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택운의 일상에 변함이 없었다는 건 물론 아니었다. 택운이 다시 원식을 피해다니자 원식도 제풀에 지친듯 보였다. 대놓고 자길 싫어하는 티를 내니 이건 뭐 썸도 아니고. 보기 좋게 뻥- 하고 차인 원식은 이제 마음을 정리하고 택운을 그냥 잊기는 개뿌울,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김원식으로 나타나 택운에게 계속 치근거리기 바빴다. "운아, 문학이 너 오래." "왜?" "몰라. 그리고 이거 너가 갖다드려." 학연이 발소리를 쿵쾅 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거칠게 택운의 책상에 종이뭉치를 내려놓은 학연이 잔뜩 심통난 표정으로 칠판만 노려본다. 학연이 교무실에 볼 일이 있다길래 문학수행평가를 학연이 편에 보냈는데 그걸 받지 않고 기어코 택운을 부르는 원식이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김원식이...!" 택운이 다정스레 물었다. 또박또박 원식의 성까지 붙여 대꾸하던 학연은 말을 다 잇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냐. 너 얼른 가 봐." 학연은 토라진 와중에도 택운의 팔을 잡아당겼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택운이 쭈뼛거리며 종이를 들고 교무실로 향한다. * "어, 왔어?" 책상에 수행평가 용지를 살며시 놓고 가려던 택운의 발목을 원식이 잡았다. 모니터만 보길래 몰래 가려고 했는데. 아까운 마음에 택운이 속으로 말을 삼켰다. "이런건 문학부장이 직접 해야지. 왜 애꿎은 친구한테 시키고 그래." "..." 택운은 멀건 눈빛으로 대신 대답했다. 원식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새삼 새로웠다. 옅게 퍼진 미소가 여유로워보인다. 택운은 이 미소가 오히려 더 짜증났다. 분명 어젠 자기한테 고백했으면서. 싫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전과 똑같은 원식이 미웠다. 사실 원식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 참 많았는데 택운은 깊게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냥 밉다고 딱 잘라 정의를 내렸다. "택운학생, 점심시간 10분 남았는데 같이 산책이나 할래요?" "선생님이 할 말도 있고 해서." 말하면서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원식을 어떻게 말릴까. 택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4월의 교정은 제법 한산하다. 손에 하나씩 초코에몽을 든 원식과 택운이 운동장을 가볍게 걸었다. 느릿느릿하게 걷는 둘은 성적에 대해 상담하는 흔한 사제간의 모습이 분명했지만 실상은 전날 좋아한다 어떻다, 사귀자는 얘기까지 나온, 커플이 될 뻔한 남정네일 뿐이다. "..." "..." "..." "..." "..공부는, 잘 되가?" 괜히 분위기 잡던 원식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란 게 바로 저거였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이 상황에 영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고새 택운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핀다. "....네." 모기만한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쥐어 짠 택운이 빨대를 잘근잘근 씹는다. 빨대 끝을 다 씹었는지 너덜너덜해진 끄트머리를 물고 바닥을 드러낸 초코에몽만 쪽쪽 빨았다. 아까보다 택운의 귀 끝이 살짝 빨개졌다. "어제," "..." 원식이 다 먹은 초코에몽을 꾸깃하게 움켜쥐고 운을 띄웠다. 택운도 빨대를 빨아들이길 멈췄다. 잠깐 정적이었던 짧은 순간에도 택운은 온 정신을 원식에게로 집중했다. "어제 말한거 진심 아니야." "...?" "..헐! 뭐래, 미친. 진심이야. 진심이라고. 어제 너한테 말한거 전부 진심이야. 내가 학생 진짜 좋아한다고. 그래, 너 진짜 좋다고." 말실수에 당황한 원식이 속사포로 말을 뱉었다. 연이은 고백에 택운은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아무 말 않기로 했다. 고백도 계속 들으니 이젠 감정이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원식이 발을 동동 굴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너는?" "뭐가요?" "어제 한 말. 진심이야?" "음," 택운은 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의 고백을 그리 매몰차게 내칠 리 없는 택운이었다. 그리고 뇌도 거치지 않고 얼떨결에 말한 대답이었다. 생각을 하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심이 맞았다. 지금 원식과 이렇게 걷는 이 시간이 불편한건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모르겠어요." 순간 원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의미심장한 말로 대충 둘러댄 택운의 말엔 뼈가 있었다. 슬쩍 빠져가려던 택운은 오히려 원식에게 단단히 붙잡혔다. 스아실 택운이 백 번 양보하고 원식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보인것도 모르고. "그흐래?" 원식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점잖게 말하려했지만 음흉한 표정을 숨길 순 없었다. 여지를 남긴 택운의 말을 곱씹으며 놀아나고있는 당신의 처지 또한 모른채. * 택운은 오늘따라 긴 배식줄에 눈살을 찌푸렸다. "1반이면 뭐해." 학연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택운의 뒤에 서서 쫑알쫑알 툴툴대기에 바빴다. 매주마다 바뀌는 배식 순서에 이번주는 1반이 제일 뒤로 밀려났다. 겨우 2학년 바로 앞 순서에서 밥을 받게된 택운은 그저 제 순서를 조용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줄이 제법 줄어 택운이 수저를 집으려는 찰나, "선생님 먼저 먹을게~" 얄미운 선생님들 무리가 택운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수저를 향해 뻗은 손을 차마 거두지 못하고 숟가락 하나만 쏙 빼와 멍하니 서서 선생님들 등만 쳐다보는데 선생님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엔, 원식이 있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생글생글 웃으며 식판을 집어들은 원식이 제 뒤에 있는 택운을 발견하고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택운은 눈을 뾰족하게 세우고 원식의 옆에 착 붙어서 젓가락을 마저 집었다. "하나도 안 미안해보이는데요." 원식의 손이 택운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본 학연이 불퉁대며 쏘아붙였다. 그제야 학연을 발견한 원식이 웃는 낯을 싹 지우고 고개를 휙 돌렸다. 저 새끼 지금 내 말 무시해? 학연이 욱, 하고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은채 식판을 집었다. '참는게 이기는거야.' 언젠가 택운이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급식에 초코우유가 나와서 금방 화가 풀어진건 당연 아니었다. "어? 거기 내 자린데?" 초코우유까지 완벽하게 받아낸 학연이 택운을 따라 자리로 오다가 원식의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언제나 택운의 맞은편은 제 자리였는데, 그걸 원식이 보기좋게 빼앗아버렸다. "니 자리 내 자리가 어딨어. 그냥 앉아." 자리에 앉지도 않고 멀뚱하게 서있는 학연을 본 원식이 일침을 놨다. 학연은 도와달라는 눈으로 택운을 쳐다봤지만 택운은 묵묵히 원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씨이..." 학연이 마지못해 택운의 옆에 앉았다. 늘 둘이 먹던 자리에 원식이 끼어드니 학연은 불편한 마음에 고개를 식판에 박고 밥만 먹었다. '택운이 앞모습도 못보고..그래도 운이 옆에 딱 붙어서 앉아있다♥' 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던 학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택운을 쳐다봤다. "우리 운이, 밥 먹는 옆모습도 귀엽네~" 학연은 볼록 튀어나온 택운의 볼을 검지로 꾹 누르고 엄마미소를 시전했다. 학연을 쳐다보는 택운의 표정은 마치 '뭐야, 이 새끼.' 였지만. "선생님은 먼저 갈게." 여전히 밥을 먹고있는 택운과 학연을 두고 원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택운이 원식을 쳐다보니 언제 먹었는지 식판은 싹싹 비워져있었다. 원식은 저를 쳐다보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귀여운지 씨익 웃으며 택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무언가 생각난듯 아, 하더니 아직 먹지 않은 초코우유를 택운의 식판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깜찍이, 많이 먹어~" 원식이 여전히 멋있게 웃으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택운은 식판 위에 놓인 초코우유 두 개를 쳐다봤다. 초코에몽에 초코우유까지. 시발. ".....뭐야? 왜 문학이 내 애칭을 알고있어?? 어? 나만 부르는 깜찍인데 왜 알고있냐고!!" 원식에게 들리든 말든 흥분한 학연은 큰소리로 택운의 팔을 잡고 소리쳤다. 택운은 흔들거리는 몸에도 불구하지 않고 초코우유를 노려보며 식사를 계속했다. 옆에선 학연이 찡찡거림을 멈추지 않고. 원식은 급식소를 나가면서 저 뒤에서 크게 들리는 학연의 말에 더 크게 미소를 지었다. * * * * * 너무 늦게 왔죠?ㅠㅠ오늘은 제가 듣고싶은 노래를 한번 첨부해봤어요! 사실 제가 이 썰을 처음 계획할 때 랍택/엔택인 랍택엔으로 생각했는데 랍택의 비중이 클것같아 랍택으로만! 정했는데 오늘 쓰면서 제목을 랍택엔으로 얼마나 바꾸고 싶었는지..ㅇㅅㅠ읽으시는 내 사랑 독자님들은 앞으로 학연이와 택운이의 관계가 뭔가 말랑말랑하고 막 그르면 랍택엔을 기반으로 한 랍택이란 걸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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