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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ow 전체글ll조회 1952

 

 

 

내가 꿈꾸던 소녀

w. sorrow

 

 

 

 

감사합니다. 또오세요.

 

 

영혼도 감흥도 없이 고장난 기계마냥 내 입은 익숙하다 못해 진절머리 나는 인사말을 뱉었고, 마지막 꼬마 손님이 노란 바나나 우유를 들고 쫑쫑 문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피곤에 지친 한숨을 뱉었다. 해는 뜬지 오래. 곧있으면 오후 타임 알바생 여자애가 올 테다. 가끔 고의인지 실수인지 이,삼십분씩 교대 시간에 늦는 검정고시생 여자애가 제발 오늘만은 늦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우리 편의점 로고가 우스꽝스러우리만치 크게 박힌 조끼를 벗어 던졌다. 딸랑ㅡ. 문이 열렸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입구를 바라보니 다행히도 오늘은 교대가 제시간에 도착했다. 언제나 사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나이답지 않게 피곤에 찌들어 잔뜩 짜증난 저 표정과 함께. 이번에는 또 어떤 피시방에서 밤을 새다 온건지 옷에서 풍기는 찌든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저 그 뿐이다. 저 아이의 간밤 사정까진 내 알 바 아니다. 난 그저 이 감옥같은 편의점을 빠져 나가면 그만이다.

 

 

수고해.

 

 

형광등이 아닌 자연광에 잠시 어지럼증을 느껴 잠시 두 눈을 감은채 멀뚱히 서 있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몇 주간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감수하고서라도 얼마 안되는 시급을 조금이라도 올리고자 아등바등 했던 까닭은 모두 오늘 있을 일 때문이었다. 요새 미술계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대학 선배의 단독 개인 전시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참석하지 않으려면 피할수도 있었으나 굳이 가야겠다 마음 먹었던 이유는 선배의 전화가 한 몫했다. 대학생때도 그리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직접 친히 전화까지 하셔서 자랑과 나를 향한 무시, 동정, 조롱이 적절히 섞인 말을 내뱉었을때에도 나는 그저 반 병신마냥 묵묵히 네,네. 할 뿐이었다. 쐐기를 박은 선배의 마지막 한마디는, 응? 내 이번 전시회가 잘 되면 좋은 자리 마련해줄수도 있는거고 말이야…, 알량한 자존심을 이기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도 비대했다.

 

 

이곳 저곳에서 빌리고, 사정해서 정장은 어찌 저찌 제법 부끄럽진 않을 만큼 마련 했는데 문제는 신발이었다. 물론 비싼 신발을 사려거든 그동안 모은 알바비를 탈탈 털면 충분히 살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 분수에 넘치는 그 신발을, 이번 전시회가 끝나고 나면 어찌 처리할지가 갈등이었다. 고작 편의점 알바하는데 신고 다니기에도 우스울 일이었고, 언젠가 있을 찬란한 성공의 나날을 위해 잘 아껴두기에는 난 내 주제를 너무도 잘 알았다. 몇번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누구도 나따위의 신발에겐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화와 함께 포기하고 말았다.

 

 

 

 

* * *

 

 

 

 

어, 왔어?

 

 

조용히 갤러리만 구경하다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려던 계획은 무참히 깨어졌다. 갤러리 안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선배는 크게 나를 향한 반가움을 표출했고,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동 나를 향했다. 민망함에 어딘가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림들이 참 좋네요. 아아, 어찌 운이 좋아서 말이야. 나름 이른 나이에 개인 전시회라니. 분수에 넘치지. 낮게 하하 웃는 선배의 모습은 인정하기 싫을 만큼, 같은 남자로서 너무도 멋졌다. 수트에 시계, 구두, 와이셔츠… 아마 난 감히 상상도 못할 가격일테지. 대학 때부터 교수들의 칭찬, 여자 동기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저 넘자는 이제는 젊은 나이에 성공해, 명품으로 휘감은 저 남자가 되었다. 그의 뻔한 위선과 허세에 역겹게도 나는 약간은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너 실력있는거야, 내가 대학때부터 알고 있던거고. 미술이 많이 힘들지? 선배가 수트 안쪽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선배의 승리와 나의 패배에 정점을 찍는, 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최후였다. 입으로는 거절하면서도 속물스럽게도 내 눈은 봉투 속 액수를 추측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달 월세값은 될 테다.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됐어, 됐어. 대학 후배한테 이런것도 못할까. 좋은 신발이라도 좀 사고 그래.

 

 

거짓말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그 말을 들은 순간 난 그대로 딱 죽고만싶었다.

 

 

 

 

* * *

 

 

 

 

밀린 몇 달치 월세를 갚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안주거리와 술도 몇병 샀더니 알바비가 확연히 줄었다. 남은 한달을 버티기엔 빠듯한 돈이지만, 다음달에 있을 공모전에 참가비를 낸다면 그마저도 사라질테지. 제법 큰 공모전이니 수상이라도 하거든 상금이 꽤나 될 테지만, 물론, 당연히 수상하리란 장담도 없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니 아까 선배가 준 봉투가 잡힌다. 이것만, 이것만 있어도 최소한 참가비는 해결 될 테다. 하… 어둑한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내 뱉은 한숨에 입김이 뿌옇게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달빛조차 외면한 경사진 골목엔 드문 가로등 불만히 위태롭게 깜빡이는데, 짤랑거리며 술병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하고, 겨울 밤공기는 서럽도록 시리기만 하다.

 

작은 원룸에 돌아와 초라한 안주에 소주 몇병을 기울이고 나니 노곤히도 졸음이 쏟아진다. 으아아…! 하루종일 서있느라 뻐근한 몸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뉘이며 기지개를 편다. 술기운과 피곤함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내일부턴 다시 오후 타임으로 돌아간다. 수면욕과 싸우며 으스스한 텅빈 편의점을 지키던 나날은 오늘로 마지막일테니 적어도 나에겐 충분히 잘 수 있는 열 두시간 정도가 남아있다. 내일 선배에게 다시 돈을 돌려주리라 다짐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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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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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다음화 기대할게용 ^_^~~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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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다음 화는 언제 나오는 거죠.... 으앙 보고 싶은데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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