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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이 끝난 후 씩씩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이동혁은 혼자 빨개진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 숙제를 하는 나를 발견하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하다가 부엌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냉장고 안에 고개를 박고 나재민은-? 하고 물어오는 목소리에 혼자 놀라 걔, 걔가 왜, 뭐! 하고 성을 내니 초코 우유를 쫍쫍 빨며 동혁이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오늘 집에 온다고 했었는데? 누나랑 뭐 프로젝트 할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걔가 집에 볼 일 있다고 먼저 갔어."
"엥? 나재민이? 걔 집 가는거 싫어하는데?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을텐데? 아저씨는 그제부터 출장 가셨단 말이야."
"엄마 계실 거 아니야,"
"..."
"...왜?"
"...어...내가 말 해도 될진 모르겠는데...아줌마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훅 밀려드는 당혹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동혁을 쳐다보자 이동혁이 내 눈을 슬쩍 피했다.
나도 모르게 남의 속사정을 엿보게 된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아니, 뭐 내가 얘기 할 일은 아니잖아...사실 내가 먼저 얘기 하면 안되는 일은 맞는데...그니까...어..."
"...차라리 실수 하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지...재민이가 뭐라고 생각 할 지는 모르지만..."
"...어...뭐, 암튼. 그래서 있다가 갔어?"
"어, 어."
"엄마가 오늘 맛있는거 해준댔는데. 나재민 없는거 알면 엄청 아쉬워 하겠다."
슬쩍 주제를 바꿔서 말을 이어가는 동혁이에 나도 아무것도 못들은 척, 아쉽네. 하고 대답했다.
샤워를 하고 왔는지 흠뻑 젖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동혁이가 내 맞은 편 의자에 편히 걸터 앉았다.
손에 쥔 우유 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걸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둔 이동혁은 숙제를 꺼내려 가방을 뒤적였다.
그렇게 한참을 말 없이 공부 하던 우리 둘 사이의 침묵은, 내 입에서 튀어나온 물음에 의해 깨졌다.
"아, 근데 동혁아. 너 어떻게 재민이랑 친해진거야?"
"어? 나재민이랑?"
"응."
"나 처음에 미국 왔을 때 다녔던 교회에 나재민에 가족이 다녔거든. 집도 가깝고, 부모님들끼리 쿵짝도 잘 맞고. 그래서 친해졌지. 그리고 누나도 알잖아, 우리 학교에 한국 사람 없는거. 하이스쿨(High School: 고등학교)도 없지만 엘레멘트리 스쿨 (Elementary School:초등학교) 당시에는 나랑 나재민 밖에 없었는데 걔가 나 엄청 챙기고 신경 써줬고. 나는 영어도 못하니까 어디 갈 때 꼭 나 옆에 데리고 다니고. 울 엄마가 나재민 엄청 이뻐하는거 고마워서 그런거야. 그리고 나잼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그리고 뭣보다 잘생겼잖아."
"아아..."
"그리고 애가 착해. 뭐, 특별히 모난 구석 없으니까 나도 10년째 친구 하고 있는거고. 근데 이건 왜?"
"아니 그냥. 너랑 걔랑 지내는 거 보면 되게 친해보여서. 그냥 물어봤어."
내가 나재민에게 너무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 처럼 보이진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이동혁을 흘끗 넘겨 봤지만 다행히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듯 싶었다.
아, 그 애가 내 앞에 없을 때도 나재민이 불쑥 불쑥 떠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실제로 만난지는 한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익숙해지다니. 한국에선 낯을 무척이나 가려서 친한 친구도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아, 누나."
"어?"
"내일 모레 하키 팀 시합 갈꺼야?"
"아니...? 내가 거길 왜 가?"
"거기 나재민 나오는데. 걔 바시티(Varsity) 하키 팀 캡틴이잖아."
오늘 여러가지로 나재민을 새롭게 알게 되는 느낌이다. 물론 모든게 본인이 아닌 이동혁에게서 나온 말이라는게 웃기지만.
열여덟 치곤 키도 크고 몸도 꽤 좋다고 생각 했는데, 하키를 했구나.
"하키 재밌어?"
"축구보단 아닌데, 꽤 볼만 해. 그거 아니더라도 나재민 경기는 볼만 해. 엄청 잘 하거든."
"...갈게. 너도 가는거지?"
"어. 누나 오면 깜짝 놀랄껄?"
"왜?"
"지금 누나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걔 인기 엄청 많거든. 내 주변만 해도 나재민이랑 데이트 하고 싶다는 애들도 많고 프롬 때 고백하겠다는 애들도 많고?"
"...아...그래...? 인기 많은가 보다..."
"걔가 원체 좀 다정한 성격이라 처음엔 친구로 시작해도 오해하고 혼자 좋아하는 애들이 많아. 그래도 나재민이 먼저 좋아한 애는 없었어"
아, 그 말에 뭔가 스물스물. 뿌듯함 비슷한게 차오른다. 같이 차오르는 광대를 억지로 눌러 앉히며 괜히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이동혁이 나재민을 안 10년 동안 나재민이 먼저 좋아한 사람이 없었는데, 그 나재민은 나를 좋아한단다. 그것도 먼저.
잠깐만. 근데 난 왜 이 사실에 좋아하고 있는거지?
"아...미쳤어 김여주...진짜 돌았어..."
"왜, 왜그래 누나...숙제가 어려워?"
자괴감이 들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니 식겁한 표정의 동혁이가 손을 뻗어 나를 제지했다.
동혁아...미안해...못난 누나는 네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착하게도 내 이마를 짚어보던 동혁은 아무래도 열이 나는 것 같다며 나를 걱정했다.
"아니야, 나 괜찮아. 그냥 생각이 좀 많아서 그래. 괜찮아."
"진짜지? 아프면 엄마한테 말 해. 내일 학교 하루 빠지면 되니까"
"아니야, 절대 그런거 아니라니까."
애써 이동혁을 안심 시키고 다시 시선을 풀던 수학 공식으로 돌렸다.
이 수학 공식 처럼, 삶도 딱딱 정해진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푹, 동혁이에겐 들리지 않을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근데."
"?"
"요즘 좀 뭔가...낌새가 이상해."
"...뭐가."
"나재민. 요즘 막 히죽히죽 웃고 다니고...예전보다 멋 부리고..."
"..."
"뭔가...연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동혁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내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꺼졌다.
'나재민'
이동혁이 보지 못하도록 핸드폰을 들어 톡을 확인하니 나재민에게서 여러개의 톡이 와 있었다.
"..."
'아까는 좀 미웠는데.'
'지금은, 좀 보고 싶은 거 같기도 해요.'
'나 좀 받아주지,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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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연하남!!
쫌만 더 가면 돼!!!!
전 정말이지 지금의 재민이도 좋지만 한 4-5년 쯤 뒤의 재민이가 정말 기대 됩니다...을매나 멋찐 사람으로 자라날지...크으으으으으으..!!!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초록글이라니, 정말이지 광대가 뽈록 솟아서 내려오질 않는다구요ㅠㅠㅠㅠㅠㅠ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감사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