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03
으슥한 곳만 골라서 약물을 밀매한다는 놈들의 전담은 결국 내가 떠맡게 되었다. 담배남만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지랄을 떨어서 막았을 텐데. 내가 담배남을 쫓느라 그 패거리들을 잡는 선배를 도와주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내가 선배에게 도착하기 거의 직전 놈들은 선배의 손목을 아작 내고는 도망쳤다. 그 말은 내가 좀 더 빨리 도착했다면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뜻이고. 손목이 아작 난 선배는 현장을 뛸 수 없으니 남은 건 내 몫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좆됐다.”
오늘도 허탕이었다. 복잡한 서울 주변에서 안심하고 밀매를 할 만한 으슥한 곳은 몇 군데 없었다. 그곳 중 목격담이 들려온 곳은 총 세 곳이었다. 하나는 들켰으니 이제 두 곳이 남은 셈이었다. 놈들을 놓친 이후 오늘이 일주일 째 하는 잠복이었다. 피곤해 뒤질 것 같다. 다른 장소에 심어놓은 후배들에게도 허탕이라는 연락이 왔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기름이 거의 다 떨어졌다는 경고등이 깜빡였다.
서 맞은편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커피가 없으면 오늘 아침 회의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회의 끝나면 숙직실로 달려간다는 생각을 하며 주문을 하러 들어갔다. 이른 아침의 카페는 아주 한적했다. 내가 들어서자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네며 카운터로 향했다. 아침 마다 보이는 직원이었다. 그 직원과 마주보며 테이블에서 얘기하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 들어온 손님에게 눈길을 주는 것 치곤 상당히 긴 시선이다. 힘없이 내려오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남자를 째려봐주고는 갈 길을 갔다. 내가 카운터 앞에 설 때까지 그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걸까.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가. 피곤한데 그 딴 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다.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주문을 했다.
“아메리카노에 투샷 추가해서 주세요.”
카드를 건네고 음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힘이 없어 몸이 축 처졌다. 커피가 지독히 필요한 상태였다. 대충 눈을 감고 있자 뒤통수가 따가웠다. 무슨 썩을 놈의 관심인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려 손을 뒤로 했다. 주머니가 얇았다. 핸드폰 어디 뒀더라. 차에 있나. 이럴 땐 박지민이 최고인데. 물건이 어디 있는 지 귀신같이 알아채더라. 걔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나온 아메리카노를 받은 뒤 내게 들러붙는 시선을 향해 썩은 미소를 날려주곤 카페를 나왔다. 아침부터 기분 더럽게.
뒷골목 03
자랑스럽게 두 자리 씩이나 차지하고 있는 스포츠카를 보니 요즘 들어 생긴 재수 없는 일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바닥에 그어 놓은 주차 선은 차를 정확히 반으로 갈라놓았다. 재수 옴 붙었네 진짜. 누가 경찰서 주차장에 주차를 이 따위로 해. 연료가 부족하다는 경고등은 여전히 깜빡였다. 내 차도 아닌데 굳이 주유까지 해줄 필요는 없어 그냥 뒀다. 비상등을 켜고 나와 뒷주머니를 뒤적였다. 아, 여기 없었지. 다시 차로 가 핸드폰을 찾았다. 뒷좌석에 내팽개친 채로 있었다.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원인 경찰서 주차장에 떡하니 이 딴 식으로 주차를 한 건 무슨 용기야.
신호음은 끊임없이 가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내 더러운 성깔은 빌어먹게도 딱 두 번까지만 참는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짜증나는 일들이 겹친 데다 몸은 피곤하기 그지없어 누구 하나 건드리면 다 죽일 기세였던 나한테 그 누구가 생긴 것이다. 턱까지 내려오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하, 전화 받기만 해봐.
- 어.
신호음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저음엔 문제가 많았다. 여보세요도 아니고 네도 아니고 어라니. 이거 진짜 짜증나는 놈이네.
“차를 좆같이 대셨길래.”
전화 반대편에선 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또박 또박 말해주었다.
“누가 겁도 없이 일반 차량이 경찰서 주차장에 주차를 개좆같이 해놓냐고.”
- 하, 귀찮게 진짜.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게 아주 거슬렸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주려는데 전화가 끊겼다.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5분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안 오면 견인차라도 불러야지. 잘나신 스포츠카에 등을 기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담배를 입에 물었다.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 때쯤 온통 검은 옷에 캡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 하나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걸어왔다. 그리고 날 완전히 무시하며 내가 기댄 차에 운전석에 올라탔다.
짙게 선팅 해놓은 창문 때문에 안에 들어간 남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차에 시동을 거는 남자를 보며 창문을 두드렸다.
“야.”
남자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 진짜. 결국 분에 못 이겨 차체를 걷어찼다. 차에 흠집이 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남자가 나를 힐긋 보았다.
“어딜 도망 가.”
차를 한 번 더 발로 찼다. 그러자 내가 있던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짙은 눈썹을 좁힌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뭐야.”
“싸가지 한 번 더럽게 없네.”
남자의 말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남자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담배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아까 코 막고 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절반가량 탄 담배를 비벼 껐다.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피울 정도로 심성이 고약하진 않았다.
한 바탕 지랄을 떨어주려고 할 때였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 누나 긴급! 긴급! 빨리 문자 찍어준 곳으로 와요!
지민이 제 할 말만 하고는 끊어버렸다. 무슨 긴급이기에. 골치 아프게.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남자를 노려보고 가려는 참에 불현듯 경고등이 깜빡이던 게 생각났다. 미친 기름 없잖아. 남자가 조수석 창문을 올리는 도중에 창문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남자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뭐야. 또.”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를 내뱉으며 창문 틈으로 집어넣은 손으로 잠금을 해제했다. 남자가 다른 행동을 할세라 바로 남자의 차에 올라탔다.
“미쳤어?”
남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미치면 어쩔 건데. 남자에게 핸드폰을 들이댔다. 머리통도 작은 게 모자까지 써서 얼굴도 제대로 안 보였지만 남자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여기로 무조건 빨리. 공무 수행하는 겁니다. 지금.”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숨을 뱉었다. 경찰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가짜면? 만약, 경찰이라도 내가 왜.”
아까부터 알았지만 싸가지 하나는 밥말아먹은 게 분명하다. 늦게 도착하면 또 가루가 되게 까일 텐데. 택시나 타야겠다는 생각에 욕이나 던져주고 가려는데 차가 말도 없이 움직였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기에.
“저기요.”
남자는 내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자는 데로 가는 거 맞지 지금?
“이 봐요.”
남자의 옆으로 팔을 뻗어 흔들었다. 남자가 귀찮다는 듯 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어디 가냐고 묻기 위해 입을 떼려던 찰나.
“뒤지기 싫으면 벨트나 매.”
여전히 싸가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을 하더니 남자가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야!”
내가 옆에서 소리를 내질러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엑셀을 밟는 남자였다. 무슨 이런.
“방향이 같아서 데려가는 거야. 좀 닥쳐.”
말대꾸를 하기도 전에 급커브 길을 거칠게 몰아대는 덕분에 또 악을 질렀다.
“야! 바꿔! 내가 운전해!”
“긴급이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남자는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댔다. 하도 옮겨 다니는 통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썩을. 무슨 이런 막돼먹은 놈이 다 있어.
뒷골목 03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척 빨리 현장에 도착했다. 놈은 폴리스 라인이 쳐진 곳에 차를 세워 꺼지라는 말을 뇌까리더니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메스꺼움이 확 올라왔다. 으.
박지민이 나를 보며 손짓을 했다. 빨리 와요. 구역질이 올라오는 와중에 시체를 보면 진짜 토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숨을 푹 내뱉고는 고개를 숙여 노란 테이프를 통과했다. 역겨운 광경이 펼쳐졌다. 지민이 건네주는 장갑을 꼈다. 내 피곤함의 원인이 누워있었다. 피를 질질 흘린 채로.
“한 시간 전에 시민 제보가 들어왔어요. 밑에서 떨어졌대요.”
“자살이라고? 저 새끼가?”
“유서도 있다네요.”
나 참. 자살은 개뿔. 내가 아는 놈이라면 곱게 죽어줄 리가 없었다. 영역 싸움하다가 밀려난 거겠지. 안타깝게도. 저 놈이 자리 잡은 터가 그렇게나 좋았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세 달 넘게 번번이 허탕만 쳤으니. 저 새끼들 입장에선 그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을 터였다. 강동 경찰서 그 미친 주아의 손길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니까.
미친 주아는 깡패 놈들이 부르는 내 이름이었다. 미친 이주아. 미친 주아. 하도 미친 주아 미친 주아라고 지랄이길래 개지랄을 떨어줬더니 줄여서 부르더라. 미주. 뭐가 됐든 아가씨보다는 훨 나은 호칭이었다.
“미친 주아 왔냐.”
놈들이 쓰는 별명이 서 내에도 퍼진 것 역시 오래 전 일이다.
“네.”
“네가 쫓던 놈인데. 이렇게 됐네.”
황경감이 혀를 끌끌 찼다. 비릿한 피 냄새와 내가 풍기는 담배 냄새인지 황경감이 풍기는 냄새인지 모를 담배 냄새가 섞였다. 구역질이 절로 났다. 형사가 된 후 처음 시체를 보고는 하루종일 토악질을 해댔다. 옆에서 동료들이 생긴 거랑 다르게 비위가 약하다며 한소리 씩 해댔다. 그러는 그들도 하루 종일 썩은 표정으로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생긴 게 어떻게 생겼는데. 라고 물으면 그랬다.
세상에 안 좋은 일은 다 겪은 얼굴이라고.
“저기 보이냐?”
선배 하나가 다가와서는 위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가면 7층짜리 건물 하나가 나왔다. 건물의 절반은 모텔로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유흥업소. 뭐 대충 그런 건물.
“저기 옥상에서 떨어졌대. 기환이가 여기 수금하러 맨날 오는 거 알지?”
떨어져 죽은 남자의 이름은 김기환이었다. 내가 잠복근무를 하며 쫓아다닌 놈. 여기서 일하는 따까리 중에 하나가 옥상 열쇠를 줬다더라. 원래도 담배 피러 자주 옥상 가던 놈이라 그냥 줬다는데. 주고 나서 십 분도 안 지나고 쾅. 옥상에 유서도 뒀다더라. 담뱃갑까지 엎어서 안 날아가게. 엎은 담뱃갑은 기환이가 피우던 게 맞대.
분주한 폴리스 라인 밖으로 나와 지퍼백 안에 넣은 유서를 받아들었다. 깡패 새끼치고는 글씨체가 단정한 편이었다. 맞춤법도 지나치게 잘 지켜 썼다. 중학교 졸업장도 없던 놈이. 미친 듯이 쫓았던 놈이 살해도 아니고 자살. 허무했다.
아, 물론. 자살일 리 없다. 내가 아는 놈은 자살하기엔 배짱이 두둑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에게 들킨 게 무서워서 죽는다고? 이유치고는 지나치게 일차원적이다. 아, 빚도 적혀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홍식 형님께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처자식이 있는 놈이 이런 이유로 죽을 리 없다. 지가 죽으면 그 빚을 그들이 다 떠안을 텐데. 조사한 바로는 깡패 주제에 꽤 가정적인 놈이었다. 아내 생일도 잘 챙기고 딸에게도 잘 대해주는.
그렇다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자살이 아니라고 외치며 정의로운 수사를 하지 않을 거다. 난 그런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다. 그냥 월급쟁이일 뿐이다. 하루하루가 역겨운.
“여보……. 여보!”
헛소리로 가득한 유언장을 읽고 있자니 옆으로 흐느낌이 들려왔다. 피폐해진 얼굴로 남편을 확인하는 여자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네 살짜리 딸은 지민의 담당이었다. 지민이 여자 아이에게 사탕 껍질을 까서 입에 물려주었다. 달달한 맛을 느낀 아이가 지민에게 배싯 웃음을 지어보였다. 박지민은 그 아이의 앞에 서서 묘하게 오열하는 아이의 엄마를 가려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문제에 있어 회의적이었다. 숨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가려주면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을 아는 사이였다. 놈을 쫓을 때 찾아 간 적이 있다. 저 여자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닐 거다. 그들 가족이 사는 단칸방에 찾아가 몰아 붙였으니까. 당신 남편이 그런 짓을 하는 걸 아냐고. 뒷골목에선 이름대면 다 아는 그런 깡패 새끼인 걸 아냐고. 양심이 있으면 자수하라고.
난 김기환 저 자를 선한 마음으로 쫓아다닌 게 아니다. 저 놈만 잡으면 승진할 수 있었거든. 이젠 다른 놈을 물색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저 자식보다 더 큰 건으로 하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집을 나가는 게 내 꿈이라면 꿈이다.
구린 내가 밴 바람막이를 벗었다. 안에는 흰 색 반팔 무지티를 입었다. 춥긴 했지만 몸이 떨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멀찍이 떨어지고 싶었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귀가 먹먹했다.
뒷골목 03
내가 선택한 곳은 저 자가 죽은 옥상이었다. 폴리스 라인이 쳐진 곳에는 막 정리가 끝난 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국과수 사람 한 명이 눈인사를 하며 나갔다. 난간에 기대 담배를 꺼냈다. 조용한 게 나쁘지 않았다. 아래에서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딸아이가 지민과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제 엄마의 울음을 배경으로.
올라오는 역겨움에 뒤를 돌았다. 담배 연기를 한 번 내뿜고는 바닥에 있는 조그만 돌 하나를 걷어찼다.
“아.”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어왔다. 국과수 요원인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 하나가 인상을 쓰고 날 바라보았다. 내가 찬 돌에 맞은 모양이었다. 조그만 돌 맞은 게 뭐가 아프다고. 고개를 대충 까딱였다.
“하,”
남자가 한 쪽 입매를 올렸다. 기분 더럽게. 가져갈 게 있으면 곱게 가져가던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목구멍에 알싸한 연기가 퍼졌다. 폐부 안으로 검은 연기가 들어찼다. 살아가는 절반 넘게 담배를 피워댔는데 내 폐는 멀쩡했다. 누가 담배를 피워도 오래살 사람은 오래 살고 안 피워도 일찍 죽을 사람은 일찍 뒤진다던데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전자에 해당하나 보다. 지랄 맞게.
물고 있던 담배가 입에서 빠져나갔다. 아까 그 남자의 손에 내 담배가 들려있었다. 남자가 한 쪽 눈썹을 실룩 올리더니 그대로 담배를 제 입으로 가져갔다. 아 씨. 더럽게.
곧바로 켁켁 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담배도 못 하는 새끼가 그걸 들고 가? 어디가 모자라나. 한심한 표정으로 남자를 봤다. 남자가 담배를 땅에 내리고 발로 짓이겼다. 세상에 미친놈은 많았다. 남자에게 눈길을 거뒀다. 다시 내려갈 참이었다.
“어쩐지 차에 담배 냄새가 쩔더라. 좆같게.”
걷던 다리를 멈춰 세웠다. 다시 돌아보자 남자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검은 모자. 그러자 남자의 올 블랙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그 좆같이 주차하고 좆같이 운전하던 새끼. 놈이 천천히 다가왔다.
“차 문을 제대로 박아놨더라고.”
좆됐다. 얘 차 비싼 거던데. 머리를 헝클었다. 아 씨.
“보니까 경찰이던데. 돈 떼먹을 리는 없겠고.”
경찰인데 지금 돈 떼먹을 생각하는 나는? 틈나면 바로 달릴 셈이었다. 얘 차 수리해주다간 한 달 월급이 날아가게 생겼다. 이놈의 좆같은 성질 머리가 요즘 말썽을 안 피운다 했다.
“도망가면 뒤져.”
하, 시발. 눈치 한 번 더럽게 빠르네. 놈이 내 뒷주머니에서 내 지갑을 꺼냈다. 제대로 걸렸다. 지갑을 연 놈이 명함 하나를 꺼냈다. 경위, 이주아. 경찰 마크가 제대로 박힌 명함. 명함을 빼든 놈이 던진 지갑을 받아 들었다. 좆됐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하던 차에 손에 무언가 쥐어졌다. 달걀이다. 뭐야 이건. 놈을 쳐다봤다.
“멍 빼라고. 무슨 팔에 죄다 멍 밖에 없어.”
놈이 턱으로 내 팔을 가리켰다. 부친 덕분에 여러 색의 멍이 내 팔엔 가득했다. 멍이 사라지면 또 생기고. 없어지면 몰랐던 멍을 발견하고. 무뎌졌다. 아무렇지 않게 반팔을 입으며 팔을 드러낼 정도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내 옆을 지나가는 놈을 바라봤다. 저거 내가 연락 안 받으면 경찰서에 전화해서 돈 받아낼 놈이다. 잘못 걸렸다. 어쩌다 저런 놈 차를 걷어차서는.
“야.”
그 때였다. 내 품으로 놈의 코트가 날아왔다. 큰 체격에 맞게 사이즈도 큰 지 꽤 무거웠다.
“입어. 추워 뒤지기 전에.”
이 말. 어디서 들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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