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에 진득하게 늘러붙은 교복 셔츠가 제 손을 타고 잔뜩 먹은 물을 토해낸다. ...아. 찝찝해. 눅눅하게 마른 잇새로 옅은 신음소리가 튀어나온다. 비 많이 오는데... 오늘따라 요란하게 울리던 핸드폰도 말썽이다. 혹여 아는 친구 하나 보이지 않을 까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아이들은 모두 제 목적지를 찾아 발길을 돌린지 오래였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정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여주는 한 손에 쥔 핸드폰을 거칠게 치마 주머니로 밀어넣었다. 쥐어 짠 셔츠 자락 끝에 고인 물이 제 발 코에 스며든다. 모아니면 도. 버스 정류장까지만 뛰어가자. 여주는 그렇게 조금이라도 가릴 심산으로 깍지 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들었다. 하나 둘 셋하면 뛰는거야. 하나, 둘 …
"비 많이 와."
...
"이거 쓰고 가."
순간 깍지 낀 두 손이 낯선 체취에 힘없이 풀려 내려갔다. 제 팔을 붙잡던 낯선 손은 금새 목적지를 바꿔 달아난다. 동시에 정처없이 허공을 맴도는 손아귀 안으로 조그마한 투명우산이 굴러들어온다.
"어..어. 고마워. 근데 너도.."
...우산 없잖아.
펼쳐진 채 방황하던 우산 속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뛰어가는 김정우가 보였다.
썸머 스노우
(Summer snow)
...어제 김정우 학교 왔었대. 헐. 진짜? 대-박. 나 왜 못 봤냐! 하교 시간 조금 지나고 나서 매니저랑 같이 왔다던데. 이제 졸업할 때 까지 출석 찍고 간다더라.
…내가 헛 것을 본 건 아니였네. 어제 마주한 김정우의 등장이 학교에 미친 여파는 굉장했다. 잔뜩 들뜬 마음으로 복도를 횡단하는 여학우들부터 어젯 밤 갑작스레 화제의 인물로 오른 녀석을 시샘하는 남자 무리들까지. 아침부터 점심까지 제 귓가를 쑤셔박는 세글자가 그리 반갑지 못한 나는 쥐새끼마냥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던 그 뒷모습이 아른 거리는 게...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어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제 머릿속을 가득 울리면 몸을 돌려 도망가듯 달아났다. 그럼에도 내심 제 가방속에 든 투명우산이 신경쓰인 여주였다.
"어제 김정우 왔었다던데."
"그 얘긴 이미 수천번은 듣고왔어."
아 그래. 그럼 말고.
제 옆자리에 앉아 우걱우걱 빵을 씹어대던 동영은 곧 흥미를 잃은 듯 내 앞에 놓여진 딸기우유로 타겟을 돌렸다. 그 빨대 내가 마시던 건데. 우리 사이에 뭘 새삼스레. ...방금 네 말 굉장히 기분 더러웠어. 우리 사이라고 하니까 뭐라도 된 거 같잖아. ...진짜 싫다 너.
"나 근데 어제 김정우 봤어."
"어디서? 걔 학교 끝나고 애들 다 빠질 때 쯤 왔다며. "
"나 이번 달 당번이잖아. "
..아. 그렇네. 어제 비 많이 왔는데 어떻게 집 갔냐? 너 우산도 안 들고갔었잖아. 나한테 전화하지.
전원 나갔었어.
...미안. 다신 너 버리고 피씨방 안 갈게.
괜찮아.
"근데 김정우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새학기때 전학와서… 한 달 정도 봤나? 그땐 연습생인 것도 몰랐는데."
...그러게. 나 아직도 걔보다 잘생긴 애 못 봤잖아.
썸머 스노우
(Summer snow)
"..여기 우산. 그때 고마웠어."
김정우. 동글동글하게 쓰여진 이름표가 손잡이 끝에서 달랑거린다. 종례 전 까지만해도 김정우의 기나긴 부재를 알리듯, 정우를 둘러싼 아이들에 우리 반은 그야말로 유명 모 아이돌 콘서트장 못지 않은 열기를 띄고 있었다. 여름 방학 보충을 코 앞에 둔 고삼들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김정우는 몇 달 사이에 더 훤칠한 떡대를 들고 나타났다. 사진 한 장만. 싸인 좀 해주라.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안 나와서 .. 우리 반 친구니까 번호 좀 … 그때 아마도 여주는 어쩔줄 몰라하는 정우를 지켜보다 교실을 벅차고 동영에게 향했을 것이다.
"...아."
..안 돌려줘도 괜찮은데.
작은 탄식과 함께 머뭇거리는 손이 제가 건낸 우산을 붙잡았다. 숨소리만 맴도는 텅 빈 교실에 나와 김정우 둘 뿐이라는 명제가 사실임을 증명한다는 것은 제 심장을 쿵쿵 두드리기에 충분한 문제였다. 물론 밖에 김동영이 기다린다는 전제만 없다면 말이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여주는 책상 위에 올려진 가방을 들어올렸다.
"저,저기 여주야.."
자..잠깐만..
제 덩치만한 가방을 맨 여주는 정우에게 어색하게 손인사를 하고, 그를 지나쳐 교실 문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길 때 였다. 문 앞에 서 교실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제 가방을 살살 끌어당기는 정우에 뒷걸음질 치며 그를 돌아봤다.
"내 친구가 기다려서 나가봐야 하는데... 더 할 말 있어? "
..아...
그의 울렁이는 목울대가 초조함을 알렸다. 제 가방 끈을 쥔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우는 꾹 닫힌 입술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그게. 할 말이... 아 근데 내가 당겨서 놀란 건 아니지..? 미안..
"....너 원래 이런 성격이였니? 아.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니고.."
미..미안. 원래 안 이러는 데...지금 내가 좀 떨려서... ...뜬금없이 왜 떠는데?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한데? 히익..!
"....너.."
"..아니 그게...괜,괜찮으면 번호 좀..."
이번주는 학교를 모,못 나와서.. 혹시 공지사항있으면 알려주라... ...그거 하나 말하려고 이렇게 떨어..? ..미,미안.. 아니 자꾸 뭘 미안하다는 거야. 휴대폰 줘. 내 번호 입력해줄게. ...고마워.. ..근데 아까 반장한테 네 번호 주지 않았어? ..안 줬는데'ㅅ'?.. 아님 말구.
제목이 썸머 스노우인건.....스포같으니까 말 안해야징.
데뷔가 코 앞인 연습생 정우 X 일반 고닥생 당신
너드 김정우... 여주 앞에서만 ㅂ바보되는...그런 거... 사실 아까 반장이 공지사항 알려주겠다고 이미 번호 받아갔지만.... 정우: 빼애액!!!!아냐 여주 번호 갖고싶어 'ㅅ'..
그러나..벗뜨....알고보니 정우는 전학 첫 날 부터 여주의 어쩌구저쩌고(아직 생각 안 해놓음 ㅎㅎ)에 반ㅎㅐ서...... 학교 안 와도 되는 건데 온다고 고집 부린거고....사실 여주 이상형 너드+울보라서 맞춰주는 계략공......ㅋzzzz대 반 전 적 모 먼 트 ..... 여주 앞에서 너드인 척 하는 데...그런 모습 보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재현...
"너...너.. 드디어 미쳤냐?"
"왜. 진짠줄 알고 쩔쩔매는 게 깨물어 주고 싶잖아."
귀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