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은 크리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찬열은 들뜨거나 좋은일을 말할 때에 눈을 아래로 내리까는 버릇이 있었다. 크리스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있었다. 처음 영업이 끝나고 주방을 몇시간 더 써도 되겠냐는 찬열에 물음에 대답을 꺼리던 찬열은 이내 변백현 있잖아, 하고 운을 뗐다. 크리스는 찬열의 입에서 나오는 백현의 이름에 약간 움찔하는 크리스를 찬열은 눈치채고 못한게 분명했다. 레시피 좀 알려주고……, 이것저것. 니가 잘해주라며. 찬열이 말을 내뱉자 항상 여유롭던 크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찬열은 어느새 한껏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찬열이 제 앞에서 이렇게 마음을 내비춘게 얼마만이더라. 심란해지는 마음에 자조했다. 왜 하필……. "찬열, 말다했어?"
"아, 어?" "나 피곤한데……. 주방은 맘대로해." 이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크리스의 얼굴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찬열은 곧 입을 다물고는 사장실을 나섰다. 크리스의 반응이 영 신경쓰였다. 진짜 많이 피곤한가……. 손을 씻는 동안 제 옆에 조그마한 인영이 곁에 섰다. 저를 보고 흠칫 놀라는 꼴이 귀여웠다. 찬열은 표정을 숨기려 부러 고개를 숙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해서는 바로 탈의실로 쏙 들어가버려 나오질않던 백현이었다. 찬열은 표정을 가라앉히고는 백현의 조그마한 손을 물끄럼 바라보았다.
"손작네."
"네?" "예쁘네. 타고났나봐?" "아, 네. 어머니 닮아서 손이 곱다는 말 자주들어요. 손이 조금 작은게 흠이지만." "손아니라 다른데도 작던데? 그래도 야, 허벅지는 탄탄하더라." 짖궃게 웃고는 유유히 걸어나가는 찬열의 백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봤어……? 봤단말이야……? 팬티는 입고 있었는데……. 백현은 종대와 민석이 와서는 어깨를 툭툭 칠때까지 비누를 헹구던 손도 잊고는 그대로 굳어있었다. 민석이 와서 어깨를 흔들자마자 으아아아! 하는 백현의 외침이 울렸다.
백현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을게 뻔한 제 볼따구를 짝짝 두드리며 손부채질을 했다. 주방에 들어가도 찬열의 눈을 절대 마주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는 들어서는 제 모습에 찬열의 시선이 따르는게 느껴졌다. 부러 더 더워지는 공기에 백현은 다시 손부채질을 펄럭펄럭하고는 제 다리로 돌아갔다. 옆에서 경수가 미친놈이라며 혀를 끌끌 찼지만 들리지 않았다. 언뜻 마주친 찬열은 저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웃음이 애써 눌렀다. 저를 놀리는게 분명한 표정에 입을 불퉁 내밀고는 프라이팬을 들었다. 결국 백현은 오더가 드어오고 정신이 없어질듯 손을 놀릴때가 되서야 얼굴이 제색을 되찾았다.
**** 너 사장님이랑 뭐있지. 백현의 몸이 움찔했다. 어째 저랑 찬열을 번갈아서 보는 눈들이 음흉하다 했다. 찬열에게는 말붙이기도 꺼려질테니 그 화살은 모두 제게로 돌아왔다. 백현은 가방을 챙기던 멈췄다. 눈알이 도록도록 돌아갔다. 종대의 수상한 미소에 백현은 억지미소로 아하하, 웃어보이고는 남은 단추를 풀렀다. 너 옷은 왜 어제랑 똑같은데? 어젯밤에 어디있었어?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을 연상시키는 기와 오지랖에 삐질삐질 식은땀이 났다. 어제 아는형집에서 잣어요 그냥……. 백현의 시원찮은 대답에 경수가 아닌데, 그럴리가 없는데. 너 아는형 없잖아. 한다. 백현이 곧장 땀이 나는 주먹을 쥐었다펼때 탈의실 문이 열렸다. "퇴근들 안하십니까?"
찬열의 말에 다들 슬금슬금 탈의실을 빠져나갔다. 금세 둘만 남은 탈의실에 정적이 맴돌았다. ……빨리 안오고 뭐해. 그러고선 빠르게 휙 몸을 틀어 주방으로 나가버린다. 백현은 또 순식간에 달아올라버린 얼굴을 식히며 주방으로 뛰었다. 찬열은 파스타용 프라이팬을 하나 들고 휙휙 손을 위아래로 틀고 있었다. 귀주변이 발갛게 물들어서는 쭈뼛쭈뼛 주방으로 들어서는 백현을 보며 찬열은 프라이팬을 백현의 손에 쥐어줬다. 뭘 그렇게 꾸물대? 얼른 불이나켜.
백현은 한시간만에 아침부터 지금 이시간을 내내 기다려온걸 진심으로 후회했다. 배우는 내내 호통에 윽박에, 기가 죽어 더욱더 긴장만 됐다. 이번 기회로 찬열과 친해지기라도 할수 있을 줄 알았던 제 기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백현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신나게 혼나고 있을때 크리스가 들어온건 거의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크리스에게로 달려가는 백현을 보며 찬열은 헛웃음을 지었다. 21살짜리가 저리도 애같다. 폭삭 안기는 백현을 어렵게않게 몇번 토닥인 크리스의 찬열 목소리가 내방까지 들려, 애 좀 그만 잡지? 하는 말에 찬열은 이내 주방을 정리했다.
"백현,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까? 많이 늦었는데."
"아 그래도 되요?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잇는 두사람이 눈꼴시렸다. 집까지 대려다주는 사이인거야? 찬열은 꽁한마음에 일자로 다물린 입술을 약간 씰룩였다. 변백현 너 이리와서 안치워?! 찬열의 말에 후다닥 와서 행주를 드는 백현의 크리스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마음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둘을 기다리느라 지쳐서 주방에 왔는데 단둘이 잇는걸 보자니 속이 뒤집혔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이제 저도 조금씩, 마음을 꺼낼 때가 된것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백현은 많이 피곤한지 차를 타고서도 내내 말이 없었다. 자연히 차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눈을 깜빡이고는 백현이 아려오는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흘끔, 크리스의 눈치를 본다. 크리스의 입이 열렸다. "……오늘 어땠어? 많이 혼나던데."
"셰프님이요? 음……. 어떤면에서요?" "그냥. 많이 무서워했잖아." "그게, 제가 어제 술먹고 셰프님한테 실수를 좀 했어요. 근데 셰프님이 여차저차해서 셰프님 집에서 자게됐거든요……. 죄송하다고하긴 했는데, 모르겠어요 잘. 근데 생각보단 되게 좋은분인건 알겠어요! 솔직히 좀 놀랐어요. 갑자기 넌 내 애제자야! 하시는데……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는데, 생각해보니까 되게 감사하더라구요. 제가 뭐때문에 잘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요. 근데 좀 힘들긴해요. 아무래도 계속 혼나면서 긴장하게 되니까 어깨도 엄청 뻐근하고……." 주절주절 약간은 숙쓰러운듯 말하는 백현의 귀가 물들어있었다. 크리스는 부러 백현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조금 늦은 저녁의 도로는 꽉꽉 막혀있다. 마치 제 속같이 답답하다 느낀다. 크리스는 말이 없었다. 백현은 대답이 없는 크리스의 눈치를 다시 흘끔 보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잘생긴미간에 보기힘든 주름이 져있었다.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어깨에 파스붙이고자 내일 고생한다] 찬열이었다. 백현의 눈꼬리가 예쁘게 휘어지고 백현의 폰화면에 가있던 크리스의 눈이 느리게 감겼다 떠졌다. "감사해요, 오늘같은날 버스탔으면 죽었을거에요……." 백현의 애교 어린 투정에 크리스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아파트 앞에서 내려달라는 백현에도 불구하고 굳이 단지안에까지 들어온 크리스는 집앞에 도착하고선 차에서 내렸다. 안내리셔도 되는데. 백현의 말에 장난스럽게 서운하단 표정을 지어보인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백현이 몸을 돌리려다 멈칫, 크리스를 빤히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는듯 미소를 지어보이는 크리스를 보더니 입술을 한번 물었다가 놓는다. 눈썹이 축 늘어져있다.
"크리스."
"응, 백현." "나한테 뭐 화난거있어요?" 음? 크리스의 반문에 헤헤, 웃으며 말을 잇는다. 조물조물 말하는 입술이 꽤나 신중해보였다. 눈썹을 늘이고 말하는 양이 꼭 강아지를 연상케했다. ……맨날 생각하는던건데. 투정은 아니에요, 그냥 오늘은 크리스 되게..
"기분안좋아보여요. ……크리스한테 이런말 하게 되는 날이 올줄은 몰랐는데. 그냥, 크리스는 항상 표정도 잘숨기고, 감정컨트롤도 잘하고. 되게 좋은건데 저는 사실 조금 서운했어요, 항상……. 나만 기대는것같아서. 근데 오늘 크리스 표정도 안좋고. 그래서 이번엔 내가 크리스 위로해주고 싶어요. 크리스도 나한테 기대줬으면 좋겠어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고보니 백현에게는 유독 강인한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그게 이 꼬맹이는 꽤나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백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헝클였다. 길다란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머릿결이 사락사락 스친다. 크리스는 잘생긴입매를 끌어올렸다. 백현, 잘들어.
"나는 항상 위로받고 있어."
"나는. ……백현이 웃어주면 그걸로 위로가 돼. 백현은 나한테 그래. 그러니까 섭섭해하지도말고, 또." 크리스이 다시 조금 어두워졌다. "나랑 있을땐 찬열이 아니라, 날 봐줘." 그게, 내 진심이야. ****
루한은 캐리어를 질질 끌고 인천공항을 나왔다. 두리번거리는 얼굴을 선글라스가 반을 가린다. 얼마지나지않아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하얏트 호텔이요. 차가 매끄럽게 출발했다. 젊은 청년이 참 곱게도 생겼네. 외국인인가? 기사의 말에 루한이 입술을 살짝 벌렸다. 음……. "중국이요. 근데 일때문에 여러나라 돌아다니고 있어요. 한국어 잘하죠."
"그러네.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어?"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요, 독학했어요." "무슨일을 하는데? 하얏트면 돈도 많은것 같구먼." 루한은 그저 허허, 하고 웃어보였다. 창박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의 나라보다는 하늘이 맑고, 아름다운 나라이다. 보기좋게 쌍커풀진 눈이 감긴다. 루한은 머릿속으로 일정을 굴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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