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후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도록 한다. 한 사내의 말에 다른 이들이 일사천리 하게 움직였다. 다른 이들에게 지시를 내린 사내는 객사(客舍)에서 나와 밤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한적하고 조용했다. 사내는 잠시 멈추어 코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바들 거리다 떨어지며 사내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사내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나뭇잎을 주워들곤 중얼거렸다.
한가롭네요. 예전과는 많이 다른 도성이에요. 스승님.
홍화녹엽
紅花綠葉
귀가 따가웠다. 어젯밤 길을 헤맨 후로 경수의 잔소리는 쉬질 않았다. 어쩜 저리 할 말도 많은지. 언제 그칠지 모르는 경수의 잔소리에 준면은 잘게 몸서리쳤다. 정체 모를 사내가 도와주어 무사히 궁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에게 고맙다는 한마디도 하고 싶었거늘. 왜 그리 사라졌을까, 또 그 알 수 없는 향. 준면은 밤새도록 그 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향은 익숙한 듯하면서 맡기 싫다가도 계속 생각이 났다. 어디선가 맡아 본 적이 있는 향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준면은 머리가 아파져 왔기에 그만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폐하. 아침 조회를 하실 시각이옵니다. 가시지요. 경수가 잔소리를 그치고 준면에게 아뢰었다. 준면은 드디어 잔소리를 멈춘 경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곤 정전으로 향하였다. 말수만 조금 줄이면 좋을 것을….
언제나 그렇듯 준면에게 아침 조회는 길고 무료하였다. 준면은 파(派)가 나뉜 신하들 중심에서 중립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중립을 지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여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고 기울여 졌다면 균형이 잡히도록 다른 쪽을 옹호(擁護)해야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정사를 맡아오던 준면이였기에 준면은 곧잘 해냈다. 준면은 조회가 끝날 무렵 손을 들어 신하들의 말을 멈추게 하였다.
"짐(朕)이 불러들일 이가 있소. 국경선에 있는 태사를 불러들일 것이오."
"아니되옵니다. 폐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태사가 아니면 국경을 지킬 군(軍)이 없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불러들였다. 곧 궁에 당도 할 것이니 그리 알라."
"폐하! 폐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준면의 말이 끝나자 태부 조석(趙昔)이 반발(反撥)하였다. 하지만 준면은 마음을 바꿀 뜻이 없었다. 이미 불러들였고 준면은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태부가 준면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청(請)하자 그 뒤로 태부 쪽의 신하들이 조르르 머리를 조아렸다. 다들 이만 나가시오. 더는 듣고 싶지 않으니. 준면은 몸을 살짝 돌려 더는 듣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그제야 모든 신하가 정전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자 준면은 경수를 쳐다보았고 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장 태사를 불러들이라 명(命)하였고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 사내를 본 준면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경수 또한 그 사내를 지켜보았다. 준면이 경수를 향해 돌아봤지만, 경수 또한 고개를 살짝 저으며 알지 못한다는 표시를 해왔다.
"난 태사를 불러들였지 네놈을 불러들인 것이 아닌데."
"폐하, 폐하를 뵈옵니다. 소인 태사의 제자 오범(吳凡)이라 하옵니다."
자신을 오범이라 칭한 사내는 키가 훤칠하고 마치 이방인(異邦人)으로 착각할법한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강렬한 인상을 하였다. 태사는 어디 있는가. 준면이 묻자 오범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오범의 낯빛을 본 준면이 대답을 재촉하듯 오범을 응시하였고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오범은 천천히 입을 열어 답하였다.
"이번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戰死)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부대장이었던 소인이 대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준면은 잠시 오범을 쳐다보았다. 그의 밑에서 자랐나. 준면이 하문(下問)하였고 오범은 그러하다 하였다. 오범이라. 그의 부대에서 자랐고 그의 손에 키워졌고 부대장까지 올랐었다면 분명 지금 궁 안에 있는 관군(官軍)에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일 것이다. 그 정도로 그의 무예 실력은 굉장했으니까. 그라 하면 삼공(三公) 태사,태부,태보 중 태사이다. 은위제가 황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부터 나라가 흔들리자 몇몇 무예가 출중한 자들을 꾸려 국경으로 가 침략해오는 바깥의 흉노족들과 맞서 싸워오며 점점 수를 늘려 부대(部隊)를 만들었다. 얼마 전 유일하게 아직 되찾지 못한 영토를 그의 부대가 되찾았다는 기별을 듣고는 그동안에 세운 업적과 이번 영토확장으로 큰 공을 쌓은 그와 그의 부대에 그만한 벼슬을 내리려 불러들였건만.
그를 잃은 준면,천왕제는 심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 가까이 두어야 할 자를 잃었으니. 준면은 꽤나 태사를 존중해주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고 그만한 대가(代價)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를 불러들이고 싶었다. 이제서야 나라의 기반이 쌓였고 이제 필요한 건 왕권 강화였다. 하여 그자가 필요했다. 준면은 오랫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취하지 못한 허탈감과 태사를 향한 애도(哀悼)로 인해. 그런 준면을 파악한 것인지 오범은 자신의 소매에서 닥나무 껍질을 사용한 듯 보이는 지물(紙物)을 꺼내 자신의 앞에 내려다 놓았다. 그러자 준면의 옆에 있던 경수가 그것을 준면에게 전해주었고 그것을 받아 펼쳐 읽던 준면은 오범에게 물었다.
"이것을 태사가 내게 주라더냐."
"예 폐하. 안의 내용은 읽지 않았으나 분명 저희를 궁 안으로 불러달라 청하셨겠지요."
종이의 내용은 자신의 부대를 입궁시켜달라는 청이 담겨 있었다. 나라의 국비(國費)가 넉넉하지 못해 태사의 부대는 항상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적과 싸워야 했기에 이번 영토확장을 마지막으로 부하들이 입궁하여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조국(祖國)을 지켰으면 했던 태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잘 아는구나. 불러들이거라. 준면이 명하자 부대가 들어왔다. 예상외로 적은 수였다. 이 적은 수로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니 상당히 뛰어난 무예실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제법 잘 굴러가 전략을 교묘히 도모(圖謀)하는 자들만 모였으리라 생각했다. 이윽고 모두 정전에 들어오자 폐하. 하며 자세를 낮춰 한쪽 무릎을 굽히곤 고개를 숙였다.
"입궁하거라. 태사의 부대는 오늘부로 친위대(親衛隊)로 임명할 것이며 짐의 명 없이는 움직여서도,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경이 아닌 짐을 지켜라."
태사의 부대, 명 받들어 오늘부로 태사의 부대가 아닌 천룡국의 황제, 천왕제의 부대로 준면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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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에도 불구하고 금손 금픽이라 해주신 분들 고마워요ㅠㅠㅠ
열심히 쓸게여ㅠㅠㅠ 사랑해요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