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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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이건만 사람들의 표정은 전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작년 10월 말, 유신 독재가 무너져 내리자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게 웃던 사람들은 그 해 12월 12일,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또다시 군사 반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거의 20년을 기다렸는데, 이번에도 군인이 정권을 잡도록 놔 둘 수는 없었다. 이 곳 저 곳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수는 그들의 수장 격이었다. 군인들도 지도자가 없으면 우왕좌왕 오합지졸인데, 민간인이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지지로 올라간 자리였다. 경수는 지인에게 부탁해 민주화에 대한 것들을 인쇄하여 주변 사람들의 손에 쥐여주기도 하였고, 강당을 빌려 피를 토할 것처럼 열정적인 연설도 했다.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경수였기에 아무도 그를 우습게 보지 못 했다.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우유부단하지 않고 정확히 판단을 내리는 결단력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 가끔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부드러움까지. 어느 한 구석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경수가 어째서인지 심각한 얼굴로 간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속속들이 들어오던 핵심 간부들은 딱딱하게 굳은 경수를 보고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임을 알아챘다.
"다 모인 건가?"
"응. 부른 사람은 다 왔어. 무슨 일… 터진 거야?"
"오늘 서울역 앞에서 시위 있었던 것은 다들 알고 있지? 10만여 명이 모였다더군."
경수의 말에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상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민간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목청껏 소리친 시위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조만간 큰 일이 하나 터질 거야. 잔잔한 목소리 밑에 긴장감이 깔려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갑고 매서운 정적 속에 마른침을 목으로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조용한 산골 같은 곳에 숨겨 놓는 것이 나을 거다. 매끄러운 문장에 어렴풋이 전운이 감돌았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더 큰 희생도 치뤄야 해.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할거야. 그러니 겁이 나는 사람을 빠져. 욕 하지 않을 거니까, 빠지고 싶은 사람은 지금 미리 빠지란 소리다. 앉아 있던 열 명의 사람들 중 너댓 명이 눈치를 살피고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절반 가량이 순식간에 없어지자 경수가 쓴 웃음을 입가에 빼어물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단지 허세를 부리고 싶어 이것에 참여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 나았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후에 어떤 식으로라도 걸림돌이 되니까.
"5월 18일. 정확히 3일 뒤야. 머지않아 전국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질거야. 18일, 휴교령이 떨어지면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모이자. 알겠지?"
"…그래. 몸 조심해라."
"너도."
1980년 5월 15일 밤 11시 37분. 그들은 모임을 약속하고 자리를 떴다.
───
"도경수 너, 그 민주화 뭐시기인가, 그만두면 안 되냐?"
경수는 소꿉친구의 말에 들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민주화 운동에 열성인 경수와는 정반대로, 소꿉친구는 그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게 그런 것을 왜 하느냐고 투덜대기까지 했다. 소꿉친구가 경수에게 이런 말을 한 것도 벌써 세 번째였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도 함께 하는 소꿉친구에게 경수는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연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경수는 저의 친구를 그 정도로 좋아했다. 요 근래 친구가 자꾸 경수를 피해 서로 소원해진 상태였는데, 난데없이 찾아와 같이 도시락을 먹자고 한 친구의 입에서 세 번째로 똑같은 말이 나오자 경수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백현아.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어. 그 중에서도…."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는 소리는 그만 해라. 지겹다. 어차피 네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할 텐데, 굳이 나서야 할 필요가 있냐?"
"…됐다. 뭘 더 말 하겠니. 내일 시위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밖으로 나오지 마라. 집에 비상식품 있지?"
경수에게 있어서 민주화란,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룩하고 싶은 것이었다. 경수는 지독히도 그것을 갈망했다. 질문에 대답은 않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경수에게 백현이 소리질렀다. 남은 기껏 걱정해주는데, 예의상 생각해 보겠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냐? 백현의 말에 경수는 젓가락을 다시 들어 콩자반을 집었다. 잘 집히지 않는 콩들에게 애꿎은 분풀이를 하는 경수를 보고는 백현이 벌떡 일어나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마음대로 해라, 도경수. 최루탄에 맞아 뒈지든, 개머리판에 맞아 뒈지든, 그것도 아니면 탱크에 깔려 오장육부가 다 찌부러져서 뒈지든 상관 안 한다. 개새끼. 마지막으로 낮게 욕을 읊조린 후 그대로 자리를 뜨는 친구의 뒷모습을 경수가 멍하니 응시했다. 일회용 도시락이 쓰레기통 안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나서야 백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생전 입에 대보지도 않은 담배가 땡겼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하얀 스티로폼 용기를 한 손에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백현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콩자반이 쓰레기통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손을 놓아 도시락을 떨어뜨린 경수가 뒤를 돌아 매점으로 향했다. 담배 아무거나 한 갑 주세요. 라이터도. 돈을 내고 담배 한 갑과 라이터 하나를 받아든 경수가 입에 담배 하나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매캐한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 전신에 퍼지는 것 같았다. 언제인가 맡았던 최루탄 내음보다 더 쓴 것 같다고 경수가 생각했다.
그 날 밤. 1980년 5월 17일 밤. 전두환과 신군부는 국무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단 8분만에 전국에 비상 계엄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고는 정치인과 운동권 학생, 재야의 민주 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또한 전국의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공수부대를 배치했다.
───
"전국에 비상 계엄령이래. 들었어?"
"응. 한밤중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려서 깜짝 놀랐다. 지금 다 잡아간대. 정치인, 운동권 학생, 가리지 않고 민주화를 떠들어 대면 무차별적으로 데려간다더라."
"백현아. 네 소꿉친구 도경수. 괜찮냐? 걔가 우리 학교 운동권 정점 아냐?"
"내가 그딴 새끼를 왜 신경써야 하는데. 닥치고 집에 가서 발이나 씻고 곱게 자라."
───
경수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던 백현은 껄끄러운 기분에 비상식량을 잔뜩 샀다. 초콜릿을 비롯한 조제식품들을 방 안 서랍장에 차곡차곡 쟁여 놓은 백현이 느닷없이 울려퍼지는 사이렌에 흠칫 놀라 귀를 기울였다. 계엄령. 비상 계엄령. 백현에게는 민주화 운동이 먼 나라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한숨을 내쉰 백현이 두 귀를 막고 잠자리에 누웠다. 휴교라고 하니, 계엄령이 풀릴 때까지 집에서 뒹굴 예쩡이었다. 그런데 도경수, 진짜 위험한 건 아니겠지. 괜시리 불안한 마음에 중얼거린 백현이 입으로 흥, 소리를 내었다. 그런 자식, 위험해도 싸. 이번에 호되게 당하면 다시는 민주화다 뭐다 설치고 다니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백현이 크게 하품했다. 계엄령이고 나발이고 지금 자신에게는 잠이 더 중요했다.
──────
역사물은 두 번째네요. 일제강점기 다음에는 민주화 운동.
여러분 역사물 쓰세요. 두 번 쓰세요. 쓰면서 공부도 됨. 저 이 글 쓰면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됨. 신남. 이제 이 부분 시험에 나와도 100점 맞을것 같음.ㅇㅇ
처음 쓰는 오백임. 쓰니까 재밌음. 원래 잡식러라 이것저것 안 가리고 다 파긴 하는데 그래도 처음 쓰는 커플링이라 좋음. 신선함.
학교에서 계속 이것만 씀. 어떤 징어가 소재 올려줘서 그 날 밤부터 시작해서 주르르르를르르ㅡ르르륵 이어서 씀.
집에 있던 역사 관련 책 다 꺼내놓고 하나하나 다 펼쳐가면서 씀. 우리집에 역사책이 많은 게 좋은 건 이번이 처음임.
오빠한테 부탁해서 민주화항쟁 관련 책좀 다 찾아달라 했더니 바닥부터 한 50cm는 올라왔음. 그거 다 읽으니까 30분 지남.
확실히 역사물 쓰는 건 조심스러워짐. 일단 나 자신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으면 안 되니까 그 시선 바로잡는 게 제일 힘듬.
여러분 화려한휴가 봄? 안봄? 안봤으면 보셈. 이번 봄방학때 보셈. 진짜 나 그거 보고 여운 쩔었음. ㅇㅇ 레알임 그건
원래 제목 화려한휴가 하려고 했는데 뭔가 내용이랑 잘 안 맞아서 관둠.
소재 준 징어 사랑함. 내가 많이 사랑함.
이거 하편까지 있음. 내일쯤에 끝날거임. 오늘 밤에 미친듯이 써야함. 응원해주면 감사ㅇㅇ
+친구징어가 레펠 팬북 샀다고 나한테 자랑함. 부러웠음. 난 레펠이랑 니니 둘다 놓쳤는데.
++핸드폰 사면 온통 다 엑소로 꾸밀 예정임. 케이스 주문제작부터 시작해서.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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