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한번만 숙지하면 되는 글.
재밌게
funny
읽기.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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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있군. ”
아름다워, 도시의 불빛들이 휘황찬란해. 저 속에 섞여 살다보니 돈이란게 참 맛있는 것이라고 느껴져.
그의 목소리가 넓은 룸 안을 가득 메웠다. 어쩔 셈인가? 잔을 들고 여유를 부리던 목소리가 짐짓 잠잠해 지는가 싶더니 이내 낮게 울렸다. 어쩔 셈이냐니? 질문의 모호함에 애꿎은 입만 달싹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떤 대답을 원하는가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긴 하지만 저이의 입에서 떨어진 그 어쩔 ‘ 셈 ’ 에 대해선 여직 생각해 둔 것이 없다. 어떻게든 되겠다는 마음은 애당초 이곳에 손을 담굴 때 지워버렸다. 제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 안달난 것도 아니다. 그저 확답만이 필요했다.
컨테이너 사업? 할 만 하지. 돈 좀 벌어보겠다는 심산이군. 어떤 물질적 지원 따위는 없을 거란 이야기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그럼 해 봐.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생각보단 좋은 결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저에게 맡긴다는 말. 저 말을 얻어내기 위해 수년을 노력했다. 안면이 없는 년들과의 잠자리는 물론, 애미노릇 애비노릇을 완벽함으로 치장해 놓은 그와 그의 아내까지. 버티고 서 있던 바닥이 무너지는 느낌에도 이악물고 여기까지 끌고 왔다. 어째서인지 따끔거리는 목에 작게 인상을 썼다. 모으고 있던 양 손이 떨렸다. 그는 물이 떨어지는 잔을 손에서 놓았다. 팔짱을 낀 자세가 유리창에 비쳤다.
“ 욕심이 가득하군.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어. ”
“ 당연한 것이고, 공공연한 결과입니다. 욕심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
“ 과연 그렇게 생각하다니, 키운 보람이 있어. ”
“ 키우다니요, 사육이 아니었습니까? ”
종인의 말에 그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동안 입 닫고 멍청히 고개만 조아리고 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입을 열어 뱉기 시작하니 신이 나기 시작했다. 두어번 입을 달싹이고 숙였던 허리를 폈다. 모았던 손도 건방지게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목을 풀고, 잘 정리된 머리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유리창에 비추어진 제 모습에 넥타이도 가지런히 맸다. 그의 옆으로 다가서니 욕정에 부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 씻고는 다니십니까?
설마, 제가 회장님… 을 아버지로 생각한다거나, 그딴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제가 많이 건방지다고 느끼시는거, 얼굴만 봐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머리를 총구가 눌렀다. 천천히 눈을 돌리며 양 손을 높이 드는 그의 모습에 종인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숙여 그의 발끝부터 찬찬히 눈에 담았다. 어디 하나 이름 없는 것이 없다. 옷이며, 구두며, 시계까지. 손에 낀 반지들이 욕심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바르작 거리며 떨어 오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 없다. 종인은 그의 손목을 잡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빠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은 단 일초도 들지 않았다. 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모든 것이 제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아버지. ”
“ … …. ”
그의 목울대가 울렁이고, 조용한 룸에는 침 넘기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비죽, 웃음이 났다. 예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두려움에 떠는 얼굴, 단 한순간도 본 적 없다. 그만큼 기대했고 그만큼 갈망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히 즐겁기 그지없다. 점점 발을 뒤로 빼 창쪽으로 다가가는 느릿하고 무거운 발걸음이 이젠 더이상 공포스럽지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발걸음은 개미의 발보다 더 가볍고 사형자의 마음보다 무겁다.
저 밑이 보이세요?
모두 저를 위해 모였어요. 차기 체이스 경영자.
아버지, 웃으세요. 저 아래의 군중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입니다.
“ 시간이 다 되었어요. ”
“ …종인아. ”
“ 제가 후계자가 되는 시간. ”
‘ 탕-. ’
***
“ 회장님. ”
“ 들어와. ”
종인의 목소리에 문이 열리고 단정히 차려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가지런히 올린 머리며 손에 들려진 가방이며 할 것 없이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종인은 민석의 등장에 피곤한 듯 눈썹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저만치서 작게 웃는 소리와 종이가 소란스레 탁자 위로 떨어졌다. 종인은 기지개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 민석에게 술잔을 건냈다.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도 아무 말 없이 입만 다물고 있던 종인이 잔을 비워내고 편하게 몸을 기댔다.
“ 어때. 할만 하던가? ”
“ 일이 꼬였어. 세훈을 브라질로, 보내야 할 것 같다. ”
“ 브라질? ”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이제껏 마약 운반의 경유지는 네덜란드였다. 마약 소지를 법적으로 허용한 국가이기에 세훈을 이주시켜 마약 중독으로 위장시켜 진료를 받게 했다. 물론, 세훈이 마약 중독이 아닌 말끔한 사람이라는 것은 장담하지 못한다. 조금씩 치료 목적으로 받는 마약들과 함께 러시아에서 첸이 공수 해오는 크로코딜을 섞어 포장하고 보내던 것이 원래의 루트였다. 종인은 탁자위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손으로 쓸어와 넘겼다. 계약 조건 치곤 나쁠 것도 없다.
“ 이건 뭐 거저 준다는건가? ”
“ 모르는게 있나본데, 하부 행동조직이 찜찜해. ”
하부 행동조직?
행동조직도 따로 준다니 괜찮은 조건 아닌가.
“ 괜찮긴, 10살짜리들이야. ”
“ 10살이라. ”
종인은 민석의 말에 고개 숙여 웃어 보였다. 10살짜리를 행동조직에 넣다니, 그야 말로 돈이 궁한 사람들이 하는 더러운 짓과 다를 바 없었다. 어째서 한낱 어린애 따위를 마약 밀매에 투입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빈민가 로싱야, 그 곳이야 말로 무법 천지일 것이다. 그런 곳에서 보고 배우고 자란 것들은 뿌리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배우기 전에 마약 포장법을, 축구를 하며 뛰는 법 대신 경찰의 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법을 배운 셈이었다.
“ 이유가 다 있지. 그렇게 안보이지만, 치밀한 구석이 있어. ”
“ 치밀? ”
돈없어 기는 애새끼들 대려다 매주 20달러 주고 활동시켜.
어린이 여단. 이름 한 번 거창하지.
20달러, 그 돈 손에 쥐어 보겠다고 개같이 달려드는 꼬맹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경찰이 조직 소탕할때, 제일 선봉에 배치돼.
그러면, 게임 끝이지.
“ 게임 끝? ”
“ 애새끼들을 어떻게 패나. 시간 지연시킬 동안 빼오는거지, 마약을. ”
민석은 제 앞에 놓인 잔을 들고 종인의 눈치를 살폈다. 어느정도 함께 해 왔던 종인에도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회사의 변호를 자처하면서 알게된 종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게 분명하다. 고작 어린아이에 고민하고 재어볼 사람이 아니다. 민석은 초조한 눈을 애써 감추며 입가를 훑어냈다. 종인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툭툭 쳐내는가 싶더니 민석에게 도장을 건냈다.
“ 계약, 하고 와. ”
“ 좋아. ”
민석이 자리를 벗어남에 종인은 깍지를 낀 손으로 눈을 덮었다. 브라질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곳이었다. 더구나 세훈을 그런 곳에 보내기엔 따르는 위험도 어마어마했다. 네덜란드에서의 마약 소지와 얻을 수 있던 여러 가지 종류의 마약들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아깝게 된 일이다. 손에서 놓아야 할 곳인데도 불구, 계속해서 아까운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네덜란드 모두 거리가 브라질과 놓고 보아도 가까웠다. 사업장의 손을 더 넓히는 쪽이 좋기야 하겠지만 이로써 얻는 이익보다는 손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마약 말고, 장기에 더 주력해야 할 것 같다. 번뜩이는 눈에 전화를 들었다. 한달만에 하는 루한과의 전화였다.
***
오랜만에 하는 전화 치곤 형식적인 종인의 목소리에 루한은 대충 손을 닦았다. 첸이 구해준 사린가스가 유용하게 쓰이던 참이었다. 지난번 잠깐 중국에 경유하며 레이에게 간 두어개와 덜자란 아이를, 루한에겐 사린가스를 건내던 모습이 다시 생각났다. 마침 가스가 떨어져 감에 첸의 소식이 궁금했던 차였다. 별다른 연락이 없거니와 전화조차 받지 않음에 종인에게서라도 전화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저 뿐만 아니라 레이의 사정도 다를 바 없었다. 이 곳 산시성 린펀에서 쓰촨성 광저우 까지 거리도 엄청난 마당에 배반자를 두고 떠날 수도, 함께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점점 쇠약해 가는 모습을 보면 도망칠 수 없겠다 하다가도 뒷맛의 찝찝함은 지울 수 없었다. 탁자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골 치곤 공기가 썩 좋지 않았다.
「 늦게 받는군. 」
“ 어쩐일이야? ”
「 꼭 무슨 일이 있어야 하나? 」
“ 그럴 것 까지야. ”
「 여유를 부리는 목소리네. 」
종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잔잔히 울렸다. 이럴 때 일 수록 여유를 가지게 되는 법이야. 루한은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이러다간 사린가스를 얻어내기는 커녕 또다른 혹 하나를 더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 조바심을 불렀다. 기댔던 몸을 일으켜 그에게로 다가갔다. 온 몸에 물집이 잡히고 울퉁불퉁해진 모습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조직을 배반하고 밀수 기법을 빼돌리려던걸 크리스가 잡았다. 린펀에 쳐박아 두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라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죽어가는 모습에 아쉽던 차였다. 이 가스를 모조리 쓴다면 그만 즉사해 버리겠지만 소량을 매일같이 넣었을 때의 그 비명소리가 생생하다. 그 소리는 꿈결에 들어도 언제나 듣기 좋은 자장가다. 그러기에 가스가 더욱 필요했다. 가스 말고 사람을 더 보낼 건가?
「 첸은 지금 러시아에 있어. 」
“ 전화는 왜 안받지? ”
「 잃어버렸지. 아니, 누가 훔쳤어. 」
“ 훔쳐? 간이 큰 놈인가보군. ”
그래서 잡았어. 크리스가.
얼마나 간이 큰지 따보려고 레이에게 보내려고 준비중이야.
열다섯이라는데 이정도면 콩팥 하나는 건질 수 있겠지.
게다가 본드하던 새끼라 잘 하면 몸값도 더 부풀릴 수 있어.
“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 ”
「 중국 가는 김에,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란 소리야. 」
“ 나야 뭐…. ”
「 첸은 오늘 떠난다. 레이에게 쥐새끼를 쥐어 주고 네게로 갈거야.」
“ 기다리도록 하지. ”
***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
“ 크리스. ”
도착했다고 전화 해.
크리스는 루한에게 가서 이 사린가스를 전해 줘.
첸이 작은 통을 건냈다. 검문소에서 이리저리 뺴돌리며 지켜낸 것이었다. 줄곧 우이판이라 부르며 따르던 첸이 이 순간만큼은 진지해졌다. 주위를 의식하며 제 손을 꼭 붇들고 있는 사내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루드나야브리스탄의 납중독 환자였다. 납중독에 모자라 본드까지 하던 녀석이라 얼굴이며 몸이며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공항을 거치기 위해 억지로 씻겨 옷을 입혀 놓으니 영락없는 사내아이였다. 잔뜩 겁먹은 얼굴이 첸을 올려다 보았다. 공항에 오기까지 첸의 호의아닌 호의에 어느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첸은 그런 사내아이의 손을 꾹 잡아 쥐었다 놓곤 크리스를 배웅했다.
크리스를 보내고 버스에 몸을 싫고 레이의 개인 병원으로 향했다. 큰 지역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중인 레이는 조직의 장기를 적출하고 진료 기록들을 꾸며냈다. 개인 병원과 지역병원을 함께 하면서 레이는 그동안 많은 이의 장기를 꺼냈다. 주로 첸이 대려오는 납중독 환자들의 장기였지만 때론 루한이 보내올 때도 있었다. 하물며 수술대 위에 오른 이의 장기를 적출하고 진료기록을 꾸며내 가족들에게 사망 선고를 한 적도 더러 있다. 지역병원의 이름에 걸맞게 레이는 최고의 의사였다.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떨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 적출한 장기들은 안전히 보관해 첸이나 찬열이 한국으로 보내 주었다.
금방 도착한 레이의 병원 앞에서 크리스가 건내준 휴대폰으로 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지금쯤 저를 기다리고 잇을 것이다. 낮선 곳의 환경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사내아이가 첸의 움직임을 발빠르게 따랐다. 좁은 계단을 지나니 살짝 열린 문이 보였다. 문틈 사이로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아이의 손을 이끌어 발을 빨리했다. 안에서는 흐릿하게 중국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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