는 너를 놓을 수 없어서, 이렇게라도 너를 곁에 묶어두고 싶다.
「장미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아.」
너의 발갛게 기쁨으로 달아오른 얼굴이 예쁘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투정부리듯 손을 크게 벌렸다. 네 입에서 한숨이 배어나오는데, 그것이 또한 미치도록 달다. 나 지쳤어. 시들었으니 설탕이 필요해. 네가 내게 폭 안기었다. 놓으면 날아갈까 세게 너를 그러쥔다.
「택운아」
「…….」
「날아가지 말아」
응. 이라는 너의 대답을 처음으로 원했지만 귓가에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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