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동화
w. 스핑크
클로이는 운이 좋은 아이였다. 지금의 삶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삶이었지만 자신을 차가운 바닥에 버리고 떠난 부모 곁에 지내는 것보다는 지금의 삶이 훨씬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클로이의 친부모는 그 추운 겨울, 이제 막 젖은 뗀 어린 아이를 고아원 문밖에 두고 간 비정한 부모였다. 그대로 두었다면 죽었을 클로이는 밖으로 나가려던 고아원 수녀님의 발견으로 살 수 있게 되었고, 얼마 후 한 여인의 눈에 띄여 입양을 하게 되었다. 고아원 사람들은 하나같이 클로이를 보며 말했다. 정말 운이 좋은 아이로구나! …그런 걸까? 치마는 이리저리 갈기 찢어진 사이로 보이는 상처와 멍, 그녀의 발은 피투성이였지만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클로이는 생각에 빠졌다. 아니, 절대로 운이 좋은 게 아니다. 운이 좋았다면 그때 그 차가운 길가에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겠지. 지난 날, 잠시나마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클로이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결국 다 거짓이었임을, 놀아났음을.
…신은 자신을 버린 게 분명했다.
**
클로이는 그녀를 입양했던 수잔 부인을 따라 영국으로 떠났다. 클로이는 자신이 태어난 곳, 태어난 날짜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의 생일은 그녀가 입양되었던 날짜였고, 자신을 동양인이라며 무시하는 또래 아이들의 말에 나는 동양권에서 태어난 아이구나, 정도만 추리할 수 있었다. 물론 수잔 부인에게 물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테지만 클로이는 부인에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혹여 수잔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자신에게 실망을 할까 봐, 이 행복이 깨질까 봐 클로이는 두려웠던 것이다.
"클로이, 내 사랑스런 딸. 열아홉 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클로이는 어느덧 열아홉 살, 소녀와 여인 그 사이의 경계에 섰다. 수잔 부인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얼른 소원을 빌고 촛불을 불어 달라며 아이같이 재촉하였다. 클로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잔잔하게 웃으며 눈을 감고 기도하였다.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길, 그녀는 속으로 작게 속삭이며 천천히 눈을 떴다. 후, 클로이의 입김에 하나씩 꺼지는 불꽃을 보며 그녀를 따라 수잔 부인도 웃었다. 그녀와는 다른 의미로.
그날 밤이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클로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라디오에서는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기록적인 한파라며 외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였다. 모두 잠들었을 새벽, 갈증을 느낀 클로이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조용한 집안에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 사이로 제 어머니와 낯선 음성이 들렸다. 소리의 출처는 부엌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클로이는 도둑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걸었다. 한 번도 집에 누군가 찾아온 적이 없었다. 있다 하여도 이 늦은 새벽, 이 추운 바람을 뚫고 찾아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머리에서는 위험함을 느끼고 다가가지 말것을 경고했지만,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입을 막고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다가간 클로이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게 열린 문을 통해 제 어머니와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를 보았다.
"아이는 이제 열아홉이에요. 그쪽들 조건에 맞게 키우느라 애먹었잖아. 꼬맹이 하나 때문에 좋아하는 담배도 끊고 클럽도 끊고, 금단 현상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고생한 만큼 사례비는 넉넉히 주도록 하지."
"흥,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아이는 자기 방에 곤히 잠들고 있을 거예요. 이 문을 나가면 오른쪽에 문 하나가 있는데 그곳이 아이의 방이에요. 지금 자신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는지 모르고 세상 편하게 잠들어 있겠죠. 불쌍하기도 하여라."
불쌍한 클로이. 멍청한 클로이.
깔깔깔깔! 집이 떠나가듯 웃는 여인의 모습은 클로이가 알던 수잔 부인이 아니었다. 부인의 탈을 쓴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말도 안 돼. 가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지만 친자식이 아닌 나를 정성스럽게 돌보셨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우선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애써 무시하고 뒤를 돌아 한 발짝 내밀 무렵, 세상 떠나가듯 웃던 여인의 웃음 소리가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이래서 말 많은 여자는 딱 질색이라니까."
"……."
"쥐새끼가 다 알아채고 도망가려고 하잖아."
"……!!!"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문틈 사이로 정확하게 자신을 향해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 그녀의 눈동자는 정처없이 흔들렸다. 얼른 도망가, 바람이 그렇게 말하듯 아까보다 더 강하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달리고 또 달렸다. 집밖의 나오기 전 그 작은 틈 사이로 보이던 남자는 모자에 가려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이빨을 훤히 보일 정도로 웃고 있었다. 만약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의 모습이지 않을까, 발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소름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문을 열고 나갔다. 바람은 살을 뚫고 나갈 듯 거세게 클로이를 덮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악마에게 잡히는 순간 죽을 것이다. 그의 왼손에 들려있는 총 끝에 끈적거리는 액체가 톡하고 떨어졌다. 어둠에 싸여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지 못했지만, 그게 뭔지는 짐작이 간다.
한 때 내 친모처럼 여기며 사랑했던 수잔 부인의….
도대체 이 기분은 뭘까. 클로이는 뛰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넘어져 몸에는 상처와 멍투성이로 가득찼다. 발은 찢어져 피투성이였지만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몸은 어느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입술은 제멋대로 달달거렸다. 이렇게 삶이 절실했나. 도대체 왜? 뛰는 와중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클로이는 살고 싶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모두 잠들었을 새벽, 그녀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묻혔다. 그때, 휘파람 소리와 함께 골목 사이에서 나오는 남자의 모습에 뛰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려 그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언제 저만큼 앞서 있었던 걸까.
남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클로이의 눈은 흐려졌고,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어느새 가까이 온 남자는 가만히 저를 내려다 보며 총을 들어 정확히 제 머리를 겨누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찾았다, 쥐새끼."
그 목소리와 함께 클로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클로이가 보육원에 버려졌던 그날처럼 차가운 바람 사이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의 첫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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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안 나온 이유는 분량 조절의 실패로 인해 다음 화에 나옵니다... 갑자기 삘 받아서 쓴 글인데 읽어주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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