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은 애다.
애다.
..진짜 애다.
저렇게 애일 수가 없다 시파!!!
"사장님? 그거 제가 그냥 한 박스로 사드리겠습니다. 그만 하시죠..."
사건의 시작점은 이거였다. 나는 베이킹을 하기 위해 머리를 깔끔하게 묶고 다닌다. 그건 우리 카페 모든 여자 알바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날도 어느날과 그랬듯이 나는 머리를 묶기 위해 딸기색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베이킹을 하고 있었고. 이제는 제법 숙련된 실력까진 아니지만 베이킹의 초보자라곤 어디가서 당당하게 말할 정도는 되었다. 요리고자에서 베이킹 초보자라니. 솔직히 이정도면 무한한 발전이다. 권현빈과 김용국도 어제 드디어 소금과 밀가루와 설탕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을 보고 박수를 보내주었다. 글로 써놓고 보니 조금 쪽팔리다. 사실 많이.
"데이트 하자."
김상균은 이제 제 직업의 본분을 잊은듯 틈만나면 데이트를 하자 보챈다. 어느새 흰 커튼을 걷고 주방까지 넘어온 기럭지가 또 다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뒤에서 김용국과 권현빈이 구시렁대는 소리가 커튼을 넘어온다. 김용국은 저번의 나를 밀어주기 위한 파업 발언을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 어느새 맨날 김상균이 파업하겠다고(농담이긴 했지만) 난리였기 때문이다. 가게 쉬는 날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벌써 세 번째였다. 애새끼냐고요...나는 김상균을 어를 계책이 필요했다.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와서 데이트하자고 내 팔을 주물럭대는 김상균을 말려야 했기 때문에.
"싫어요."
"왜?"
"선물 줄게요. 데이트는 쉬는 날에 합시다."
"어? 진짜?"
나는 지금도 그 발언을 후회한다 시발. 선물은 무슨 선물이냐. 학자금 대출도 갚기 빠듯한데 말이다. 물론 데이트 하면서 내가 밥을 사거나 한 적은 있다. 단지 선물 산 적이 없었을 뿐이지. 지금 나는 선물 준단 발언 하나에 표정이 반색하여 기대감에 부푼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있다. 김상균의 시무룩 했던 입꼬리가 금방 부풀어오르며 치아를 수줍게 내밀었다. 뭔데요? 뭔데요? 아예 몸을 배배 꼬며 끼를 부리는 김상균을 실망시킬 순 없었다. 참고로 내 가방에는 내 지갑과 화장 수정을 하기 위한 콤팩트가 전부였으며 주머니 속엔 여분의 딸기 머리끈 하나가 전부였다. 그냥 줄 선물 조또 없단 뜻이다. 나는 그래도 우둔한 두뇌를 재빠르게 돌리기 시작한다. 생각해 생각해...
"여기요."
"어?"
"그,그그그 그거 비싼 머리끈이에요.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주머니 속 여분의 머리끈을 넘긴다. 시발 그래. 보통의 머리끈이 500원 한다치면 내 딸기색 머리끈은 1000원이었다. 두 배나 비싸네..가 아니고 나는 손에서 땀이 났다. 김상균이 겨우 여자 아이나 할 것 같은, 그것도 정말 아동이 할 것 같은 딸기 머리끈을 보고 무슨 반응을 할지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김상균의 손에 얌전히 올라간 딸기 머리끈이 어처구니 없이 나를 쳐다본다. 등줄기에서 땀이 송골송골 흐른다. 설마 겨우 이거에요? 하고 김상균이 또 겁나 웃을까봐. 그리고 또 그 뒤로 권현빈이 존나게 처웃으면서 들어오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런데,
"고마워..."
"???"
김상균의 동공이 외부로 손을 뻗치며 커진다. 그와 동시에 그 길다란 입도. 그리곤 정말 감동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니까 왜 저걸 고맙다고 하는건데...?
"진짜 소중하게 잘 쓸게!"
"...진심이세요?"
이제는 내가 어이가 없어져서 그 말의 진위여부를 물었다. 김상균은 고개를 큰 각도로 주억거리면서 그것을 무슨 보물단지라도 된다는 듯이 머리끈을 손으로 모았다. 뭐 어쨌뜬 나의 재치(?)로 김상균의 데이트 신청은 타도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
"어서오세요!"
"푸웁!!!"
그 머리끈을 선물로 쥐어준 3일이 안되는 날이었다. 알바생들 모두가 경악하여 김상균을 바라봤던 그 사건. 김상균을 바라보는 손님들의 반응은 딱 두가지였다. 손을 동그랗게 말아 웃음을 참거나 아니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그대로 뿜거나. 뭐 그래. 김상균 얼굴이 다비드고 너무 우월한 유전자 잘 가지고 있는 것 나도 안다. 그 사람은 웨이브 머리를 하든 브로콜리 머리를 하든 생머리를 하든 무슨 스타일링이라도 잘 어울릴 얼굴이었다. 그래도
김용국(23세)/프로팩폭러
"아니, 사장님 반쪽짜리 농민봉기도 아니고 뭐예요?"
"파하하하하핡, 사장님 개웃겨 진짜..."
"?왜요...?
그래, 영업할 때 사과머리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는가. 그 사과머리에 미친듯이 처 웃은건 비단 손님들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저지른 과오가 있기 때문에 웃음을 억누른다 하여도 권현빈을 비롯한 모든 알바생들은 벽을 치며 웃음을 흔들기 바빴다. 딱 하나 김상균만 겁나 진지해져서 저들이 웃음을 분출하는 저의를 모를 뿐이다. 생각해보라. 와이셔츠에 유니폼. 그리고 그 위에 딸기 머리끈으로 사과머리를 동그랗게 묶은 김상균을! 무슨 일본 에도시대 무사 올림머리처럼 깔끔히 묶은 머리도 아니고 저게 뭐냔 말이다. 처음이야 웃겼지만 진지하게 영업을 하는 김상균을 보고 이러다 그의 추종자들이 발길을 끊는 것은 아닐까 괜스레 걱정을 했다. 그것은 알바생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김상균을 만류하기로 하였다.
"사장님, 제에발 그 사과머리? 갖다 버립시다."
김용국에겐 수많은 종류의 무표정이 있다. 일하기 싫을 때의 무표정. 화났을 때 무표정. 그리고 지금 꺼내는 표정은 걱정과 간절의 종류이다.
"왜요? 선물 받은건데...선물 받은 건 써야죠."
그렇지. 모름지기 선물을 받았을 땐 선물을 사용하는 것이 선물을 한 사람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저건 아니다. 이제와서 사장님, 그 딸기 머리끈 선물이라고 한 거 존나 농담이니까 제발 그거 쓰레기통에 버립시다 라고 말 하기가 힘들다. 그 선물을 받았을 때 김상균의 감동한 표정이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양심에서 돋아난 가시가 심장을 쿡쿡 찌른다. 아, 물론 귀엽긴 하다. 잘생긴 남자가 사과머리해도 귀여운데 내 남친이 사과머리를 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저 머리를 하고 히죽히죽 웃는 김상균을 보고 웃는 손님들의 꼴을 난 볼 수 없었다. 종국엔 김용국이 내게 다가와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을 알려준다.
"똥개, 저거 사장님 안 볼때 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김상균 딸기 머리끈 없애기 프로젝트]
두둥...
***
역시 이 일엔 다리가 길고 행동이 재빠른 권현빈이 적임자다. 우리는 손님이 없어 한적할 틈을 타 권현빈을 출동시키기로 하였다. 대신 나와 김용국은 서랍 안에 숨어 김상균이 어떻게 나오나 동태를 살피기로 하고. 잠행은 실시되었다. 가라 권현빈! 밋밋한 토끼! 넌 토끼니까 할 수 있어!
김상균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답게 카페에 출근하면 하는 일의 순서란 게 있다. 카페 문을 열면 일단 머리끈을 묶지 않은 그냥 평소 김상균의 상태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다시 한 번 머리상태와 제 미모를 체크하고 유니폼을 입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노리기로 한다. 현빈이는 김상균의 크로스백까지 엉금엉금 기어가서 딸기 머리끈을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 뒤에 숨기고 일어나는데,
"뭐하세요, 권현빈 씨?"
"히이이이잌!"
나와 김용국은 탄식하고 권현빈은 질겁하여 들고 있던 머리끈을 떨어 뜨린다. 딸기 머리끈이 아련하게 방바닥을 뒹굴었다. 눈으로 딸기 머리끈을 쫓던 김상균은 그것을 다시 주워들었다.
"아, 머리끈에 먼지 묻었다. 털어야겠네..."
시발, 실패다.
***
말했던가. 김상균은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다. 김상균은 무려 중딩때까지 산타가 선물을 갖다주는 줄 알고 크리스 마스 날을 기대했다고 하니. 우리는 그런 김상균의 특징을 약점으로 삼아 계획을 세웠다. 권현빈 보내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후, 우리는 다시 김상균의 시선을 끌기로 했다. 뭐, 너무 고전적이긴 하지만 순진한 김상균한텐 잘 통하는 방법이다.
"사장님, 저기 창문 밖에 코끼리 지나가욬!!"
"어디요?"
김상균의 고개가 돌아간다. 다시 생각해도 존나 웃겼다. 무슨 길거리 한복판에 코끼리란 말인가. 그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속아줄까 하면서도 김상균의 고개가 돌아가는 건 또 뭐고. 아무튼 우리는 안심하며 가슴을 쓸었다. 그 틈에 권현빈이 재빠르게 머리끈을 집어 제 뒤로 숨긴 뒤 게 걸음으로 주방쪽을 향해 걸어갔다. 자신이 농담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허탈하게 돌아가는 고개도 권현빈을 의심하진 못했다. 머리끈을 숨기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니까. 결국 주방에 도착한 권현빈은 파란색 쓰레기통에 그것을 깊숙히 처박았다. 누구도 찾지 못하게.
"어? 왜 머리끈이 없지?"
흠칫. 권현빈은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면서 괜히 박수를 짝짝 치고 팔을 걷으며 체조를 했다. 김상균을 속이기 위한 갈무리도 확실해야만 했으니. 권현빈은 곧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김상균에게 한 마디 미끼를 던졌다.
"아, 사장님 그거 혹시 집에 두고 오신 거 아니에요?"
"아 그런가? 그런가보다..."
그 날, 김상균은 별 말 없이 정상적인 머리로 서빙을 진행했고 오랜만에 회귀한 스타일을 보고 여 손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저기 번호좀 주세요!"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있어서요."
참 오랜만에 듣는다. 저 김상균 철벽... 이제 저 거짓말이 나로 인해 진짜가 될 줄이야. 나는 김상균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철벽에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다가올 풍랑을 차마 예상하지 못하고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상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대한 마스카라와 피부 화장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뭐, 여행 때 내 생얼까지 본 마당에 김상균은 전혀 내 외관에 신경쓰지 않는단걸 알지만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는 해야했기 때문에 거울 앞에서 분주해졌다. 그 때, 휴대폰이 몸을 흔들며 저를 보아달라 했고 나는 자연스레 폰을 확인하며 전화를 받았다. 김용국이었다.
"야, 똥개. 사장님 머리끈 찾으신다 너 몰래..."
"뭐어어어?"
"나 들어가질 못하겠어 어떡하냐...안쓰러워서."
***
나는 부랴부랴 화장을 마치고 카페 앞으로 갔다. 카페 안은 난리가 났다. 쿠션은 뒤집어져 제 속살을 드러냈으며, 의자는 넘어졌고 화분은 거의 다 넘어져 있었다. 여차 쓰레기통까지 뒤졌는지 봉투는 다 풀어져 있었다. 누가 보면 부채 갚으라고 조직이 와서 한 바탕 뒤집어 놓은 줄 알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알바생들이 놀라 카페 문을 열어 김상균을 말렸다. 그는 얼마나 카페를 진탕 뒤졌는지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색색, 몰아쉬는 숨은 덤이다. 그 모습을 보니 순진한 김상균한테 괜히 그런 거짓말을 했나 싶기도 하고 겨우 머리끈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김상균이 고마워졌다. 김상균은 갑자기 들어온 카페 직원들에게 놀라는 것도 잠시, 확고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꿈틀, 단정함을 주장하던 눈썹이 흐트러진다.
"오늘 머리끈 찾는 것 좀 도와줘요."
"네?"
"전부 원래 시급으로 쳐드리겠습니다."
김용국과 권현빈을 포함한 알바생들의 입이 질겁하여 벌어진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나는 카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김상균과 눈을 맞추었다. 갑자기 들어온 나에 놀라 김상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출근 시간 아닌데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사장니임..."
"아, 미안해요...내가 머리끈 잃어버려서."
김상균은 제 땀이 나는 머리칼을 한 번 두상 뒤로 싹 쓸어 올리며 미안함을 표했다. 그리곤 무슨 죽을 죄를 진 사람처럼 고개가 아래로 수그러졌다. 나는 어쩐지 찡한 마음에 울컥했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 내가 줬단 것에 의미를 두는 남자가 더더욱 소중해진다. 나는 김상균을 달래기 위해 팔을 잡고 말했다.
"사장님, 겨우 머리끈 하나잖아요."
"그래도."
"...."
"네가 처음 준 거잖아."
말을 하는 표정이 진중하고 무겁다. 그 얼굴에 나는 겨우 라고 말한 내 말을 후회했다. 나는 결국 더 좋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머리끈은 선물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나서야 김상균의 폭주를 제지할 수 있었다. 김용국과 권현빈은 진짜 요란하다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나와 김상균은 행복했다. 나는 이 계기로 김상균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남자와의 미래도를 상상한다면 정말 애처가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김상균 귀여워...나 또 코피 났자나..
이것말고도 사랑꾼 김상균의 귀여움을 느낄 수 있는 일화는 수 십, 수 백개가 넘지만 하나만 더 말하도록 하겠다.
***
"헐, 오빠, 그래서요?"
"아, 그래서 내가 할머니한테 안된다고 했는데..."
"파하, 아 진짜 웃겨요 오빠!"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현빈이를 현빈이라 부르고, 김용국은 나보다 한 살 오빠였기 때문에 오빠란 호칭을 썼다. 김상균은 사장과 직원이라는 고하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님- 이라는 극존칭을 붙였고, 그 역시 카페에선 나에게 존칭을 썼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보통 일을 하다 한가할 땐 김상균은 카운터를 지켰고 나는 김용국, 권현빈과 제일 친했기 때문에 셋이서 자주 주방에 앉아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셋이서만 주방에 앉아 오순도순 놀고 있었고. 그 때 장막을 걷고 김상균이 들어와 우리 셋 노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봤다. 그냥, 말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낄 생각은 안하고.
"...."
"사장님, 뭐하세요?"
"아닙니다."
"아, 용국오빠. 빨리 아까 그 얘기 다시 해줘요!"
김상균의 표정이 심상치 않지만 나는 조또 신경쓰지 않았다. 일단 내 앞의 김용국 이야기가 너무 웃겼으므로. 눈치 빠른 김용국은 나에게 다시 이야기를 뱉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했지만 나는 권현빈 다음으로 눈치가 없었다. 계속 김용국의 어깨를 흔들면서 심심한 나와 놀아달라고 애마냥 보챘다. 결국 김상균은 나와 그런 김용국의 사이를 마뜩잖은 표정으로 바라보다 다시 카운터로 나갔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
김상균이 대답이 없다. 왜지. 오늘은 또 뭐가 거슬려서 나에게 대답이 없는 걸까. 설마 이번에도 김용국이랑 좀 놀았다고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 이제껏 잘 냅두다가 갑자기 왜?
"용국이 오빠랑 놀아서 그래요, 사장님?"
"아, 그 놈의 사장!..."
"네?"
"아닙니다."
김상균은 구겼던 얼굴을 다시 펴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웬 사장? 갑자기 왜? 분명히 사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김용국이 나와 김상균의 사랑스러운 다툼을 듣고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김상균이 손님을 받을 때 나를 화장실 앞으로 끌었다.
"야 똥개. 사장님 지금 사장님 소리 듣기 싫은가보다."
"아뉘이...사장님을 사장님이라고 하지이..."
"너 밖에 나가서도 사장님이라고 하냐 설마?"
그랬다. 그러고보니 나는 한 번도 김상균에게 오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김상균이 좀 좀스럽고 유별나다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좀 억울할 만하다 싶었다. 나와 김상균의 나이 차이는 두 살. 김상균은 이제 막 20대 중반의 시작점에서 선 젊은이에 불과했다. 충분히 오빠 소리를 들어도 될 나이였으며, 특히 연인관계에서 사장님이란 호칭은 좀 에바쎄바이긴 했다. 게다가 김용국에겐 실컷 오빠오빠 하면서도 여지껏 한 번도 김상균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그 서운함이 갑절은 되었을 것이다. 김용국의 질문에 할 말 없는 고개를 조아리자, 팔짱을 끼고 있던 그가 기다란 손가락을 이마에 튕겼다. 아! 딱밤을 날리는 김용국에게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진짜로 한 번은 김상균에게 오빠라고 해야 하나...나는 다시 카운터로 나가 계산하고 있는 김상균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말하자, 말하자 난 할 수 있어.
"고마워요. 할 말, 있어요?"
"아, 저 오...
"네?"
"오..."
"할 말 없으면 저 디저트 가지러 가야 돼서..."
"오이 먹고 싶어요."
"아아..."
이것은 김상균의 탄식 소리가 아닌 김용국과 권현빈이 나를 질책하는 소리다. 김상균은 팔짱을 끼고 0.4초 저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집에서 오이 반찬 해 드릴게요...하고 허탈하게 말했다. 시발 거기서 갑자기 오이가 왜 나오냔 말이다. 나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권현빈이 나를 잡아 끌고 화장실 앞에 세우더니 잔소리 폭격을 날렸다. 네 남친한테 너무한다는 둥, 설마 결혼하고 나서도 사장님 소리 할 거냐는 둥. 아니 뭐 권현빈 네가 결혼시켜 주니...? 나도 입이 안 도와주는데 어떡하냔 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결연하게 가슴을 쓰다듬고 다짐한다. 여주야, 할 수 있어. 오빠 소리 다 하잖아? 김용국한테도 하고, 우리 엄마 혈육한테도 하고 사촌오빠들한테도 하고! 밤 무렵이 되서야 나는 유니폼을 걸고 정산을 확인하는 김상균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낮추어 김상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
"오이 반찬 나중에 해 드릴게요."
김상균이 포스기계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한다.
"오오오..."
"?"
"오, 오빠! 저 퇴근해도 돼요?"
헐 말했다 미친. 그 말에 기계처럼 돌아가던 김상균의 움직임이 잠깐 멈칫했다. 만 원짜리 한장이 팔랑팔랑 땅바닥으로 제 몸을 날렸다. 그 말을 뗀 지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김상균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뭐야, 왜 대답이 없어. 돈을 세던 김상균이 다시 돈을 넣고 카운터에 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작게 한 숨을 쉬었다. 김용국과 권현빈이 퇴근을 하다가 그런 김상균을 보고 야유의 환호성을 날렸다.
권현빈(22세)/깐족 대마왕,밋토
"사장님!! 둘이 잘 어울리네요. 캬하하하핰!!"
김용국(23세)/프로 팩폭러
"사장님. 진심 얼굴 개빨개요."
김상균은 한 손으로 열이 오른 자기 얼굴을 쓸다가 다시 돈을 잘 정리해 기계에 집어 넣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회사에서 오빠란 말 쓰지마."
"....."
"심장 떨려서 방해되니까."
**
김상균은 유니폼을 걸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이 시간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일단 내가 시간대 중 밤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있고, 일단 카페의 무뢰배들인김용국 권현빈이 없어져서 좋다. 김상균은 요리를 못하는 나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요리를 알려 주고 있다. 유니폼을 다 벗은 김상균은 흰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원래 우리 카페는 개인 카페이기 때문에 착장이 자유롭지만 내가 와이셔츠에 환장한단 사실을 알고는 항상 저 옷을 입었다. 주방에만 불을 키자, 아무도 없는 적요함 때문에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창 밖을 내려다보자 형형한 네온사인들이 춤을 추며 난리였고 거리의 연인들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혹은 몰래몰래 길거리 뽀뽀를 하거나.
요리를 괜히 가르쳐 달라고 했나보다. 이런 날에는 김상균과 밤 데이트를 하며 팔짱을 끼고 싶었는데. 그러고보니 김상균은 나에게 뽀뽀조차 잘 하지 않는다. 저번에 첫 데이트 할 때 딱 한 번 입뽀뽀를 하고는 거의 손잡기가 대부분이었다. 서운했지만 혹시 스킨십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가 하고 넘어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요..그냥 창 밖의 커플들 부러워서요..."
"왜, 우리도 커플이잖아."
"사장님."
"응."
"사장님 혹시 저 별로 안 좋아해요?"
김상균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려보기로 했다. 사랑을 의심하는 것만큼 초기 커플들한테 해악인 건 없지만 내게 왜 스킨십을 잘 안하는지 의문이다. 좀 알아내야겠다. 그 말을 들은 김상균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젓가락을 쥔 손이 올라갔다. 이제 시선이 올라간다. 올라간 시선의 검은 눈동자가 그게 무슨 소리냐 캐묻는 것 같았다. 안다. 나는 김상균이 나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것을. 그런데 좋아하는데! 왜 스킨십을 잘 안하냐고요...약간의 서운함을 담은 어투로 그에게 툴툴대본다.
"사장님 저한테 뽀뽀 잘 안 하잖아요."
"뭐어?"
김상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날 안 별로 안 좋아하는게 틀림없어."
찔렸던지, 아니면 그 억울한 입장을 표명하고자 고개를 올렸던지. 나를 뚫어질 듯이 시선을 맞추는 김상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이윽고 한손으로 머리를 털며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김상균은 곧 들고 있던 반죽기를 내려 놓으며 반대편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또각또각- 검은 구둣소리가 선연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그가 내 머리칼에 손을 넣어 쓰다듬다가 한 손으론 벽을 잡고 한 손으론 내 볼을 잡는다.
"네가 싫어할까봐 안 했는데."
"네에?"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 허락 안 맡아."
"에? 무슨..."
"눈 감아."
대답을 할 틈도 없이 입술이 급하게 부닥쳐 온다. 놀란 신경이 저절로 움찔하여 김상균의 하얀 셔츠를 동아줄마냥 꽉 그러쥐었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아버렸다. 땡그랑- 젓가락이 제 몸을 날리는 소리가 적요했던 공간에 무법자처럼 침입한다. 김상균의 혀가 내 신경을 옭아맨다. 그는 날 사랑스럽단 듯이, 아니면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듯이 내 치열을 훑었다. 그 강한 텐션에 나는 나도 모르게 점점 바닥에 자석처럼 끌리듯이 자세가 내려갔고, 결국 김상균과 주저 앉았다. 중력이 크게 나를 누른다. 나를 통제하던 어금니를 혀로 물던 김상균의 고개가 섹시하게 옆으로 돌아간다. 나도 그 무언의 고갯짓에 응답하듯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이윽고 나를 온전하게 가지고 싶어하는 격렬한 몸부림 때문에 나와 그의 얼굴과 어꺠가 자꾸 움직였다. 열이 오른다는 게 이런건가. 이따금 잔뜩 오른 열에 김상균이 입을 조금 떼어 하- 하고 숨을 뱉었다. 위기를 느낀 발가락이 반사적으로 오그라들었고 심장은 열을 감당하기 위해 피를 거꾸로 올렸다. 완전하게 밀착된 몸이 김상균의 부드러운 얼굴짓 하나에 흔들린다. 입술이 틀어지고, 손의 위치가 김상균의 팔 상부쪽에서 팔의 중심부로 옮겨진다. 너무 떨려서 심장이 아프다는 게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하아."
김상균이 섹시하게 급한 숨을 토했다. 호흡의 반동에 어깨가 잘게 떨린다.
"증명 됐지?"
"네..."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열 때문에 얼굴이 뜨겁다. 김상균도 약간은 붉어진 얼굴로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더니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무릎을 꿇은 김상균의 바지 한 면이 그 격렬함을 증명하듯 밀가루 반죽으로 덜룩져 있었다. 김상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치겠네 진짜..."
"...."
"너 너무 좋아."
***
차로 데려다 주겠단다. 나는 아까 그 심한 입술 운동(?)의 여파 때문에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건 김상균도 마찬가지였던지 계속해서 헛기침을 공중으로 뱉었다. 결국 부끄러움 때문에 빨개진 얼굴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는 세수를 하러 갔다. 아니, 김상균 인간적으로 너무 섹시하다. 섹시하던가, 귀엽던가. 아니면 오빠미 폭발하던가, 애기미 폭발하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하란 말이다. 심장에 해로우니까! 오늘도 나는 김상균의 갭모에에 치여 코피를 터뜨리면서 자동차에 올라탔다. 김상균은 계속 빨개진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사장님, 왜 제 얼굴을 못 봐요."
"...부끄러워서. 좀 있다 일어날게."
평정심을 되찾은 김상균은 이윽고 차에 열쇠를 걸었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지 계속 손으로 작게 부채질을 했다. 항상 재잘재잘 떠들던 김상균이 조용하니 내가 더 숨막힐 것 같았다. 뭔가 조치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김상균에게 산책을 제안한다.
"사장님, 바람 좀 쐬어요."
"그럼 바다갈까?"
결국 가까운 바다로 행로를 돌린다. 김상균과 나는 아무 말 없이 내려 바다 쪽으로 갔다. 밤이라 그런지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이 한적했다. 밀물이 파도에 제 머릴 부딪혀 철썩 거린다. 김상균은 그제야 좀 진정이 되는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그리고 나를 보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복해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싶고, 현실이라면 영원했으면 좋겠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김상균을 보고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보잘것 없고 못생겼다 생각하지 않는다. 김상균은 말한다. 너는 항상 예쁘고, 항상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노라고. 그리고 나를 빼더라도 모두에게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그 말을 뼈에 깊게 새긴다. 나는 저 눈빛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도 이제는 알고 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김상균에게 말한다.
"사장님, 사랑해요."
김상균이 웃는다. 당연한 말에는 당연하게 화답한다.
"나도."
***
별거 없는 후기 : 보잘것 없지만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ㅡㅠ 저 완결 내본 적 별로 없는데 어떻게 내긴 냈네요...
그동안 독방에 누가 추천해주셨는지 모르지만 ㅠㅠㅠ 부족한 글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신 독자님들과 댓글 달아주신 여러분들 감사드려요!!
그리고 저 신알신 100명 넘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동 ㅠㅠㅠㅠㅠ완결 때 세 자리를 볼 줄이야ㅠㅠㅠㅠ
이 글은 보다시피 방을 잘 안치운다는 점, 켄타에게 하던 말투, 게임 좋아하는 것 등 평소 상균이 일화에서 따온 게 많아요...가끔 댓글로 상균이 매력 알아봐주셨음 좋겠어요ㅠㅠㅠㅠ하고 울었는데 네. 정말 진짜로 상균이 얼굴 매력 알아봐 달라고 쓴 글...★ 한 분이라도 제 글 읽고 상균이의 매력을 느끼셨다면 저는 행벅합니다ㅠㅠㅠ혹 입덕이 아니더라도 더 코어해지셨다면 저는 코피나게 좋습니다..
그래서 움짤 선택 맨날 신중을 가합니다...네...김상균 얼굴 영업하려구요..
혹시 타팬인데 글잡 추천해주세요 해서 제 글 추천해주시면 저는 워아이니..♥ 혹시 알아요, 김상균 얼굴에 빠질지ㅠㅠㅠㅠㅠㅠㅠ
메일링은 하지 않습니다. 영업용 글잡이기 때문에 이 글은 반드시 상균이 짤과 같이 보아야 해요...★ 솔직히 김상균 짤이 이 글의 98프로 살렸읍니다...혹시 파붙 일어나면 그 때 댓글로만 살짝 알려주세요ㅠㅠㅠ 짤 갈아드리겠읍니다...
그리고 암호닉 분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아무 혜택 없는데 댓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전작에서도 언급한 것 같은데 저 암호닉 신청하셔도 아무 혜택 없어요...죄송함댜ㅠㅡㅠ 걍 제가 친근하게 불러드리고 끝...ㅎ...그래도 귀찮으셨을 텐데 꼬박꼬박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국이랑 현빈이한테 치이신분들은 뭐죸(?) 전혀 의도하지 않았읍니다.. 이 분들도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광대 퍽발.. 사실 제가 이 글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 둘은 집사즈인데 뭔지 모르게 귀여워서 애정이 생깁니다...가끔씩 애정씬 보다 더 혼 갈아 넣을때도 있고...
동한이는 개인적으로 서브로 생각하진 않았는데 어쩌다 서브로 넣게 되었네요!! 동한이 입장에서 감정씬을 많이 썼기 때문에 저 역시 글에서만큼은 동한이가 더 좋지만 ㅠㅠㅠ원래 첫사랑 안 이루어지는 모먼트 제가 겁나 좋아해서요...네...ㅎㅎㅎ
마지막으로 목소리 출연만 했지만 켄타 애정하구ㅠㅠㅠㅠㅠ태현이도 짜진짜진 애정하구ㅠㅠㅠㅠㅠ아니 진짜 둘 애정하는데 제가 글에 넣을 생각을 안 했더라고요...
당분간 차기작은 없으며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젭제 연장 확정나는 순간 단편이든 뭐든 들고와 볼게요...
그러니까 연장해(단호)
감사드려요! 외전에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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