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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주년 기념일












입사 5년 차의 성실한 직원, 서른 살의 김남준은 오늘도 하루 종일 타자를 두드리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주물렀다. 원래대로라면 5시에 일을 마쳤어야 하는데, 오늘 퇴근을 서둘러야 한다며 한 시간 전에 업무를 우르르 주고 나간 김 과장 덕에 7시가 다 되어서야 한글 파일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남준은 김 과장에게 카톡으로 파일을 보낸 후, 외투를 챙겨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그의 여자친구와 만난 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6시에 만나기로 했던 걸 한 시간이나 미뤘으니, 토라져 있을 모습이 남준의 눈앞에 그려졌다. 그럼에도 입가에 피어나는 작은 미소에, 남준은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남준은 완벽에 가까운 남자였다. 키, 외모, 패션 센스, 업무능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100% 완벽해질 수 없는 건, 그의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그가 여자친구에게 하는 행동 때문이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여자친구와 기념일마다 찾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선 남준은 단번에 여자친구를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남준만큼 완벽에 가까운 여자인 여주는, 조금 늦었지. 하고 미안해하는 남준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상대방의 미안함을 덜어주는 말과 함께. 둘은 언제나 먹던 메뉴를 시켰으며, 테이블 위로 손을 맞잡았다. 익숙하지만 설렘이 느껴지는 둘의 분위기가 남준은 좋았다.





"오늘 일이 많았나 봐?"


"아, 과장님이 갑자기 일을 주셔가지고. 원래 5시까지 마치려고 했어."


"그렇구나."


".. 자기야."


"응."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여주가 완벽하지 못한 이유도, 그의 남자친구인 남준 때문이었다. 오늘 처음 얼굴을 마주한 때부터, 평소보다 묘하게 가라앉아 있는 여주의 분위기를 남준은 금방 알아챘다. 타고난 센스 때문이기도 했고 그만큼 여주와 오래 함께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테이크를 썰던 여주는 작게 숨을 내쉬고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이럴 때는 남준이 눈치가 빠른 게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이런 상황은 최대한 늦추고 싶었는데. 아무 말이 없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준의 얼굴이 애석하게도, 다정해서 좋았다. 그 얼굴에 잠시 망설이다 남준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나 여섯시부터 여기에 있었어."


"..."


"솔직히 오늘은 일하느라 늦는다고, 안 그럴 줄 알았거든."


"..자기야. 그건 내가 아까도 말했,"


"아무리 평소에 나보다 일이 먼저였어도, 기념일때만은 한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





조금씩 떨려오는 여주의 목소리에 남준의 표정도 굳어갔다. 남준은 언제나 여자친구보다 일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여주는 그게 서운했다. 자꾸만 차오르는 서운함을 항상 꾹꾹 눌렀다. 친구들이 주위에서 말려도, 욕해도, 자신이 힘든 걸 알아도 남준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남준이 때때로 주는 사랑이 벅차고 행복해서. 그리고 남준은 그런 여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주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지친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 표정에 여주는 항상 생채기가 났다. 그들이 완벽해질 수 없는 이유였다.





"..전에도 말했잖아. 내가 일을 중요시 하는 건, 너한테 좋은 선물을 하고싶고 좋은 곳을 데려가고 싶고 좋은 미래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그거 알아? 네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이 관계가 미래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


"..무슨 뜻이야?"


"이미 이해했잖아. 넌 똑똑한 사람이니까."


"김여주."


"나한테만 중요한 날이었나봐. 오늘."


"..."


"나만의 3주년이네."





반지 하나 없이 깔끔한 남준의 손을 보며 살짝 웃어 보인 여주는, 단 한 번도 빼지 않아 여기저기 흉터가 생긴 반지를 빼 남준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작은 선물상자도 함께 올려놓았다. 여주야. 자신을 부르는 남준의 목소리에도 덜덜 떨리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안녕. 하는 인사를 건넸다. 짧고 간결한 말에 남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련 없이 레스토랑을 빠져나가는 여주를 눈으로 좇다, 손바닥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눈이 따갑게 시려왔다.


우리의 3주년 기념일, 너와의 만남을 끝냈다.





































남준은 여주를 사랑했다. 그녀가 항상 최우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랑했다. 힘들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여주를 찾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에겐 일이 더 중요했다. 그 이유는 여주와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남준은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랐다. 당장 눈앞의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걸 끝내 몰랐다. 그래서 그녀를 놓쳐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남준은, 여주가 준 선물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한 달 전 스치듯 갖고 싶다 말한 시계가 들어있었다. 남준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줘버렸다. 차마 잡을 수도 없을 만큼.




양복 차림 그대로 잠이 들었던 남준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여주의 반지를 자신의 방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반지를 남준은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안녕이라는 간결한 인사말이 나왔을 때부터 꿋꿋이 참아왔던 눈물이 멈추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반지 옆에 놓인 남준의 반지가, 작은 흠집 하나 없이 반짝거려서. 결국 남준은 주저앉아버렸다. 벌써 네가 그립다.


































"자기야, 나 물 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잠이 덜 깬 남준은 텁텁한 목에 익숙하게 여주를 불렀다. 주말이면 항상 남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여주는 항상 남준보다 먼저 일어났다. 느지막이 일어난 남준은 잠이 미처 다 깨기도 전에 여주를 찾았다. 그런 남준을 여주는 항상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자기야, 하고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집안에 느릿하게 눈을 뜬 남준이 부엌으로 가 물을 꺼내 마셨다. 넓지 않은 집 여기저기가 그녀의 흔적이다. 그러고 보니 주말에 밖에서 데이트를 한 게 몇 달 전인지 모르겠다. 남준은 주말에도 일을 했다. 일에 열중하는 그 옆에서 하루 종일, 그렇게 몇 달 내내 기다렸을 그녀가 그려졌다. 되짚어 볼수록 절망적이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너의 기다림을.











일요일도 멍하니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낸 남준은, 월요일이 되어도 똑같았다. 잠을 잔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를 멍한 정신 상태로 어찌어찌 출근을 했다. 남준은 일에 미친 듯이 집중했다. 그녀의 생각을 잠시나마 지워버리기 위해. 그 방법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그렇게 잠시 죄책감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잠깐 가벼워진 마음은 금세 우울감에 접어들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각자의 지인들이 서로와 가까워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남준의 회사 건너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여주는 동료들과 함께 들어오는 남준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여주와 눈이 마주친 남준도 마찬가지였다.




"여주씨 오랜만이네? 얼굴 좋아보인다. 남준씨가 잘해주나봐?"


"아.."


"..."





능글맞은 남준 동료의 인사에 여주의 얼굴에 잠시 당황한 표정이 일었다. 아직 안 말했나 보네. 간단히 생각한 여주는 남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요, 항상 잘해주죠. 그 대답에 남준은 자신이 더 비참해졌다. 자신에게 상처만 가득 안겨준 사람을 끝까지 배려하고 있다. 며칠 새 얼굴살이 빠진 하얀 얼굴로. 남준은 알아볼 수 있었다. 동료들이 먼저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자, 그제서야 남준이 여주의 앞에 섰다. 그도 그녀도 서로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아직 말 안했나봐?"


"..미안."


"..아니야. 천천히 말해. 난 괜찮으니까."





여주가 먼저 건넨 질문에, 한참 말을 하지 않던 터라 남준이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그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이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남준의 목은 계속해서 매여왔다. 누군가 음식을 체할 정도로 목에 억지로 집어넣는 듯한 기분. 자신의 목소리에 당황한 남준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자, 여주는 항상 남준이 먹던 음료를 포스기에 찍었다.





"오천원 입니다."


"..."





그 어느 말보다 평범한 이 말이, 남준에게는 사무치게 시렸다. 더없이 사무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장난으로 가득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결제만 하는데도 10분 이상이 걸리는 남준을 동료들이 항상 놀려대곤 했었다. 카드를 주고받는데도 장난이 한가득. 그렇게 추억이 많던 카운터에서 오늘의 남준과 여주는 손님과 사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남준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카드를 건네는 남준의 손이 작게 떨려오는 걸 분명히 보았음에도, 여주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남준의 모습에 더 마음을 다잡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힘든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

남준이 후회물이 보고싶었을 뿐,,

후회를 아주 열정적으로 하네요..네..

더 이을지 말지 잘 모르겠숴여,,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비회원120.199
앜 아아아아아 작가님 대박 꼭 이어주셔야 해요ㅠ제발 ㅠㅠㅠ 감사합니다 ㅠㅠㅠ
7년 전
대표 사진
비회원78.47
작가님 제발 이어주세요ㅠㅠㅜㅜㅜㅜ
7년 전
대표 사진
독자1
이어주세요... 플리즈..
7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헉...사랑해요..
7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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