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빛을 요요하게 뿜어내는 날이 여기저기 물이 고인채로 신음을 흘리는 빙판위를 스칠때마다 흐릿한 상흔을 남긴다. 숨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만큼 숙연한 침묵에 가라앉은 스타디움, 꽉 채워져있는 푸른빛의 좌석에는 오롯이 그녀를 매섭게 주시하는 눈동자들이 자리하고 있을뿐 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무거움, 그리고 박수칠때 떠나는 이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그녀는 찬란하게 비상(飛上)했다. 견고한 발놀림으로 빙판 위를 스칠때마다 그려지는 유연한 곡선, 그리고 여왕의 마지막 무용에 맞춰 함께 이리저리 튀어오르며 춤을 춰주는 파편들까지. 겸손함과 절제의 미덕, 그 누구에게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자애로움을 가지고 있는 여왕은 그러한 덕목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에 더욱 빛나보였다. 아름다운 이별을 예고하는 애잔하면서도 강렬한 음율에 맞춰 그녀는 한참동안 비상과 착지, 그리고 붓으로 그린듯한 유려한 움직임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마침내 세번의 짧은 숨소리와 함께 모든것이 끝나는 순간, 진중해보이던 그녀의 얼굴 위로 한줄기 미소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랜 시절, 자신의 몸을 조금씩 갉아 먹어온 왕좌라는 족쇄, 그리고 종래에 맞아들이는 이별을 통해 그로부터 오던 적지 않은 부담감을 덜었다는데에서 느낀 해방감 탓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그리며 끊임없이 달려오다가 마침내 그것에 도달한 자신에게 선물하는 작은 위로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금빛 광휘를 뿜어내던 해가 심술궂은 메지구름에 의해 그 빛을 잃는 모습을 측은함을 담은 눈초리로 올려다보던 여왕이 여기저기서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탓에 은회색으로 창백하게 물든 자신의 이마를 한번 쓸어내리며 덤덤하게 대답을 내뱉는다. 찬란한 태양빛을 잃은탓에 창백하게 물든 왕좌가 서글프게 일렁인다.
"보여드릴수 있는것은 모두 보여드렸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고독함과 책임감이라는 악마에 의해 평생을 짓눌려온 탓일까, 슬쩍 웃음을 흘리고는 돌아서서 유유자적 사라지는 그녀의 어깨가 유독 쳐진듯이 보인다. 하지만 지쳐보이는 뒷모습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은 높은 자리에 앉아 다른이들 위에 군림하는 이의 모습에 걸맞게 여전히 고상하게 빛을 내고 있었고, 그녀 자신에 대한 자긍심으로 충만해 보였다. 사려깊은 말을 내뱉는 그녀의 입술이 잠시 달싹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 움직임을 멈춘다. 잠시동안 빙판 위를 가로지르다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어 메마른 땅으로 들어서려는 그녀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외침이 들려온다.
"Adios, Regina-!"
"안녕히, 여왕님-!"
그 외침이 시발점이 되었던 것일까, 침통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손가락 끝에 입술을 맞추고는 여왕을 향해 흔들어보이며 목이 터져라 한마디의 말을 외쳐대기 시작한다. Adios, Regina- Adios!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의 행동에 적잖게 놀랐던지 지나치게 무덤덤해보여 비인간적이게까지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인해 흐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형용못할 감정으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눈가와 볼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빙판 위에 여전히 자리한채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행동에 사람들은 삽시간 입을 꾹 다물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머리 위로 불똥이 떨어지기라도 한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자후와 같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새로운 여왕을 원하지 않는다-
더럽혀진 대관식은 그 의미를 잃었다!
광분한 짐승들처럼 날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혼란스런 공간 사이로 슬쩍 미소를 지으며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는 몇 안되는 인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놀랍게도 그런 그들의 얼굴위로 나타난 감정은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긍심과 만족스러움이었기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이들을 보며 눈을 부라린다. 여왕의 대관식이 더럽혀져 그 의미가 퇴색되었음에도 저렇게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는 꼴이라니- 분명 이 일과 연관이 되어있는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빠르게 콧바람을 내쉬던 사람들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하게 변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여왕의 마지막 길을 웃으며 배웅해준 현명한 이들이 내린 간단명료한 결론을 말이다. 비록 여왕이 잠시 그녀의 나라를 비우는 틈에 분명 그녀의 왕조는 서서히 기울겠지만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할 줄 아는 그녀의 뛰어난 판단력이 결국에는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말을 가져올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기에 그들은 말없이 조용히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들의 사랑스러운 군주 자체는 그녀의 사람들을 위해 앞길을 미리 갈무리 해주고 싶다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 하는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비록 앞으로 계속해서 펼쳐질 그녀의 여정에 그들이 보탬이 되어주지는 못할것같다는 생각에 염려되는 마음이 앞서기는 했지만, 상관 없었다. 타고난 강인함과 우아함, 그리고 차분함을 지닌 그들의 여왕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난제들을 차근차근히 풀어왔으니까. 그런 그녀를 지금껏 지켜봐온 그들은 그저 그들의 여왕이 앞으로도 계속 'Stella (하늘의 별)' 이라는 그녀의 세례명에 걸맞게 계속해서 눈부시게 빛을 내주기를 기도하며 그녀의 앞길을 축복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Adios, Queen Yuna."
"Long live the Queen."
그것이 그들이 아름다운 여왕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인사말이었다.
아름다운 여왕께서는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
로씨아 이것들 아주 그냥 요절을 내버릴꺼임
약을 팔아도 유분수지 어?! 이것들아ㅓㄹ니아런이ㅏ런아ㅣ런이런이라넝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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