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캠퍼스 로망스 :: 03
The Campus Romance :: 03
더 캠퍼스 로망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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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학교에 도착했을 때, 어제 카톡을 주고 받았던대로 정우는 먼저 교실에 도착해있었다. 오늘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무리를 지어 대화를 하는 애들은 이런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지만 내가 정우의 옆자리에 앉자마자 조금씩 돌아보는 시선들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왜 쟤가 저길 앉지, 둘이 뭐 있나? 방금 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했던 교실은 수근거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정우는 내가 자리에 도착하자 가방을 치우며 ' 아침 안 먹었지? ' 하곤 편의점 샌드위치를 꺼내 한 조각 나눠주었다. 어떻게 알았어? 내 물음에 정우는 ' 글쎄, 뭔가 그럴 것 같아서. ' 웃으며 답했다. 샌드위치를 먹는 내게 물을 주며 자연스럽게 내 자리에서 생긴 쓰레기들을 치우는 정우는 계속해서 그에게 설레게끔 만들었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던 내 눈에는 정우밖에 보이질 않았다. 매일 듣던 수업도 정우의 옆에서 들으니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9시 수업은 시작하자마자 졸기 바빴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필기를 했다. 오히려 연애를 하고 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잘 듣나 싶던 정우가 턱을 괸 상태로 꿈쩍 않는 모습을 보고 쉬는 시간에 필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교수님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녹음까지 해가며 공부했다. 수업이 끝나면 정우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내 교과서를 가져갔다. 나는 그 옆에서 교수님이 했던 말들을 그대로 읊어주며 정우의 필기를 도왔다.
" 아, 오늘 학식 완전 쓰레기야. "
" 그럼 밖에서 먹을까? "
" 응. 나 아까 학교 오면서 봐둔 곳 있으니까 거기 가자. "
" 그래, 그러자. "
내 대답을 듣자마자 뒤를 돌아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정우를 보며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을 나와 화장실을 가다 반 친구를 만났다. 오티 때 처음 말을 튼 친구였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리자 그 친구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먼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뒤로 줄을 서있던 내게 손을 씻던 다른 친구가 물었다. 인사 정도만 하고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먼저 ' 맞다, 여주야 너 정우랑 사겨? ' 라고 물어오는 친구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 헐, 진짜였구나. 대박. ' 그 친구는 대박이다, 를 연신 남발하며 화장실을 나갔다. 괜히 머쓱해서 어깨를 주무르는데, 인사를 했던 친구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걸어왔다.
" 사실 쟤가 정우 좋아한다고 반단합 때 그랬었거든.. "
" ...아, 그래. "
" 뭐, 그냥 그렇다는 거야. 넘 기분 나빠 하진마. "
" 아냐, 기분 하나도 안 나빠. "
" 그럼 다행이고. "
친구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화장실을 나갔다. 왜 나한테 그런걸 말해주는 걸까. 괜히 말해주진 않았을텐데.. 잠시 사라졌던 걱정이 마구마구 솟아올랐다. 그것은 화장실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정우와 밥을 먹을 때에도, 오후 수업을 들을 때에도, 끊임없이 머리에서 맴돌며 결코 사라지질 않았다.
08
' 집가서 꼭 전화해. 안 하면 내가 할거니깐. '
가게로 돌아가기 전, 너무나도 티나게 과대를 빤히 바라보고 등을 돌리던 정우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렸다. 정말로 전화를 해야하는건가. 바보처럼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바닥에 앉아 몇 분을 고민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뿌리치질 못하는걸까. 내가 이러는걸 정우는 이미 다 알고있겠지. 걔는 눈치가 정말 빠르니까.. 어지러운 마음에 두 눈을 꾹꾹 눌렀다. 그러다 정우보다 먼저 연락을 해야할 사람이 과대라는걸 깨달았다. 나 때문에 먼 길을 왔다가 다시 가야했지만 끝까지 괜찮다며 미소 짓던 과대가 생각이 나 전화번호부를 눌러 과대의 번호를 찾았다. 통화를 누르려다 차마 그러진 못하고 메세지를 남기기로 했다. 그런데 과대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
-선배 잘 들어가셨죠?
" 아, 네. 방금 연락하려 했는데.. 정말 고마워요. "
-아니에요. 오늘 여러모로 놀라셨을텐데 푹 쉬세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저한테 바로 전화주시구요.
" ..아.. "
-전 괜찮으니깐요. 알겠죠?
" ....네. 정말 감사드려요. 과대분.. "
-아이.. 과대라뇨, 민형이라고 불러주세요. 과대는 너무 듣기 오글거려서..
" 아..네. 민형씨. "
-네. 들어가세요~ 먼저 끊으세요!
정확히 3초를 센 후에 통화정지 버튼을 눌렀다. 차마 계속해서 먼저 손길을 내미는 그의 말에 섣불리 대답을 못하겠다. 통화가 끝났지만 한참을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과대 라는 단어 뒤에 [민형] 을 적다가 다시 지우길 반복했다. 하지만 또 다시 전화가 오는 듯 편집화면이 사라지더니 익숙한 번호가 상단에 떴다. 나는 그 번호가 누구의 번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전화를 받기가 망설여졌다. 긴 진동 끝에 전화가 끊겼으나 전화는 다시 걸려왔다.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는 사이에 전화가 끊겼다. 세 번째로 걸려오는 전화에 체념한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이번에도 안 받았으면 경찰에 신고하려 했어. ' 정우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받은 것이었다. 매번 느끼는 건데, 정우는 정말이지 정우다운 사람이다. 과대와 통화할때랑은 달리 정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런 말이 없는 나를 기다리다 정우는 ' 집이야? ' 물었고, 나는 그제서야 응, 짤막하게 답했다. ' 내가 말했잖아, 안부 정도는 묻고 지내자고. ' 정우랑은 작년을 마지막으로 올해들어 처음 통화를 한다. 전화로 듣는 정우의 목소리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말짱한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술에 잘 취하지 않고. 술을 잘 마시진 않지만 절대로 취한 모습을 보이길 싫어하는 성격이라, 신경을 써가며 조절하고 적당히 사람들의 요구도 뿌리칠 줄 아는 정우였지만. 그렇지만 그런 정우도 한 번 쯤은 취했던, 그런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늘을 제외한 정우와 했던 마지막 전화를 한 날이었다.
" ...뭐하게, "
-잘 안 들려.
" 그런거.. 물어서 뭐하게, "
-...너 손 다쳤잖아.
" ... "
-그러니까 당연히 걱정돼서 그러는거지. 친구로써.
" ... "
-이정도면 됐어?
" ... "
-얼른 자, 끊을게.
뚜-뚜-뚜- 어두컴컴한 좁은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속에서 긴 시간 규칙적인 소음을 듣던 나는 아직 핸드폰을 귀에 댄 상태로 잠금 버튼을 눌러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후 무릎을 끓어안고 침대에 기대 앉았다. 걸리적거리는 밴드가 어설프게 붙여진 오른쪽 손바닥을 보다가,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09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 5시경에 겨우 잠이 들었던 나는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씻고 옷을 입고나서 반짝거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쉬시에게 전화 두 통, 메세지 1개, 카톡 여러개가 와있었다. 급한 마음이 앞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쉬시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안가 쉬시가 전화를 받았다. ' 럭키 걸, 오늘 교수님 늦어. ' 그 말을 듣고 다행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긴체 풀려있던 신발끈을 정리하고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급하게 택시 안에서 화장을 하고 교실로 들어가기 전 쉬시에게 줄 초콜릿을 사며 잠시 카운터에서 머뭇거리다 똑같은 걸 하나 더 골랐다. 교실 뒷문을 열자 사람들은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수업 첫 날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있는 쉬시를 보니 왜인지 마음이 놓였다. 나를 발견한 쉬시는 ' 늦잠잤어? ' 물으며 패딩을 치웠다. 대답 대신에 초콜릿을 책상에 올려두자 약간은 지루함이 남아있던 쉬시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정말 애같네, 생각했다.
" 내꺼? "
" 응. 초콜릿 좋아해? "
" 응 완전. 최고야 누나. "
" ...내가 누나야? "
" 몰라. 쉬시, 나이 상관없어. "
" ...그래. "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빠르게 초콜릿 껍질을 깐 쉬시는 단숨에 절반을 먹어버렸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잘 먹는 사람이다. 저기, 대각선으로 보이는 과대의 뒷모습을 보며 가방 안에 남은 초콜릿을 만지작거렸다. 나중에 주지 뭐, 입술을 깨물다 가방을 내려놓고 수업 준비를 했다. 얼마 뒤에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교수님도 작년에 뵙던 교수님인데, 토론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이었다. 예상은 했다만 어김없이 한 시간 수업을 하시고 자리를 옮겨 토론을 지도하셨다. 첫 수업 날 첫 토론 주제로 교수님은 작년과 같이 ' 결혼 전에 동거 찬성/반대 ' 주제를 던져주셨다. 나와 쉬시는 맨 뒷자리에 앉은 탓에 이미 짜여진 조에 추가로 들어가게 되었고, 교수님은 과대가 있는 조를 가리켰다. 나와 쉬시는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과대와 부과대를 제외한 4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가볍게 인사부터 시작했다.
" 먼저 동거 찬성 하시는 분? "
" 누나, 동거 뭐야. "
동거가 무엇인지 모르는 쉬시에 나는 더듬더듬 그 의미를 설명했다. 쉬시는 ' 아아- 알았어. ' 하더니 ' 난 찬성. ' 하고 손을 들었다. 그럼 나도 찬성! 부과대는 쉬시에게 하이파이브를 시도했지만 쉬시는 못 본건지 지나쳤다. 뻘쭘해하는 부과대에게 과대가 먼저 손바닥을 내밀었다. 볼수록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모자란 반대 쪽에 들어가게 되었다. 먼저 동거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의견부터 듣기 시작했다. 제각각 동거에 대한 생각과 그 이유를 말하는데 듣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사실 동거를 막 찬성하는 쪽은 아니었는데,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동거를 당장 찬성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같은 동거 반대 쪽인 과대는 조금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 뭐.. 솔직히 동거를 막 나쁘게 생각하는건 아니고, 헤어졌을 때 좀 서로 안 좋으니까.. "
"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
" 그럼 쉬시 너는 여자친구가 전에 다른 사람이랑 동거했다고 해도 괜찮아? "
" I don't care. 다 지나간 일이야. "
" 이야 쉬시 쿨 가이네. "
"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불쑥 내게 질문을 해오는 부과대에 어깨를 움찔했다. ' 네? ' 집요한 그녀의 눈빛을 보니 다시금 손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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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네 둘이 거의 동거하다시피 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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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놓고 결혼 안 하면 쪽팔려서 어떻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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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론 임신도 몇 번 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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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한테 미친 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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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같아
스멀거리며 내 머릿속을 잠시하는 그것들에 두 귀를 막고 고개를 숙였다. 여기저기서 내 팔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리거나 한다. 아니야. 아니야. 다 아니라고. 괴로움은 점점 더해져갔고 숨이 가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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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해, 김정우한테 다 말하기 전에.
종국에 영원히 잊고 싶은 그 날의 <악몽>이 겹치면서 참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03-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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