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밖. 폭설이다. 깜깜한 밤인데도 눈이 많이 오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용히 차가운 창문에 손을 얹으니 열이 올라 예민해진 몸이 아파온다. 어지러운 머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누군가는 예쁘다고 할 것이다. 눈이 참 예쁘다고, 참 많이도 온다고.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눈은 어째서인지 음울하게만 보여온다. 내게 내려오는 것만 같아 몸에 한기가 돌았다.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는 표지훈. 멍한 얼굴로 그런 표지훈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이 날리는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추워. 입가에 뒤틀린 미소가 맺힌다.
"난 아직도 못 잊었어."
뭘? 고개를 틀어 날 보는 표지훈은 틀림없이 그렇게 묻고 있다. 한 번도 바뀌지 않는 얼굴. 항상 똑같은 네 얼굴. 그 눈을 바라보며 난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다 잊었지. 네가 잊은 것들을 난 아직도 기억해. 웃기지 않아?"
표지훈은 말이 없다. 난 여전히 입가에 자조하는 듯한 미소를 매단 채 창문에서 손을 뗐다. 냉기에 얼어버린 손을 쥐었다 펴자 다시 온기가 퍼져가는 느낌이 들어온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책임한 새끼."
표지훈은 늘 그래왔듯 오늘도 답이 없다. 항상 중요한 얘기를 할 때면 뒤로 내빼고 모른 척 하던 녀석의 자세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죽어도 영원히 그러겠지. 그 생각에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하하하. 하하하하. 이마를 짚고 웃는 날 보는 표지훈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는 표지훈에게로 비웃음을 보였다. 표지훈, 넌 참 무책임해. 너 혼자 나한테 다 떠맡기고 잊으면, 나 혼자 다 짊어지고 가야 되잖아. 나 혼자 우리라는 짐을. 응?
"좀 억울하다."
뒤로 터덜터덜. 힘없이 물러섰다.
"덕분에 난 이렇게 힘든데. 근데 넌 참. 아무렇지도 않네."
날 보는 표지훈의 눈동자가 깊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하다가, 결국 쓰러진 건 나다. 갑자기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음과 함께 풀리는 다리에 '흐'하는 소리를 내며 옆에 놓인 의자를 덥썩 붙잡고 주저앉았다. 맨바닥이 참 차갑다. 바닥에 부딪힌 무릎이 얼얼하지만 둔하게만 느껴진다. 열기운이 섞여 나오는 울음에 눈 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어지러워, 어지러워.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순간 분간이 가지 않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장의 조명을 바라보며 바닥을 짚었다. 표지훈이 놀란 듯 내게 팔을 내밀지만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손대지 마! 뭔가를 쳐내려는 듯 올라간 팔은 허공을 갈랐다.
"밖에, 눈 오잖아."
날 내려다보고 있을 표지훈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다. 그저 서럽게 울음을 토해낼 뿐. 손이 마룻바닥을 거칠게 긁어냈다. 표지훈이 한 쪽 무릎을 꿇고 내게 손을 내민다.
"밖에 눈 오잖아, 눈. 눈이 내려오잖아."
표지훈이 손을 뻗는다. 내 볼을 만진다. 왜? 왜? 놈의 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눈물이 턱 끝까지 내려와 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제발, 제발 사라져 줘."
표지훈이 날 안아온다. 놔! 놓으라고! 제발 가란 말이야. 제발 가. 더이상 나한테 이러지 마...내가 널 잊을 수 있게 틈이라도 달란 말이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가슴팍을 치는데도 녀석은 반응이 없다. 그저, 우직하게 나를 더 세게 안을 뿐이다.
"제, 발. 흐. 표지훈. 제발 가 줘...이제 좀 꺼져, 제발."
결국 나는 표지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표지훈은 다정하게 내 등을 토닥이고. 더이상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저 멀리 서랍 위에 올려진 우리 둘의 사진은 눈물 속에 색이 되어 번져가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딜까. 눈 앞이 뿌옇게 변해 아무것도 분간이 가질 않는다. 힘겹게 표지훈의 이름을 부르니 내 등을 토닥이던 손이 멈춘다. 꼭 왜?하고 묻는 듯한 다정한 손길에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계속해서 울음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집 바깥 어디선가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온다. 표지훈, 들려? 들었지? 들었잖아. 너도 알잖아. 자동차, 알잖아...표지훈을 확 밀쳐냈다. 그 날 전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망자 수는 총 4명. 그리고 그 네 명 중 한 명은, 아아.
"표지훈, 죽었으면 제발 가란 말야! 언제까지 나한테 이러려는 거야, 제발! 제발 나 좀, 어?"
속이 터진다. 뜨거운 열과 함께 터진다. 창 밖으로 보이는 눈은 마냥 차가운데, 내 몸은 타오르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뒤늦게 울음과 함께 앞을 더듬지만 아무도 없다. 날 끌어안고 있던 표지훈은 없다. 몸이 앞으로 쓰러지고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히며 울려왔다. 하지만, 하지만 난...바닥을 긁는 손의 손톱은 이미 끝이 다 상했다. 안 돼, 가지 마. 제발 아직은 가면 안 돼. 표지훈, 난, 난. 네가 이렇게 가면 난. 가라고 할 땐 언제고, 사라지자 조금씩 약해지던 눈물이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왔다. 휘날리는 눈발.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누워서 울부짖었다. 표지훈! 표지훈! 창 밖으론 그토록 보고 싶던 네가 내게 내려온다. 눈이 끝없이 내려온다.
마지막과 같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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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글을 쓸 때 이렇게 덧붙이는 말이 있으면 항상 더보기를 쓰곤 했는데
모티를 해보니 그게 참 누르기 귀찮네여...
어제 눈 오는 동안 쓴 글인데...딱히 뜻도 없는데...역시 글잡에 올릴만한 글은 아닌데...그래도 그냥 올릴래여 딱히 올리람ㄴ한 곳이 없으니까 흐헿 자급자족이 참 좋타
폰으로 쓴 거라 오타랑 띄어쓰기 안 된 부분 있을 수 있다거 한다
그러고보니 쓰는 글이 다 피코네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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