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성덕입니다
F
“옹감독님하고 성작가님, 백이십퍼 뭐 있어요.”
“뭐요?”
“혜진씨 그 때 없었어요? 성운씨 쓰러진 날, 감독님 멘탈 완전 깨지셔서 정신 못 차리는 와중에 작가님이 딱- 눈 마주치면서 한마디 하셨는데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셔서 침착하게 상황정리 하시더라구요.”
“그게 왜요? 원래 두 분 친하시잖아요.”
“혜진씨 뭘 모르네, 딱- 눈빛 보면 알죠. 감독님이 그렇게 바로 멘탈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뭐다? 사랑의 힘이다.”
화장실에서 신나게 얘기하는 두 여자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죄지은 사람도 아닌데.
그렇다고 나가서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하기엔 양심에 찔리지 않는가, 사실 반은 맞는 얘기니까.
옹성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아직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은···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컷 오케이!”
신경이 쓰인다. 오히려 옹성우는 평소와 똑같은데 나만 괜히 오버 떠는 것 같아서 민망해질 정도였다.
카톡-
하성운
[작가님]
[뭐하세요]오후 9:13
분명 삼십분 전에 뭐하냐고 물어봤는데, 병원에만 틀어박혀있으니 어지간히 심심한가보다.
새삼 하성운의 카톡에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내가 신기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진짜 심심한가보네요]
오후 9:14[병문안이라도 가야되는데]
하성운
[아 경호원만 없었어도]오후 9:14
하성운은 그 때 실려 갔던 병원에서 셀럽들과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 입원해있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엄마 친구 분이 그런 병실이 있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시는데, 병실이 꼭대기 층에 있는데다 경비가 삼엄해서 그 분도 연예인 한 번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이름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끼치는 게, ‘이름아’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옹성우였다.
“먹어! 먹어야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했는데 누가 봐도 매우 어색하고 오버스러운 말투였다. 그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 놓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옹성우가 미워졌다.
밥차에서 늦은 저녁식사 줄을 섰는데, 옹성우는 내 앞으로 서더니 그릇부터 수저, 반찬까지 챙겨주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역시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까 화장실에서 들은 말도 있고, 그래서 네 거나 잘 담으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말을 듣는다.
“작가님, 감독님!”
옹성우와 마주앉아 밥을 먹는데 김민규씨와 안우연씨가 다가왔다.
체할 것 같은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준 구원자들···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에서 빛이 번쩍번쩍 나오는 듯 했다.
둘은 드라마에서 친구로 나오는데 그런 만큼 더 붙어 다니면서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무슨 소문···?”
“두 사람 ~”
자기들끼리 키득대며 뚜루뚜뚜- 하는 노래를 불러댄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고 쳐다봤는지 두 사람은 죄송합니다. 하고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얼굴에서 빛난다는 말 취소.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실감하며 한숨을 푹 쉬고 앞을 보니 올라가는 입꼬리와 광대를 주체하지 못하는 옹성우가 보였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주 대놓고 홍보를 하세요···.
카톡-
하성운
[밥은 먹었어요?]오후 9:28
지금 먹는 중이라고 하면 왜 이렇게 늦게 먹냐고 걱정할 것 같아 아까 먹었다고 대답을 했는데 노란 1이 사라지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옆 자리에 앉은 우연씨가 볼까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전화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왜요?”
- 그냥요.
“그냥?”
- 목소리 들으려고.
“···.”
- 작가님 맨날맨날 보다가 안보니까 서운하네요.
“저두요.”
- 저 내일부터 촬영하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감이 떨어진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 망하겠네?”
- 작가님이 대본 연습 좀 도와주셔야겠는데.
“어떻게 도와줄까요.”
- 음. 이따 전화하면 받아요.
“네엥.”
- 네엥 일단 끊어용
“네에-”
다짜고짜 대본연습이라니 무슨 말인지. 확실한 건 하성운은 현재 정말 진짜 많이 심심한 상태인 것이다.
다시 돌아가니 민규씨와 우연씨는 이미 가고 없었고 옹성우는 한 숟갈 남은 밥을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고 있었다.
“그냥.”
“하성운이지?”
“··· 아니?”
왜 아니라고 대답한건지, 나 스스로 옹성우를 되게 의식하고 있나보다. 옹성우는 내가 거짓말하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가 신경 쓰이긴 하나봐? 거짓말도 하고.”
응, 신경 쓰여. 되게 많이 신경 쓰여.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그대로 삼켰다.
삐빅- 성덕입니다
촬영 끝날 때 쯤 연락하라는 하성운의 말에 연락을 한 것은 열두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옹성우를 피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돈이 아깝다는 마음보다 옹성우가 부담스러운 마음이 컸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30분 정도를 타고 가다 이쯤이면 걸어가도 되겠다 싶어 떨리는 손으로 택시 요금을 낸 뒤 내렸다.
시간은 12시 41분. 새벽시간에 혼자 다니는 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무서워서 하성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저 집 갈 때까지 전화해주세요.”
- 걸어가요?
“택시 타고왔다가 내렸어요.”
- 위험하게 왜 그래요 누가 확 잡아갈라.
“성운씨만 안 잡아가면 아무도 안 잡아가요.”
- 그럼 내가 잡아가야지. 헤헤.
“뭐랭”
- 작가님 나 대본연습 도와줘야죠?
“어떻게요?”
- 도착하면 알려줄게요.
“거의 다 왔어요.”
- 그런 것 같네요.
“에?”
- 앞에.
곳곳에 녹지 않은 얼음에 넘어질까 땅만 보며 걸어왔던 고개를 들자 몇 걸음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하성운이 보였다.
“왜 왔어요? 안 아파요? 괜찮아요?”
한 걸음에 달려가 속사포로 묻는 말에 하성운은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한 걸음, 두 걸음 나에게로 바짝 다가온다.
그러더니 내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이거 익숙한 장면인데.
‘좋아하니까.’
내가 쓴 소설의 한 장면, 임지원이 김보리를 찾아가서 하는 말. 그리고 지금 그 상황이 맞다면, 그 다음은 두 입술이 맞닿을 타이밍이었다.
“감정 연습··· 해야 되는데.”
두 눈만 끔벅이며 굳어있는 나를 보며 하성운은 한 번 씨익 웃더니 내 얼굴에서 손을 떼 머리를 감싸서 나를 제 품에 안기게 했다.
쿵- 쿵- 뛰어대는 심장을 멈추고 싶었다.
“이거 임지원이에요?”
얼굴을 보면 떨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아 여전히 그 품에 안긴 채 말했다.
“하성운이에요.”
“··· 그럼 이거 고백하는 거에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입 밖으로 낯간지러운 말이 술술 새어나왔다.
“네. 고백하는 거에요.”
하성운의 등을 토닥이던 손끝이 저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성운은 서서히 나를 품에서 떼어내고 얼굴을 마주보며 말했다.
“좋아해요.”
그렇게 다짜고짜 나를 껴안은 건 자기면서, ‘좋아해요.’ 한마디 하고는 막상 내 눈을 피한다.
나는 일부러 놀려주기 위해 왜 내 눈 피해요? 보고 싶어서 왔다면서요! 하며 내 얼굴을 피하려고 요리조리 돌아가는 하성운의 얼굴을 쫓아 고개를 왔다갔다 거렸다.
“그만해요-”
“왜요? 왜애?”
무슨 그런 남사시런 말을. 헙, 하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니 한 발짝 다가선다.
순식간에 바뀐 갑을 관계에 급격히 찌질해진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숙이고 눈을 피했다.
“장난도 못 치겠네. 내가 그렇게 싫은가.”
“아니··· 그게 아니궁···.”
“아니구우- 뭔데요오-”
“몰라요오···.”
“그럼 내 고백 거절한다는 건가.”
한 번은 튕겨줘야지 싶은 마음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니까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근데 성운씨 어떻게 나왔어요?”
“사람들 몰릴까봐 일부러 아까 전에 퇴원했어요. 내일, 아니 이따가 촬영장도 나가고.”
“아··· 그럼 빨리 들어가요, 피곤하겠다.”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요. 들어가.”
이럴 때는 먼저 들어가라고 실랑이하는 것 보다 져주고 내가 먼저 들어가야 하성운이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갈 수 있을 것을 알아서 들어가겠다고 인사를 했다.
“미리 잘 자요.”
내 이름을 저렇게 다정하게 부르면서 잘 자라고 말해주는 저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어.
아직도 일 초에 열 번씩 펌프질 하는 것 같은 심장을 애써 주체하며 이게 정말 꿈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렇게 기분 좋을 때 왜 하필 이런 말이 생각나는 건지.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거짓이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었는데, 아니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다음에. 이런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나는 아까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 보기로 한다.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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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달달함이 터지기 시작합니당 ㅎㅎㅎㅎㅎㅎㅎ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