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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학교를 닮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땀냄새, 분냄새, 별관에서 풍겨오는 급식 냄새로 바글바글한 학교가 아니라 겨울방학, 불꺼진 쓸쓸한, 어쩌면 암울하기까지한 홀로 남은 학교를. 

창을 통해 가만히 비쳐오는 겨울 해를 받으며 불꺼진 복도에 홀로 가만히 서 있는 나와, 저 계단 위 음악실에서 모습조차 숨기고는 희미한 피아노 선율로만 자신을 알리는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까만 머리 소년은 무엇이 그리 고되어 그 어둑한 학교에 홀로 남아 자신만의 노래를 했고, 나는 그 무엇에 미련이 남아 발길을 옮기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는가. 

아직 학교가 제 속을 다 비워내기 전 여름 햇살이 후덥지근하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친구들과 한바탕 다투고 다른 아이들과는 마주치고싶지 않지만 또 혼자 있기는 서러웠던 그런 날. 나는 잠겨있는 옥상 통로와 음악실만 있는 학교의 꼭대기 층에 올라 울음을 속으로 삭혔고 너는 그런 내가 기댄 문 너머에서 피아노를 쳤었다. 도레미도 높은 음자리표도 모르지만 그 선율이 낮고, 짙고, 무거워 너도 나처럼 슬퍼하는 것만 같았던. 멋대로 위로받고 멋대로 가슴에 담은 그런 곡을. 

한참을 멍하니 듣고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면, 헐렁한 회색 교복 바지와 진한 남색 티셔츠를 입고 무심한 듯 살짝 커진 눈으로 날 보던 네가 보이고, 네 관절이 두드러진 큰 손과 그 손 안에 구겨진 악보에 시선을 뺏겼었다.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호흡이 가빠 훌쩍대던 나를 너는 어색한 몸짓으로 지나쳐 내려갔고 그런 네 뒷모습을 부어버린 눈으로 훔쳐봤던 그런 날이었다. 

나는 자주 위로받고싶을 때 그 선율을 어설프게나마 흥얼댔고 종종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너를 찾아 눈을 굴렸다. 너는 어떤 날은 농구를 하느라, 어떤 날은 밥을 먹느라 바빠 나를 보지 못했고 그런 네 모습에 안도하며 새하얀 네 손끝을 힐끔대는 새에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왔다. 

너는 그 후로도 음악실에서 이름 모를 무거운 음들을 빠르게 느리게 강하게 연주하며 시간을 보냈고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네가 연주하는 게 아니라 작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 음악으로 위로받은 최초의 사람이었으나 너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친하지도 않은 네 친구에게 아는 체를 하며 은근슬쩍 물어본 바로는 너는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고,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시간이 많으며, 작은 체구가 컴플렉스인 아이였다. 나는 항상 네가 남들이 몸을 키우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때 너는 건반 위 혹은 네 손에서 구겨지던 그 종이들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남들보다 자라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네가 이어붙이는 그 음들은 내 안에 침전되어있던 무언가를 저 바닥부터 끌어올려 헤집어 놓곤했기에 웬만한 정성을 쏟지 않고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도 너와 나 사이에 접점은 없었고 이따금씩 음악실 앞에서 스치듯 마주치긴했으나 먼저 말을 붙이는 일도 없었다. 나는 다만 네 손에서 만들어지는 곡조를 사랑했고, 너는 다만 문 너머의 내 존재를 모르는 척 하며 어제보다 다채로워진 선율을 들려줄 뿐이었다. 

알음알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너는 예대에 진학하려했으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고한다. 그 이후로 너는 음악실을 찾지 않았고 자연스래 나도 발길을 끊었다. 마지막 겨울 방학이 끝나고 부산스러운 졸업식도 잘 끝낸 후에 몰래 숨어들어온 학교에서 나는 오랜만에 네 영혼 한자락을 들었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불다 놓쳐버린 풍선처럼 축축 늘어난 껍데기만 남고 그 안을 꽉 채우던 숨결도, 흔적도 빠져나가버린 그 겨울날의 학교를 닮은 건, 네가 아니라 네가 없는 음악실에 당그러니 놓여진 그 갈색 피아노였고, 네 노래를 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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