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첫사랑의 추억
내일 11년 된 첫사랑한테 고백하러 가 N l 사랑방-이성
11초 전(2018. 2. 4 12:12) l 조회 1 l 현재 11 l 1 http://instiz.net/name/19960527 글 주소 복사 l 펌 허용
여기에 글 많이 썼었는데 이제야 고백한다는 글 올리네.
내일 11년 동안 짝사랑하던 오빠한테 고백하러 가.
잠도 안 와서 마음 정리할 겸 여기다 글 올리고 잘게.
오랜 시간 좋아한 만큼 글도 길어질 것 같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
우리 집이 좀 엄해서 학원 끝나면 늘 오빠랑 같이 와야 했어.
그런데 나랑 우리 오빠랑 2살 차이 나서 우리 오빠가 중1이었으니까
끝나는 시간이 다른 날이 많기도 했고,
우리 오빠가 귀찮다고 학원 안 가는 날들도 많았어서
맨날 나는 우리 오빠를 기다려야 했어.
그렇다고 내가 우리 오빠 버리고 가봤자
나만 혼나니까 계속 기다렸지.
그날도 나는 홀 의자에 앉아서 우리 오빠 나오는 것만 기다리는데.
우리 오빠가 공부하는 방에서 그 오빠가 나오더라.
나는 그때 오빠가 우리 오빠 친구인지 몰라서 신경 안 쓰고 책이나 읽었지.
게다가 그날은 오빠가 우리 오빠 반 올라온 첫날이라 진짜 초면이었고.
그런데 오빠가 날 보고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거야.
"너 다니엘 동생이지?"
라면서.
내가 그때 낯을 많이 가리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이 말 거니까
그대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오빠만 바라봤는데,
오빠는 처음부터 내가 우리 오빠 동생인 걸 확신한 건지
내 반응은 신경도 안 쓰고 우리 오빠 친구라면서 자기소개하더라.
그리고서 자기가 나왔던 방 한 번 살핀 후에
가방에서 사탕이나 젤리 같은 간식거리를 내 손에 쥐여줬어.
예의가 없던 애는 아니었었어 고맙다고 하니까,
"너네 오빠한테 뺏기지 말고 너만 먹어."
웃으면서 저 말 한 뒤에 내 머리 한 번 쓰다듬고 갔다.
나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때 줬던 건 다 먹었어.
우리 오빠가 젤리에 환장하는 사람이라 몇 개 뺏기긴 했지만.
나중에 오빠한테 그때 왜 줬냐고 물어봤더니
우리 오빠 늦게 끝날 텐데 묵묵히 기다리는 게 귀엽기도 하고 불쌍해서 줬다고 하더라.
그날을 계기로 오빠랑 진짜 빨리 친해졌어.
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데도
오빠가 먼저 말도 걸어주고, 먹을 것도 쥐여주고, 장난도 걸어주고 해서
며칠 만에 친한 사이가 됐어.
우리 오빠가 늦게 끝날 때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기도 하고.
우리 오빠가 학원 째고 안 오는 날에는 오빠가 대신 데려다주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는 오빠랑 같은 중학교였어서
학교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거나 등교하다가 만나면 같이 가고 그랬어.
따로 놀거나 서로를 만나러 가거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지.
물론 이때까지는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기도 했고.
그냥 나에게 오빠는 우리 오빠의 친절한 친구 정도였어.
이 지독한 짝사랑이 시작하게 된 때는 중학교 1학년 축제야.
우리 중학교 축제 때문에 축제라는 게 재미없는 거라고 고등학생 될 때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우리 중학교 축제는 재미없었어.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돌아다니다가 정말 할 게 없어서
1층 화단 벤치에서 친구랑 소시지나 먹고 있었는데.
우리 오빠랑 오빠가 지나가더라고.
오빠가 먼저 인사하길래 따라 인사했는데 오빠가 기타 가방을 메고 있는 거야.
그때는 오빠가 재미로 음악 하는 줄 알고 무시했거든.
그날도 기타는 폼으로 들고 다니는 거냐고 놀리니까
오빠가 나 한 번 째려보더니 오늘 공연하는 거 꼭 앞자리에서 보라고 하더라.
자기가 노래하는 거 보면 절대로 그런 소리 못 나온다고.
당시에는 그냥 허세 부리는구나 싶어서 보러 갈 테니까 한 번 해보라고 콧방귀 뀌었지.
그러니까 오빠는 더 화 안 내고 내 볼에 묻은 케첩 닦아주면서 다시 한 번 신신당부하더니 우리 오빠랑 갈 길 갔어.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소시지 다 먹자마자 강당 들어가서 앞자리 차지했지.
한 시간 정도 친구랑 얘기하다 보니까 공연이 시작했고.
오빠는 2부 끝날 무렵에 나왔어.
나는 공연 시작 전까지 몰랐었는데 오빠가 중학교 때도 엄청 유명했대.
노래도 잘 부르고 축구도 잘하고 잘생겼다고.
그래서인지 무대 준비도 엄청 요란하게 하더라.
다른 밴드부원들도 들어와서 악기 맞추고.
오빠도 기타 하나 들고 와서는 의자에 앉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게 너무 웃겼지.
맨날 장난만 치고 시끄럽던 오빠가 저렇게 조용하게 있으니까.
다들 조용하길래 혼자서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어.
겨우 진정하고 앞에 보는 순간 불이 탁 꺼지고 오빠 기타 소리가 들리더라.
반주 이어지다가 조금 지나서 오빠 노래 시작하니까 불이 켜지고 오빠가 보이는데,
와... 입이 떡 벌어졌어.
눈 감고 노래 부르는 게 얼마나 멋있던지.
왜 오빠가 인기가 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더라.
아직까지도 그 노래 기억해.
가을 우체국 앞에서.
지금도 눈 감으면 그 곡을 부르던 오빠 목소리가 재생된다.
그때 멍 때리고 입 벌리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오빠가 살며시 눈 뜨고 애들 훑다가
나랑 눈 마주치고서 살짝 웃고 눈 다시 감는 거야.
몸이 굳는다는 게 뭔지 제대로 느꼈어.
맞아,
나는 그때 오빠한테 홀렸던 것 같아.
반했다기보다는 완전히 홀렸지.
노래 끝나고 당연히 호응 엄청 컸어.
오빠도 반응 보더니 뿌듯하다는 듯 웃으면서 나 쳐다보는데,
그 순간에도 또 오빠한테 홀려서 박수도 못 치고 멍하니 있었어.
다음 노래들은 너무 충격이 커서 잘 듣지도 못 했고.
공연 다 끝난 뒤에 박수 엄청 쏟아질 때 겨우 정신 차리니까
이미 무대에서 내려온 오빠 주변에 엄청 사람들이 몰려있더라.
진행자들이 제제할 만큼 소리도 엄청 크게 나고.
인기가 많다는 게 맞긴 맞구나 싶었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다 반한 거 같다고 하고, 누구냐고 그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 이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 짝사랑 절대로 이뤄질 일이 없겠구나.
이 마음 죽을 때까지 묻어야겠구나.
그런 생각 중인데 어떻게 오빠랑 마주 보고 얘기할 수 있겠어.
축제 끝나자마자 바로 튀어야겠다 생각하면서 남은 공연 보고 있던 중에 오빠가 내 옆에 앉더라.
원래는 오빠가 옆에 앉든, 꽹과리를 치든, 춤을 추든 아무렇지 않았지만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신경 쓰여서 몸이 정말 굳는 거야.
머릿속에서는 망했다는 말이 둥둥 떠다니고.
그걸 안 건지 오빠가 먼저 말 걸었어.
"너 나한테 반했지? 그치?"
라면서. 오빠한테 혹시 독심술 배우냐고 물을 뻔했잖아.
내가 당황해서 아니라고 크게 부정하니까 오빠는 전혀 타격 없이 내 볼 콕콕 찌르면서
'맞는데? 아까 보니까 나한테 반했던데? 입 벌리고 쳐다보던데?'이러는 거야.
맞는 말이라 더 화도 못 내겠고 반박도 못 하겠지만 사실대로 말하기는 싫어서 계속 말싸움했는데,
친구가 옆에서 시끄럽다고 눈치 주길래
어쩔 수 없이 내가 음악 장난으로 하는 건 아니네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아까처럼 뿌듯하다는 듯 웃으면서
"여주한테 인정받은 거면 오늘 공연 성공했다, 성공했어."
이러더라. 그 말이 되게 오묘하게 들려서 순간 설레었다.
오빠는 내가 전부터 놀렸던 거 때문에 그런 거였겠지만, 뭐.
안타깝게도 축제 끝나고 튈라는 내 계획은 무산됐어.
오빠가 오랜만에 같이 학원 가자고 했거든.
둘이서 걷는데 전에는 신경 안 쓰이던 걸음걸이도, 키 차이도, 스치는 손도 다 거슬리더라.
그걸 오빠한테 보이면 안 되니까 숨기느랴고 죽는 줄 알았지.
내가 오빠한테 반했다고 해서 남은 중학교 1학년 생활 동안 오빠랑 진전이 있던 건 아니야.
나는 내 마음 숨기기 급했어서 오빠를 찾아가지 않았고,
우리끼리 접점이 많지 않아서 자주 마주치던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오빠가 우리 오빠랑 집에서 놀 때나 일부러 끼어서 놀고,
오빠가 집에 가면 밤에 혼자 얼굴 붉히고 그랬어.
아,
오빠 중학교 졸업식 날에는 오빠 앞에서 울어버렸어.
나는 아직 중학생인데 오빠는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니까 싱숭생숭했고,
오빠가 음악에 더 집중하겠다고 학원도 그만둬서 학교도 졸업하면 오빠 더 못 만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하필이면 그날 오빠한테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현자 타임 왔거든.
오빠가 단칼에 거절해서 나도 저렇게 썰려나갈까 등골이 써늘했지만.
오빠는 친구들이랑 있다가 나 우는 것 보고 당황하더니 나한테 와서
"내가 여주 보러 매일 놀러 갈게. 그럼 되지?"
라고 겨우겨우 달래줘서 울음 그치고 같이 사진 찍었는데,
나 눈 부어서 엄청 못생기게 나왔더라.
오빠는 그 사진을 어떻게 핸드폰으로 옮긴 건지 가끔씩 보여주면서 놀리는데.
오빠 핸드폰 몰래 가져가서 메모리 삭제할까 수천 번은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된 오빠는 약속대로 우리 집에 정말 매일 놀러 왔어.
내가 오빠한테 오빠는 대학을 포기한 거냐고 할 정도로.
비록 나랑 노는 시간보다 우리 오빠랑 같이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렇게라도 얼굴 보고 인사할 수 있는 게 어딘가 생각이 들더라.
매번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희한하게 나는 중 2병도 안 왔어서.
남은 생활 평탄하게 보내고 중학교 3학년도 괜찮게 마무리했는데.
갑자기 졸업식 당일에 가족들이 다 못 온다는 거야.
우리 오빠는 고3이라 선생님이랑 상담 있다고 못 온다고 하고,
부모님도 급하게 출장 생겼다고 못 온다고 하고.
그래도 중학교 졸업식인데.
그렇다고 가족들 말고 올 사람도 없었었어.
졸업식 끝나고 주변에서 다들 가족들하고 하하 호호 웃고 있는 거 보니까 더 속상하더라.
혹시나 뒤늦게라도 올까,
서프라이즈로 올려고 한 게 아닐까
강당문 바라보면서 졸업 앨범이랑 졸업장만 두 손에 꼭 쥐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안 오는 거야.
더 비참해지는 기분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오빠가 내 이름 부르면서 뛰어오더라.
한 손에 꽃다발 쥐고, 기적처럼.
오빠가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해서
바로 앞에 왔을 때까지 헛것 보는 줄 알았잖아.
겨우 정신 차리고 오빠 보니까 내 앞에서 숨 고르더니
나한테 꽃다발 안겨주고서
"우리 여주, 졸업 축하해."
라는데. 너무 감동이고 고마워서 거기서 또 울 뻔했어.
그래도 이번에는 우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 악착같이 참았지.
오빠가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나한테 오늘 오느랴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고 얘기하더라.
우리 오빠 통해서 내 졸업식에 가족들 못 간다는 거 알고,
담임한테 친척 동생 졸업식이라고 속여서 겨우 왔다고.
말하고선 나밖에 없지 않냐고 생색내길래 오빠밖에 없다고 하니까 또 막 뿌듯하다는 듯 광대 올라갔었어.
그러더니 남는 건 사진이라고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오빠 핸드폰으로 사진 찍었다.
그 사진 아직도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어.
비록 옛날 폰이라 화질이 별로지만, 오빠는 예뻤으니까.
사진 찍고 난 뒤에는 오빠가 졸업식 날에는 짜장면 먹어줘야 한다길래 바로 강당 나가서 중국집 갔지.
고등학교는 내가 오빠네 써서 거기 배정됐거든.
밥 먹으면서 그거 말해주니까 오빠가 그럼 맨날 보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장난치는 말투로 말하길래 내가 싫다는 거냐니까 자기 혼자 막 웃더니.
"좋아서 그러지, 좋아서."
라고 하는 거야.
이것도 장난치는 말투로 말했긴 했는데,
나한테는 뭐든 필터링 돼서 들리니까 혼자 설레었다.
정말로 오빠가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에
저 말이 잠들 때까지 귓가에 맴돌았어.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오빠가 졸업식 때 말한 것처럼 맨날 보진 못 했어.
오빠는 핵인 싸라 여기저기 바쁘게 다녔고 나는 반에서 잘 안 나갔으니까.
동아리도 오빠는 밴드부인데 나는 도서 부였고,
나는 고1이고 오빠는 고3이었잖아.
이렇게 접점이 없으니 접점을 뭐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점심시간이나 학교 끝나고 오빠랑 우리 오빠랑 축구하는 거 보이면 일부러 스탠드에 앉아서 책 읽는 척 앉아있었지.
오빠가 골 넣을 때마다 나 찾아서 자랑하는 거 보고 싶었거든.
고등학교 가서도 오빠 인기 진짜 많았어.
중학교 때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격 좋고, 축구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잘생겼고.
딱 첫사랑의 정석이잖아.
그래서 모두가 오빠의 친구고 오빠를 좋아했어.
가끔씩 시기 질투하는 남자애들은 있었는데.
그런 애들도 나중에는 오빠 좋아하더라.
그때 오빠한테 좋아하는 거 표현하는 사람들 보면서 부러웠지만
이렇게라도 친한 동생으로 오빠를 자주 볼 수 있는 거에,
오빠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는 거에
만족하기로 했어.
적어도 외면당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오빠가 야자 한다길래 신청했더니
오빠는 1학년 때 만 잠깐 한 거라고 하는 거야.
우리 집 쪽으로 가는 친구들이 없었고
우리 오빠가 데리러 올 리가 없었지만 취소할 수가 없어서
맨날 나 혼자 하교했어.
무서우면 드라마나 예능 보면서 갔지.
그러다 일이 터졌어.
내가 야자를 매일매일 10시까지 하거든.
집까지 먼 거리는 아니니까 걸어가.
원래 상가들 모여있는 것보다 주택가들이 더 어둡고 그러잖아.
우리 동네가 딱 그랬어.
그때도 평소처럼 핸드폰으로 드라마 보면서 집에 가고 있었거든.
가로등을 지나가는 순간,
내 뒤에 그림자가 하나 더 보이는 거야.
그 시기에 흉흉한 소문도 돌았고 안 좋은 예감이 들길래
이어폰도 한 쪽 빼고 영상 소리도 줄이고 걸어가니까
나랑 겹쳐오는 발소리가 들렸어.
내가 빨리 걸으면 빨리 걷고, 가로등을 지날수록 점점 그림자가 가까워지더라.
뉴스에서 이런 일 나오는 거 보면서 나는 담담하게 경찰에 신고하고 잘 해결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겪으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머릿속에 백지가 되더라.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바로 내 뒤까지 왔을 때 눈 딱 감고 소리 지르려고 했는데.
"야야야, 뭐 이렇게 늦게 오냐."
앞에서 오빠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눈 뜨고 고개 드니까 오빠가 바로 앞에 있더라.
시선은 내 뒤에 유지한 채로.
내 옆까지 오고 나서야 나랑 눈 마주치고 어깨동무하면서 걸어가는데,
그때는 무서웠어서 설렌다는 생각도 못 했지.
오빠가 걸어가면서 아무 말이나 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이 아직도 뒤에 있을까 봐 굳어있었다.
내 상태 알아차렸는지 오빠가 뒤에 한 번 보고 이제 없다고 말해주는데
다리에 힘이 쫙 풀려서 주저앉았어.
오빠가 내 앞에 쭈그려 앉아서 걱정해주더라고.
많이 무서웠냐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생각해보면 오빠가 미안할 건 없었는데.
좀 시간 지난 뒤에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 오빠한테 이제 괜찮다고 했는데도
걱정이 되는지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계속 묻는 거야.
원래 그쯤 되면 장난치고 그럴 텐데.
오빠 오기 전까지는 진짜 무서웠고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는데
오빠가 구해주고 좀 진정하고 나니까 진짜 괜찮아졌거든.
그거 똑같이 전해주면서 정말 괜찮다고 하니까 잠시 아무 말 없이 날 보더니,
"이제부터 끝나면 나랑 같이 가자."
라고 하더라. 나는 당연히 오빠랑 같이 가는 게 좋다고 싶었지만
오빠도 자기 일정 있으니까 매번 데리러 오는 게 귀찮을 거잖아.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
오빠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자기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내가 결국 좋다고 대답하니까.
오빠가 네가 좋은 게 나도 좋은 거라고 이제 들어가라고 했다.
긴장 풀리니까 설레는 느낌도 확 들더라고.
웃으면서 저 말하는데 그 자리에서 고백할 뻔했어.
집 들어가서 창문으로 밖에 보니까 오빠도 내 쪽 한 번 보더니 손 흔들고 가더라.
아, 가족들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말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아서.
공부도 안 하고 옷만 갈아입은 다음에 침대에 누웠는데
오빠한테 전화가 오더라.
그때 진짜 놀라서 핸드폰 한 번 떨궜었다.
우왕좌왕하다가 끊기기 직전에 받으니까
졸린 건지 낮은 목소리로 걱정돼서 전화했다고 말하는 거야.
진짜 괜찮다니까 다행이라고 웃어주는데,
그 웃음소리가 좋아서 나도 따라서 웃었지.
그러다 오빠가,
"잠 안 오면 자장가 불러줄까?"
라고 말하더라고.
나는 잠 오는데 잠 안 오는 척 불러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오빠가 잠시 목 가다듬더니 자장가 부르더라.
내가 그걸 흔하게 들을 수 없으니까 다급하게 녹음 눌렀는데,
띠링하고 녹음되는 소리가 울리는 거야.
오빠도 들었는지 노래하던 거 멈췄고,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고.
정적만 흐르다가
오빠가 웃으면서 나 놀리더라.
자기 목소리가 그렇게 좋냐고.
나는 그냥 잘못 눌린 거라고 둘러댔지.
"또 듣고 싶으면 전화해, 녹음한 거 듣지 말고."
그런데도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러는 거야.
근데 그 말도 설레서 소리 지를까 봐 입 틀어 막았다.
오빠가 그 뒤로도 계속 웃더니 목 가다듬고 다시 자장가 불러줬어.
오빠 목소리가 너무 감미롭고 잠도 와서 오빠 노래 다 못 듣고 잤는데,
다음날 핸드폰 보니까 30분 정도 녹음이 되어있더라.
내 느낌으로는 내가 10분 만에 잠든 것 같은데 너무 길잖아.
오빠가 나 자는지 몰라서 못 끊었나 싶어서 녹음본 트니까.
나는 10분쯤 잠든 게 맞고,
12분쯤 지났을 때 오빠가 노래 부르던 거 멈추더니 자냐고 묻더라.
그 뒤로 20분이 지나도 계속 말이 없어서
끊긴 줄 알았던 건가 싶어서 녹음 끄려고 하니까
"좋은 꿈꾸고 있지, 여주야?"
하는 목소리가 들렸어.
바로 뒤에 웃음소리 나더니,
'아, 내 목소리 듣지도 못 할 텐데.'라고 하는 거야.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 뒤에 '내일 보자'하고 끊기더라.
이 녹음본 들을 때가 아침 등굣길이었는데 엄청 설렜어.
수업시간에 계속 멍 때리고,
점심시간에 오빠 축구하는 거 보러 가지도 않고,
오빠랑 같이 집 가는데 괜히 오빠랑 말도 더 못 하고 그랬다.
오빠는 약속대로 야자도 안 하면서 음악학원 끝나고 약속대로 나 데리러 학교 와줬어.
가끔씩 먹을 것도 사 오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둘이 사귀냐고 물었는데,
그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론 기분 좀 좋았다.
그래도 나는 오빠 행동들에 의미 부여는 안 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설레는 행동들은 오빠가 그저 친한 동생을 아끼는 마음으로 한 거일 테니까.
그러던 중 주말에 조별 과제 해야 한다고 오빠를 포함한 우리 오빠 친구들이 많이 왔던 적이 있었거든.
내가 주말엔 도서관 다녀서 도서관 갔다가 이쯤이면 없겠지 싶어서 늦게 왔는데도 있더라고.
오빠 빼고는 처음 봐서 대충만 인사하고 방안에 들어갔지.
그러니까 거실이 난리가 나더라.
오빠 친구들이 내 얘기를 하드라고.
소개해달라는 둥, 귀엽다는 둥.
상식적으로 문 하나 간격인데 그 큰 목소리들이 안 들리겠냐.
난 어차피 오빠만 좋아하니까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 정리했지.
계속 우리 오빠가 다른 친구들을 말리는 목소리만 들렸는데,
"안 돼, 안 돼. 내가 있는데 너네한테 왜 소개하냐?"
라고 이상한 말을 하는 오빠 목소리가 들리더라.
오빠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오빠한테 캐묻더라고.
둘이 사귀냐고, 여자친구냐고.
그 소리 듣고 가방 정리하는 거 멈추고 오빠 목소리에 귀 기울였어.
아닐 거 알면서 괜히 기대감이 생겨서.
오빠는 예상대로 무슨 소리냐면서 부정했어.
그런데 오빠 친구들은 안 믿으면서 더 캐묻는 거야.
오빠가 아니라고 계속하니까
그럼 왜 고백들은 안 받느냐고 묻더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뻔한 대답 나올 것 같아서 그냥 책 정리마저 하는데,
"그건 내가 이미 쟤 거라서 그렇지."
오빠가 저렇게 말하는 거야.
이때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책 바닥에 떨어트렸어.
두꺼운 책이라서 큰소리 나서 오빠랑 우리 오빠가 걱정해줬다.
오빠의 그 한마디 말이 이상한 상상을 하게 하더라.
오빠가 날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오빠는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일 수 있겠지만.
그때부터 바보같이 희망을 가지게 됐어.
오빠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귀엽다고 머리 쓰다듬는 것도,
볼 꼬집는 것도,
축구에서 이기면 늘 날 보고 웃어주는 것도,
어쩌면 날 좋아해서 하는 걸 수 있다고 착각했지.
티는 안 냈지만.
그게 한 일 년 동안 지속된 것 같아.
내가 용기 있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 사이에 오빠는 실음과로 유명한 대학에 수시로 붙었어.
고3이 수능은 한 번쯤 봐야 한다고 우리 오빠랑 같이 수능 보긴 했지.
그리고 나는 18살, 오빠는 20살이 되었어.
오빠 실기 때문에 1월 넘어서야 둘이서 20살 즐기더라.
맨날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고.
원래 다들 그러니까 오빠가 나랑 안 노는 게 서운하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불안했어.
둘 다 좋은 대학교를 갔고, 그에 나는 부담감이 커졌고
새내기가 된 오빠가 나를 잊고 살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더라.
헛된 생각이라고 최대한 생각 안 하려고 했지만
고2병이라도 있는 건지 하나가 신경 쓰이니까 다른 것들도 신경 쓰이고
공부하는 것도 힘들어지니까 우울해져서
주말에 도서관 갔다가 핸드폰 끄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숨었다.
한 시간쯤 멍하니 그네 앉아서 하늘만 보니까 허탈해졌어.
그날 우리 오빠랑 오빠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간다고 한 게 생각났거든.
오빠가 못 데려다준다고 일찍 집 가라고 문자도 했고.
그렇단 건 내가 이러고 있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거잖아.
부모님은 맞벌이라 늘 바쁘니까.
그래도 무슨 오기인지 집은 들어가기 싫어서 12시 될 때까지 집에 안 들어갔는데.
어둑어둑해지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까 무서워지는 거야.
핸드폰을 켜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갑자기 내 시야로 발 두 개가 들어오더라.
누군가 싶어서 고개 드니까,
"야, 진짜···. 왜 전화를 안 받아."
오빠가 서있었어.
딱 봐도 차려입었던 복장인데 안 어울리게 땀은 삐질삐질 흘리면서.
내가 당황하면서 일어나려니까 오빠가 그네에 앉더라.
우리 오빠랑 전화하고 있었는지 찾았다고 전화 끊는다고 하고 한숨을 푹 쉬는 거야.
당연히 혼내는 줄 알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는데,
오히려 왜 그랬냐고 묻더라.
혼내지 않는 거에 놀라다가 표정이 진지해 보여서
그냥 힘들어서 그랬다고 대충 둘러대니까 뭐가 힘들었냐고 물었어.
잠시 망설이다가 오빠 얘기 빼고 힘든 걸 하나하나 말했는데,
되게 그 생각하면서 힘들었던 게 생각나서 울컥하고 눈물이 나오려는 거야.
오빠는 묵묵히 날 지켜봐 줬는데
그게 또 고맙기도 하고, 내가 힘든 주원인이라 밉기도 하고.
내가 울보는 맞지만 또 울긴 싫어서 눈물 꾹꾹 참았는데도
"이러나저러나 나는 항상 여주 편인 거 알지?"
라는 오빠의 한마디에 무너졌다.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서 엄청 울었던 걸로 기억해.
나 우니까 오빠가 나 안아줬는데,
그 손길이 너무 따뜻했어.
다 울고 나서 오빠가 엄청 웃더니 내 볼 잡아당기고 눈 부었다고 하면서 장난치더라.
그다음에는 자기가 생각해도 말 잘한 것 같다고도 하고
앞으로 사라질 거면 삐삐치고 사라지라고 하고.
덕분에 웃어서 분위기는 풀렸어.
나중에 집 와서 우리 오빠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자기들끼리 2차로 술 마시러 우리 집 왔는데 내가 없어서
오빠가 한 시간 넘게 나 찾았다고 하더라.
내가 많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오빠는 스무 살이 되고 달라진 게 없었어.
그냥 술자리를 많이 갔다는 것뿐.
계속 학교로 나 데리러 와주긴 했는데
그거 말고는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긴 했지.
오빠가 늘 토요일 저녁에 버스킹 했거든.
어떻게든 자주 보려고 오빠랑 홍대까지 같이 가고 끝나면 같이 집에 오고 그랬어.
자주 버스킹 하니까 입소문 타서 팬들도 생기더라.
그때부터 오빠가 이름 날렸지.
오빠한테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질투는 났지만 오빠가 하고 싶은 쪽이고,
오빠가 잘 되어야지 나도 좋은 거니까 신경 안 쓰려고 했어.
따로 누군가한테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하는 거 보면 불안하긴 했지만.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내가 고3이 됐을 땐 별로 특별한 일이 없었어.
오빠가 고2 겨울방학 때 군대 갔거든.
오빠 군대 간 날 혼자서 엄청 울었는데.
나중엔 이건 공부만 하라는 신의 계시다 생각하고 공부 열심히 했어.
오빠랑은 편지 주고받았고 한두 번 정도 면회 갔다 왔지.
가끔 오빠가 휴가 나올 때마다 같이 밥 먹고.
고3이라 힘들 때 많았는데 오빠 편지 보거라 휴가 때 찍은 사진 보면서 버텼다.
되게 감동이고 놀랐던 건
내 수능날에 당연히 우리 오빠가 데리러 올 줄 알았거든.
그래서 최대한 무덤덤하게 걸어갔는데.
군복 입은 오빠가 정문 앞에서 인형 들고 날 반기고 있더라.
안 믿겨서 멍하니 보기만 하니까 자기가 와서 먼저 안아주고.
난 오빠 휴가 나온 줄도 몰랐어.
전 날 나한테 전화로 잘 보라고 그랬단 말이야.
같이 걸어가면서 어떻게 나왔냐고 하니까
여기 오려고 병장 생일 기념 장기자랑 대회 일등 해서
포상휴가 받아 가지고 왔다는 거야.
함께 온 인형은 길 가다 귀여워서 샀다고 하더라.
그거 말하고서 굉장히 뿌듯해하길래
나도 고맙다고 감동이라고 하니까 하이톤으로 더 기뻐하더라고.
세상에 이런 사람 별로 없다고 자기한테 잘하라고.
그날 맛있는 것도 먹고 다음날 나 염색하러 가는데 오빠도 같이 갔다.
다시 오빠 군대 갈 때 버스 타면서 엄청 아쉬워했었는데.
대학교는 원하는 곳 최저 맞춰서 들어갔어.
오빠한테 비밀로 하다가 면회 갔을 때 말해주니까 되게 좋아했다.
수능 끝나고 할 거 없어서 알바나 하면서 면회 많이 가고 그랬지.
나는 오빠가 수능날 와줬으니까 졸업식 때는 못 올 줄 알았는데
새해 기념 장기자랑에서 1등 해서 포상휴가 받았다고 신나서 또 왔더라.
도대체 오빠네 부대는 장기자랑을 몇 번 했던 거지.
오빠랑 나랑 우리 오빠랑 셋이서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셨어.
이날 오빠가 술도 가르쳐줬다.
어른들과 마실 때의 예절은 오빠한테 배웠는데.
오빠는 적당히 마시는 법, 마시는 척하면서 버리는 법 이런 거 가르쳐주더라.
이런 게 더 실용성이 높다면서. 실제로 도움도 됐는진 모르겠지만.
아쉽게 내가 새내기 때도 오빠는 아직 군대 생활해야 해서
오빠가 나 많이 못 챙겨준다고 걱정 많이 했어.
그러면서 거기에 아는 형 있으니까 언제든지 부르라고 연락처도 줬는데.
오빠가 선배한테 얼마나 신신당부를 했던 건지
선배가 초반부터 엄청 나 챙겨주더라.
나랑 선배랑 겹치는 거 교양 한 과목뿐인데.
선배가 눈치가 빨라서 내가 오빠 좋아하는 거 들킨 뒤로 친하게 지내, 지금까지.
나도 새내기 때는 신나서 술도 많이 마셨고
동기들이랑 빨리 친해져서 바쁘게 놀려 다녔어.
그렇다고 과팅이나 소개팅 같은 건 안 했고.
시간도 많으니까 오빠 보러 면회도 자주 갔고.
겨울 시작할 때쯤 되어서야 오빠는 전역했어.
전역하자마자 신나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더라.
물론 나랑도 놀고 오빠랑도 놀았지.
나는 오빠 머리 짧은 거 귀여웠는데 오빠는 진짜 싫어했어.
버스킹도 머리 좀 기르고 1월 지나서야 다시 시작했어.
그때가 스마트폰도 많이 보급되고 한창 SNS가 발달되던 시기였어서
오빠 영상 한 번 퍼진 뒤에 오빠가 유명해지는 건 시간문제였지.
시작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오빠 영상 유튜브에 올리면 조회 수 엄청 오르고.
끝나고 같이 밥 먹는데 오빠가 엄청 뿌듯해하더라.
오빠 페이스북 친추도 많이 오고 소속사에서도 연락 많이 왔는데.
오빠는 학교에서 좀 더 배우고 싶다고 거절했어.
그러다가 하루는 되게 묘한 날이 있었어.
나 이때 착각 엄청 했었다.
버스킹 하러 가는 날이었는데 오빠가 엄청 차려입고 나온 거야.
원래 버스킹 하러 가는 날 차려입는다지만
그날은 더 신경 쓴 게 보여서 내가 장난으로 오늘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오냐고 했더니
아니라면서 부정을 하면서는 입꼬리는 귀에 걸려있더라고.
그게 의심스러워서 가는 동안 계속 말싸움했어.
오빠는 계속 아니라고 하고 나는 계속 솔직히 말하라고 하다가
오빠가 늘 하던 버스킹 장소 도착해서 그만뒀지.
장비 연결하는 거 도와주는데
아무리 봐도 오빠가 하이텐션인 거야.
끝나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빠 앞에 자리 잡는데 사람들 엄청 몰리더라.
옛날에는 몰려봤자 스무 명 정도였거든.
자주 와본 사람들은 나 아니까 나보고 오늘 오빠 무슨 곡하냐고 물어봐서 생각해보니까
오늘 말싸움하느라 무슨 곡하는지 안 물어본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고 하고 뭔 곡하는지 지켜봤다.
첫 곡은 사랑빛이란 노래였는데.
오빠가 나랑 눈 마주치면서 노래를 하는 거야.
보통 오빠는 눈 감고 노래하거나 주변 보면서 노래하거든.
내가 영상 찍으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카메라가 아니라 나랑 눈을 마주치는 것 같더라.
버스킹 처음부터 끝까지 쭉.
오해하기 쉽게 왜 버스킹 곡들은 다 달달한 노래들이었는지.
달달한 노래들만 했던 거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걸.
버스킹 끝나고 같이 밥 먹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맨 처음에는 누구한테 고백하는 줄 알았지.
근데 끝나자마자 나랑 밥 먹으러 왔잖아.
뭘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어서 묵묵히 밥 먹었는데.
오빠가 먼저 입을 열더라.
"여주야, 오늘 버스킹 어땠어?"
라면서. 갑자기 물어봐서 밥 먹던 거 뱉을 뻔했다.
원래 이런 거 잘 안 묻는 사람이거든.
먹던 거 마저 삼키고 잘했다고 해줬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오늘 잘한 것 같다고 뿌듯하게 웃는 거야.
오늘따라 이상하길래 내가 오늘 누구 왔냐고, 소속사 관계자 오냐고 물었는데.
내 말 듣고 흐흥 거리고 웃어서 내가 이상하듯 보니까 웃음 꾹 참고.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있었지."
이러는 거야. 내 눈 똑바로 쳐다보면서.
난 원래 오빠 보고 있었으니까 계속 눈을 마주치는데 기분이 되게 묘하더라.
게다가 오빠도 먼저 내 눈을 안 피해서.
그 뒤로 집까지 가는데 거의 말을 안 했어.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는 몰라도 그 말 때문에 분위기 엄청 이상했거든.
긴장한 상태로 걷고 있는데 오빠가 먼저 입을 열더라.
"요즘 연애하는 사람은 있고?"
라면서.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데 거기다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오빠 캐묻는 거 잘하는데 그렇게 말하다 오빠한테 좋아하는 거 들킬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옛날에 말했던 거 생각나서 연애 말고 결혼하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정작 물어본 건 오빠면서 오빠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야.
내가 뭐 하냐고 툭툭 치고 나니까
그제야 오빠가 아직도 그 생각 여전하냐고 묻더라.
솔직히 이때는 연애라는 게 무서웠고,
오래 만나보고 바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서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랬는데 무슨 꿀 먹은 벙어리도 아니고 또 대답이 없더라고.
원래 말도 많던 사람이 이렇게 조용하니까 이상해하잖냐.
또 내가 오늘 누구한테 고백하려고 했던 거 아니냐고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하다고 물어봤는데.
오빠가 계속 날 바라보다
"있었는데 방금 취소됐어."
라는데,
기분이 이상한 거야.
나보고 하는 말 같고.
그때 다행히 집 앞이어서 가야겠다면서 집으로 들어갔어.
나 들어가는데 오빠도 별말 안 꺼냈고.
시간이 지나도 아직까지도 그 묘한 분위기는 잊지 못 할 것 같다.
오빠가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가 싶었는데.
다음 날에 평소처럼 대하는 오빠를 보면 괜히 나 혼자 착각한 건가 싶어서 잊기로 했지.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 뒤로 오빠가 엄청 바빠졌어.
개강해서 그런 건가 했는데,
소속사 들어가는 거 준비하느라 바쁜 거라고 하더라.
난 그걸 우리 오빠한테 들었다.
오빠가 나한테는 말을 안 한 거야.
우리 오빠도, 선배도, 오빠네 학교 학생들도 아는 걸 난 몰랐었어.
그렇게 말하고 다녔던 걸 나한테만 말 안 해줬다고 하니까 되게 서운했다.
그 주 토요일도 오빠랑 같이 버스킹 갔는데
언제까지 말을 안 하나 지켜보려고 일부러 말 안 꺼냈어.
버스킹 끝날 때까지 오빠는 그거에 관해서 입도 뻥끗 안 하더라.
집 근처 오니까 오늘 버스킹 마지막 날이었다는 말이나 하고.
내가 왜 마지막이냐고 하니까 그제야 소속사 얘기 꺼내는 거야.
안 그래도 소속사 들어가면 자주 못 볼 것 같은데 너무 갑작스럽고,
나한테만 얘기를 안 해준 게 너무 서운하잖아.
그래서 내가 그거에 대해 화내듯이 얘기하니까,
오빠가 나한테는 완전히 확정되었을 때 말해주고 싶었다고 미안하다고
원래 눈치 잘 안 보는 사람이 내 눈치를 보는데.
어떻게 거기에 더 화를 내겠어.
그리고 내가 화낼 자격이 없는 문제잖아.
결국 그냥 알았다고 열심히 하라고 하니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러다 내가 흘러가는 말로 우리 이제 자주 못 보겠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야. 난 맨날 너 보러 갈 건데. 넌 나랑 안 만나줄 거야?"
라고 하는 거야.
내가 뭐라고 오빠를 안 반겨주겠냐.
두 팔 벌리고 환영해야지.
내가 당연히 만난다고 하니까
그 말 지키라고 약속에 도장까지 찍었다.
며칠 뒤에 정말로 오빠는 소속사 들어갔고 기사도 여러 개 났어.
오빠가 버스킹으로 유명했으니까.
오빠 앞에서 그 기사 읽어주면 반응 재밌었는데.
민망해서 깔깔거리면서 웃고
몸부림치면서 옆에 있는 우리 오빠 때리기도 하고.
그때 오빠가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아예 작업실을 따로 주고 제제도 별로 안 했거든.
그래서 오빠는 학교도 꾸준히 다녔어.
자기 학교에서 유명인사라고 나한테 자랑할 때도 많았다.
오빠가 작곡은 예전부터 해온 게 있어서 첫 음원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
원래 있던 곡들 중에 소속사 컨펌만 받아서 다듬고 낸 거라.
인기 없는 소형 기획사에 네임밸류도 없었으니까 차트 진입은 못 했어.
그 시기에 오빠랑 밥 먹으러 갈 때 가끔씩 오빠 노래 나오면 오빠가 흥얼거리다 주변 보고,
"응, 아무도 몰라."
이랬던 적도 있었다.
첫 음원 뒤에 조금 시간이 지나서 곡을 하나 더 냈었어.
제대로 하는 거라 소속사랑 오빠가 길었던 기대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것보다 낮은 성적이 나와서 겨우 썼던 돈 메꾸는 수준이었지.
첫 음원은 소소하게 낸 거라 성적을 상관 안 했는데 이번은 아니잖아.
오빠도 이때 엄청 힘들어했어.
이 뒤로는 하루 종일 작곡에만 매달려있더라.
작업실에 틀어박혀있고 나오질 않아서 찾아가도 못 만나고 올 때가 많았고.
소속사는 오빠를 포기했던 건지 오빠가 쓴 곡들 가져가서 남한테 주기만 했어.
좋게 말하면 가족끼리 곡주는 거라지만 착취였지.
그 뒤로 오빠 앨범은 절대로 내주지를 않았거든.
많지는 않았지만 그때 있던 오빠 팬들도 탈 소속사라고 하고.
나도 그 말 직접 하고 싶지만 오빠도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을 텐데.
오빠한테 괜한 상처만 줄까 봐 말 안 했어.
그냥 옆에서 지켜봐 주기만 했지.
그러다 해가 바뀌었고 집에서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듣던 중,
오빠한테 전화가 오더라.
"나 소속사 나왔어."
라는 목소리가 안부 인사보다 먼저 들렸고.
되게 담담하게 말했는데 속은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잘 아니까.
아무 말 없이 그 감정을 헤아리려다 차마 못 할 것 같아서
잘했다고 위로해줬어.
잘 선택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소속사에서 방출시킨 거였지만.
거기는 아마 평생을 후회할 거야.
그렇게 오빠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고, 예전처럼 따로 연습실을 구해서 다녔어.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와서 기타 쳐주면서 노래 불러주기도 하고,
가끔씩 작곡하는 거 보여주기도 하고.
정말 평범하게 나는 22살을, 오빠는 24살을 보내는구나 싶었지.
12월이 다가올 때쯤 오빠가 그 소속사에서 친해진 관계자의 추천으로 음악프로에 나간 적이 있어.
정확히 프로그램은 말하지 못 하지만 한창 유명했던 프로였거든.
거기서 우승도 몇 번 하고 올해의 발견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 유명해졌어.
오빠의 노래가 가게들에서 나오고,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오빠 노래들이 역주행하고.
그 프로가 끝난 뒤에 평판이 좋은 소속사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그쪽으로 갔다.
그동안 힘들었던 게 보상을 받는구나 싶었지.
그런데 인기가 많은 게 늘 좋은 것 만은 아니었어.
오빠는 늘 바빴으니까 나에게 소홀해졌고,
가끔씩 놀 때도 방해받거나 오해받기 쉽상이고,
오빠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나는 혼자서 보내야 했으니까.
게다가 더 이상 오빠에게 마음을 충동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
오빠는 눈치가 없어서 몰랐더라도
우리를 더 주의 깊게 보는 남들은 알 수도 있으니까.
오빠에게 오는 연락도 줄고 내가 하는 연락도 줄다 보니
오빠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빠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되는 거야.
그냥 내가 어느새 의식적으로 좋아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진짜로 두근거리는 게 뭔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닌가.
선배한테 말하니까 같이 고민해주다가 다른 사람 만나보는 게 어떻냐면서 소개팅 자리 주선해줬다.
그런 자리는 별로 안 좋아해서 고민 많이 했는데
정말 누군가는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 나갔어.
그 사람은 선배 친구였는데 잘생겼고, 친절했고, 매너 있고, 재치 있었어.
나랑 잘 맞기도 했고, 얼마 만나지도 않았는데 편안한 사람이었어.
오랜만에 느끼는 그 편안함이 너무 좋아서 그 사람이랑 자주 놀고 얘기했다.
오빠랑 있었던 시간을 그 사람으로 채웠고,
나는 그 편안함과 웃음이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날도 그 사람이랑 놀다가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는데,
몇 달 만에 오빠를 마주쳤어.
쇼핑백을 한 손에 들고, 마스크를 낀 채로 우리 집 앞에 서있는 오빠를.
오빠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알았어.
사랑은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는 거.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게 아니라 쿵, 하고 발끝까지 내려갔다가 하늘까지 다시 올라가는 거란 걸.
내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게 사랑이었다는걸.
그리고 수긍했지.
난 오빠만을 계속 짝사랑하고 있구나.
"안녕. 잘 지냈어?"
내가 멍 때리고 오빠만 보니까 오빠가 먼저 나한테 와서 마스크 내리고 웃더니 인사해줬다.
나도 따라서 인사하긴 했는데 그제야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된 감정에 아무 말도 못 했어.
게다가 오빠한테 누구 만난다는 소리는 안 했는데 그 사람도 있었으니까.
겨우 정신 차리고 뭐라 말하려는데,
"옆에는 누구야?"
라고 오빠가 선수를 치더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상하게 소개가 될 것 같아서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하려 했는데,
그 사람이 자기를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하는 거야.
당황해서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그 사람이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그런 의도로 만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맞는 거긴 하니까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오빠 눈치를 봤지.
"아, 잘 어울리네."
그런데 아무런 감정 없게 들리는 오빠 목소리가 더 마음을 콕콕 쑤시더라.
말 돌리려고 왜 안 들어가고 있냐고 하니까.
스케줄 가던 중에 들린 거라면서 손에 들려있던 쇼핑백을 나한테 쥐여주는 거야.
이게 뭐냐고 물으려는데
갑자기 집 앞에 서있던 차에서 어떤 여자가 내려서 오빠를 불렀어.
언제까지 기다리냐고.
오빠가 그 사람한테 곧 간다고 하니까
오랜만에 데이트인데 왜 그러냐고 하는 거야.
오빠는 그 여자한테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실실거리면서 웃고.
두근거리던 감정이 차갑게 식더라.
오빠가 나한테 또 뭐라고 말을 해주는데 하나도 못 듣고 고개만 끄덕였어.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해서 멘붕이었거든.
오빠는 말 다 했는지 나랑 그 사람 한 번 훑고,
"간다. 나중에 연락할게."
라면서 그 여자한테 갔는데.
유유히 골목길을 벗어나는 차에다가 돌을 던지고 싶었어.
무슨 정신으로 집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허탈하고 허망하고 화도 나는데 그 이유들 중에서 오빠의 잘못인 건 아무것도 없더라.
그날 밤새 생각만 해서 내린 결론은 오빠를 피해야겠다는 거였어.
그나마 오빠가 바쁠 때 조금이나마 오빠 생각을 덜 했잖아.
그렇게 하면 마음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싶어서.
새벽에 오빠한테 받은 쇼핑백을 풀어봤는데,
코트랑 블라우스랑 쪽지가 들어있더라.
쪽지에는 어울릴 것 같아서 샀다고 이거 입고 같이 놀러 가자는 말이 적혀있었고.
미워할 수 없게 오빠는 순수히 다정했어.
그 다정함이 미우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어.
다정한 문장들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숨이 턱 막히더라고.
이런 사람이 여자친구한테는 얼마나 다정할까.
이 다정함은 내가 오빠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도 이어질까.
울컥하는 마음은 쪽지랑 같이 접어서 서랍장에 넣었어.
이제부터는 꺼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날 후로 말이 오빠를 피했다는 거지,
피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바쁜 오빠는 나와 있을 시간이 없었어.
연락도 그 뒤로 안 오갔고.
한 번 뜨니까 계속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그때 새 앨범도 냈고 곡작업도 계속했다 보니
나 혼자 티비 속 웃는 오빠를 피해 다니기 바빴지.
게다가 나도 정신없이 취업 준비하고 시험 준비하고 그랬으니까.
오빠를 신경 쓸 시간도 오빠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관리할 시간도 없더라.
그렇게 시간은 야속히도 빠르게 흘렀고 나는 1월 말에 취업에 성공했어.
일은 2월 말부터 나가면 됐고.
오빠가 줬던 블라우스랑 코트 입었는데 그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해.
웃긴 게 바빴던 일상들이 조금 수그러드니까 다시 오빠 생각이 나더라.
괜히 티브이 속에 오빠가 나오면 채널 멈추고 보고 있고,
오빠 연락처만 들여다보다가 다시 나가고,
옛날에 같이 찍은 사진들 들여다보고.
그러니까 졸업식 날까지 금방 왔어.
난 취업을 이미 했으니까 졸업식은 별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지.
그냥 졸업장이나 받고 가야지라는 생각이었고.
그래도 학사모랑 가운 입고 있으니까 울컥하고 뿌듯하긴 하더라.
하필이면 그날 주변 사람들이 다 바쁘다고 아무도 안 와서
동기들이랑 사진 몇 개 찍고 연락하라는 말 나누는데.
주변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졸업식이 아무리 복잡하다고 해도 그렇게 부산스럽진 않으니까,
무슨 일 생긴 건가 싶어서 뒤돌아봤더니,
누군가를 찾고 있는 오빠가 보이더라.
마스크도 안 쓰고, 알아보는 사람들한테 인사해주면서.
오빠랑 내 관계 알고 있던 동기들은 나보고 너 보러 온 거 아니냐고 묻는데.
나는 오빠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려서 대답도 못 했어.
너무 오랜만이고 그리웠으니까 실감이 안 났거든.
그러다 오빠랑 눈이 마주치고,
오빠가 내 쪽으로 걸어오더라.
내 옆으로 와서 동기들하고 인사하는데 허상을 보는 것 같았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빠는,
"여주야, 졸업이랑 취업 축하해."
라면서 꽃다발을 나한테 안겨줬어.
충격 그 자체라 말도 못 꺼내고 있으니까.
친구들이 사진 찍어주겠다고 먼저 말해줘서 사진 찍는데,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사진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사람들이 점점 몰리고 복잡해졌는데,
그거 보고 오빠가 차 타고 가자고 할 때 돼서야
정신이 들었어.
그래서 차 타러 가는 길에 오빠가 여기 어떻게 왔냐고,
스케줄은 없었냐고, 여기에 아는 사람 있었냐고 묻는데도
그냥 웃기만 하더니,
차 문 열어주면서
"내가 우리 여주 보러 왔지, 누구 보러 왔겠어."
하더라.
그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차 탔지.
이제 보니까 난 설레면 말이 없어지나 봐.
오빠 차는 그때 처음 탔는데 엄청 좋아 보였다.
오빠가 성공하긴 성공했구나 싶었지.
차 칭찬하니까 오빠가 뿌듯하다는 듯 웃으면서 자랑하는 거야.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길래 나도 웃으면서 성공했다고 받아쳐줬지.
그 뒤로 온 정적에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고 오빠 여자친구 있던 것도 생각나서 잘 말을 못 꺼내겠더라.
도대체 뭔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오빠를 보는데,
오빠가 긴장하면서 핸들 쥐고 있는 거야.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웃음 터지니까
오빠도 자신이 웃긴지 같이 웃음 터지고.
내가 운전면허 딴 거 맞냐고 물었거든.
오빠가 잠시 멍하니 생각하고서는 땄긴 땄지 이래서
둘이서 웃다가 내가 오빠한테 오늘 사고 나는 거 아니냐고, 기사 뜨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왜 그래. 나 베스트 드라이버야. 베드, 베드."
저렇게 말해서 또 엄청 웃었다.
그러다 오빠 신호 놓칠뻔해서 신호 바뀌었다고 알려주고.
웃어서인지 분위기 풀려서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궁금증 반 무의식 반으로 오빠한테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냐고 물어봤는데.
오빠가 의아해하면서
"커플이라고 염장 지르냐? 나 여자친구 없잖아."
라는 거야.
그 말에 나도 의아해하면서 나 남자친구 없다고,
오빠 저번에 같이 온 사람 여자친구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오빠는 여자친구 없는지 몇 년이나 됐는데 그러냐고,
그 누나 그냥 친한 누나라고,
오히려 너는 그 남자애랑 사귀는 거 아니었냐고 하길래
나도 그 사람 그냥 친구처럼 지냈다고 했거든.
그렇게 서로 의아해하면서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에 딱 이해가 되더라.
우리 둘 다 오해했구나.
오빠도 동시에 이해해서 둘이서 우리 뭐냐고 웃었다.
한참 웃고 나니까 고급스럽게 생긴 식당에 도착했어.
그런 곳은 선배 월급 일날 같이 먹을 때 빼고는 잘 안 와서 당황했다.
일단 오빠가 들어가자길래 같이 들어가긴 했지.
외향처럼 룸 안에서 메뉴 보는데 가격도 비쌌어서
내가 오늘 오빠 지갑 탕진하는 날이냐고 하니까.
오빠가 어이없다는 듯 날 보다가 거만한 포즈로 자세 바꾸고 웃으면서
"내가 누군데, 이정도는 매일 사줄 수 있어."
이런 말하고 으쓱거리더라.
그 모습이 되게 웃기고 멋있어서 멋있다고 해주니까 더 뿌듯해하면서 좋아했어.
하여간 단순하지, 이 오빠.
그래도 나는 이런 곳은 많이 안 와봐서 모르니까 오빠한테 메뉴선택 넘겼어.
오빠가 시켜준 게 입에 잘 맞아서 먹으면서 그동안 못 했던 얘기들도 했다.
이때 오빠가 강남에 새로 구한 작업실이랑 내 직장이랑 가깝다는 거 알아가지고,
오빠가 자기 지인이 부동산 한다고 자취방 알아봐 준다고 하더라.
계산할 때도 오빠가 엄청 뿌듯해하면서 계산했어.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부르라고도 하고.
오랜만에 집까지 같이 가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한 거야.
걸어서가 아니라 차 타고 가서인지,
아니면 여자친구가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차는 집 앞에 도착했는데 쉽게 내릴 수가 없었어.
그냥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며 내리는 거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너 남자친구도 없으니까 내가 맨날 찾아가도 되지?"
라고 하더라.
그게 뭔 소리냐는 듯 보니까 갑자기 핸드폰 꺼내고 자기 작업하는 뒷모습 찍은 사진 보여주더니,
"나 혼자서 이렇게 심심했단 말이야. 너 애인 생겨서 연락도 못 하고."
라는 거야.
웃음으로 풀어주는 방법은 늘 여전했어.
그리고 거기에 넘어가는 나도 여전했고.
그래서 오빠 바쁘니까 내가 자주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내가 뭐라도 사준 것처럼 엄청 고맙다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 부르라고 하더라.
그 말에 알았다면서 나와서 집 들어가긴 했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봐,
그 뒷모습은 다른 사람이 있어야 찍을 수 있는걸.
어떻게 됐든 다시 오빠랑 연락도 자주 하고 잘 놀았어.
괜히 오빠가 우리 집 왔다가 이상한 소문 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작업실 자주 놀러 갔지.
자취방도 작업실하고 내 직장 중간으로 구했어.
취업 초기에는 되게 바빴으니까 내가 자주 못 놀러 갔어.
워낙 그때가 신년 준비라서 바쁘기도 했고.
조금 지나서야 신입 환영회라면서 회식자리를 가졌는데.
아무리 오빠한테 술자리 과외를 받았어도
주면 주는 대로 다 마시게 되더라고.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술이 엄청 약한 것도 아니어서 잘 안 취하는데,
그날은 잔뜩 취해서 엎드려 있으니까
동료 직원들이 더 당황해서 내 핸드폰을 정중하게 가져가더니 누구를 부르더라.
나는 당연히 우리 오빠인 줄 알고
엄청 욕 들어 먹겠다 싶어서 자는 척이라도 하려고 눈 감았거든.
그런데 한 시간도 안 지나서 누가 들어오는 거야.
다른 직원들이 웅성거리다 조용해지길래 누군가 싶어서 눈 뜨니까,
"언제까지 속 썩일래, 너."
오빠가 있더라.
곡작업하다가 나온 건지 안경에 마스크 끼고 있고.
그때까지만 해도 술이 안 깨서 그냥 실실 웃으면서 오빠 이름만 계속 불렀어.
오빠는 그런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직원들한테 인사하고 나 차 안에 넣어줬다.
오빠가 그때 안전벨트도 대신 해줬는데,
왜 나 그때 제정신 아니었니.
아무튼 그렇게 차 타고 가는데 나는 술 취해서 웃기만 했고 오빠는 또 아무 말이 없어서
차 안에는 내 웃음소리만 가득했어.
오빠는 집안 침대까지 날 안전배송해줬는데.
내가 정말 무슨 정신인지 나 침대에 내려놓고 나가는 오빠한테,
오빠가 평생 이렇게 나 취했을 때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을 했었다.
그 뒤로 바로 잠들어서 그 뒤에는 기억이 안 나는데.
딱 저 말 한 것 까지는 기억나더라.
아침에 멘붕와서 멍하니 있다가 내린 처방은 기억 안 나는 척이었어.
하필이면 그날 내가 오빠 작업실 가는 날이라.
그 와중에 오빠 얼굴은 보고 싶어서 갔는데,
오빠가 되게 평온하게 날 반겼어.
그래서 내가 더 안절부절 못 하면서 오빠 작업하는 거 보다가
내가 뭐 실수한 거 없냐고 하니까
갑자기 뒤돌아 보더니 나 보고 있다고 하는 거야.
심장 쫄려서 표정 굳고 기억 안 난다고 하려는데 되려 웃으면서,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렇지, 날 언제까지 부려먹으려고. 앞으로는 술 적당히 마시고 불러, 그럼 데리러 갈 테니까."
라고 장난을 가득 담아 말하더라.
그 말 듣고 안심돼서 알았다고 나도 웃으면서 맞장구쳐줬지.
그러면서도 은근 아쉽더라.
내가 말한 의도로 알아차렸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싶고.
그래도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어딘가 싶었어.
우리는 가끔씩 사람 없을 시기에 꽃이나 영화도 보러 다니고,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오빠 곡 작업하는 것도 보러 가고,
우리 오빠랑 나랑 오빠랑 셋이서 축구도 보러 가고.
가끔씩 셀카로 서로 안부 보내기도 하고.
나름 우리만의 인연을 이어갔어.
그러다 연말, 그러니까 두 달 전, 한창 바쁜 시즌에
일 겨우 넘겨주고 쉬는 날이 생겨서 잠에 들었는데 가위에 눌린 거야.
원래 가위도 자주 눌리기도 하고 악몽도 자주 꿔서 익숙하게 풀려나긴 했는데 집에 혼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웠지.
다시 잠도 달아나서 겨우 쉬는 날에 잠도 못 자는구나 한탄하고 남은 일이나 하려고 노트북을 여는 순간,
오빠한테 전화가 오더라.
난 무의식적으로 받았는데
오히려 오빠가 놀라면서 어? 받네 이랬어.
오빠 목소리 들으니까 무서운 게 사라져서 침대로 돌아갔다.
오빠는 곡 작업 때문에 깨어있었다가 뭔가 느낌이 안 좋길래 전화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쉬는 날인데 가위눌려서 깼다고 했더니.
잠깐 아무 말이 없길래,
나도 아무 말 안 하다가 다시 이름 부르니까.
"괜찮아? 내가 거기 갈까?"
라는 목소리가 들렸어.
나야 땡큐라지만 새벽이라 오빠도 피곤할 거고 내 꼴이 말이 아니라 거절했지.
그러니까 계속 정말 괜찮냐고 묻더니 갑자기 전화를 끊더라.
당황해서 눈만 끔뻑거리다 영상통화로 오빠한테 전화가 걸려오는 거 보고 더 놀라서 욕했잖아.
카메라 가리고 전화받아서 왜 영상통화 거냐고 하니까
자기 머리 매만지면서 잘생긴 얼굴 보고 마음 가라앉히라고 그런 거라는 거야.
덕분에 웃음 터져서 웃으니까 오빠도 따라서 웃고.
됐다고 오빠도 피곤할 텐데 자라니까
나 자는 것까지만 보고 끊고 자러 갈 거라고 했어.
오빠 고집도 센 건 잘 아니까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면 자는 줄 알까 봐 숨만 쉬면서 자는 척했는데.
또 잠 안 자는 건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너 안 자지? 하는 거야.
누가 보면 내가 카메라 안 막은 줄 알겠어.
내가 대답하니까 자기도 웃긴지 웃다가 옛날에 너한테 노래 불러준 거 기억나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당연히 기억난다니까 웃으면서 노래 시작하더라.
그것도 화면 바라보면서 뚫어지게.
Last Christmas라는 곡이었는데.
그날은 잠 안 자고 그거 다 들었어.
오빠는 노래 혼자서 부르고 나서 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확인하려고
아무 말 안 하고서 화면보다가
내가 자는 줄 알았는지 또 자네, 하면서 웃고.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꿈꿔."
하면서 끊더라.
그때 알았어.
오빠가 전화를 건 새벽은 크리스마스 날이었다는걸.
그래서 전화해줬단걸.
11월 말부터 1월 말까지 오빠는 라디오 디제이 맡게 돼서 준비하고 나는 일 때문에
각자 바빠서 못 만나다가
저번 주쯤에 오빠 작업실에 내가 놀러 갔어.
오빠가 곡작업 중이길래 그냥 나는 책 읽었지.
작업할 때 방해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갑자기 오빠가 뒤를 돌아서 나한테 오더니 손 잠시만 줘 보라는 거야.
무슨 일인가 싶어서 손을 주니까 자기 손이랑 손을 대보면서 아, 이 정도 하네. 하더라,
뭐냐고 물으니까 비밀이라고 하고 다시 기타 치길래
곰곰이 생각하다가.
여자 손 크기 재는 거는 누구한테 반지나 팔찌 선물한다거나 그런 거잖아.
설마 여자친구라도 생겼나 싶어서 여자한테 반지 선물하냐고 그러니까.
"티났어?"
라고 하더라. 그 말에 내가 더 당황해서 오빠 애인 생겼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고선 다시 흥얼거리면서 곡작업하고.
더 캐물을 수도 없게.
이 날만 그랬으면 내가 그냥 부모님한테 드리나 싶어서 의심을 안 했을 텐데.
오빠가 나한테 이상한 거에 대해서 자꾸 묻더라고.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는 건 어떨지,
언제 결혼하고 싶은지,
신혼집은 어디가 좋을지,
이런 데서 프로포즈 하면 어떨 것 같은지.
그런 얘기가 오갈 때마다 나는 불안했었어.
갑자기 나도 모르는 사람과 오빠가 누군가와 결혼할 것 같아서.
누구랑 연애하냐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니까.
더 불안했지.
"여주야, 가을에 영국 가면 예쁘겠지?"
그러다 오빠가 나한테 저런 걸 물은 적이 있어.
최근에 한 질문들 보면 신혼여행 어디 갈지 물어보는 거잖아.
참으면서 넘어갔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하라고 애인 생긴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또 아니라는 거야.
당연히 거짓말일 걸 아니까.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려는 순간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있어."
이런 말이 들려오더라.
그 말에 사고 회로가 멈춰서 고개 들고 가만히 오빠를 보는데.
오빠 표정이 되게 행복해 보이더라고.
그거 보고 더 입을 꾹 다물었어.
내가 그 감정으로 충동적으로 꺼낸 말이 오빠의 행복을 깨트릴지 몰라서.
그 표정의 이유가 내가 아닌 게 속이 쓰려서.
오빠는 한 번 입이 풀리니까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다 말하더라.
올가을쯤에 결혼식 올리고 싶다고,
프러포즈는 다음 주쯤에 할 것 같다고.
내가 멍하니 있으니까 오빠가 내 이름을 부르길래
겨우 정신 차리고 웃으면서 핸드폰 보는 척했어.
그 표정을 감당할 수 없어서,
다시 보면 울 거 같아서.
많이 좋아하냐고 물으니까,
많이 좋아한다고 하더라.
쑥스럽다면서 웃는 것도 들리고.
많이 예쁘냐고 물으면서 오빠를 봤는데.
"나한테는 네가 젤 예쁘지."
라고 나랑 눈 마주치면서 대답하는 거야.
그 말이 더 날 무너지게 했어.
나를 향한 오빠의 눈빛이, 말투가, 표정이 하나같이 늘 다정한데.
그게 11년간 나와는 다른 마음에서 나왔던 거니까.
그럼에도 나는 착각을 했고,
희망이 없었는데 희망을 가졌다는 거니까.
더 있으면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냥 급한 일 생겼다고 먼저 나왔어버렸어.
며칠 동안 오빠랑 연락도 안 하고 작업실에 놀러도 안 가고.
아프다고 일도 잘 안 나갔는데,
어제 오빠한테 문자가 왔어.
내일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옷 예쁘게 입고 나오래.
그 문자 하나에 괜히 또 설레더라.
이제는 정말 희망조차 없어야 할 텐데.
원래 죽을 때까지 내 마음 꽁꽁 숨겨서 묻어두려고 했지만.
내일이든 결혼식이든 얼굴 보면 다 말해버릴 것 같고,
나도 마지막만큼은 이기적이고 싶어서.
내일 가서 말해주려고.
많이 좋아했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오빠 생각에 많이 행복했다고.
묻고 싶긴 하네.
내가 설레서 눈 뜨고 지샌 그 밤들을 오빠는 편안하게만 보냈는지.
나에게 건넨 애정 어린 말들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건지.
하지만 돌아올 대답은 뻔할 테니까 안 그러려고.
혼자서 아파하고 좋아하는 건 이만해도 될 것 같아서.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다른 둥이들의 사랑은 안녕하기를 바라.
많이 늦었으니 그만 자러 가야겠다.
그리고
이제 보내줄게.
잘 가,
나의 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