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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yss 전체글ll조회 639


 

 

 

너를 삭제

 

 

 

 

 

너와 헤어진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처음과 달리 점점 하루를 보내는 게 어려워진다.

익숙해져야지, 익숙해질 거라 스스로를 다독여보아도 그게 잘 안 된다.

아직도 지우지 못한 너의 번호를 자꾸만 손끝으로 어루만진다.

 

내 하루는 너를 그리며 시작된다.

눈을 뜨면, 너와 함께 잠들었던 침대 위에 내가 누워있고 미처 치워버리지 못한 너의 베개에선 아직도 너의 향기가 난다.

씻으러 화장실에 가면 너의 칫솔, 네가 썼던 비누, 네가 사다 놓은 바디 클렌저.

온통 너를 만들었던 물건들로 가득한 곳에서 나는 또 네 생각을 한다.

 

자꾸 떠오르는 너를 피해 부엌으로 가 보아도 너의 흔적은 여기 저기 남아있다.

네가 맸던 앞치마, 네가 조금 서툰 글씨로 써놓았던 메모들, 네가 요리하던 이 곳.

여기서도 난 별 수 없이 너를 떠올린다.

 

거실에도, 현관에도, 침실에도, 화장실에도, 부엌에도.

온통 너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너를 잊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를 잊어야 한다.

우린 헤어졌기에.

 

 

오늘도 술을 마시고 만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도 짙어지는 그리움에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지 못한다.

 

"이럴 거면서 뭐하러 헤어지자고 했냐."

 

빈 술잔을 채워주며 명수가 말했다.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서 내가 눈물 나게 힘들어 했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준, 고마운 놈이다.

 

"...그러게. 요즘 왜 그랬을까 이런 생각 밖에 안 든다."

 

홀짝. 털어놓은 소주가 달다.

술이 달면 취한다던데. 오늘은 꽤 취할 모양이다.

 

"붙잡아 이 미련한 놈아. 아직 안 늦었어."

 

한 잔 더 따르려는 내 손을 잡아 내리며 명수가 말했다.

붙잡으라고? 내가 어떻게.

 

"못 해."

"왜?"

"내가 가라고 한 주제에 누굴 붙잡아.

내가 등 떠밀어 보낸 주제에 뭘 다시 돌아오라 그래.

상처는 다 줘 놓고, 걔한테 염치없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착한 사람이었다.

늘 웃고, 다정하고, 말도 참 예쁘게 했다.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았지만 말투나 행동은 더 어린 꼬마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에는 배려가 녹아 있어서 내가 너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가 더 많았다.

늘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놈한테 매여서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도 못하면서도 헤헤 거리면서 괜찮다고 말하던 앤데....

못 해. 아니, 안 해.

돌아오란 말... 절대 안 해."

 

그래서 미안했다.

더 잘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만큼 충분히 재능이 있는 사람인데.

나 때문이 도태되는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늘 아팠다.

자기는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너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너를 보냈다.

마음이 변한 척, 그에게서 떠나 버린 척.

그렇게 너를 버리듯 보냈다.

그러고서 이렇게 아파한다.

 

술에 취하면 늘 찾는 곳이 있다.

네가 사는 곳.

밤이 한참 늦은 이 시간에, 아마도 네가 자고 있을 시간에 나는 취했다는 명분을 들고 너의 집을 찾는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너의 집을 바라보면 서 있다 간다.

차마 얼굴을 볼 수는 없어서 네가 사는 집이라도 본다.

대단히 미련한 미련이다.

 

얼마나 너의 집을 보았을까.

골목 어귀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설마, 너일까.

체구나 걷는 모양이 꼭 너 같지만 설마 너일까.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고 있는데 설마 했던 너와 시선이 마주쳤다.

너도 술을 마셨는지 좀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 여전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굳어버린 표정과 차가워진 눈빛.

그러니까 너는...꼭 여전하지만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너를 보자 반가웠던 마음이 쪼그라들고 나는 녹슨 조각처럼 굳어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너는 그냥 나를 지나쳐서 집으로 들어간다.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등 뒤로 쾅 닫히는 문.

하. 한숨이 입 밖으로 비져 나온다.

 

 

아마도 한참을 거기서 서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이 들자 일단 거기를 벗어나보려 아무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걸었다.

 

 

너는 이미 나를 잊고 잘 지내는데, 내 괜한 미련에 나만 이렇게 질척이는 걸까.

새삼 또 미안해졌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너와 헤어지고서도 아직도 핸드폰을 바꾸지 못했다.

너와 사귄 지 꼭 1년이 된 날 기념으로 함께 구입했던 이 핸드폰.

너와 찍은 사진, 너와 주고받았던 문자, 너의 생일이 저장된 캘린더.

하나씩 지워나간다.

먼저, 너의 번호부터 없앤다.

삭제, 하시겠습니까?

 

 

 

YES.

버튼을 꾹 누른다.

너의 이름과 번호가 사라진다.

통화 목록을 초기화시킨다.

혹시라도 남겨져있을 너의 번호를 완전히 지운다.

갤러리를 삭제하고 문자함을 비운다.

헤어지고도 차마 없애지 못해서 매일 밤 하나하나 읽으며 웃기도, 울기도 했던 너와의 간질간질한 추억을 싹 없앤다.

지정해놓았던 기념일, 너의 생일도 모조리 다 지운다.

그렇게 하고나니, 핸드폰에 아무 것도 없다.

텅 비었다.

너는 이렇게도 나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이었구나.

먹먹해져서 또 눈물이 난다.

 

너를 삭제.

나와 함께 했던 너를 삭제.

너를 비우고, 너를 지우고, 너를 없애자 나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너는 이렇게도 내 모든 것을 차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너를 내 손으로, 내 입으로, 내가 보내 놓고 이렇게 울고 있다.

 

한심하고 미련하다.

그러니까, 너 없인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너 없이 살아보겠다고 이런 한심하고 미련한 짓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너를 위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위해서 너 없이 살아보려고 한다.

 

 

 

 

 

집에 가면... 너와 나눠 끼었던 그 반지부터.. 버려야겠다.

 

 

 

 

 

================================================================================================================

이거 호야 동우 맞아요!!!!! !! 이름 안 써서 혹시 모르시는 분 잇을까봐ㅎ

호원이 시점입니닿ㅎㅎ
내일은 동우 시점ㅎㅎㅎㅎㅎ


브금은 캐스커의 너를 삭제
이걸 모티브로 썼으니 브금도 이걸 올려야 마땅하지만 지금 mp3 파일을 찾을 수 없는 고로 내일 올려드림ㅋㅋㅋㅋ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ㅇㅏ 앙대 호원아ㅠㅠㅠㅠㅠㅠㅠㅠ 장동우 너..흡ㅠㅠㅠ 그대다른시점도 어서!!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헐ㅠㅠㅠㅠ 앙대ㅠㅠ
13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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