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는 다 그렇다.
다른 얘들보다 좀 더 신경쓰이는 녀석이 있고, 항상 그 녀석의 이름을 먼저 부르게 되고, 그 녀석을 향해 눈을 굴리는거. 더 지나가 내가 녀석을 친구로서 좋아하나 아니면 사람으로서 좋아하나라는 고민까지. 혼자 끙끙거릴 필요는 없다.
녀석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까.
- 야, 욕하지마.
- 담배 좀 피지마.
- 쌈박질 하고 댕기지 말라고.
- 수업시간에 자지말라고 멍청아.
- 너 자꾸 지각할래?
- 너 땡땡이 치기만 해봐.
내가 녀석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들을 굳이 뽑아보라면 저딴 비슷한 말들이 수십개는 더 쏟아질게 분명하다. 당연한 일이였다. 녀석은 소위 엄친아라던 학생회장이였고 나는 쪽팔리지만 에이, 씨발 안말할란다.
내 주변 친구들도 그 녀석 주변 친구들도 우린 물과 기름이라면서 절대 섞일 수 없는 새끼들이라며 그러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입학할때부터 문제를 일삼는 나를 정화시키겠다며 학주가 말한 걸 우습게 들었으면 안됬다. 자 예를 들자면, A가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그런데 지나가던 B가 A의 담배를 뺏고 대갈통을 후려쳤다. 누구 잘 못인가. 답은 A다. 누가 정한거냐고? 녀석이 당당하게 말했다. 만 20살까지는 담배는 법으로 금지라며.
신기하게도 나는 녀석에게 그렇게 대갈통을 후려맞고도 녀석을 똑같이 때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처음 맞았을 때에는 정말 아파서 눈물 찔끔 나온거 숨기느라 때리지 못했고 두번째에서는 학주 명령인걸 알게되어서 혼자 분을 삭히고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악감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교 1등이라던 녀석은 날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그 성적을 유지하였다. 뭐 때문인지 아는가? 날 독서실로 같이 데리고 가는 법이 있었다. 독서실 가서 녀석은 업고가도 모를정도로 집중해서 공부를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일어서기만 하면 그 매서운 손길을 내 머리통으로 가져다댄다는 것이였다. 그니까 난 독서실에서 잠을 자는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요즈음은 가아끔, 교과서를 펼쳐보긴 한다.
사실 녀석은 정말 날 감시하고 다른 길로 안빠지게 대갈통을 후려치는 거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말 하나 건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길 걸을때도 거리를 두고 걸었었다. 내 엠피쓰리만 아니였다면 지금까지도 그래왔겠지만 무튼 나는 내 엠피쓰리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로봇같은 녀석이 내게 먼저 말걸어주고 친구하자며 손도 내밀고 뭐냐 친해지자하고. 근데 나는 왜 그 말에 또 좋아라 한건지.
“야, 이거 니가 부른거야?”
솔직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한 마디도 안걸던 녀석이 불쑥 내 엠피쓰리 목록을 내미니까.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녀석이 내민 목록의 제목을 보았다. 그때 딱 무슨 생각이 들었냐며는, 좆됬다. 사실 난 래퍼를 동경하기도 했고 랩하는걸 즐겨하기에 녹음도 했었는데 그 목록을 녀석이 들은 것이였다. 쪽팔림에 날쌔게 엠피쓰리를 빼앗았지만 녀석은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멋있다며 처음으로 내 대갈통을 쓰다듬었다. 때리는 줄 알고 쫄아서 움츠리는 나를 보고 픽, 비웃는 것도 꼼꼼하게 잊지 않고. 녀석은 그 이후 내게 관심을 가졌다. 주말에는 내가 춤추러 다니는 것도 알게되었고 집에 작게 꾸며져 있는 녹음실을 가고싶다고 조르기도 했고 직접 가사 썼다며 불러달라는 것도 잦아졌고. 그래도 여전히 담배나 뭐 지각이나 땡땡이 학생에 맞지 않는거면 날선 손꾸락이 내 머리로 향했다. 내가 녀석을 만나고 나서 더 멍청해진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서 내가 녀석을 좋아하게 된 걸지도. 내가 너무 멍청해져버려서.
“내일 시간 있어?”
“내일?”
“어.”
“몰라.”
“니가 모르는게 있냐.”
몇일을 고민했더라.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녀석의 대답은 설렁설렁했다. 독서실 근처에 고양이를 쓰다듬는데 정신이 팔려서인지 공부할 때만 쓰던 안경 그대로 끼고 있었다. 안경 낀 것도 잘생겼네. 항상 자느라 못봤던 안경 낀 녀석은 의외로 새로웠다. 씨발 보조개 좀 봐, 귀여워. 나름 단정하게 입은 떡볶이코트도 졸라 귀엽잖아. 추워서 그런지 발간 볼이 허연피부에 잘도 어울렸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녀석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된 것도 이상하고 아니, 녀석 자체가 이상했다. 난 여자 좋아하는데. 왜 넌 남자야.
가방을 고쳐매는 녀석을 따라 나도 쭈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끼워진 안경을 벗겨줄려다 말았다. 절대 용기가 없어서 그런게 아니다 고양이 만진 손이 조금 거슬려서 그렇다. 걸을 때 살짝씩 닿는 손이 보드라웠다. 잔뜩 피딱지가 낀 나와는 다르게.
“내일 나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귀찮아.”
“지각 안할게.”
“거짓말.”
“진짜야.”
녀석은 못미덥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순간 손을 들때 나 때리는 줄 알고 쫀건 또 비밀이다. 나는 혹시나 피딱지 낀 내 손을 녀석이 볼까봐 빠르게 손을 꼬았다가 풀어냈다. 야 너 손 뭐야? 또 싸웠어? 눈치 하나는 빠른 녀석은 또 내 대갈통을 크으게 후려쳤다.
“야, 나 손 잡아도 돼?”
“어, 어? 어.”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녀석의 특유 픽, 하고 웃는 소리가 잔잔히 귀에 들렸다. 아씨 쪽팔려. 녀석은 단순해서 금방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겨울인 지금 오늘따라 춥게 입고온 녀석은 손이 시린거고 손을 잡으면 온기가 전해져서 따뜻해지니 나를 이용하는, 뭐 그런거였다. 그래도 마다할 이유가 없어 긍정하니 금세 차가운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여자 손같이 녀석의 손은 조막만했다.
크리스마스도 녀석과 함께 보냈는데 내 생일 마저 녀석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년 조금 안된 시간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녀석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녀석은 그제서야 날 단짝친구로 생각하였다. 그냥 친구도 아닌 단짝 친구. 김원식 많이 발전했다. 사실 이전에 녀석에게 솔직하게 속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대충 나 너 많이 좋아진 거 같다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고. 녀석도 해사한 웃음을 밝히더니 나도 라며 짧게 대답하였다. 이딴 범생이가 뭐가 좋다고 나 혼자 해실해실거리는거야. 이미 알고있으면서도 스스로에게 투덜거렸다. 맞잡은 손이 조금은 따뜻해진거 같기도 했다.
녀석은 나에게 조그만한 선물이라며 조그만한이라는 어휘에 맞지않게 조금 커단한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왠지 가방이 빵빵하다 했더니 정체가 이 것이였다. 나는 나중에 풀어보라는 녀석의 말에 충실하게 각을 맞추어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체크무늬의 포장지로 깔쌈하게 포장되어 있는게 녀석의 성격 그대로 나타나는 듯 했다. 나는 녀석의 생일때 무얼 해주었더라, 공책 종류별로 몇십권을 한참을 골라 박스에 넣어다 줬는데 슬핏 열린 녀석의 가방을 보니 내가 준 공책 몇권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때 같이 준 편지 마지막에… 뭐라고 내가 적었는지. 사랑해. 짧지만 강렬한 말. 그걸 받고도 아무렇지 않아한 녀석도 신기하다. 내 방에 널려있는 만화책 중 하나를 골라 느릿하게 책장을 넘기는 녀석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냥 느낌이 다르다. 막 간질간질하고 오그라드는 그런.
“뭘 봐.”
“니 얼굴.”
“보지마, 닳아.”
“닳으니까 나만 볼래.”
과연 친구끼리 꺼낼 수 있는 말일까. 그때부터 나는 좀 더 깊게 깨달았다 이제부터 나는 녀석에게 친구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고. 그래도 친구라는 사슬로 묶여져 있는게 좋았다. 무엇이든 녀석과 엮여져 있는 자체가 나는 행복했다. 책에서 말하던게 이런걸까. 자꾸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랑 닮은 공통점을 찾는 그런거 말이다. 녀석이 내게 준 편지 마지막 말은 사랑해로 끝났다. 녀석은 아닌 척 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은 점차 정리가 되어 갔다.
정확하게 봄과 여름의 사이, 그 맘때 쯔음 나는 녀석과 연애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지잉-
진동이 짧게 울렸다. 주변 학우들의 눈치를 보며 알림을 확인하자 문자메세지가 하나 왔있었다. 이홍빈이 먼저 보낸 문자가.
풋풋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지금, 아쉽게도 녀석의 학교와 나의 학교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나름 연애는 잘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녀석은 이과로 나는 문과로, 또 녀석은 연필잡이 나는 딴따라. 묘하게 비슷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좋아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달랐다. 그래서 더 끌린거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정’이란 단어를 서술해 보시오.]
마침표까지 완벽히 찍혀있는 문자메세지에 결국 책상에 코를 박고 낄낄거렸다. 교수님의 눈초리가 스쳐지나간거 같았지만 그리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나는 휴대폰 위에 손가락을 올려서 타자를 빠르게 쳐갔다.
[우정→사랑. 우정은 사랑의 발판입니다.]
나름 꽤 오글거려도 맞는 말이지 않는가. 누구를 보고 두근거리기 시작한거면 그건 이미 우정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정은 꽤 오래가지 못한다.
다른 얘들보다 좀 더 신경쓰이는 녀석이 있고, 항상 그 녀석의 이름을 먼저 부르게 되고, 그 녀석을 향해 눈을 굴리는거. 더 지나가 내가 녀석을 친구로서 좋아하나 아니면 사람으로서 좋아하나라는 고민까지. 혼자 끙끙거릴 필요는 없다.
녀석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까.
- 야, 욕하지마.
- 담배 좀 피지마.
- 쌈박질 하고 댕기지 말라고.
- 수업시간에 자지말라고 멍청아.
- 너 자꾸 지각할래?
- 너 땡땡이 치기만 해봐.
내가 녀석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들을 굳이 뽑아보라면 저딴 비슷한 말들이 수십개는 더 쏟아질게 분명하다. 당연한 일이였다. 녀석은 소위 엄친아라던 학생회장이였고 나는 쪽팔리지만 에이, 씨발 안말할란다.
내 주변 친구들도 그 녀석 주변 친구들도 우린 물과 기름이라면서 절대 섞일 수 없는 새끼들이라며 그러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입학할때부터 문제를 일삼는 나를 정화시키겠다며 학주가 말한 걸 우습게 들었으면 안됬다. 자 예를 들자면, A가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그런데 지나가던 B가 A의 담배를 뺏고 대갈통을 후려쳤다. 누구 잘 못인가. 답은 A다. 누가 정한거냐고? 녀석이 당당하게 말했다. 만 20살까지는 담배는 법으로 금지라며.
신기하게도 나는 녀석에게 그렇게 대갈통을 후려맞고도 녀석을 똑같이 때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처음 맞았을 때에는 정말 아파서 눈물 찔끔 나온거 숨기느라 때리지 못했고 두번째에서는 학주 명령인걸 알게되어서 혼자 분을 삭히고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악감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교 1등이라던 녀석은 날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그 성적을 유지하였다. 뭐 때문인지 아는가? 날 독서실로 같이 데리고 가는 법이 있었다. 독서실 가서 녀석은 업고가도 모를정도로 집중해서 공부를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일어서기만 하면 그 매서운 손길을 내 머리통으로 가져다댄다는 것이였다. 그니까 난 독서실에서 잠을 자는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요즈음은 가아끔, 교과서를 펼쳐보긴 한다.
사실 녀석은 정말 날 감시하고 다른 길로 안빠지게 대갈통을 후려치는 거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말 하나 건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길 걸을때도 거리를 두고 걸었었다. 내 엠피쓰리만 아니였다면 지금까지도 그래왔겠지만 무튼 나는 내 엠피쓰리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로봇같은 녀석이 내게 먼저 말걸어주고 친구하자며 손도 내밀고 뭐냐 친해지자하고. 근데 나는 왜 그 말에 또 좋아라 한건지.
“야, 이거 니가 부른거야?”
솔직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한 마디도 안걸던 녀석이 불쑥 내 엠피쓰리 목록을 내미니까.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녀석이 내민 목록의 제목을 보았다. 그때 딱 무슨 생각이 들었냐며는, 좆됬다. 사실 난 래퍼를 동경하기도 했고 랩하는걸 즐겨하기에 녹음도 했었는데 그 목록을 녀석이 들은 것이였다. 쪽팔림에 날쌔게 엠피쓰리를 빼앗았지만 녀석은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멋있다며 처음으로 내 대갈통을 쓰다듬었다. 때리는 줄 알고 쫄아서 움츠리는 나를 보고 픽, 비웃는 것도 꼼꼼하게 잊지 않고. 녀석은 그 이후 내게 관심을 가졌다. 주말에는 내가 춤추러 다니는 것도 알게되었고 집에 작게 꾸며져 있는 녹음실을 가고싶다고 조르기도 했고 직접 가사 썼다며 불러달라는 것도 잦아졌고. 그래도 여전히 담배나 뭐 지각이나 땡땡이 학생에 맞지 않는거면 날선 손꾸락이 내 머리로 향했다. 내가 녀석을 만나고 나서 더 멍청해진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서 내가 녀석을 좋아하게 된 걸지도. 내가 너무 멍청해져버려서.
“내일 시간 있어?”
“내일?”
“어.”
“몰라.”
“니가 모르는게 있냐.”
몇일을 고민했더라.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녀석의 대답은 설렁설렁했다. 독서실 근처에 고양이를 쓰다듬는데 정신이 팔려서인지 공부할 때만 쓰던 안경 그대로 끼고 있었다. 안경 낀 것도 잘생겼네. 항상 자느라 못봤던 안경 낀 녀석은 의외로 새로웠다. 씨발 보조개 좀 봐, 귀여워. 나름 단정하게 입은 떡볶이코트도 졸라 귀엽잖아. 추워서 그런지 발간 볼이 허연피부에 잘도 어울렸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녀석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된 것도 이상하고 아니, 녀석 자체가 이상했다. 난 여자 좋아하는데. 왜 넌 남자야.
가방을 고쳐매는 녀석을 따라 나도 쭈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끼워진 안경을 벗겨줄려다 말았다. 절대 용기가 없어서 그런게 아니다 고양이 만진 손이 조금 거슬려서 그렇다. 걸을 때 살짝씩 닿는 손이 보드라웠다. 잔뜩 피딱지가 낀 나와는 다르게.
“내일 나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귀찮아.”
“지각 안할게.”
“거짓말.”
“진짜야.”
녀석은 못미덥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순간 손을 들때 나 때리는 줄 알고 쫀건 또 비밀이다. 나는 혹시나 피딱지 낀 내 손을 녀석이 볼까봐 빠르게 손을 꼬았다가 풀어냈다. 야 너 손 뭐야? 또 싸웠어? 눈치 하나는 빠른 녀석은 또 내 대갈통을 크으게 후려쳤다.
“야, 나 손 잡아도 돼?”
“어, 어? 어.”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녀석의 특유 픽, 하고 웃는 소리가 잔잔히 귀에 들렸다. 아씨 쪽팔려. 녀석은 단순해서 금방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겨울인 지금 오늘따라 춥게 입고온 녀석은 손이 시린거고 손을 잡으면 온기가 전해져서 따뜻해지니 나를 이용하는, 뭐 그런거였다. 그래도 마다할 이유가 없어 긍정하니 금세 차가운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여자 손같이 녀석의 손은 조막만했다.
크리스마스도 녀석과 함께 보냈는데 내 생일 마저 녀석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년 조금 안된 시간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녀석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녀석은 그제서야 날 단짝친구로 생각하였다. 그냥 친구도 아닌 단짝 친구. 김원식 많이 발전했다. 사실 이전에 녀석에게 솔직하게 속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대충 나 너 많이 좋아진 거 같다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고. 녀석도 해사한 웃음을 밝히더니 나도 라며 짧게 대답하였다. 이딴 범생이가 뭐가 좋다고 나 혼자 해실해실거리는거야. 이미 알고있으면서도 스스로에게 투덜거렸다. 맞잡은 손이 조금은 따뜻해진거 같기도 했다.
녀석은 나에게 조그만한 선물이라며 조그만한이라는 어휘에 맞지않게 조금 커단한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왠지 가방이 빵빵하다 했더니 정체가 이 것이였다. 나는 나중에 풀어보라는 녀석의 말에 충실하게 각을 맞추어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체크무늬의 포장지로 깔쌈하게 포장되어 있는게 녀석의 성격 그대로 나타나는 듯 했다. 나는 녀석의 생일때 무얼 해주었더라, 공책 종류별로 몇십권을 한참을 골라 박스에 넣어다 줬는데 슬핏 열린 녀석의 가방을 보니 내가 준 공책 몇권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때 같이 준 편지 마지막에… 뭐라고 내가 적었는지. 사랑해. 짧지만 강렬한 말. 그걸 받고도 아무렇지 않아한 녀석도 신기하다. 내 방에 널려있는 만화책 중 하나를 골라 느릿하게 책장을 넘기는 녀석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냥 느낌이 다르다. 막 간질간질하고 오그라드는 그런.
“뭘 봐.”
“니 얼굴.”
“보지마, 닳아.”
“닳으니까 나만 볼래.”
과연 친구끼리 꺼낼 수 있는 말일까. 그때부터 나는 좀 더 깊게 깨달았다 이제부터 나는 녀석에게 친구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고. 그래도 친구라는 사슬로 묶여져 있는게 좋았다. 무엇이든 녀석과 엮여져 있는 자체가 나는 행복했다. 책에서 말하던게 이런걸까. 자꾸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랑 닮은 공통점을 찾는 그런거 말이다. 녀석이 내게 준 편지 마지막 말은 사랑해로 끝났다. 녀석은 아닌 척 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은 점차 정리가 되어 갔다.
정확하게 봄과 여름의 사이, 그 맘때 쯔음 나는 녀석과 연애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지잉-
진동이 짧게 울렸다. 주변 학우들의 눈치를 보며 알림을 확인하자 문자메세지가 하나 왔있었다. 이홍빈이 먼저 보낸 문자가.
풋풋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지금, 아쉽게도 녀석의 학교와 나의 학교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나름 연애는 잘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녀석은 이과로 나는 문과로, 또 녀석은 연필잡이 나는 딴따라. 묘하게 비슷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좋아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달랐다. 그래서 더 끌린거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정’이란 단어를 서술해 보시오.]
마침표까지 완벽히 찍혀있는 문자메세지에 결국 책상에 코를 박고 낄낄거렸다. 교수님의 눈초리가 스쳐지나간거 같았지만 그리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나는 휴대폰 위에 손가락을 올려서 타자를 빠르게 쳐갔다.
[우정→사랑. 우정은 사랑의 발판입니다.]
나름 꽤 오글거려도 맞는 말이지 않는가. 누구를 보고 두근거리기 시작한거면 그건 이미 우정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정은 꽤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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