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찬백] 원망 그리고 원망 中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1/e/8/1e81096c8a0c2cc12d84b21685141d2d.jpg)
찬열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유비요. 찬열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간호사의 나긋한 목소리가 오고가고 찬열은 엘레베이터를 잡다가 점점 높아져 가는 숫자에 낮게 욕설을 뱉었다. 그리고는 더 기다릴 수 없어서 계단을 밟았다. 두 칸씩 성큼 성큼 향해서 몇번의 삐그덕 거림에 아려오는 발목에도 찬열은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찬열은 병실 앞에 다가섰다. 환자들의 명단에는 이유비 이 세글자만 적혀있었다. 일인실. 아마 그녀의 남편이 돈을 좀 썼을 것 이다. 찬열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다 멈칫했다. 그녀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기에, 찬열은 그 자리에 멈추어 문 손잡이만 만지작 대고 있을 뿐 이었다.
" 몸 조리 잘해. 우리 아기도 그렇고 당신도 아프면 안되잖아. "
" 알았어요, 들어가 봐요. 회사일 바쁘다며 "
그리고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찬열의 문 앞까지 가까워 지고 찬열은 몸을 돌려 벽을 바라보고 섰다. 남자는 찬열을 보지 못한 건지, 관심이 없는건지 발길을 옮겼고, 남자의 형체가 사라질때까지 찬열은 가만히 서 있다가 조용히 병실로 들어갔다. 여자는 몸이 무거운지 침대헤드에 기대어 있었다. 이불에 가려져 있어도 산 처럼 볼록한 배는 분명히 임신 말기의 산모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눈을 굴려 찬열과 마주친 그 여자는 웃으며 손짓했다. 찬열은 그 행동에 순순히 따라 여자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무거운 침묵이었다.
" 찬열아, 그 사람 봤어? "
여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찬열에게 물었다. 찬열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자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꽃병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좋아하던 분홍색 장미가 여러송이 꽂혀있었다. 아마 남편이 해주었을거다. 그 남편은 여자를 많이 사랑하니까. 그리고 아이는 그 여자와 남편의 결과물이니까. 여자는 또 생긋 웃더니 찬열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에 갖다 대었다. 찬열이 바스락 거리며 떨어지려 할 수록 여자는 찬열의 손을 잡은 제 손에 힘을 더 주어 배에 밀착시켰다.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에 결국 찬열은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여자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빨갛게 물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고 찬열은 그 자리에 서 서 멍하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잠시 당황하더니 그래도 웃었다. 많이 놀랬나보구나, 하긴 이런 적은 처음이겠지? 여자의 말에 찬열은 주먹을 쥐고 잘게 떨었다.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머리는 하얘졌다. 눈을 질끈 감고 찬열은 무겁기만한 발걸음을 떼어냈다. 찬열이 예상하지 않아도 여자의 행동은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만삭의 몸을 일으켜 찬열을 뒤에서 껴안았다. 찬열의 등에서 쿵쿵 거리는 고동소리와 여자의 작은 심장소리가 미묘하게 느껴졌다. 찬열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여자를 마주했다. 여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져 병원카펫을 적시고 있었다.
" 이러지 마세요, 선생님. "
여자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찬열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걸었었다. 그러다가 발걸음이 닿여 멈춘 곳은 자신의 보금자리였다. 퀘퀘한 먼지가 풀썩이는 지하계단을 내려와 낡은 쇳소리가 마주쳐 달그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냉기가 도는 그 반지하에서 찬열은 쓰러지듯 누웠다. 몸을 옆으로 뉘여 새우처럼 웅크렸다. 그리고 찬열은 흐느꼈다. 꺽꺽대며 눈물을 토해냈다. 작은 찬열의 얼굴을 지나 눈물들은 바닥으로 내려 흘러갔다. 그리고 그 눈물들은 커다란 강이 되어 찬열을 기억 속으로 삼켜버렸다.
찬열의 기억 속에는 딱 세가지의 행복했던 추억이 지배하고 있다. 첫번째 가족끼리 다함께 간 가족여행 두번째는 백현이와의 현재 세번째는 바로, 그 여자와의 이야기. 유비와의 첫만남은 학교에서 였다. 찬열의 중학교 시절 남중이였던 터라 새로 오는 여자교생에 대해서는 크나큰 충격과 소문의 시작이었다. 예뻐? 응 예쁘데. 몸매는? 끝장난데 와아 그럼 대박이다! 내가 교생 꼬실거니까 다들 넘보지 마. 어느 사춘기의 절정인 남학생들의 대화였다. 찬열은 썩 관심이 없었다. 교생이 온게 한두번도 아니고 뭘 그리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며 중학생이던 찬열은 그렇게 무심히 생각했다. 새로온 교생 유비는 미술담당이었다. 미술선생의 환상답에 유비는 긴 검정 생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 가까이서 있으면 향긋한 좋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무심했던 찬열의 호기심도 건들이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유비는 착했고 어느 선생들 못지않게 열정이 넘치던 교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비가 수십개는 될 법한 스케치북과 파레트를 들고 힘겹게 복도를 지나가는 모습을 본 찬열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유비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유비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유비와 찬열이 가까워진 계기였다. 매일같이 남아서 유비의 일을 도와주고 유비의 퇴근을 기다려 밥을 먹으러 가고 누가 봐도 제자와 선생의 사이라고는 믿지 않을 스킨쉽과 말투가 결국에는 학교에서도 소문이 나버렸다. 제일 결정적인 건 유비와 남자가 모텔로 향하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리고 학교는 뒤집어졌다. 제자와 교생의 사랑이라니! 이게 말이나 된답니까. 학부모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처리해버립시다. 박찬열도 까져가지고는 어디 순진한 교생을 꼬셔? 니가 그러고도 학생이야! 여러차례의 손찌검과 몽둥이질이 찬열을 닦달해왔다. 어느새 입술은 터져버린 건지 피가 새어나왔다. 그래도 한 남선생은 찬열의 복부를 걷어찼다. 찬열이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제서야 출근한 유비는 이 상황에 눈 앞이 캄캄해 졌다. 여러 선생들의 눈빛과 찬열의 모습 그리고 사회에서 바라보는 내 미래. 유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선생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경멸의 눈빛에 유비는 더 이상 대항할 수 도 없었다. 그렇게 바닥을 보며 위태롭게 서 있는데 한 선생이 유비의 얼굴에 사진을 던졌다. 유비의 뺨에 맞고 추락한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여자는 유비가 맞았지만 남자는 찬열이 아니었다. 돈 때문에 억지로 교제한 남자였다. 실제로 유비가 사랑했던 건 찬열이었으나 유비의 집안사정은 넉넉하지 못했었다. 자신의 미술을 위해 집안이 어려워 진것을 안 유비는 돈이 필요했다. 사랑하지만 어리고 힘없는 찬열보다는 돈이 많고 자신을 넉넉하게 해 줄 사람이 유비에게는 필요했었다. 찬열을 지독하게도 때리고 괴롭히던 남선생이 결국 쓰러진 찬열의 꾸겨져 핏물이 물든 와이셔츠를 우악스럽게 잡아 올렸다.
" 말 해. 니가 교생한테 먼저 접근했지? "
찬열은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고 싶었으나 너무 맞은 모양인지 퉁퉁 부은 입술에는 낮은 신음소리만 들끓었다. 유비는 왈칵 눈물이 나올 것 만 같았다. 여러 선생들의 혀차는 소리와 저래갖고 무슨 선생을 하겠다고 발랑 까졌느니 학생과 다를게 없다느니 비난의 소리는 거세졌고 떨리는 손으로 사진만 만지작 거리던 유비는 그 사진을 꾸겨버렸다. 그리고 말을 하려고 했다. 이 사진 속 남자는 찬열이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교생자리는 위태위태했다. 만약 학생과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다른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유비는 결국 말했다. 이게 사실이 아니에요. 이 사진 속 남자는 찬열이…
" 맞아요. 찬열이가 먼저 저에게 모텔로 가자고 했어요. "
유비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쫓기듯 빠져나왔다. 찬열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매타작을 맞고 있었다. 멍한 찬열의 눈이 맞은 편 시계에서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경멸에 찬 눈빛에서 그리고 복도로 이어진 창문으로 보이는 유비의 뒷모습으로 떨어졌다. 찬열은 시야가 흐려졌다. 유비의 발자국 소리만 복도에 울렸다.
징계 사회봉사 40시간 출석정지 7일. 찬열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유비의 일도 묻고 싶었으나 자신을 쏘아보는 남선생의 기에 눌려 우물쭈물 입만 때보이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문을 열고 복도를 나와 자신의 반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찬열이 걸을때마다 집중되는 시선과 여러 수군거림 소리는 충분히 찬열을 힘들게했다. 그래도 찬열은 애써 위로했다. 자신의 받은 만큼 유비는 그거의 두배 아니 세배를 받을거라고, 오히려 유비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마도 어린 교생의 선택으로써 찬열을 이용한게 이해가 된 터 였다. 찬열은 교실로 다다라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찬열의 뒤에서 여러 남학생들의 장난끼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 야 그 교생 나도 따먹고 싶다. 존나 예쁘잖아. "
" 박찬열 저 새끼가 뭐가 좋다고 교생이건 여자애들이건 환장하냐. 그렇게 테크닉이 좋나? "
히히덕 대는 웃음소리와 자신과 유비를 비하하는 말들 그리고 소문들. 찬열은 고개를 돌렸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내려고 할 수록 그 소문들은 찬열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오는 듯 했다. 그리고 교무실을 지나쳤을 때 창문 너머로 보인 유비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찬열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모든게 멈추어 버렸으면 했다.
백현은 찬열의 집으로 뛰었다. 무슨 일인지 찬열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고 찬열이 사과든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랬다. 얼마다 뛰었을까, 조금 찬 바람에 코가 아려왔다. 백현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숨을 할딱 거렸다. 코가 아려오는게 바람 때문인지, 찬열 때문인지 백현은 헷갈렸다. 그리고 숨을 몇 번 고르고 찬열의 반지하 문을 열었다. 몸을 둥글게 말아 누워있는 찬열의 모습을 보니 백현은 알 거 같았다. 이렇게 코가 아려왔던 건 찬열 때문이라고. 그리고 터벅 터벅 찬열의 곁에 가 섰다. 찬열은 물기가 가득한 눈을 한 번 꿈뻑이더니 몸을 일으켜 백현을 바라봤다. 백현은 애써 입꼬리를 당겼다. 누군가가 백현에게 왜이러냐고 물어보면 왈칵 눈물이 터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 박찬열. "
백현의 부름에 찬열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백현에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백현은 몸을 주춤하더니 그대로 응했다. 찬열은 백현을 벽에 몰아세우며 격하게 백현의 입안을 괴롭혔다. 백현의 타액이 세어 입가에 흐르는 것을 찬열은 입을 떼어내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타액을 닦았다. 그리고 백현과 이마를 맞댔다. 백현의 가파른 숨소리가 찬열의 코 끝을 간질렀다.
" 백현아. "
" 응. "
" 그거 내 애야. "
찬열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백현은 심장이 한 번 크게 덜컹 거렸다. 찬열은 한 번 빙긋 웃고는 백현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백현은 그런 찬열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찬열은 그저 웃었다. 예전의 중학교때의 순수했던 찬열처럼, 그렇게 찬열은 흔들렸다.
" 가 봐. 이제. "
백현은 후들거리며 애써 지탱해오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 앉았다. 찬열은 마치 옥상에 걸쳐진 누군가의 종이 한장 같았다. 언제 사라질지, 그리고 언제 추락할지 모를 그런 존재.
" 그게 너와 내 아이 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백현아 "
찬열의 눈에선 결국 눈물이 차올라 멈추어 있기도 전에 뺨을 타고 뚝 뚝 흘러내렸다. 찬열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너와 내 아이였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
찬열은 결국 주저 앉아 울고 말았다. 백현은 그 모습에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래, 그게 정말 너와 내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할까. 백현의 입속말이 계속 되내어졌다. 찬열에게는 절대로 하지 못할 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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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에서는 백현과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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