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홍차를 마시는 녀석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퍼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조용한 티타임이라.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어찌보면 신비롭게 느껴진다. 간간이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도 홍차를 홀짝였다. 따뜻한 홍차 향이 얼굴로 훅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우지호."
"응?"
"시간은 언제 다시 흘러?"
내 말에 우지호는 챙,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컵을 접시에 올렸다. 그리고 생긋 웃으며 답하기를, 네가 원하는 때에. 그래? 난 지금 시간이 흐르길 바라고 있는데 어째서 멈춰 있는 거야? 내 질문에 우지호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또다시 웃었다. 그렇게 웃기를 몇 번, 나는 이제 녀석이 웃을 때엔 다시 질문을 하는 것을 포기한다.
"왠지 알려줄까?"
어. 내 대답에 우지호가 활짝 웃으며 몸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얼굴. 흰 얼굴에서 반짝 빛나고 있는 검은 눈이 나를 향해 웃고 있다. 선선한 바람 속에 우지호가 활짝 웃는다.
"내가 있는 이상 시간은 흐르지 않거든."
"그래?"
내 무덤덤한 반응에 우지호는 조금 놀랐다는 듯 웃음을 지우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웃으며 의자에 앉는 녀석.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온 우리의 거리. 어쩌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우지호가 이 세계에 있는 이상, 시간은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녀석을 놓아줄 생각이 없으니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다시 태연하게 흰 손가락으로 컵의 손잡이를 잡는 우지호를 바라보다가 킥킥 웃음을 흘렸다.
"넌 언제 떠나."
"네가 원할 때에."
그래. 조금은 우습다. 내가 원하면 우지호도 떠나고, 시간도 흐른다. 하지만 둘 다 한 번에 일어날 순 없는 일이라...다시 원래대로 세상을 돌리려면 우지호를 포기해야하고, 우지호와 함께 있으려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버려야 하고. 하지만 나에게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고 물으면 답은 너무도 확실하다. 지금까지는 질질 끌어왔지만, 그건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지금은? 이제는 뭔가를 놓을 준비가 되어있다.
"우지호."
"응."
"이제 그만 여기를 떠나."
그 말에 우지호가 배싯 웃었다.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아이같은 웃음. 놈의 흰 손가락이 쥔 잔이 입가로 다가갔다가 떨어지고, 어느새 홍차가 들어있던 안은 바닥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입술을 한 번 핥아 정리한 우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흰 의자가 드르륵, 뒤로 끌리고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난 우지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티없이 맑은 하늘. 중간중간 지나가는 구름을 보는 우지호의 입에서 웃음이 사라질 생각을 않는다.
"표지훈."
'응."
"만약에 내가 평생 네 옆에 남아있겠다고 하면 넌 날 말릴 거야?"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고 우지호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 없었는데, 오히려 날 쥐고 노는 것은 우지호 쪽이었다. 우지호를 보내는 것도, 머무르게 하는 것도 모두 내게 달려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에서 위에 있는 것은 늘 우지호였다. 나를 내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던 우지호가 지금 내게 한 말을 난 잠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남아있고 싶어?"
그러자 또 웃는 우지호. 저 웃음에 난 항상 말문이 막히곤 했다. 더는 묻지 말라는 듯한 웃음. 나는 결국 그 웃음에 또 져주고야 말았다. 말없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지호에게로 다가갔다. 내 앞에 서 있는 우지호. 엇비슷한 키 덕분에 바로 내 앞에 있는 얼굴. 천천히 팔을 뻗어 우지호의 마른 어깨를 당겨 품에 안았다. 놈의 팔이 자연스레 내 어깨에 감기고, 나는 눈을 감았다. 표지훈, 날 잊지 말아줘. 비록 잠시 스쳐가는 바람같은 인연이었지만 날 잊진 마. 내 귓가에 나른하게 속삭여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아주 평범한 날.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고 그 때도 너는 세계 속을 헤메고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난 너와, 그로 인해 멈춘 시간. 너는 떠나려 했고 나는 그런 너를 붙잡았다. 너의 손목을 붙잡은 나를 보며 웃던 얼굴이 생생하다. 몸 속 깊은 곳까지 네가 각인되어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머물기 시작함으로써 비정상적이 된 세계. 그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쉬던 우리 둘. 이제 끝낼 때가 왔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시간이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우지호와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으니까. 내게서 천천히 떨어진 우지호의 얼굴에 퍼진 맑은 웃음. 놈의 몸과 함께 나까지 떠올랐다. 잠시 허공에서 헤메는 두 다리. 내게 팔을 뻗어 양 손을 꽉 잡은 우지호가 활짝 웃었다. 놈과 내 몸이 하늘로 올라가며, 우리가 앉아 있던 옥상도 멀어진다. 아무도 없는 거리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우지호가 찾아오고, 내가 녀석을 붙잡음으로써 멈춰버린 시간. 아무도 없는 세상. 이제 이런 것도 끝이다. 우지호가 사라지면 다시 사람들은 돌아올 것이고, 나도 예전의 일상으로 다시 젖어들어가겠지. 우지호가 눈을 감으며 내게 이마를 맞대온다.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걸린 채로.
"표지훈."
"응."
"날 평생 기억해줘."
우리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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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소리를 지껄이는건지도 모르겠고 이해도 안되고 쓰는 나도 멘붕이고 짧은데 독방에 올리긴 뭣하고 그렇다고 글잡에 올리기도 뭣하고 근데 패기돋게 필명을 달았으니까 올리고싶기도 하고 그니까 그냥 올리고...미치겠다 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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