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by little
김종인 도경수
03
"고기 먹자."
경수는 몸을 비켜 백현을 거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왠 고기? 갑자기 제 집으로 들이닥친 백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하던 경수가 백현의 손에 들린 마트 봉투 안을 들여다봤다. 식탁에 짐을 놓은 백현이 경수의 입에 물린 담배를 낚아채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지졌다. 또, 또 담배지. 백현의 말에 경수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만지며 웃었다. 글을 쓰던 중이라 딱 세개 째 피고 있었다. 저건 핀지 얼마 안됐는데. 경수가 아직 길게 남은 담뱃대를 아쉬운듯 쳐다봤다. 그러다가 백현이 꺼내는 고기와 술에 시선을 돌렸다. 꽤 많은 양에 혀를 내두른 경수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백현이 술병들을 냉동실에 넣었다. 백현은 항상 술들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살얼음이 살짝 얼었을때 꺼내 마셨다. 경수는 이가 시렵다고 싫어했는데, 백현은 경수가 그럴때마다 아저씨라고 놀려댔다.
"뭐가 이렇게 많냐."
"와서 보니까 양이 많네. 세훈이 불러."
"세훈이?"
백현이 고개를 끄덕임에 경수가 핸드폰을 꺼냈다. 세훈이 기숙사를 신청해 요즘은 몇번 본적이 없었다. 이번참에 얼굴도 보고 좋겠다고 생각한 경수가 세훈을 찾으려 전화번호부를 뒤지다가 앞쪽에 있는 종인의 이름에 손을 멈췄다. 둘이 같이 오면 좋을텐데. 경수는 며칠전 만났던 종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 백현의 집에서 만난 이후로 한번도 본 적도, 마주친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연락을 한 것도 아니였다. 종인이 친해지고 싶다며 번호를 교환하자 해서 그렇게 했는데, 연락은 오가지 않았다. 몇번 문자를 보내보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이번엔 세훈을 핑계로 한번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경수가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백현을 불렀다. 야.
"…종인이도 부를까?"
"종인이? 뭐 그러던가."
"…그래."
"친해졌어?"
"아니 뭐…. 그냥."
말을 아무렇게나 얼버무린 경수가 세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 신호음이 들리고 이내 여보세요,하는 세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경수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밝은 목소리가 퍽 반가웠다. 옆에서 종인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역시 함께 있는 모양이였다. 게임을 하러 종인의 집에 자주 들린다던 세훈의 말이 떠올랐다. 작가님이야? 세훈에게 묻는 종인의 낮은 목소리에 경수는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전 세훈이 말하기를, 종인이 백현의 집에서 경수와 만나고나서 급속도로 경수에게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다. 원래는 제가 종인에게 경수에 대한 얘기를 하면 종인은 경수를 '너네 형'이라고 칭했는데, 최근부터 갑자기 '작가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세훈은 닭살이 돋는다고 했다. 형, 오늘 김종인 그새끼가 형이 도경수 작가인걸 왜 말 안했냐고 짜증내더라. 난 뭐 그새끼가 연애소설 좋아하는 취향인 줄 알았나, 뭐. 투덜대며 말하던 세훈에 경수는 그냥 흐흐 웃기만 했었다.
"밥 먹었어?"
-아니, 이제 먹으려고. 근데 김종인 집에 라면밖에 없어.
"백현이가 고기사왔어. 종인이랑 우리집 올래?"
세훈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콜을 외쳤다.
경수는 술을 마시는것을 즐기지도 않았고, 술을 잘 마시지도 못했다. 백현은 술 마시는것을 좋아했지만 술에 약했다. 경수는 술에 취해 아무말이나 내뱉는 백현을 보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백현은 술에 취하면 아무에게나 붙어서 애교를 부렸다. 원래도 워낙에 유순한 성격과 쳐진 눈에 귀엽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스스로 애교를 부리는건 아니였다. 그러나 술에 취한 백현은 노골적으로 애교를 부려서 귀엽다기보단 징그러웠다. 그게 경수를 제외한 사람들에겐 잘 먹히는지 사람들은 백현에게 술을 몰아주곤 했다. 세훈아, 넌 왜이렇게 잘생겼어? 백현이 세훈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세훈이 실실 웃었다. 형도 잘생겼어요. 세훈 역시 취한 모양이였다. 평소 틱틱대기만 하고 서로 칭찬을 하는 일은 없었던 둘이 찰싹 붙어서 친한척을 해댔다. 경수는 시선을 거두고 캔맥주를 하나 더 땄다. 경수는 종인이 있는 쪽으로 고갤 돌렸다. 쇼파 밑에 기대 고개를 조금 꺾고 예의 그 나른한 얼굴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졸려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멍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섹시한 것 같기도 하고…. 경수는 왠지 갑자기 술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어느새 곯아떨어진 백현과 세훈을 힐끔 본 경수가 무릎걸음으로 종인의 옆으로 가 앉았다. 술 잘 마시네. 세훈이는 못마시던데. 경수의 말에 종인이 느릿하게 고갤 돌렸다. 입을 조금 벌리고 경수를 쳐다보던 종인이 혀를 내 제 입술을 축였다. 이내 눈을 깔며 수줍게 웃었다. 경수는 제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종인도 그런가싶어 종인의 귀를 봤을때, 역시 빨갛게 익어있었다.
"…저도 잘 못마셔요."
"으응, 나도 그냥…."
"…의외예요, 술도 담배도 못하실 줄 알았는데."
"으음…그런가."
"그냥, 글 읽었을땐 그랬어요. 엄청 순수할 것 같다고."
경수는 왠지 부끄러워져서 애꿎은 뒷머리만 슥슥 만져댔다. 그렇게 순수하지 않은데. 역시 환상을 깬건가. 경수가 조금 웃으며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종인이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힐끔 경수를 쳐다봤다. 무릎을 세워 팔로 안은 폼이 귀여웠다. 술을 마시는 빨간 입술도, 커다랗고 맑은 눈도 모두 예뻤다. 종인은 제가 취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취하지 않은거라면, 이렇게 모든게 예쁘게 보일리가…. 종인은 살짝 머리를 흔들고 경수를 쳐다봤다. 경수의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작가에 대한 환상은 당연히 가졌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며 어색하게 웃던 경수의 첫 모습은 제가 생각해왔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종인은 그 모습을 보고 '도경수'라는 이름을 떠올렸었다. 이상하다, 정말로…. 갑자기 취하는 것 같은 느낌에 종인은 맥주를 한모금 넘기고 제 입술을 핥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다시 처음봤던 경수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던 모습. 어딘지 모르게 어른같았던, 그리고 섹시했던, 자기전에 항상 떠올라 저를 괴롭힌, 참지못한 종인이 끝내 뜨거운 숨을 내뱉게 만들었던, 그 첫 모습. 종인이 쭉 뻗고있던 무릎을 세웠다.
"아아…. 취할 것 같다."
"……."
"기분 좋다."
경수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뒤로 젖혀 쇼파에 기댔다. 종인이 경수의 하얗게 드러난 목선을 잠깐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저를 쥐고 흔들었다. 다시 맥주를 한모금 삼켰다. 차라리 취해서 세훈처럼 잠들어버리면 나을텐데, 쓸데없이 주량이 쎘다. 종인은 뜨거워진 제 귀를 손으로 벅벅 비볐다. 그 모습을 보던 경수가 흐흣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귀 빨갛다."
경수가 종인의 귀로 손을 가져갔다. 종인이 막을새도 없이 긴 손가락이 귓바퀴를 따라 건드렸다가 귓불을 만졌다. 취하긴 취한 모양이였다. 평소에는 하지 못할 과감한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 나가버렸다. 종인이 놀란 듯 몸을 움찔거리다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경수의 손을 거부하진 않았다. 목까지 빨개진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경수가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부드러운 귓불을 쓰다듬었다. 기분좋다. 헤헤거리며 바보같이 웃은 경수가 손을 내려 종인의 목을 쓰다듬었다.
"…여기도 빨개졌어."
경수는 제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종인의 피부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였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종인이 고갤 들었다. 참기 힘들었다. 경수의 손을 잡아내린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만 가볼게요."
"…늦었는데 자고 가도 돼."
"아니, 그냥… 갈게요."
경수의 말에 당황한듯한 표정을 한 종인이 급하게 외투와 지갑을 챙겼다. 자고가라니, 의도는 아니였겠지만 위험했다. 종인은 경수의 나른하게 풀어진 얼굴을 잠깐 쳐다보다가 꾸벅 고갤 숙였다. 경수의 집을 급하게 나오면서도 종인은 경수의 손길이 계속 생각났다. 그리고 제가 잡아내렸던 하얗고 부드러운 손. 종인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돌겠다, 눈풀린것도 예쁘네.
너무 늦게 올렸나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
이번편은 귀여운 종인이입니다 둘은 언제쯤 이어질까여 답답!!!!!!!!!!!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댓글 피드백 꼭 부탁드려요!!! 엑소만세!!!!!!!!카디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