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17-2.
나는 비겁했다. 끝끝내 경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녀석이 떠난 빈 공간 안에 나 혼자 앉아 있었다. 끝없는 적막이 흘렀다. 집은 평소와 같은데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아서일까, 나를 휘감고 있는 이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고 확신한 녀석이 나를 종용했다. 아주 많이 지친 모습으로 나를 붙잡고 말해 달라 했지만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녀석에게 짐을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는 내 마음이. 그냥 말 해볼까 수십 번도 넘게 고민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은 너무 무서웠다. 뭐가 무서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이 무서웠다.
“…….”
감당하기가 버겁다. 나를 두고 돌아서던 경수의 지친 얼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녀석의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나 또한 지쳐서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긴 한숨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내가 지키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경수에게 말하지 못했을까. 지키고 싶어 했던 그 녀석을 울린 건 나였다. 항상 웃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런 너를 지치게 만든 것도 나였다. 나를 바라보던 원망 섞인 눈동자가 자꾸만 나를 따라다닌다.
그렇게 경수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경수를 울리는 게 아니었다고….
탁자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일단은,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다.
一
구겨 신은 운동화를 고쳐 신으며 터덜터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녀석을 그냥 보낸 게 후회가 돼서 찾으러 갔지만, 경수는 집에 없었다. 당연히 집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없는 걸 알게 되니 막막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버튼 하나만 꾸욱 누르면 전화가 걸릴 것이고,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되는 거지만 사실은 조금 무섭다. 그렇게 나를 두고 간 네 뒷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다 내 잘못인데도 네가 또 나를 두고 갈까봐…. 내가 모르는 곳에 숨어버린 네가 쉽게 마음을 풀 것 같지 않아서 무섭고, 너를 만나 그동안 숨겨왔던 이유들을 구구절절 말한다 해도 네가 믿지 않을까봐, 쉽게 나를 두고 돌아설까봐 무섭고….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게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내가 제일 비겁한 놈인데도.
“…….”
어둑해진 거리를 가로수를 따라 걸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목에 두른 목도리로 얼굴을 묻었다. 춥다….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가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돌아서던 너의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이 날 것 같아서…. 괜히 가슴이 먹먹해져서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찬바람을 맞고 걸어가려니 귀가 시리다. 목도리에 최대한 얼굴을 묻고 있는데도 그렇다.
버스에서 내리는 교복 무리에 잠깐 시선을 빼앗겼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는 모습으로 나를 지나쳐 걸어가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교복을 입고 마냥 좋던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네 이름 하나에도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던 그때의 우리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가 곧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
무서운 게 너무나 많아졌다. 교복을 벗은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벌써 이렇게 겁이 많아 진걸까.
시간이 조금 흐른 것 외에는 모든 게 다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했다. 손끝만 스쳐도 떨리고, 입술만 닿아도 설레던 그 시절의 우리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너를 지치고 힘들게 만든 건 나였을까. 그럼, 나는 왜 이렇게 지쳐버린 걸까.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길을 따라 걷는 이 순간에도 우리가 지나왔던 시간들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한 우산을 쓰고 길을 걷던 것도, 네 무릎에 새겨진 작은 상처에도 유난을 떨며 너를 업고 집까지 걸었던 것도, 너의 집 앞에서 했던 설레는 우리의 첫 키스도….
기억 속의 일들은 생생하게 아직 남아 있는데.
“…….”
왜 내겐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힘없이 걷던 발걸음을 멈춰 섰다. 어느새 가로등이 켜진 주위에는 나 혼자만 서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무작정 걷는다고 해서, 그 끝에 네가 있는 것도 아닌데. 허탈한 마음에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보내놓고서.
사실은, 경수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의 얼굴을 마주하고 네 눈물을 닦아줄 힘이 내겐 아직 부족했다. 변명 같겠지만, 이런 내가 너무나도 비겁하게 느껴지겠지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 너를 볼 자신이 없다.
주머니 속에 감춰둔 핸드폰을 세게 쥐었다 놓았다.
경수야, 미안해.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一
나 또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친구네 집에서 며칠 밤을 보냈다. 핸드폰으로 날아든 수많은 메시지 속에 엄마도, 세훈이도, 수아도 있었지만 경수는 없었다. 내가 먼저 찾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경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씁쓸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홀드 버튼을 눌러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오늘도 대출이냐?”
“응.”
“안 그러던 놈이 요즘 왜 이래.”
“…….”
집을 나서려다 말고 형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말한다. 말에 대답도 없이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소문 때문에 그래?”
“…….”
“야, 그건 나랑 수아랑 대충 수습 다 해놨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게다가, 너 알잖아. 소문 같은 건 금방 식어. 네가 이렇게 피하면 피할수록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는 거 모르냐?”
“…그런 거 아냐.”
“아니기는…. 안 그래도 마른 놈이 살이 더 빠지니까 이젠 아주 못 봐주겠다.”
며칠 전, 백현이의 병실에 잠시 다녀왔다. 그래도 퇴원하기 전엔 한번 찾아가봐야 할 것 같아서…. 병실로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건넸던 녀석의 말이 형수 녀석의 말에 겹쳐 들린다. 살이 빠진 건 난 잘 모르겠는데 자꾸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아무튼. 딱 이번 주까지만 봐준다.”
“뭘.”
“너 이렇게 폐인처럼 죽어지내는 거. 다음 주부턴 너 안와도 대출이고 뭐고 없어. 그러니까 봐줄 때 푹 쉬어라. 알았냐?”
“…그래.”
“밥도 좀 팍팍 먹고.”
“알았어.”
갔다 올게, 이따 보자. 말하며 집을 나서는 형수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그런 녀석에게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에 지내는 동안 청소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어질러진 방안을 며칠간 조금씩 치우다보니 이제는 그래도 구색은 갖출 정도가 되었다. 경수가, 정리는 진짜 잘하는데….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그 녀석 생각에 바닥에 주저앉아 긴 한숨을 내뱉었다. 잘 안 풀린다 싶으면 한숨을 내쉬는 녀석의 버릇을 고치려 부단히도 애썼던 나였으면서 이제는 내가 더 한숨을 내뱉고 만다.
“…….”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경수의 번호 열 한자리를 꾹꾹 누르다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누르던 네 번호를 누르기가 어렵게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너는,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까. 메시지 한통 없는, 연락 한 번 없는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돌아서던 날 바로 너를 찾지 않았던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꼬여왔다. 미처 완성되지 못한 네 번호를 띄운 액정 화면을 바라보다가 모두 다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다른 열 한자리 번호를 눌렀다.
“…….”
조금의 망설임 끝에, 통화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들려오고.
一…여보세요?
곧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가득 울렸다.
“…형, 나예요.”
一
“…팍팍 먹어.”
준면이 형이 내 앞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낸다. 밥이 넘어가진 않았지만 형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라도 숟가락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조금 웃었다. 그랬더니 형이 뭘 웃냐며 타박을 한다.
“밥은 먹고 다녀?”
“…그럼요.”
“…근데 왜 이렇게 말랐어.”
또 그 소리. 세 번이나 들으니까 이젠 좀 지겹다. 따지고 보면 세 번도 더 넘는다. 백현이 녀석도 하루 종일 같은 소리만 반복했고, 형수 녀석도 꼬박꼬박 야식을 사서 내 입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 했으니까.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왜 이렇게 걱정하게 만드는지….”
“…….”
“혜인이한테 연락 왔어…. 너 요즘 어디 있는지 알고 있냐고.”
“…….”
“어디서 지내는데….”
“…….”
“친구 집?”
형의 말에 대답은 않은 채, 물 컵에 물을 따르며 조심스레 물었다.
“…거기 있죠?”
내가 형에게 연락을 한 이유는, 녀석 때문이었으니까. 집에 없는 녀석을 확인하고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형의 집으로 숨어버렸을 거라는 걸. 컵을 가득 채운 물이 찰랑이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물병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형을 바라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형이 대답 없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
“…….”
“몰라.”
“…형.”
“약속 했어. 말 안하기로.”
거기 있는 거 맞구나…. 애매한 형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형의 집에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숨어준 녀석이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알면서도 쉽게 찾아가지 않은 게 미안해졌고.
녀석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들고 있던 수저를 힘없이 내려놓고 말았다. 경수도, 많이 야위었을 텐데. 내가 아프게 했는데. 나는 뭘 잘했다고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종인아.”
내 이름을 부르는 형의 다정한 음성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왜일까. 왜 눈물이 나려는 걸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사이로 형마저 수저를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이름을 불러놓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형은 나를 타박하지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내 앞에 앉아있어 주었다.
“…….”
의자를 가까이 끌어 당겨 앉은 형이 내 어깨위로 손을 얹었다.
“…너무, 곧게 서 있으려고 하지 마.”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리며 형이 말을 이어간다.
“너 그러다 부러져….”
“…….”
“가끔은, 휘어져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당연한 말들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꼭 듣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형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몰라.”
“…….”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
“형이 보기엔, 이건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 둘의 문제인 것 같은데….”
그 말들이, 그 손길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입 꾹 다물고 네가 다 견뎌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거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오해만 커질 뿐이야.”
“…….”
“그러면 경수도 힘들고, 너는 더 힘들어.”
혼자 하지 말고 같이해. 너 혼자 아니고 둘이잖아. 옆에 경수 있잖아. 기대고 싶을 땐 기대도 돼. 왜 너만 경수 버팀목이 되어주려고 하는 거야…. 경수가 알면 많이 서운해 할 거라고.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너 혼자 겪어낸다고 해서 경수가 좋아할까? 그 녀석은 마음 편할 것 같아? 종인아…. 만약에, 네가 아니라 경수가 그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너는 어떨 것 같아. 네 마음은, 마냥 편할까?
너 경수보다 형 아니라고, 그리고 경수 약하지 않다고. 서로 기대면서 가는 거야.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둘이 같이하는 거라고….
“그리고,”
“…….”
“…경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을 세게 말아 쥐었다.
“지금, 아파.”
그 말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마른 얼굴을 적셨다. 어깨위에 있던 형의 손이 멀어졌다. 형은,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휴지 한 장을 건네지도, 경수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형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당장,
너를 만나러 가야겠다.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