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17-1.
학교엘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도 편하게 있지를 못했다. 그 어디든 나에겐 가시방석이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결석으로, 끊임없이 울리는 수아의 연락에도 답장 한번 하질 못했다. 같이 교양 수업을 듣는 찬열이 녀석에게서도 몇 번이고 연락이 왔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경수에게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녀석에게만큼은 태연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마치, 학교에서 착실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 것처럼. 이제 수업 시간이라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경수의 메시지를 보고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사실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동안 내게 닥친 여러 가지의 일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내가 원래 이랬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의 나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요즘 따라 많이 지치고, 한숨만 늘었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가 기댈 곳이 되어줘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경수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누나가 알고 있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경수와 정리하라는 누나의 말에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었다. 그날 이후로 계속 누나와 접촉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피해 다녔고. 그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누나가 알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고, 상상도 못했었는데…. 사실은, 요즘 내게 몰려온 그 어떤 일보다 누나와의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그 모든 일들을 한 번에 덮을 만큼. 보라 누나와의 소문 때문에 학교에 나가지 않은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무서웠고, 나를 너무 무겁게 짓눌렀다.
[백현이 입원했다.]
찬열이의 문자에 한숨이 나왔다. 변백현이 병원에 입원이라니…. 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병문안은 가야했다. 다친 건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입원이라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고. 찬열에게 알겠다고 곧 간다는 답장을 보내고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싶어서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방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누나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아침에 나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선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 다른 곳만 바라보았다. 누나의 시선이 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김종인.”
“…….”
“너…언제까지 나 피할래?”
“…….”
“이게 피한다고 될 문제야?”
누나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쉰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술만 굳게 다물고 있었다. 누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될지를 몰라서.
“나 지방 내려 갈 일 있어서 며칠 못 들어와.”
“…….”
“…그러니까…”
“안 해.”
“…뭐?”
“정리…안 한다고.”
부정의 말도, 수긍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던 거였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경수와 정리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단 한마디도 없다가 뜬금없이 내뱉는 내 말에 누나가 말을 잇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갔다 와서 보자.”
“…….”
“그때, 다시 애기해.”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서 현관으로 향하는 누나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보았다. 냉정한 누나는 처음이었다. 누나가 경수를 얼마나 아끼는지, 누나가 왜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오는 건지도 알고 있기에 집을 나서는 누나의 뒷모습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현관문이 닫힌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방으로 다시 들어오고 말았다.
왜, 우리는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도 없고. 왜, 다들 우리를 부정하고, 반대를 하는 건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도 나를 아프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사람은 경수 밖에 없었다. 손에 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액정에 가득 찬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나 지금 너무 힘들다고.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나 좀 돌아봐달라고. 나를 좀, 안아 달라고….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미안. 오늘은 바빠서 못 가겠다. 다음에 갈게. 변백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줘.]
경수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며 찬열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았다.
一
침대에 웅크려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머릿속에 꼬인 생각들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잠시라도 그 생각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잠이 올 리가 없다. 감은 눈을 떠서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조금 전, 누나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경수와 정리할 생각이 없다는 말…. 내 마음을 담고 있을지 몰라도 어쩌면, 누나에게는 꺼내지 말아야했을 말일지도 모른다. 경수와의 만남을 누나가 알게 되었을지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했을지도 모르고, 인정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모든 게 다 망가져버릴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경수가 혹시나 나대신 누나에게 모진 말을 들을까봐 걱정이 되고, 경수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마음을 졸이게 된다.
“…….”
물론,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둘의 문제인 것도 알고. 그런데도, 누나 때문에 경수가 상처를 받게 될까봐. 그 녀석이 나 때문에 아파할까봐 무섭다.
눈앞으로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내겐 울고 있는 경수보단 웃고 있는 경수의 모습이 더 익숙하다. 녀석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와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로 녀석을 울게 하기는 더더욱 싫다. 일단은, 조금 쉬어야겠다.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수많은 고민과 걱정거리들로부터 벗어난 뒤에 너를 만나야겠다.
“…….”
긴 숨을 뱉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一
밥을 먹지 않았다는 녀석에게 라면을 끓여다 주었다.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녀석이 한 그릇을 다 비워내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그래서 먹는 것만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렇게 내 눈앞에 있는 경수를 보니 좀 살 것 같아서.
“…왜?”
경수의 시선이 줄곧 나를 따라붙었다.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 거냐고.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며 웃는다. 그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다행히, 경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왜 웃어.”
다행이다. 네가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어서.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녀석의 얼굴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못생겨서 웃었다고, 머리 자르니까 못생겼다며 투덜거리는 녀석의 말에 조금 웃었다. 내가 머리 자른 것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아니, 어쩌면 다른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이 확실한 경수가 내가 웃는 얼굴을 보이자 심통 난 얼굴로 주먹을 들어 내 배를 툭 친다. 하나도 안 아팠지만 아야야, 앓는 소리를 냈더니 나를 한번 스윽 쳐다보며 말한다.
“너 못생겼으니까, 나 그냥 집에 가야겠다.”
“어딜 가.”
“집에 갈 거야.”
“너, 뭐 맘에 안 드는 거 있지?”
“그런 거 없거든?”
“근데 왜 갑자기 집에 간다고 그래...”
정말 가기라도 할 작정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녀석의 팔을 얼른 붙잡았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모양이다.
“진짜 가?”
경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묻는 내 말에도 입을 꾹 다문 채 대답이 없다.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낯빛이 어둡다. 여전히 선 채로 앉을 생각을 않는 녀석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못 가게 붙잡아 두려고.
“투정부리지 말고 앉으세요.”
“…….”
“아무래도, 너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
“앉아서 말 하면 안 돼?”
녀석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본 순간 마음이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누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었을까봐 걱정이 되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서 살살 달랬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내가 알아야 될 것 같아서.
“…….”
“…….”
“…그런 거 없어.”
한참을 버티던 녀석이 못이기는 척 내 손에 이끌려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 시선을 자꾸만 피하기에, 혹시 나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이 있는 걸까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경수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무슨 생각해?”
“응?”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물었다. 라면을 먹고 난 뒤부터, 어쩌면 우리 집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부터 심사가 뒤틀렸을지 모르는 경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까만 눈동자에 담긴 내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무슨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눈치가 없는 나라도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한 네 행동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너의 기분 변화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민감해진 나였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
“나한테 불만 있지, 너?”
“…….”
“솔직히 말해봐. 응?”
“…….”
“백현이 병원 안 가서 그래?”
“…….”
“좀 있다 갈 거야.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화난 거면 풀어.. 응?”
어떻게 해서든 너를 달래고 싶었다. 네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서 애를 썼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너를 풀어주려 노력하는 내 모습에도 한 마디 대답이 없던 녀석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작은 한숨을 내쉬다가, 다시 나와 눈을 마주한다.
“…….”
“…종인아.”
“…….”
“바빴어?”
머리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잡아 내린 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수업은 몇 시에 끝났는데?”
“…….”
“이 시간에 어떻게 집에 있어, 너 원래 월요일 여섯시까지 수업이잖아….”
“…….”
“이제 겨우 여섯시야. 알아?”
“경수야 그건….”
“도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백현이 병원도 못 왔어?”
“…….”
“너 뭐 하고 있었는데.”
꾹꾹 참아왔던 게 폭발이라도 한 듯, 또박또박 말을 내뱉는 녀석의 말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 눈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그저 멍했다. 내 행동을 녀석이 의심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든 숨기려고 애를 썼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나보다. 눈앞에 있는 경수는 너무나도 지친 목소리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
입술을 꾹 깨문 채 나만 보고 있는 녀석에게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 혼자 감당하려고 숨겨온 건데 그게 너를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가온 녀석의 지친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 내가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모든 것이 허무했다.
“종인아.”
답답한 마음에 내 이름을 불러오는 녀석의 말에도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한숨만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지금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
17-2편으로 종인이 번외기 드디어 끝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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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실물로 보면 눈이 한바가지라는거 뭔지 알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