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 우리의 밤
(분량 많은 편입니다. 로딩 주의!)
청춘의 결말 12
(그 남자의 시점)
유리와 함께한 내 고등학교 생활은 매 순간이 평범한 듯 보여도 행복했다.
유리의 말 한 마디에, 유리의 행동 하나에 나의 하루가 좌우됐다.
나는 너와 내가 평생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와 요리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좁디 좁은 단칸방에서, 아빠라는 사람의 횡포 속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그 순간 만큼은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내가 한 음식을 그 누구보다 맛있게 먹던 우리 엄마를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가 되겠다고 엄마와 약속했다.
그리고 내 꿈을 꼭 이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유리는 내가 요리하는 걸 가장 좋아했다.
요리하는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이 너무 좋아서 괜히 안 해도 되는 묘기까지 부리고는 했다.
유명한 셰프가 되어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너에게 더 멋진 남자친구가 되고 싶었다.
3학년이 되면서 나는 너무 바빠졌다.
여기저기 레슨을 받으러 다녔고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대회는 다 참가한 것 같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유리는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해 많이 힘들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응원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너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내가 건네는 응원이 오히려 너를 힘들게 할까봐.
나는 그게 겁이 났다.
그리고 내가 프랑스를 가게 되면서 우리 둘은 한없이 멀어졌다.
셰프님은 새로운 사업을 위해 프랑스에 가시면서 나를 데려가시려고 했다.
프랑스에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언제 나에게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싶었다.
슬퍼할 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일주일 전 유리를 만났다.
울면 안 된다고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유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유리야.”
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치도록 마음이 쓰라렸다.
“나.. 좀 멀리 가게 될 것 같아.”
“... 어디로 가는데?”
“프랑스.. 안 가려고 했는데 나한테 다시는 안 올 기회라서... 놓치고 싶지 않아 유리야..”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기다려달라고 말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그러나 내 욕심 때문에 유리를 기다리게 할 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감히 내가 기다리게 하기에 너는 너무 큰 존재였다.
“꼭 가야하는 거지...?”
“... 미안해. 너한테 기다리라고 말 안 해.. 지금은 당장은 너무 힘들겠지만 나 잊어주라..”
나는 정말 나쁜놈이다.
그날 나는 유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외국에 온 것도, 그리고 외국에서 생활하게 된 것도 처음이라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생각보다는 타지 생활에 꽤 빠르게 적응을 했다.
나는 셰프님이 운영하시는 레스토랑의 막내 셰프로 일을 하게 되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말동무라고는 셰프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점점 셰프로서 발전하는 나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물론 가끔씩, 아니 매일 밤 유리 생각에 남몰래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성우가 전해주는 너의 소식 하나에 나는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유리는 올해 수능을 다시 친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았다는 것이었다.
네가 하는 거라면 뭐든지 응원하겠지만 그게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니 더 기뻤다.
그리움마저 익숙해질 때쯤 나는 군대를 가게 됐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 빨리 갔다와버리고 싶다는 나의 의견에 따라 생각보다 더 빨리 가게 됐다,
감히 내가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가기 전 유리의 얼굴을 한 번만 보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유리가 수능을 치기 전 날이었다.
“유리야.”
나를 모르는 척 하는 너의 모습이 보였지만 욕심을 냈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 밥은 먹어가면서 하는 거야?”
너무 마른 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
“.... 내일 수능이지? 따뜻하게 입고 가. 핫팩도 챙기고.”
“...”
아무 말도 없는 너에게 나는 또 한 번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나 군대가.”
욕심을 내 너를 찾아온 것을 정말로 후회했다.
“... 언제?”
“일주일 후에.... 그래서 한국 왔어.”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왔어. 미안해.”
“너 누구보다 열심히 했을 거 다 알아. 긴장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만 하고 와.”
언제나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미안... 미안해 유리야. 나 갈게.”
흐르는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군 생활을 하면서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성장했다.
가끔 네가 나를 찾아오길 바라기도 했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그냥 네가 아프지 않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너의 얘기를 들어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동아리 애들을 만나러 가는 그 길에서까지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 느꼈다.
난 아직 너를 잊지 못했다고.
나를 보고 앞에 놓인 술만 마시는 너를 보면서,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안겨 가는 너를 보면서 나는 그저 혼자 아파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그 둘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에서 나는 꽤나 유명해졌다.
이제 나는 주방의 막내가 아닌 수셰프가 되었다.
셰프로서 나는 계속 성장했다.
성우가 나를 보러 프랑스에 온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을 이곳저곳 살펴 보더니 계속 감탄을 했다.
“오~~~ 황민현 많이 컸다? 멋있다잉.”
성우는 언제나 사람을 웃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숙소로 올라가 성우와 술을 마셨다.
와인 한 잔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너 근데 왜 연애는 안해?”
어째 연애 얘기 안하고 넘어가나 했다.
“그냥... 별로 생각없어.”
“옘병. 너 아직 성유리 못 잊었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알면서 물어보는 것 같아서 괜히 짜증이 났다.
“.... 성유리 그 선배랑 헤어졌어.”
아마 내 눈빛이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
“나는 너네 이제 진짜 끝인 줄 알았는데... 동창회 날 일부러 아무 말도 안했거든 유리한테. 근데 너도 유리도 아직인 것 같다..”
“시간 너무 많이 지난 거 알지? 갈 거면 빨리 가 성유리한테.”
“어휴 바보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성우는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지만 몹시 진지했을 것이다.
우리 둘을 그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본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성우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셰프가 되었지만 정작 내가 셰프가 되고 싶은 이유였던 엄마도 유리도 내 곁에 없었다.
헛되이 보낸 우리 둘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작정 한국으로 갔다.
우리 동아리였던 진희의 결혼식을 핑계로 삼았다.
일이 바빠 못 가겠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막상 식장에 도착을 하고 보니 겁이 났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식장 앞에서 서성이기만 했는데
유리가 멀리서 걸어왔다.
“유리야.”
너무 오랜만에 너의 이름을 불렀다.
20대 중반 쯤의 너는 더 예뻤고 빛이 났다.
“더 예뻐졌네.”
“못 온다고 했잖아...”
당황스러운 눈빛이었다.
평소였으면 피하고 싶었을 상황이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미친 척 용기를 냈다.
더 이상은 숨고 싶지가 않았다.
“난 너 안 보고싶었어.”
“...”
“몇 년만에 나타나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어? 너 하나도 안 반갑고 지금 이 상황 어이없어.”
너는 나에게 모진 말만 뱉었지만 네 눈빛이 나에게 말했다.
너도 나처럼 날 그리워했다.
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네가 어떻게 사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나는 네가 많이 보고싶었다.
너무 보고싶었어, 유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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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늘이 가기 전에 업로드 할 수 있게 됐네요ㅠㅠㅠ 앞으로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민현이의 속마음을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번 편은 아주 오랜만에 그 남자의 시점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어쩌다 보니 12편이 제가 쓴 글 중에 가장 분량이 많은데 그만큼 큰 재미를 느끼셨음 좋겠네요ㅠㅠ 제 글을 쭉 봐주셨던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과거 여주의 시점으로 썼던 글들을 민현이의 시점으로 다시 썼어요! 9,10,11편은 물론이고 1편에 나왔던 민현이와 여주의 모습까지 담았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기다려주셨던 행복+설레임이 아주 조금은.. 보이시나용...? 지난 글에 민현이를 너무 안타까워 하셔서.. 죄송하더라고요ㅠㅠㅠ 다시 만난 민현이와 여주의 앞날을 많이 기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댓글 남겨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