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녀 - 설레는 밤
“야, 전정국, 잘 들어 봐. 이거 아는 사람 얘긴데...”
“니 얘기네.”
“... 그래. 내 얘긴데, 나 편의점에서 야간 뛰잖아.”
“근데?”
“맨날 새벽에만 오는 남자가 있거든? 본 지 한 달 조금 넘었나? 아무튼 그 남자가 나 저번에 진상 만나서 울었다는 날 있잖아. 그 날 그 사람이 내 번호 가르쳐 주라고 했다. 그래서 번호 서로 주고받았어.”
“야, 너 그거 조심해라. 이제 무슨 종교 믿으라고 전화 온다. 아니면 약 먹으라고...”
“아니, 그거 아니라고. 죽을래?”
“김탄소, 생각해 봐. 그 남자 잘생겼어?”
“... 응. 엄청 매력있게...”
“그런 사람이 왜 네 번호를 따냐?”
“아니... 그리고 위험한 일 있으면 부르라고...”
“그 사람 새벽에만 온다면서. 너 낮에 대타 뛸 때 그 사람 본 적 있어?”
“...... 없어.”
“와, 새벽에만 본 사람 좋다고 이러는 거냐? 너도 대단하다. 걍 아무 뜻 없다고 생각해라. 괜히 김칫국 사발로 마시다 체하지 말고.”
“... 역시 그렇지? 나한테 무슨 남자야. 야, 이거 마시고 노래방 콜?”
“존나 콜. 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정국한테 물어봤지만 내가 기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김칫국만 마신 것 같아 머쓱했다. 또 짝사랑 시작하기도 전에 접어야 할 것 같아서 우울하기도 했다. 오늘 아무렇지 않게 윤기 오빠 얼굴 볼 수 있으려나?
누구는 잠드는 시간, 또 누구는 신나게 불태우는 시간, 새벽 1시 40분만 되면 그 손님이 온다.
♥ 짝사랑 로맨스 ♥
“윤기 형, 나 걔 봤다.”
“걔가 누군데.”
“형 맨날 가는 편의점 여자애.”
“...? 어디서 봤는데?”
“여기 큰길 나가서 건너편 카페에 있던데? 아, 남자랑 있었어.”
“지랄하네. 너 나 놀리냐?”
“아니, 진짜야. 게다가 잘생겼던데? 나는 무슨 연예인 보는 줄.”
“... 둘이 뭐 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 뭘 하겠어. 그냥 뭐 마시면서 말하고 있던데? 지나가면서 봐서 자세히는 못 봄. 그런데 느낌이 딱 연인....”
“야, 박지민.”
“......”
“조용히 해라. 가서 일 안 해?”
“말해 줘도 지랄... 아, 아니, 해요. 하러 갑니다, 간다고.”
혼란스러웠다. 탄소가 애인이 있었던가? 그러면 보통 번호를 안 주지 않나? 아니면 원래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인가? 하긴 저번에 번호 주고받은 이후로는 연락 안 했으니까... 온갖 생각을 하다 머리가 아파져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이따가 탄소한테 물어봐야겠다.”
골기퍼가 있다고 해서 골 안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
[오전 1시 35분]
“곧 오겠다.”
평소라면 옷은 편한 옷, 화장은 입술만 대충 찍어 바르고 나왔을 텐데, 왜인지 오늘은 엄청 신경 써서 나오고 싶었다. 아마 그 사람 때문이겠지. 오늘은 후드티 대신 블라우스, 화장도 풀로 하고 나왔다. 만약 전정국이 봤다면 이게 알바 가는 사람 차림이냐고, 그렇게 말했는데 정신 못 차렸냐고 욕할 게 뻔했다. 아니, 내가 설레고 싶어서 설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윤기 오빠가 미웠다. 진짜 나만 설레는 거면 어떡하지? 전정국 말대로 아무 뜻 없었는데 나 혼자만 이러는 거면? 온갖 걱정을 하고 있던 중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딸랑-
“어, 어서 오세요!”
“아, 탄소 안녕.”
분명 어제도 본 얼굴이고, 어제도 들은 목소리에 어제와 같은 인사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떨리는지.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에 열이 확 오르고, 심장은 더 쿵쾅댔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중 남자가 물건을 내밀었고, 그 물건은 빵과 커피가 아닌 초코우유 두 개였다.
“아, 저번에 초코우유 먹는 것 같아서. 하나는 네 거, 하나는 내가 마실 거야.”
“네...? 왜 하나가 제 거예요...”
“그냥 네 거야. 대신 이거 먹으면 나 계속 편의점에 있게 해 줘야 돼. 오늘 할 말 엄청 많거든.”
그 사람은 씨익 웃으며 강요 아닌 강요를 했고,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 초코우유 하나에 빨대를 꽂으며 말했다.
“완전 좋아요. 수다 떨다가 밤새 본 적 없죠? 각오 단단히 하세요.”
***
그 며칠 봤다고 우리의 거리가 좁아졌다. 처음에는 테이블, 어제까지는 카운터 맞은편, 오늘은 카운터 안쪽 간이 의자. 그 비좁은 카운터 안에서 대화라니. 옆에 앉은 남자, 아, 아니지, 윤기 오빠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가까이 앉은 윤기 오빠 때문에 괜히 덥고, 손에는 땀까지 났다. 얼굴까지 쳐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빨대만 쪽쪽 빨아 우유만 마셨다.
“탄소야, 오늘 뭔가 좀 다른데? 아... 예쁜 옷 입었네? 화장도 했고.”
“아, 아아... 하하 일이 있어서...”
“일? 무슨 일? 데이트나 뭐 그런 거야?”
“아니... 데이트는 아니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미쳤나 보다. 초코우유에 알코올이 들은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나온 본심에 깜짝 놀라 마시던 우유를 떨어트릴 뻔했다. 윤기 오빠도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변명할 거리를 생각하려 머리를 굴렸지만 이미 굳어버린 머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 누구한테 그렇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는데?”
“네? 아... 저 그게... 그러니까...”
“아, 아니야. 너무 실례되는 질문이었네. 대답 안 해도 괜찮아.”
“아... 네...”
그렇게 어색한 정적만 흘렀고, 어색함에 애꿎은 우유곽만 만지작거렸다.
“아, 탄소야, 오늘 낮에 근처 카페 갔었지? 나 너 봤는데.”
“아... 정말요? 와서 아는 척 좀 해 주지.”
“다른 사람이랑 있길래... 애인이야?”
“네? 걔가요? 걔가 제 애인이라고요? 절대 아니거든요. 그리고 걔는 만나는 사람 있거든요. 완전 그냥 친구라고요.”
전정국을 애인으로 보다니. 내가 걔랑?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말에 울컥해 내 목소리가 커졌고, 얼굴은 빨개졌다. 그 모습을 본 오빠는 내가 처음 울었던 그 날처럼 빵 터져 웃기만 했다.
“아... 아 웃겨. 아니, 나는 그냥 물어본 거지.”
“그냥 물어본 것 치곤 말투가 너무 진지했거든요...”
“아... 아 그래? 들켰네...”
“네?”
“아니야. 너 웃기다고.”
“네... 제가 또 한 웃김 하죠...”
“그래. 많이 부끄러운 것 같은데 나 일어날게.”
“진짜 감사합니다...”
“그래. 내일 또 올게.”
딸랑-
그렇게 오늘도 흑역사 하나 남긴 것 같아 한숨을 쉬며 카운터에 축 늘어져 있던 중 갑자기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에 벌떡 일어나 보니, 급하게 다시 돌아온 듯한 모습을 한 윤기 오빠가 서 있었다. 놓고 간 게 있나 주변을 살피고 고개를 들자 카운터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오빠가 보였다.
“어, 놓고 간 거 있어요? 카운터에는 없는데... 아까 저기 우유 가지러 갔을 때 흘렸나 확인해 봐요.”
“아, 아니. 흘린 건 없고, 아까 잊어버리고 못 한 말이 있어서.”
“네? 뭔데요?”
“너 남자친구 없으니까 아무 때나 연락해도 되는 거지?”
“네? 네... 뭐 그렇죠...”
“낮에 따로 만나자고 해도 괜찮은 거고?”
“어... 네...”
“그래. 이따가 집 가서 바로 연락할게. 연락 꼭 받아.”
딸랑-
야, 전정국, 네가 틀린 것 같아. 저 오빠도 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
***
“아, 형, 왜 이렇게 늦었어요. 삼십 분이면 된다면서. 지금 몇 시야, 한 시간이 넘었잖아요. 저 혼자 편집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야, 지민아.”
“뭐요...”
“남자친구 아니래.”
“뭔 소릴 하는 거야... 아 됐어요. 저 들어가서 잘 거예요. 나머지는 형이 알아서 해요.”
“어, 그래. 수고했다.”
“와, 지금 수고했다고 한 거야? 민윤기가?”
“빨리 들어가라.”
“네...”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연락한다고, 낮에 만나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지도 않았다. 25년 헛살았던 게 아니라면, 내가 병신 호구가 아니라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건 분명
“쌍방이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까의 설렘이 지금까지 남아 계속 심장이 뛰었다. 설레느라 잊고 있던 연락이 생각났고, 폰을 집어 조금 고민하다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됐다. 연락 빨리 왔으면 좋겠네.”
***
정신이 없었다.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가고 겨우 정신을 차려갈 때쯤 잠잠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이따가 오후에 만날래? 새벽 말고 다른 시간에도 보고 싶어서. 괜찮으면 연락 줘. 안 괜찮아도 연락 주고. - 윤기 오빠 AM 03:25]
오늘 잠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설레서 어떻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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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암호닉분들]
다솜
붕방
양솜이
월아
영감
꼬취꼬춰
제 글을 읽어 주시는 암호닉분들과 다른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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