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경수야. 이리 와봐."
"왜, 왜?"
쭈뼛쭈뼛 다가오는 경수를 한심하게 쳐다본 종인이 좁고 낮은 어깨에 팔을 턱 걸치고는 귓가에 나른하게 속삭였다. 경수야, 나 오늘 청소야.
"그, 근데?"
"한번에 못알아 듣냐? 나 청소라고."
경수를 향해 나직하게 말한 종인이 어깨에 걸친 팔을 들어 경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자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경수의 볼이 복숭아마냥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그런 경수를 쳐다보고 슬쩍 웃은 종인이 자신의 가방을 한쪽으로 매고는 뒷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나 바쁘니까, 너가 대신 청소좀 해라. 내일보자."
"어? 으응, 잘가.."
멀어져가는 종인의 뒷태를 본 경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혼자 빈 교실을 청소해야된다는 사실에 우울해진 경수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길을 기억해내고는 가방을 책상위에 내려놓고는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쓸기 시작했다.
***
"야, 경수야."
"으응? 왜, 왜, 종인아?"
종인은 수학 문제집을 붙들고 낑낑대는 경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말에 몸을 크게 움찔하고는 쳐다보는 경수에 웃음이 나올뻔 한 종인이 애써 정색하며 경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경수는 종인의 시선에 어쩔줄 몰라하며 샤프 꼭다리를 입에 물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러댔다. 경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고있던 종인이 경수의 오른손이 잡혀있는 문제집을 놓고는 주머니에서 오천원짜리를 꺼내 경수에게 쥐어주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있는 종인에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개진 경수는 고개를 내려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나 배고파. 매점에서 빵좀 사와라."
"응? 빵?"
"엉. 내가 맨날 먹는거 알지? 그거 사와."
경수에게 빵 사오라는 말만 하고 바로 엎드려버린 종인은 킥킥대며 웃었다. 자신의 손이 닿자마자 얼굴이 달아오르던 경수가 생각나 온 몸이 들썩였다. 경수는 종인의 말에 한참 넋놓고 있다가 매점으로 달려갔다. 한참 매점이 미어 터지는 3교시 쉬는시간인 지금, 경수는 한손에는 초코빵 한손에는 초코우유를 들고 만신창이가 되어 매점을 터덜터덜 나왔다. 이 시간의 매점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가뜩이나 체구도 작고 어깨도 좁은 경수는 이리저리 치이고, 어깨빵을 여러번 맞은 탓에 아파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교실로 향했다. 경수는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종인을 찾았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백현과 수다를 떨던 종인은 경수를 발견하고는 얼른 오라고 손짓을 했다.
"사왔어? 아이구, 잘했다."
"뭐야, 김종인. 맨날 도경수 심부름이나 시키고."
"넌 가만히 있어, 새꺄."
종인은 경수에게서 빵과 우유를 뺏듯이 가져가고는 남은 돈은 너 가져. 라고 말했다. 경수는 괜찮다고 하고싶었지만 다시 백현과 얘기를 나누는 종인에 말없이 돈을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야, 수현이 어때? 응?"
"아, 그냥 그렇지 뭐."
"아 뭐야, 잘 좀 해봐."
"나 그런 화떡 싫어한다고 했잖아."
"뭐야, 너가 언제 고분고분 여자 소개받은적은 있었냐? 뭐 맨날 싫대."
"좀 제대로 된 애를 소개시켜주면 되지."
다시 샤프를 잡고 수학문제를 풀고있던 경수가 종인과 백현의 대화에 귀를 쫑긋거렸다. 여자라니? 소개라니? 종인이 여자 소개 받았나? 눈은 문제집에 둔 채 귀는 백현과 종인의 얘기에 집중을 했다.
"뭐 화떡도 싫대, 다리 이쁜애도 싫대, 생머리도 싫대. 좋은게 있긴 있냐?"
"난 눈 크고 입술 두꺼운애가 좋아. 아담하고."
"새끼야, 내가 다 소개 시켜 줬잖아! 그땐 싫대매!"
"아, 몰라. 너 입 다물어. 시끄러워."
백현은 울화통이 터지는 듯 가슴을 팡팡 내리 쳤다. 맨날 자신에게 여자를 소개시켜달라고 해놓고서는 막상 다리 놓아주면 싫다는듯이 대답하는 종인에 복장이 터지는것 같은 백현이다. 머리를 쥐어 뜯는 백현과 태연하게 우유를 마시는 종인을 슬쩍 바라본 경수는 고개를 돌려 창가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 나도 눈 크고, 입술 좀 두껍고, 아담한데..
경수는 종인이 자신과 같은 게이는 싫어할거라고 생각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수학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경수야, 나 배고픈데 매점좀 갔다 와라."
"...또?"
"왜, 싫어?"
"...아니야. 갔다 올게."
오늘만 벌써 세번째 갔다오는 매점이다. 경수를 골려줄려고 그러는건지, 진짜 배가고파서 그러는건지 종인은 헤실헤실 웃으며 경수에게 돈을 쥐어 주었다. 종례를 다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가방을 싸던 경수는 종인의 말에 버릇처럼 얕게 한숨을 쉬고는 가방을 내려 놓고 매점으로 향했다. 익숙한듯 매점 아줌마와 인사를 나누고 초코빵을 사온 경수는 교실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정리하고는 거울을 보고 한번 웃어보인 경수가 화장실을 나가려고 문을 잡았을때 멀리서 종인과 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나가면 될것을 왠지 창피한 기분이 드는 경수는 아무 칸에나 들어가 문을 잠그고 숨어버렸다. 경수가 몸을 숨기자 바로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종인과 백현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문에다가 귀를 슬쩍 대고는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야, 도경수는?"
"빵사러."
"도경수도 진짜 불쌍하다. 맨날 니 빵셔틀 짓이나 하고다니고."
"싫으면 하겠냐? 걔도 좋으니까 하겠지."
"허, 참나. 도경수가 너 좋아한데매. 근데 왜그래?"
경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종인이 좋아하는걸 어떻게 알았지? 경수는 가슴께에 떨리는 손을 주먹쥐고는 다시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냥, 재밌으니까."
"웃기는 놈이네."
그냥, 재밌으니까. 재밌으니까. 종인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수는 눈물이 흐를것만 같아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부릅 떴다. 종인과 백현이 화장실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제서야 경수는 문을 열고 나올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자신이 좋아하는걸 알고 있으면서 그랬다는 사실에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몇분을 울었을까, 경수가 훌쩍거리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거울에는 경수의 엉망이 된 얼굴이 비춰졌다. 손에 들린 빵봉지를 내려다 본 경수는 그대로 화장실을 나서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는 종인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경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종인의 옆자리에 놓여있는 자신의 가방을 들쳐매고 종인에게 있는 힘껏 빵을 내던졌다. 경수가 던진 빵에 얼굴을 맞은 종인은 코웃음을 치며 경수를 바라보았다.
"이게 미쳤나. 야, 정신 나갔어? 어? 내가 봐주니까 씨발 만만하게 보이냐?"
"이 나쁜새끼야! 그러는 너는 내가 맨날 당하고만 있으니까 만만하게 보여?!"
"뭐?"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치니까 어땠어, 기분 좋았어? 내가 너 좋아하는거 알고 있으면서, 너가 나한테 일부러 장난치는거에 일일이 반응하니까 기분 좋았냐고!"
"...뭐라고?"
"너같은 새끼가 세상에서 제일 나빠."
"야, 야! 도경수!"
재빠르게 말한 경수가 빠르게 교실을 나갔다. 종인은 경수가 나간 뒷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눈가가 빨개지도록 울면서 말을 내뱉은 경수의 모습이 생각난 종인은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이게 아닌데. 종인은 바닥에 떨구어진 빵을 발로 뻥 차내고는 교실을 나섰다.
***
경수는 학교에 오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종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종인의 옆자리가 불편했던 경수는 백현에게 자신과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왠일이냐는듯 경수를 쳐다본 백현이 알았다며 종인의 옆으로 와 앉았다.
"니가 왜 여기 앉아?"
"도경수가 바꿔달라는데? 니네 싸웠냐?"
"아, 씨발.."
종인은 작정하고 자신을 피하는 경수에 머리카락을 헤집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현의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보고있는 경수의 팔목을 잡아 끌었다. 갑작스레 팔목을 잡아오는 종인에 놀란 경수가 팔목을 비틀었지만 종인은 더 세게 쥐어 잡고 경수를 끌어 당겼다. 한숨을 내쉰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인이 끄는 대로 끌려갔다. 종인의 손에 붙잡혀 온 곳은 옥상이었다. 학교 옥상에 처음 올라온 경수는 자신이 종인에게 잡혀온 사실을 잊어먹은체 신기하다는 듯 눈알을 굴려 옥상을 훑어보았다. 신기하다는 눈으로 둘러보는 경수를 본 종인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이 엄마미소로 경수를 보고있다는걸 알아 챈 종인이 금방 정색을 하고는 경수에게 말했다.
"야, 너 왜 나 피해?"
"..."
"말 안해? 왜 나 피하냐고."
"어제 내가 한 말 못알아들었어?"
"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게 뭔줄 알아?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는거야. 내가 니 장난에 놀아나는거 보고 얼마나 좋았어? 응?"
"도경,"
"그래, 나 너 좋아해. 근데 나 이제 너 안좋아 할거야."
평소 눈도 못마주치던 경수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또박또박 말하는걸 보고는 종인은 할말이 없어졌다. 도경수 마음 가지고 장난한적은 없다. 항상 말을 먼저 걸고, 살이 닿기만 하면 얼굴이 복숭아처럼 변하는 경수가 귀여워서, 반응이 재밌어서 그런거지. 절대로 장난한적따위 없다. 종인은 자신을 쳐다보며 조용히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경수를 보고는 가볍게 떨리는 어깨를 충동적으로 잡아 당겨 안았다. 종인의 몸에 갇힌 꼴이 되어버린 경수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솜방망이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때리는 경수를 바라본 종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너 마음 가지고 장난한적 없어."
"..."
"너가.. 아, 씨. 그냥 너가 귀여워서 그랬어. 진짜야. 장난같은거 한적 없어."
자신의 어깨를 안고 속삭이는 종인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슬쩍 웃고있는 종인의 모습에 얼굴이 달아오른 경수는 제빨리 고개를 숙이고는 작게 말했다.
"... 그럼 나 안싫어해?"
"난 싫어하는 사람한테 매점가서 빵 사오라고도 안하고, 청소하라고 시키지도 않아."
"그럼, 나, 좋아해?"
경수의 말에 종인이 품에서 경수를 놓고는 눈을 마주했다. 울어서 토끼같이 빨개진 눈을 하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경수를 보고 웃어준 종인이 대답했다.
"넌, 나 좋아해?"
"응? 아.."
"어제 그랬잖아. 나 좋아한다고. 진짜 나 좋아해?"
"응.."
그래, 나도. 종인은 경수에게 작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작은 어깨를 끌어 안았다. 햇빛이 두사람의 곁을 따뜻하게 맴돌았다.
***
근데, 내가 너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았어?
너가 전에 말했잖아.
뭐? 내가 언제?!
전에 자습시간에 자면서, 잠꼬대로 말했잖아.
내, 내가?!
응. 종인아, 좋아해. 라고.
으아아... 말도안돼!
글잡에서 썰 풀다가 제대로 쓰고싶어서 쓴
찌질찌질한 갱수랑 일진 종이니 ㅎㅎ
카디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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