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시려웠다. 아이들에게 맞은부분이 욱신거렸다. 사는재미가 없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다 옆으로 천천히 눈을 굴렸다. 천천히.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하하호호웃으며 나를 지나쳤다. 그 누구도, 벤치에 앉아 멍하게 사람들을 쳐다보는 나를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했다. 나는 왕따니까. 할 줄 아는게 없었으니까. 자리에 앉은 채 배에 두툼히 앉은 살집을 만졌다. 아이들이 고 야유하며 소리치는 그것. 맞았다. 나는 돼지였다. 돼지.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내뱉은 말 덕에 익숙해져 거울을 보며 하루 한 번, 나에게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나는하늘에게감사했다. 이 이상으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억울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라도 태어났다면 나는 괜찮았을까.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참 벤치에 앉아있던 돼지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쳤다.
몸이 무거웠다. 스트레스를 받아 마구먹어 살이 찌기 시작한 시점부터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무거웠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속상해하며 나를 상담소로 이끌었지만 상담소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는게 대단하네요.' '빨리 상담을 받아야 될 것 같아요.' '마음의 병이 너무 심해요.' 하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뿐 이었다. 더 이상 상담원 선생님들은 내가 그 이상으로 차도를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 이상 안되겠다며 포기하는 눈치였다. 나는 멀쩡했다. 단지 세상이 날미으로 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 내가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날이 벌써 추웠다. 아이들은 저마다 춥다며 두꺼운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돌아다녔지만 난 그러지않았다. 아이들에게 뺏길 것은 물론이요, 살도 많으면서 뭐하러 입고 다니냐며, 사실 필요도 없는거 아니냐며 내게 무어라고 이야기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난 어차피 평범한 아이들과도, 학생들이 만든 카스트제도 가장 위 쪽에 자리하는 아이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부려먹어도 괜찮은 노예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으니까.
이미 날은 어둑해져 걸어가는 길마다 네온싸인이 번쩍였다. 주로, 유흥가쪽이었다. 유흥가 거리에도 옷가게나 음식점은 이미 문을 닫은지 오래였다. 고개를 푹숙이고 걸어가다 한 지점에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완전히 뒤로 젖혀지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이 탁해 별 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순간, 골목길 안 쪽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마치, 옛날 조선시대에서나 볼 법한 복장이었다.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채 도포를 두르고 있었다. 한참 바쁘게 달려가던 남자가 멈춰서더니 고개를 쳐들어 나를 쳐다봤다. 얼굴은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옆의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자리에 멈춰선 남자가 들어올린 갓을 내리고는 서둘러 다시 안 쪽으로 달렸다.
" 잠시만…! "
탄성을 내뱉듯 소리질렀다. 지나다니던 주위 사람들은 왠 돼지냐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신경쓰지 않았던 것 들이니까. 문제는, 사람들이 막고있어 골목길 안 쪽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잡을 수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드디어 사람이 많은 길을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을 무렵, 골목길 안 쪽 에서 빛이 번쩍였다. 나는 서둘러 남자 실루엣이 보였던 곳으로 달렸다. 분명히 골목길 안 쪽은 막혀있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밑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지나갔던 자리인듯, 흙이 가득한 자리에 버선모양의 발자국만 깊게 남아있었다. 나는 뒷걸음질쳤다. 귀신이 틀림없었다. 나는 서둘러 골목길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 남자를 만나고서 변한것은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없는 사람, 혹은 왕따로 취급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원래 작은 키였기 때문에 이 이상으로 키가 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약간 이나마 키도 크기 시작했다. 이제 대우가 조금 달라지겠지, 하고 부푼 마음을 내보인 것도 잠시, 아이들의 행동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곳 에서 머물 수 있는 힘이 사라져 버린거라고. 아이들에게 괴롭히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아이들은 분명, '재미로.'라고 이야기 할 것이 뻔했다.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다, 어느 순간 경련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가는교실 안에 있는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멍하게 교실 안 쪽을 빙 둘러보다 자리에서 일어서 가방고리를 잡았다. 집에 가야했다. 누군가가 깨워주지 않을 거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섭섭하지도 않았다. 집에 갈 생각으로 가방을 맨 채 뒷문을 여는데, 바깥쪽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반 아이들이, 무슨 일인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 아 짜증나! 하는 소리를 연신내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좋지 않은 일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반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몰려다니는 몇 아이들도 거기에 포함 된 채였다. 아이들이 문 앞에 선 인기척을 느낀 짧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했다. 어떡하든 기분 나쁜 아이들은 내 볼을 툭툭치며 무시할게 뻔했다. 그렇다면, 밖으로 나가는게 맞았다. 아이들이 문고리를 잡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내가 먼저 뒷문을 열었다. 저절로 열리는 문이 신기한지 멍한표정으로 뒷문을 쳐다보던 아이들이 이내 시선을 내게로 바꿔왔다.
시간이 멈춘기분 이었다.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의 표정에 비웃음이 잔뜩이었다. 걔 중 가장 앞에 있던 남자아이가 손가락을 내밀어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나를 툭툭 건드릴 때마다 가슴께에 있던 명찰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김종인. 김종인이 멸시하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야, 니가 내 돈 가져갔지, 이 왕따야. "
입에서 나오는 욕설은 거칠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제나 겪던일이었다.
" 살 빼고나서 얼굴은 괜찮아졌는데, 그 괜찮아진 얼굴로 늙은 영감들 꼬시고 다닌다는 소문이 학교에 자자해. 몰랐지? "
대답하지 않았다. 버틸 수 있었다.
" 그 소문 누가 퍼트렸는 줄 알아? "
" …. "
" 왕따 니 하나밖에 없는 친구, 변백현이. "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났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쳐다봤다. 그 사이에, 변백현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멍하게 변백현을 쳐다봤다. 변백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내가 김종인에게 거칠게 멱살을 잡히는 순간, 변백현이 내 시선을 피했다. 친구하나 없던 나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절하게 대해줬던 친구였다. 그래서 다 해줬다. 게임기를 빌려가서 주지 않을 때도, 숙제를 가져가서 내가 혼나도 친구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왕따라는 소문이 나든 몸을 판다는 소문이 나든 상관없었다. 문제는, 그것을 퍼트린 사람이 변백현이라는데에 있었다.
내가 반응없이 김종인이 멱살을 휘두르는 대로 끌려다니자 주위에 있던 아이들의 비웃음소리가 커졌다. 걔 중에는 남자아이들 뿐 아니라여자아이들도 껴 있었다. 흔히, 힘 있는 수컷짐승들이 암컷짐승 앞에서 힘 자랑하듯, 여자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주자 우쭐해진 김종인이 내 멱살을 잡아채, 체육창고가 있는 학교 뒤쪽으로 질질끌었다. 더 이상 반항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반항하면 더 맞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날라오는 것은 무자비한 폭력과 욕설이었다. 간간히 여자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었다. 옷벗겨봐, 함 보자! 하며 각종 음담패설이 섞인 욕설을 뱉어냈지만 남자아이들은 며 발길질만 연신해댔다. 움직일 힘이 없어 자리에 누워 연신 가파른 숨만내뱉자, 그제서야 킬킬 웃은 남자아이들이 저마다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발로 짓밟으며 내 호주머니를 뒤졌다. 뻔했다. 돈이 될 만한게 있나 하는 거였다. 내 지갑을 찾아 낸 남자애들이, '야, 대박 현금 십만원씩 들고 다녀.' '얘네 집 나 부자라니까.' 이야기하며 사라질 때 까지 나는 자리에 누워 눈만 껌벅였다.
내가, 사는 이유는 대체 뭐지.
급격하게 밀려오는 궁금증에 나는 몸을 비척였다. 발 인대가 늘어난 모양이었다. 아릿한 통증이 몰려왔다. 처음 발 인대가 늘어난 이후로 자주 겪는 현상이었다. 첫 날에야 눈물이 쏙 빠져 나오도록 아픈 거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익숙했다. 아프지도 않았다. 익숙한 고통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갑기까지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저 멀리에 던져진 가방을 들어올렸다. 여자아이들의 것인지 남자아이들의 것인지 모를 가래침들이 잔뜩이었다. 손잡이 부분은 멀쩡한 것 같아서 손잡이 부분을 붙잡아들었다. 이제서야 발목통증이 한꺼 번에 몰려들었다. 몸에 있는 근육들이 움직일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걸어야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변백현 생각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묻혔던 생각들이 불쑥 수면위로 떠올랐다. 사람많은 길거리가 조용해졌다. 가끔, 이런 느낌이 들곤 했다. 몸이 무거웠다. 언제나 맞을때면 느꼈던 기분이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다. 손목도 욱신거렸다. 눈앞이 흐릿흐릿 해진다고 느낀 순간 이 장면을 어디선가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보이는 유흥가주점들, 이미 문을 닫은 음식점과 옷가게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골목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에 멈춰섰다. 그 남자였다. 그 남자가 갓을 쓴 채 몸을 내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남자였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아릿한 다리로 남자쪽으로 뛰었다. 남자는 달려오는 날 쳐다보더니 다시 골목길 안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남자는 날 기다리듯 느릿한 발걸음으로 걸었다.
발목이 아픈 것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골목길 안쪽으로 깊게 들어갔을 무렵, 밝은 하얀빛이 벽쪽에 그려져 괴이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남자는 망설임없이 빛 안으로 몸을 던졌다. 남자가 빛 안쪽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멍하게 쳐다보던 내가, 빛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쳐다보곤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안 쪽으로 몸을 던졌다. 밝은 빛이 몸을 감쌌다. 눈을 질끈 감았다. 꿈인게 틀림 없었다. 그렇다면, 잠깐쯤은 괜찮겠지.
빛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몰려오는 피곤함을 느끼며 나는 눈을 내리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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