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t Me Not
"나 비행기 표 끊을까?"
친구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반은 진심이다.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헤어짐이 달게 느껴질 줄 알았다.
목이 타서 받자마자 급하게 마시는 바람에 혀까지 데였다. 아파. 정국이 곁에 있었더라면 분명 걱정해줬을 텐데.
대신 아프지 못해 미안하다며 쓰다듬어줬을 텐데. 그날부터 드는 생각은 이런것들뿐이다.
나는 정국과 일 년째 연애 중이다.
초중고 내내 같은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삼학년이 된 해, 내 생일에 장미꽃 한 송이와 함께 고백을 받았다.
주변에서 한 명은 대학에 가지 못할 거라며 악담을 퍼붓고는 했지만 결국 둘이 함께, 원하는 곳에 붙었다. 행복했다.
정국은 스무 살을 맞아 어릴 때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부터 가고 싶어 했던 혼자 하는 미국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기다려줄 수 있지."
"...응."
"일주일만 참으면 돼."
"... ..."
"사랑해."
"네가 사랑하는 사람 두고 가니까 좋아?"
"좋아."
바라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잔뜩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정국을 바라봤다.
정국은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
"네가 날 기다려준다는 게."
"민사라 네가 정말 날 사랑한다는 것 같아서."
"좋다. 난."
그는 자연스럽고, 아주 익숙한 손길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나쁜 거야?"
"나빠. 나중에 나랑 같이 가지."
"미안해."
"...안아줘. 정국아."
정국은 별다른 말없이 날 끌어안고서 규칙적으로 내 허리를 토닥여줬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보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울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닌데.
"왜 울어. 사라야."
그는 여행에 집중하고 싶다며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도 포함해서.
그래서인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게, 괜히 미웠던 것 같다.
"나 들어갈래."
"...조금만 더 보면 안 될까."
"얼른 가. 너 늦어"
공항에 가기 전날 얼굴을 보고 가야겠다며 우리 집 앞까지 와준 정국을 바보같이 돌려보냈다.
새벽 비행기라 찾아오는 길이 어두워 위험할 거라며 내가 마중 가겠다는 걸 말리고, 알았다고 하자 웃으며 입 맞추던 그인데.
손이라도 잡아줄걸.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남은 건 후회지.
-
바로 내일이, 정국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오는 것도 새벽 비행기라고 그랬어서 마중은 가지 못한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집에 찾아오기로 했으니까, 예쁘게 하고 기다려야지. 내일 입을 옷을 골라 둔 채, 설렘을 가득 안고 잠에 든다.
사랑해. 잠들기 전,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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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맞춰둔 알람이 울린다. [정국이 보는 날] 어제 정해둔 옷을 입고, 머리도 하고. 누워서 폰을 하며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벌써 한시 지났는데." 이상하다. 그가 오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속보] 비행기 착륙 중 추락, 50명이 넘는 사망자 발생 ... ... ... 쿵쿵.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정국인가? 정국이겠지, 그래야만 해. 떨리는 걸음으로 현관까지 걸어가 문을 열었다. "꽃 배달입니다." "...누가 보낸 거예요?" "전정국 고객님이 부탁하신 겁니다. 한 일주일 전에." "아. ...고마워요." "재고가 떨어졌어서 며칠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푸른색 꽃다발을 안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자세히 보니 꽃 사이에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사라야. 안녕.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겠다. 우리 사귀면서 편지 주고받은 적은 없으니까. 네가 안고 있을 꽃은 물망초야. 귀엽게 생겼지. 너처럼. 꽃말이 뭔지 알아? 유명해서 알 거야. 나를 잊지 마세요. 여행하는 동안, 연락 안 할 거라고 해서 널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어. 그러니까 민사라 너도, 나를 잊지 마. 내가 없을 때도 날 생각해줘야 돼. 날 그리워하다 울라는 말은 안 해. 그냥... 가끔 떠올려줘. 그 꽃이 시들기 전에 너에게 갈게. 민사라. 사랑해.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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