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응. 찬열아, 왜?”
“제 앞 병실 506호 있잖아요…걔 왜 병실에서 안나와요?”
아, 백현이? 간호사는 자신이 찬열의 병실에 들어올때마다 저를 피하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만 있었던 아이가 처음으로 저를 부름에 한 번 놀랐고, 학교 폭력으로 대인기피증이 생겨 병실에 가끔씩 오시는 부모님 이외에 궁금해하지 않던 아이가 앞 병실의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에 두 번 놀랐다. 아직은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과 접촉하며 말을 나누는 것에 대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피올라 손이 떨려왔지만 속으로 심호흡을 하며 떨림을 감추려했다. 스치듯이 봤던 아이 때문이었다.
‘열아. 엄마가 오늘은 이만 가고, 내일 맛있는거 사가지고 올게.’
‘…….’
‘…사랑해 우리 아들.’
이불로 덮은 무릎에 고개를 파묻다가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찬열은 수그렸던 고개를 들었다. 학교 폭력. 주위에서 그런 폭력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힘들지 않게 이끌어줬을 뿐인데 그런 제 모습이 아니꼬왔는지 주위 아이들은 점점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제 모습은 보여주는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욕하는 제 모습은 그런 모습이 다 거짓부렁이라며 저들이 욕하고 궁지로 몰았던 아이들에게 이간질을 했고, 내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던 아이들이 제게 등을 돌리고 화살을 꽂았다.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던 욕, 폭력, 그리고 실수를 가장한 모든 행동들. 깊은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던 돌멩이가 수면위로 다시 떠오르듯 생각나는 잔상에 찬열은 다시 제 무릎으로 고개를 수그리려 할 때였다. 병실 문이 닫히기 전, 제 맞은편의 병실 문은 무슨일인지 병실의 내부가 다 보일만큼 문이 열려있었고, 병실 침대 위에는 위태로워보이는 아이가 저처럼 앉아있었다. 제 또래의 남자아이가.
유심히 볼 틈도 없이 어머니로 인해 병실문이 닫혔다. 시야에 가득 찼던 아이는 낯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떨려오지 않았다.
아스팔트 위로 빛을 받아 흩날리는 아지랑이처럼,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저 아이의 병실 문도 열어보고 싶은데, 아직은 복도로 발을 떼기가 무서웠다.
작은 대피처인 제 병실 밖으로 나간다면, 복도를 통해 지나가고 움직이고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다 제게 꽂힐 것만 같았다. 비스듬히 열어 그 틈으로 눈만 빼꼼 내밀었던 찬열은 병실문을 느릿하게 닫았다.
‘이름이 변백현인데 아마도 찬열이 너랑 동갑일걸?’
‘…….’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오기 전에도 백현이는 저 병실에 있었으니까.’
‘…….’
‘아직 많이 어린 나이인데 우울증이 심해, 백현이는. 요즘 잠잠한데 전에는 멀쩡한 모습 보여주다가도 심하게 자해를 몇 번 해서 격리조치를 받은 적이 있어.’
간호사 누나가 제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화살을 꽂는 가해자고, 이 세상에서 오로지 저 혼자만 피해자인 줄 알았다. 제게 이야기를 다 해주고나간 간호사 누나의 자취를 바라만 보다가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저만 피해자가 아니라, 제가 발견치 못했던 사람들 중 그 남자애도 저와 같은 피해자라고.
생각을 고치고 전과 같은 마음을 되찾기 시작하니 무서웠던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고, 더 이상 제게 화살이 날아오는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품에 과자를 한아름 안고서 506호라 적힌 병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더니 조심스레 연다고 열었던게 아니었는지 저를 쳐다보는 백현에 찬열이 살짝 몸을 굳혔다.
“어…아, 안녕?”
“…….”
“차, 찬열이라고 해, 박찬열. 너는 백현이!”
초면에 자신의 이름의 밝히고 제 이름을 부르는 찬열에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지 잠시 찬열을 바라보고만 있던 백현이 고개를 돌렸다. 어…그럴수도 있지. 손을 흔들며 인사했던 찬열이 무안함을 느끼고는 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내일 또 올게, 백현아. 품에 가득했던 과자를 백현의 병실 침대 위로 쏟아붓고는 꽁무늬가 보일세라 달아나는 찬열에 백현은 지긋이 바라만 봤다. 병실 문이 닫히고 다시 하얀 공간에 적막이 맴돌자 무릎에 둘렀던 팔을 풀어 찬열이 두고간 과자를 조심히 만졌고, 그 위에 노란 포스트잇으로 개구지게 쓰여진 글씨와 이모티콘을 손가락으로 여러번 쓸어내렸다.
[ 안녕, 백현아?
나는 네 앞 병실 찬열이라고 해.
심심하면 내 병실로 와도 돼.
재미있게 놀아줄게.
친해지고 싶어. ]
호기심, 기대, 걱정으로 열러본 일기장에는 늘 한결같은 말만 적혀있었다.
[ 하늘에 가고싶다.
하늘로 날아가고 싶다.
구름새바람햇님 달님
그리고 백현이. ]
일기장은 일기장이 아니었다. 모든 장에는 저 말만 적혀있을 뿐, 그 외의 다른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시하고 어딘가 이상한 느낌에 찬열은 다시 일기장을 조심스레 넣어두었고, 그와 동시에 화장실 문이 열리며 백현이가 나왔다. 자리로 돌아온 백현이 이불을 덮으며 표시해두었던 책갈피를 잡고 책을 펼쳤다. 그런 백현의 모습을 바라보던 찬열이 입 안에 들어가있던 귤을 다 삼키고 입을 열었다.
“백현아.”
“응.”
“네가 좋아하는게 뭐야?”
“…….”
“응? 없어?”
“…하늘. 하늘 좋아해, 나는.”
순간 하늘을 좋아한다며 말을 읊는 백현의 표정이 위태로워보여 찬열은 더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한 이후로 나날이 사람을 기피하는 현상이 줄어든 찬열은 퇴원수속을 밟게 되었다. 짐을 싸는 찬열이의 뒤로 백현이가 다가왔고, 백현은 아쉬움과 섭섭함, 그리고 우울한 빛을 얼굴 위로 다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백현을 보며 찬열은 매일 놀러올게 백현아, 라고 말하며 까치집이 진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뒤로 자주 백현이의 병실을 찾았던 찬열이지만, 나흘 연속을 개인 사정으로 인해 병실을 찾지 못했었다. 제게 분명 섭섭함을 잔뜩 쌓아놓고 토라져있을 백현을 생각하고는 백현이 좋아하던 과자들로 품을 가득 채운 채 병실 문을 열었지만 백현이 아닌 텅 비어버린 병실만이 찬열을 반겼다.
볼일을 보던 도중이 아니었을까. 과자를 병실 침대 위에 다 쏟아붓고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화장실 내부만 모습을 보였다.
처음 백현을 봤을 때의 표정과 퇴원하기 전 몰래 훔쳐봤었던 백현의 일기장에 적힌 글이 오버랩되어 눈 앞에 아른거리자, 찬열은 병실에서 나와 접수대로 발걸음을 급하게 옮겼다. 접수대에 도달하려던 찰나, 제 옆을 지나가는 익숙한 간호사에 걸음을 멈춰선 찬열이 간호사를 붙잡았다.
“누나!”
“어…찬열이?”
“백현이 어디갔어요? 병실에 없던데 부모님과 외출했어요?”
“…어, 그게 찬열아.”
“……누나?”
너가 잘 찾아오다가 요 며칠 안왔던 적이 있었잖아. 안오던 첫날에 그게…백현이에게 동생이 하나 있었나봐. 여동생인데…불미스러운 일을 당해서 그 날 위로 갔어. 백현이네 어머니께서 백현이 병실로 오셔가지고 붙잡고 우셨나봐. 엄마가 잘못했어, 백현아. 크게 우셔서 병원 복도까지 다 울렸는데 백현이에게 우울증이 생긴 이유도 백현이 동생과 같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 그 이후로 종종 발작하고 애가 밥도 안먹더니 오늘 새벽에…
백현아.
왜 너는…너를, 쉽게 놔버렸어.
다음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찬열은 백현이가 있는 곳의 위치를 물었고 간호사는 우물쭈물하다가 찬열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조금 전 보다 발걸음이 더 빨랐고, 더 무거웠다. 코끝이 울림과 동시에 시야가 뿌얘졌고 찬열은 손으로 거칠게 눈을 비볐다. 백현아. 너는 내가 자리를 비운 그 긴시간에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슴 언저리가 꽉 막힌듯이 먹먹해짐을 느낀 찬열은,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을 시야에 담는 순간 소리내어 울음을 토해냈다.
백현아, 백현아.
…이젠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백현아.
다시 붉어지는 눈시울에 찬열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님의 울음소리는 그 누구보다 애절했고, 그 누구보다 깊었다.
3일째가 되는 날, 조그마한 도자기 함에 하얀 가루가 되어 봉안된 너의 모습을 보니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함께하려했던 나와 너의 모습이 눈 앞으로 스쳐지나갔다. 납골함을 건네받은 너의 어머니는 더이상 흘리실 눈물이 없을 것만 같았으나, 코끝이 울리는 나처럼 너희 어머니는 한없이 작아진 너를 품에 안고 우셨고 너희 아버지는 어머니를 다독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정해진 위치에 너의 납골함을 넣고, 너의 반듯한 이름과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너의 환한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 꽃가지들과 마지막으로 너의 일기장을 넣으려는 순간 너의 어머니께서 내 팔을 붙들으셨다.
“…네가 찬열이니.”
“…네, 박찬열이라고 합니다.”
“우리 백현이가… 병원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품에 안고있던게 이 일기장이야. 맨 첫 페이지에 네 이름이 적혀있어서… 백현이가 마지막으로 네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단다. 이건 찬열이 네가, 가지고 있으면…안될까.”
“…….”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백현의 유골함을 품에 가득 끌어앉은 채, 찬열은 몰래 살펴봤었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백현의 어머니의 말씀대로 일기장 맨 첫페이지에는 저번에는 적혀있지 않던 말이 찬열을 반기고 있었다.
[ 내 친구 찬열아, 안녕. ]
그 뒤로 일기장을 계속 넘겼지만 일전에 봤었던 글이 모습을 보였다. 그것에도 먹먹함을 느낀 찬열이 손 끝으로 글씨를 천천히 훑었다. 얼마나 넘겼을까. 다른 말이 적히기 시작한 페이지가 보였다.
[ 오늘 찬열이가 퇴원을 했다. 처음에는 싫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
[ 찬열이가 귤을 두 봉지나 사왔다. 혼자 한 봉지를 다 까먹고 갔다. 내일도 왔으면 좋겠다. ]
[ 요즘 기분이 이상하다. 특히 찬열이가 웃으면 더 그랬다. 마음이 이상해진 것 같다. ]
[ 찬열이가 오지 않았다. 왜? ]
[ 어제 오지 않았던 찬열이가 오늘은 왔다. 바빴다고 했다. 심심하면 전화하라고 번호도 남겨줬다. 매일 전화하고 싶다. ]
일기를 쓰는 백현이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해 일기를 천천히 곱씹으며 읽던 찬열이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다 받아줄 수 있는데 전화하지. 다음장을 넘긴 찬열은 웃음을 지웠다. 펜 촉의 떨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백현의 일기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 찬열이가 보고싶다. ]
[ 찬열이가 보고싶다. ]
[ 찬열이가 보고싶다. ]
[ 찬열이가, 정말로, 많이, 보고, 싶다. ]
눈물자국이 진 백현의 일기장을 말없이 쓸어내리던 찬열은 백현이가 담긴 납골함을 끌어안았다. 꾸역꾸역 울음을 참아내던 찬열이 일기의 마지막장을 보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잔뜩 펜 촉이 눌러 자국이 깊게 남은 백현이의 마지막 일기.
[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 마지막으로 찬열아, 사랑해. ]
“백현아…네가 바랬던 하늘은 행복해…?”
“…….”
“바쁘더라도 올 걸…너 보러 늦더라도 병실로 찾아갈걸…”
“…….”
“…백현아…”
“…….”
“빨리 나아서 나랑 같이 살자고 말할걸… 약한 마음 먹지 않게 내가…”
“…….”
“남은 나는! 빨리 나아서 네가 내게 보여줄 밝은 웃음을 기대한 나는!!”
“…….”
“…백현아…제발, 대답, 좀, 해줘…백현아….”
찬열은 백현을 끌어안았다. 작은 납골함에 담겨서 얼굴을 보여주지도, 목소리를 들려주지도, 찬열이 원했던 웃음을 지어주지도 않는 백현을 품에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음만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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