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백현이 싫었다. 변백현이 왜 싫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처음부터 싫었다. 축 처진 눈매, 오똑하진 않지만 못생기진 않은 코, 큰 편도 아니고 작은 편도 아닌 보통 크기의 입. 솔직히 말하면 그 셋의 조화가 잘 어울렸고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백현이 처음 전학 오던 날, 평소처럼 찬열과 붙어 앉아 떠들고 있던 경수는 백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개새끼 같이 생겼네. 그 목소리는 반 전체에 들릴 만큼 컸고, 담임은 당황하며 경수에게 말했다. 도경수. 새로 온 친구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그런 담임을 말린 건 변백현이었다. 선생님, 그냥 두세요. 사춘긴가 보죠. 그 재수 없던 말이 지금 내가 변백현을 싫어하는데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변백현은 공부를 잘했다. 반에서 좀 논다고 하는 경수지만, 항상 성적은 1등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등생이었다. 변백현이 전학 온 후 첫 번째 본 시험에서 경수는 변백현에게 자존심을 짓밟혔다. 경수의 성적표에 써 있어야할 반 석차는 백현의 성적표에 쓰여 있었고, 백현은 당연하단 듯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성적표를 가방 속에 처박아 두었다. 그 날 경수는 담임에게 찾아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답안지 채점을 몇 번이나 다시 부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결과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재채점을 요구하는 경수에게 담임은 한숨 쉬며 이렇게 말했었다.
‘경수야, 네가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와서 슬픈 건 이해하겠지만 말이야, 네가 이번 시험에서 2등을 한 건 사실이야. 백현이가 원래 전 학교에서 부터 우등생 자리를 놓치지 않던 그런 학생이었거든. 경수야 이번 시험은 잊고 다음 시험 잘 보자, 응? 알았지?’
경수는 그 말에 다시 한 번 짓밟혔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경수의 인생에 불청객이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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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도경수. 밥 안 먹냐?”
“됐어. 나 안 먹을 거니까 오늘은 너 혼자 먹어라.”
아, 야! 그러는 게 어딨냐? 내가 얼마나 외로움 타는지 잘 알면서. 그래, 너 공부랑 평생 붙어먹어라! 씩씩거리는 찬열의 목소리는 찬열이 밖을 나가고도 한참 들렸다. 1등을 뺏긴 뒤, 경수는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현에게 뺏긴 1등이 너무 억울했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변백현에게 뺏겼다는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경수는 백현의 생각에 열이 뻗혔지만 참고 다시 샤프를 잡았다. 기필코, 이번 1등은 내가 할 것이다.
한 한시간 정도 공부 했을 때, 변백현이 교실로 들어왔다. 변백현은 친구가 없었다. 애들이 변백현이 싫어서 말을 안 걸었나,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변백현에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쳐 있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그런 막. 백현의 뒷모습을 야리던 경수는 다시 눈을 깔고 공부에 몰입을 했다. 공식을 입으로 읊으며 문제를 풀던 경수는 누가 제 앞에 온 듯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백현이 제 앞에 서 있었다.
“뭐냐?”
“백 날 그렇게 공부해봐라, 날 이길 수 있을지. 넌 날 못 이겨.”
경수는 당황스러웠다. 제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왜 제게 이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됐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바람 빠진 소리만 내던 경수는 백현을 불렀다. 야. 제 자리로 돌아가던 백현은 경수의 말에 뒤를 돌아 왜, 라는 듯 경수를 쳐다봤다.
“지랄하지 마. 이번 1등은 내가 할 거니까.”
백현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못 들은 척 했다. 여기서 주먹을 날리게 된다면, 이 게임은 내가 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변백현은 공부로써 이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변백현을 밟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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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가 그토록 기다리던 기말고사가 다가 왔다. 전 날, 너무 긴장 되서 인지 짐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뭐 덕분에 암기 과목이 더 탄탄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경수는 평소에 공부 안하고 변백현과 간소한 차이로 졌으니 이번엔 열심히 공부한 만큼 변백현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수는 벌써부터 자존심이 상해 표정이 좋지 않은 백현을 상상하며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변백현을 보았다. 눈을 내리깐 채 교과서를 보고 있는 모습에 왠지 밑에서부터 뭔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건 내가 이긴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둬야지. 경수는 교과서를 펴서 꼼꼼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분 후,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이 끝난 뒤, 내게 와서 드디어 우리 같이 밥 먹냐 면서 감동이라며 나를 껴안고 울듯이 하는 찬열이 짜증날 법도 했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서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빨리 먹으러가자며 보채는 찬열에게 알았다고 답하며 주위를 살폈다. 변백현은 이미 밥을 먹으러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변백현, 이번 게임은 내가 이겼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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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 종례 시간 때, 성적표 나눠 줄 테니까 한 명도 빠지지 말 것. 이라고 말하는 담임의 말에 경수는 무의식적으로 백현을 봤다. 백현은 선생님이 말을 하 던지 말던지 문제집에 집중 하고 있었다. 경수의 머리에는 빨리 종례 시간이 와서 변백현을 빨리 짓밟고 싶다.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기다리던 종례 시간이 왔다. 담임은 번호를 차례로 불렀고, 나가서 성적표를 받아 오는 애들은 모두 하나 같이 탄식을 했다. 아, 나 성적 떨어졌어. 아, 이걸 어떻게 엄마한테 보여주지……. 반 안은 금새 시끄러워 졌지만 경수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담임이 도경수ㅡ 라고 불렀고 경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적표를 받아 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성적표를 펼쳐 본 경수는 저절로 표정이 굳어갔다. 변백현ㅡ 담임의 말에 따라 내 시선이 변백현에게로 붙었다. 자리에 앉아 성적표를 펼쳐 보던 백현은 뒤를 돌아 나에게 비웃음을 날렸고, 그 비웃음에 내 자존심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경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했고, 전에 1등 했던 성적보다 5점 이상이 올라 있는데 왜, 내가 1등이 아닐까. 경수의 머릿속에선 백현의 비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정말 변백현을 짓밟을 방법은, 없는 걸까. 경수는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생각에 빠지던 경수의 머리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상처 받는 것, 배신. 경수의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