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훈, 이정환
그리고
when you were gone our beautiful garden.
9송이
매서운 추위가 봄까지 침입해 아, 추워, 하고 불만을 드러내며 옷으로 자신의 몸을 더 꽁꽁 감싼 게 언제였다고 벌써 초여름이 시작된 듯 추위에 불만을 내뱉던 사람들은 어느새 얇은 반소매를 하나둘씩 챙겨입고 있었다. 살며시 찾아온 더위에 길고 굵은 빗줄기도 더위와 함께 살며시 다가왔다. 장마철도 아니면서 유난히 자주 내리던 비는 지훈에게 주어진 휴가와 함께 잠시 멈추었다.
그렇게 간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 지훈은 자신의 집에서 창밖 너머로 보일만 한 다 죽어버린 꽃들과 들쑥날쑥 밉게 솟아있는 잡초들을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집을 지었을 때 민혁과 과장누나가 심어놓고는 나 몰라라 도망간 적이 엊그제였는데, 나름 추억에 잠겼던 지훈이 이내 정신을 잡고는 저 죽어버린 식물들을 어떻게든 처리하려 현관문을 벌컥 열고는 아주 작은 별채로 들어가 흰 장갑을 두 손에 끼던 참에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신나게 울렸다.
"이정환이네?"
액정에 뜬 정환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댄 지훈이 전화통화의 기본예절인 여보세요, 그 한마디를 생략하고는 정환의 이름을 불렀다. 지훈아. 여보세요, 해야지.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정환의 목소리에 지훈은 여보세요, 하게 생겼냐. 정환에게 투덜댔다.
- 잘 있지?
"아니."
지훈의 무뚝뚝한 대답에 정환이 왜애, 말꼬리를 늘리며 지훈에게 물었다.
"표지훈 안 보고 싶지?"
- 보고 싶지, 지훈아.
"티 안 나."
연락 안 해, 연락 씹어, 얼굴 못 봐, 집에도 없대, 너 뭐 하고 사냐. 말을 이어 붙인 지훈에 정환은 살짝 웃었다. 초딩 표지훈.
- 나 제주도 왔어.
제주도? 웬 제주도? 하도 연락 없더니 이젠 말도 없이 섬으로 넘어가냐? 조그마한 삽을 격하게 흙에 꽂으며 다 죽은 꽃들 앞에 쭈그려 앉아있던 지훈이 고개를 번쩍 들며 정환에게 마구 쏘아붙였다. 애인 두고 누구랑 갔냐.
- 혼자.
"혼자?"
- 본가가 여기에 있어.
아, 난 또…… 말을 흐린 지훈이 내심 안심하며 이내 흙에 꽂아뒀던 삽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런 지훈의 눈에 여전히 살며시 웃고 있는 정환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말이 없는 정환에게 좋겠네, 하고 말했다.
- 응.
"몸은 어떤데."
아, 맞다. 누나한테 너 병원에 왔었다는 거 들었어. 말한 정환이 이내 그게 언제적 얘긴데, 당연히 괜찮지, 하고 무덤덤하게 말하며 자신을 걱정하는 지훈을 안심시켰다.
"쉬다가 와."
- 응.
"아프지 말고."
- 응.
"나 당분간 쉬어."
- 응?
진짜? 이어 물어오는 정환에 지훈은 응. 안 나가도 돼. 말하고는 너도 푹 쉬라 말하는 정환에게 서울 언제 와, 하고 물었다. 다 죽어버린 꽃을 도려내며 꽃을 좋아하는 정환이 유난히 생각나는 건 당연지사, 한가할 땐 이정환을 만나는 게 당연지사, 갑자기 연락 온 정환이 제주도에 있다는 건 어이 상실. 무려 이렇게 통화까지 하고 있으니 문득 정환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 마음에 지훈은 작은 삽을 잡은 손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 며칠 있다가 올라가.
"빨리 와."
- 갈 거야.
"보고 싶어."
지훈의 말에 정환이 수줍게 웃었다. 지훈은 이내 쭈그려 앉았던 무릎을 피고, 엉덩이를 땅에 붙여 앉았다가 이내 햇빛이 자신에게 닿도록 아예 땅에 등을 대고는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봤다. 환하게 비춰오는 햇빛에 지훈은 인상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쥐고 있지 않은 오른팔을 이마에 올렸다.
- 지훈아.
"뭐."
- 지훈아 지훈아 지훈아.
"뭐."
- 나두 지훈이 얼굴 못 봐서 속상해.
안 봐도 알 수 있는 정환의 입술 쭉 내민 얼굴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희게 그려졌다.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는 지훈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서울 오는 즉시 전화할 것."
- 알겠어.
"곧바로 잡아올 줄 알아."
- 무섭잖아.
뭐가. 내가? 물어오는 지훈에게 정환은 그렇다 대답했다. 됐고, 서울 오자마자 나 만나는 거야. 알겠어? 말하는 지훈에 정환은 알겠어, 끊기나 해, 하고 말했다. 그런 정환의 말에 지훈의 미간이 급격하게 좁혀졌다. 끊으려고? 묻는 지훈의 말 뒤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훈은 귀에서 휴대폰을 떼 눈앞으로 가져다 댄 후 액정을 확인했지만 혹시나 했던 지훈의 예상대로 전화는 끊겨있었다. 안 그래도 찡그려졌던 지훈의 인상이 더 좋지 않게 구겨졌지만 이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훈과 마주한 뜨거운 햇볕과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한 하늘에 그려져 있는 정환의 환한 얼굴은 여전했다.
*
"여보세요."
또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사무실에서 진행한 회의가 끝난 지훈은 차를 몰고 여유롭게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조금 전 회의에서 만났던 과장누나의 전화에 지훈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 야, 보충 자료 니가 가져갔어?
"마이크 옆에 있던 작은 서류 봉투 여러 개?"
- 그래.
"어."
왜 니가 가져가! 목소리를 높이며 묻는 누나의 목소리에 지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실장이 가져가라잖아.
- 인쇄 자료 말고 프레젠테이션 유에스비 가져가라고 했다잖아.
"난 또 팔랑팔랑 종이인 줄 알았잖아."
- 다시 가지고 와.
싫어. 집에 거의 다 와 가는 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 싫다고? 이번에는 지훈의 단호한 말을 들은 과장누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빨랑 안 가져와?
- 너 내일 또 나올래?
"그러지 뭐."
- 그래?
"엉."
- 그럼 됐고.
사그라지는 누나의 목소리에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던 지훈이 차창 너머로 보이는 대형 서점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누나에게 이제 됐지. 끊어도 되지? 물으려던 말을 뒤로하고 흥얼거리던 노래도 멈춘 채 누나를 불렀다.
- 왜.
"이정환 아직 안 올라왔지?"
- 정환이?
"어."
- 올라왔는데?
올라왔다고? 대형 서점 앞에 차를 세운 지훈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내가 분명히 제일 먼저 전화하라고 말했는데. 이정환 건망증 있나? 생각한 지훈에게 누나는 어제 아침에 올라왔어. 말하며 지훈의 얼굴을 더욱더 굳혔다.
"지금 어딨는데?"
- 아침에 도서관 간댔어.
또 도서관. 이정환 저거 도서관 중독 백 퍼센트네.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린 지훈이 차에서 내려 우산을 갖고 내리지 않아 급하게 뛰어 서점으로 들어서며 누나와의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이렇게 이정환 책 사러 진짜 오랜만에 서점도 와 보는데 나한테 서울 왔다는 전화를 안 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차는 지훈이 직원에게 정환의 책을 부탁하며 직원이 책을 찾아올 때까지 카운터 앞에 서서 정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여섯 권이요."
예상외로 책을 일찍 찾아 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에 지훈은 몇 번을 해도 받지 않는 정환에게로 건 통화를 종료하며 직원이 들고 있는 책 여섯 권을 받아들었다. 밝고 환할 것만 같았던 책 표지는 의외로 어두웠다. 단 한 권의 에세이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권의 소설은 그다지 밝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유감』『손에 닿을 만큼만』과 같은 소설들의 제목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무표정을 지은 지훈이 책을 펼쳐 대충 종이를 넘기다 문득 맨 앞 장에는 작가 정보가 적혀있는 게 생각나 책의 맨 첫 장을 펼쳐 왼쪽으로 눈을 돌렸다.
「 제주특별자치도서 태어나…… 글 하나로 모든 세대와의 소통을 보여주는 진정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의문의 암호를 보듯 모든 것들의 의미를 숨겨두고…… 어린 나이임에도 독자들과 평단의……. 」
화려한 정환의 소개 밑에 수상 경력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훈은 책을 덮고는 잠깐 다르게 느껴졌던 정환을 머릿속에서 거둔 채 자신이 들고 있는 여섯 권의 책을 모두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
『유감』 구매한 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 한 권과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조심스레 들어서는 지훈이었다. 자신을 가로막았던 자동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숨 막히도록 조용한 도서관 내부 분위기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 소리를 줄이려 발에 힘을 주고는 정환이 있을 만한 곳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학생들의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전과는 다르게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 사람들을 대충 훑어보며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지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흰 책상에 책을 올려두고는 안경을 낀 채 펼친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정환이 보였다.
책을 읽고 있는 정환의 비어있는 맞은편 자리로 한걸음에 달려간 지훈은 여유롭게 웃으며 의자를 빼고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아 다시 의자를 책상과 가까이 끌어당겼다. 맞은편에 사람이 왔는데도 정환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지훈은 일부러 정환이 보도록 책을 세워서 대충 중간지점으로 생각되는 페이지를 손으로 잡고는 책을 폈다. 이제 정환이 보기만 하면 되는 건데 얼마나 독서 삼매경이면 정환은 지훈이 책을 세울 때 조금 큰 소리를 냈음에도 절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정환에 여유롭던 얼굴을 조금 찌푸린 지훈이 정환이 자신을 바라보도록 일부러 헛기침을 내뱉었지만 역시나 정환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 이외에도 정환이 자신을 보도록 최대한 많은 온갖 소음은 다 내던 지훈에게 돌아온 것은 주위 사람들의 눈초리뿐이었지, 정환의 놀라는 눈길은 받지 못했다. 애초에 여유롭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지훈은 뭐 씹은 얼굴로 오로지 독서에만 혼을 담아 열중하는 정환을 노려봤다. 다른 사람들한테 눈길 하나 안 주는 건 좋은데, 그래도 한 번쯤은 째려보기라도 해야지, 정환아, 이정환아. 속으로만 애타게 정환을 부르던 지훈이 이내 세웠던 책을 내려놓고는 책에 얼굴을 박았다.
*
"넌 도서관이 수면실이지?"
잠들었던 지훈이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자마자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안경을 벗고는 지훈을 바라보며 말하는 정환에 아직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은 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이정환…….
"언제 왔어."
정환의 물음에 지훈은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몰라, 하고 대답했다. 그런 지훈을 바라보던 정환이 이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뭐야, 그거. 책."
책? 수줍게 웃으며 묻는 정환에 지훈은 시선을 내려 자신이 가져온 정환의 책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살며시 나오는 웃음에 머리를 만지며 뿌듯한 얼굴로 정환을 바라봤다.
"니 책이잖아."
"샀어?"
그럼 어디서 뚝 떨어졌겠냐. 대답한 지훈이 이내 뿌듯하게 웃으며 정환과 같이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정환을 바라봤다. 애인이 이 정도는 돼야지, 그렇지? 지훈의 물음에 정환은 그저 웃음으로만 지훈에게 답했다. 지훈은 책을 읽지도 않았음에 오로지 아까 잠시 훑어본 작가 정보에만 의지하며 주절주절 후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글 왜 이렇게 잘 써? 난 오늘 첨 알았다. 진짜 하는 짓도 글 쓰는 거에 반만 따라가라. 어리바리 사차원아. 전화는 왜 안 했는데?
"서울 올라오니까 할 일이 많아서 그랬어."
"아까는 왜 안 받았는데?"
"아까 전화했었어?"
지훈에게 물으며 정환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후 잠깐 이곳저곳 휴대폰을 만지더니 이내 아, 전화했었네, 하고는 지훈과 눈을 마주하고 실없이 웃었다. 그런 정환을 바라보던 지훈이 저거 맨날 웃음으로 넘기기만 하고, 어? 하고 정환에게 투덜거렸다.
"이제 전화 꼬박- 꼬박 잘할게."
"말로만 꼬박- 꼬박 잘하지?"
짓궂은 지훈의 말에 정환은 웃으며 아, 왜 그래, 하고는 지훈에게 앙탈 아닌 앙탈을 부렸다. 그런 정환을 보던 지훈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이내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어."
"뭐가?"
"같이 살자."
지훈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깜빡이는 정환을 비롯해 각자 할 일을 하던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조심스레 지훈에게 꽂혔다. 또는 눈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책을 향하고 있지만, 귀만은 지훈에게로 쫑긋 세워 지훈의 말을 경청했다. 가, 같이? 간신히 입을 뗀 정환이 낮은 목소리로 지훈에게 말했다.
"소식 없어서 뭐 하고 사나, 하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고."
"……."
"뭐 하고 사나, 하면 저 멀리 섬에 가 있질 않나."
"……."
"최소한 전화는 해라, 하면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서 하지도 않고."
"……."
"뭐 불안해서 살겠냐."
너로서 그건 그렇겠다.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정환이 손을 만지작거리며 지훈에게 물었다. 그럼 집은?
"걱정할 게 없어서 집 걱정하냐, 여기 표 건축가님 계시잖아."
"땅은?"
"있어."
"돈은?"
"있어."
"시간은?"
좀 걸리겠지. 대답한 지훈에 정환은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당장 불안하다면서 집 짓는 건 오래 걸리잖아. 할 거면 그냥 리모델링만 우리가 하자. 정환의 말에 지훈의 얼굴이 구겨졌다.
"다 지을 동안 내 집에서 너 꽉 붙잡고 살면 되지."
"그래두."
"그냥 짓자."
"그냥 사자."
또, 또 별거 아닌 것 두고 싸운다. 지훈은 정환을 바라보며 짓자니까? 말했고 정환은 지훈을 노려보며 그냥 사자니까? 말했다.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닌 것으로 조용한 도서관을 둘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너 지금 나 또 무시하지? 집 잘 못 지을까 봐 그러지? 아, 아니라고. 다 너 힘들까봐 그런다니까? 힘들긴 얼어 죽을, 너 때문에 불안해하는 하루하루가 더 힘들거든? 넌 안 힘들다 쳐도 솔직히 나도 힘들 거 아니야, 그래 안 그래? 안 그래.
"아나, 진짜. 건축가 여기 있다니까?"
"너 그러면 엄청 힘들다니까?"
머리에서 김이 풀풀 올라오는 것 같은 둘의 끝나지 않을 시끄러운 토론에 불편해하던 주위 사람들 중 결국 어느 한 사람이 아, 시끄러, 진짜. 내뱉은 말을 들은 둘은 조심스레 짐을 챙겨 들고는 자신들이 입을 다물자 조용한 도서관 분위기에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우산 없어."
"비 오는데 우산도 안 쓰고 나와?"
"아침에 잠깐은 안 왔었어."
이리로 들어오던가. 우산을 펴고 정환을 보며 말한 지훈에 정환은 종종걸음으로 지훈에게 다가가 지훈이 들고 있는 우산 아래에 섰다. 그리고는 비를 맞지 않으려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의 허리를 한 팔로 감쌌다.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가는 짧은 시간임에도 둘은 그렇게 활짝 웃었다.
*
빗속을 달려 지훈의 집 차고에서 멈춘 차는 정환의 의문을 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직도 조수석에 멍하니 앉아있는 정환과는 다르게 아무렇지 않은 듯 운전석에서 내린 지훈은 정환에게 빨리 내리라며 손짓했다. 그럼에도 내리지 않는 정환에 지훈은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안 내려? 묻는 지훈에 정환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지훈을 올려다봤다.
"야, 뭔데?"
"뭐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올렸다가 내리며 말하는 지훈에 정환은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오늘부터 같이 살기로 한 건 아니잖아?
"아."
"아는 무슨 아."
"누나가 집에 남친 데려온다고 오늘 너 여기서 놀게 하래."
너네 집이 무슨 어린이집이야? 투덜대던 정환이 이내 조수석에서 내리고 문을 잡고 있던 지훈이 여유롭게 문을 닫아 차를 잠그고는 차고의 문을 닫았다.
"혼자 사는 주제에 이층집 너무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지훈의 집 내부를 둘러보던 정환이 말했다. 그리고 또, 집에 식물들은 아무리 눈을 다시 떠도 찾아볼 수가 없고, 그렇다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인테리어 하나만 이쁘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 정환의 뒤를 따르던 지훈이 손바닥으로 살짝 두 귀를 막았다. 잔소리 됐고, 배고픈데 뭐 먹을래. 묻는 지훈에 정환은 뒤를 돌아 지훈을 바라봤다.
"원래 음식 이런 건 집주인이 하는 거지?"
"시켜 먹을 건데."
"아, 라면 하나만 끓여 와."
시켜 먹자는 지훈의 말을 무시한 정환이 넓은 거실의 하얀 소파에 쿠션을 들고 아빠다리로 앉아 리모컨을 손에 쥐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켜져야 할 텔레비전은 아무런 반응이 없고 투명한 유리로 가득 채워진 정원이 보이는 창 위로 블라인드가 쳐졌다. 오우, 하고 놀란 정환이 부엌에 있는 지훈을 보며 이거 뭐야? 하고 물었다.
"블라인드 쳐졌잖아."
"티비는?"
정환의 물음에 냄비에 물을 올리던 지훈이 웃으며 큰 소리로 티비 전원, 하고 말했더니 이내 검기만 했던 텔레비전 화면이 방송 프로그램으로 가득 찼다. 헐, 이거 뭐야? 너 티비도 건축해? 신기한 듯 물어오는 정환에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끌 때는 어떻게 해? 묻는 정환에 지훈은 수돗물을 잠그며 다시 말했다. 티비 전원.
"꺼졌네?"
저건 텔레비전도 안 보나…… 쉬는 날이면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떠나질 않는 지훈은 프로그램을 기다리며 자주 보던 음성으로 작동되는 텔레비전 광고였기에 당연히 음성으로 작동되는 텔레비전을 정환이 알 거라 생각했지만 지훈과는 정 반대로 쉬는 날 집에 있으면 글만 쓰는 정환은 그저 신기해하며 계속 티비 전원, 티비 전원, 티비 전원, 신나게 웃으며 외치고 있었다. 티비 전원, 티비 전원, 티비 전원, 정환의 외침에 계속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정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보니 그런 정환을 귀엽게 생각하며 웃고 있는 지훈과 눈을 마주하며 웃었다.
그렇게 웃음만 가득하던 둘 사이에 지훈이 웃음을 잃지 않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열었다. 티비 전원 작작 해라.
*
"아, 저거 재밌다. 저거 이름 뭐라고?"
"강호동의 삼박 사일."
소파 밑에 깔린 큰 카펫에 앉고는 소파에 등을 기대 함께 텔레비전 시청을 마친 정환이 옆에 있는 지훈에게 말했다. 재밌어서 실컷 웃는 정환과는 달리 정환의 옆에 앉은 지훈은 하품을 쩌억- 하고 있었다. 이정환 데려다 놓고 티비나 보고 앉아있고 뭐하는 건지, 생각하며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는 지훈의 어깨에 정환이 머리를 기댔다.
"이거 끝나니까 심심해."
"심심해?"
"응."
그런 정환의 말에 채널을 돌리다 만 지훈이 뽀뽀나 할까, 하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면 보이는 정환을 바라봤다. 됐거든, 하며 오른손으로 지훈의 얼굴을 다시 정면으로 돌린 정환이 다시 눈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돌렸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내미는 지훈에게 정환은 얼굴을 뒤로 빼며 지훈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아, 표지훈, 하며 옆에 있는 쿠션을 지훈에게 살짝 던졌더니 눈을 감고 있는 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진짜 표지훈, 진짜 완전 웃겨."
그런 지훈을 보며 무릎을 치며 웃는 정환이었다. 표지훈 둔해, 하고 말하는 정환을 보던 지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한창 웃고 있는 정환의 두 팔을 끌어당겨 쫙 뻗고 있는 자신의 다리 위로 앉히고는 말했다.
"내가 뽀뽀하자고 해서 좋아서 웃는 거지, 지금?"
아니, 그…… 정환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정환의 팔을 더 끌어당겨 자신의 입술과 정환의 입술을 잠깐 맞대었다 뗀 지훈이 발그스레한 정환의 두 볼을 눈에 담자, 왼팔로는 정환의 팔을 잡고, 오른 손으로는 정환의 볼을 살짝 감싸고는 다시 입술을 맞대었다. 서로의 입술을 머금고 서로의 입안에 혀를 밀어 넣어 진한 키스를 나누던 중 지훈은 조심스레 정환을 폭신한 카펫에 눕히고는 여전히 입술을 머금은 채 정환의 위로 올라타 얇은 정환의 반팔 티 속으로 오른손을 넣었다. 으응, 하며 맞댄 입술 틈으로 새어나오는 정환의 목소리에 지훈은 정환의 입술을 물고는 살며시 웃었다.
비 내리는 밤, 유난히 환한 지훈의 거실, 블라인드는 알아서 쳐 준 정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지훈은 정환의 깊게 파인 쇄골로 입술을 옮겼다.
-
상큼한 주말 달달한 정원 9송이!
쓰고 저장할 때 보니 110kb였어요 뭘 썼는데 벌써i_i
댓글은 안 다셔도 신작알림신청은 꼭꼭 해주세요ㅠㅠㅠ비정기적인 들리라는 거 이젠 다들 잘 아시겠져..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이에용
항상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드리며 즐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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