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B BARIKE
1st CLUB SENCE
“거기서 뭐해?”
앗,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머릿 속에선 상황전개가 이뤄지고 있다. 어, 어? 아무 것도 아냐. 아닌 것 같은데. 뭐 숨겨요? 야동 봤어요? 아니라니까!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5시의 학교는 적막했다. 선생들은 업무에 집중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혹은 본교무실에 응집해 있을 터였다. 자신이 노릴 틈은 교무회의였다. 세상의 어떤 선생이 별볼일 없는 교실을 순찰하겠는가? 미션 수행 시간은 50여분 남짓. 종례 후, 열쇠는 주번에게 미리 받아두었다. 나를 보는 의심쩍은 눈초리는 썩 기분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모든 일에 항상 변수는 존재하지. 순탄할 줄로만 알았던 이 미션의 변수는 바로 저 녀석이었다. 흐릿한 눈으로 바라본 노란색 명찰 위에는 또박또박 ‘김성규’라고 씌여져 있고.
“아, 선배시구나.”
자신이 상상한 김성규의 반응은 적잖이 당황하거나 날 추궁하는 모습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덤덤한 그 모습에 사물함을 뒤지던 손은 정처 잃은 방랑자처럼 제 무릎 위에 다소곳이, 마치 봄처녀처럼 닿게 된다.
“뭐 하고 계시는데요?”
김성규가 다시금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존댓말을 붙여서. 길게 솟은 눈은 날 토끼로 만들고, 여우의 모습을 한 채로 내게 걸음을 옮긴다. 아직 사물함은 열려있다. 책상 서랍에도 없으면, 분명, 여기 있을 텐데.
“숙제 놓고 가셨어요?”
“니, 니가 어떻게 알아.”
“저도 숙제 가지러 왔거든요.”
아, 그래. 그렇구나. 생각보다 명확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아니면 그쪽에서 제공해주었거나. 김성규가 사물함에 걸린 자물쇠의 번호를 맞춘다.《고1 최상위 수학》이라는 책이 녀석의 사물함에서 나온다. 꽤 두꺼웠다. 눈살이 찌푸려짐은 베이스요, ‘헐’이란 말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옵션이었다. 사물함이 큰 소릴 내며 닫혔기에 김성규는 듣지 못한 것 같지만. 자신도 거의 미션을 클리어했다. 의뢰한 물건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늘색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규칙적으로 나열된 공책. 겉에는
3반 18번 신 수 연
꽤 귀여운 글씨체로 씌여져 있다. 김성규의 시선이 공책을 향하는 게 느껴진다. 재빨리, 또 자연스럽게 공책을 옆구리에 끼고 사물함을 닫았다. 앞문을 향해 가는데, 이번엔 김성규의 시선이 내 뒤통수를 따갑게 한다. 마음 같아선 뭘 봐, 하고 쌍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앙칼진 눈매가 날 노려놓을 것 같아서. 절대로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신수연 공책이 숙제에요?”
숙제라면 숙제지. 자신은 미션 클리어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이고, 김성규는 나와 초면이니 최상위 수학을 들고 집으로 달려가 답지를 보며 풀이과정을 베끼면 될 일이었다. 짜증이 솟구칠 기미를 보였지만 말그대로 초면이니 참았다. 괜히 성질 내봤자 서로에게 가는 이득은 0이지 않은가. 자신은 이정도 사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미소를 걸쳐주며 말했다.
“수연이 오빤데, 가져오라 해서.”
김성규의 눈이 이번엔 내 명찰으로 향한다. 그의 뇌에서는 분석이 일어나고 있다. ‘남’우현과 ‘신’수연에 대한.
“친오빠 아니죠?”
“니가 아는 누나는 친누나 밖에 없냐? 친누나, 아는 누나, 사촌 누나 정도는 있을 거 아냐.”
“아.”
그리고 대뜸 묻지도 않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학생회에요.”
“어쩌라는 건지.”
“선배, 염색 풀어요. 바지통도 좀 늘이고. 넥타이는 집에 있죠? 선생님들한테 걸려서 욕 먹기 전에 복장은 단정히.”
속사포 같이 다다다 말을 쏟아붓더니 안녕히 계세요. 인살 하고 앞문을 향해 나간다. 그리고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 변수가 있던 말던, 선생이 있건 없건, 지금 제 옆구리에 있는 공책은 곧 미션이었고 자신은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의뢰인이 공책을 받아드는 것은 시간문제고. 그리고 앞문을 잠근 뒤, 열쇠를 짤랑짤랑 흔들며 앞 공원으로 향했다.
§
범생이 안경을 쓴 녀석이 손을 흔든다. 다짜고짜 벤치에 털썩 기대앉는 내 모습에 당황한다. 김성규라면 아마 당황하지 않겠지. 여기서 갑자기 김성규가 생각나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녀석이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전 선배가 이렇게 빨리 가져다 주실 줄은 몰랐어요.”
아마 김성규가 없었다면 넌 더 놀랐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새로 들어오셨다고 해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정말 의외였어요. 별은 다섯개 다 드릴게요. 진짜 감사해요.”
“어, 고맙다. 근데 신수연이 누구냐. 좋아하는 여자애? 아니면 데스노트?”
“……조, 좋아하는 여자애에요. 비밀로 해주…세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내용은 안 보셨죠?”
짜식. 괜히 부끄러워 하기는. 난 신수연의 공책을 건네주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공책을 받을 때, 녀석의 얼굴엔 홍조가 띄워져 있었던 것도 같다. 철저히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책은 열어보지 않았다. 녀석이 카드에 사인을 해 준다. 종이에 사인을 하고, 별을 칠하고 하는 것은 선생님 놀이를 하는 유치원생 같아서 처음 종이를 건네 받을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었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저 흰색 종이는 백 년을 보아도 맘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녀석의 종이를 받으려 고개를 돌렸다. 흰색 종이 밑으로 녀석의 펑퍼짐한 바짓단이 보인다. 못해도 6부는 할 것이지, 나팔바지도 아니고.
순간, 아까 김성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선배, 염색 풀어요. 바지통도 좀 늘이고. 바지통도 좀 늘이고. 좀 늘이고.” 아까는 어느 정도 혹했던 자신을 돌아보니 창피했다. 나는 왜 그 여우같은 눈동자에 혹하고 있을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녀석이 날 이상하게 봐도 상관 없었다. 의뢰인과 수행원의 관계는 이미 작은 종이 하나로 완결 났으니까.
§
《BARIKE》
얼핏 보면 빵집 이름같은, 앞에 CLUB을 붙이면 가라오케 같은 나이트 클럽으로 둔갑하는 클럽에 발을 디딘 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주범은 다름아닌 제 절친 장동우였다. 바보 같은 녀석이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내 방과후를 어찌나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는지. 학교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의 지하실을 개조해 만든 BARIKE는 미션 수행원들이 집합해있는 장소였다. 아까 그 녀석처럼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노트를 보고싶다던가, 수행평가를 조금 더 잘 맞고 싶다던가, 학원 숙제를 베껴달라던가, 오토바이를 타고 싶으니 대여해 달라, 까지의 가지각색 미션들 말이다. 임무 수행원-당번, 주번이라고도 할 수 있다-은 미션 하나 당 한 명씩 돌아가며 맡게 된다. 난 동우 녀석 다음으로 들어온 탓에 그의 다음 순서다.
흔히들 ‘보스’라 칭하는 송혁준이 BARIKE의 시초인데, 장동우가 듣기로는 그도 나처럼 심심하고 할 짓 없는 방과후를 적당히 때우기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감춰둔 궁극적 목표를 숨기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계단을 타고 들어가니 안에는 이성종이 게임을 하고 있다. 뭐 하냐?
“아, 미친!!!!!!!!!!!! 형이 말 걸어서 버튼 잘못 눌러서 나 저거 빠지고 저 그 뭐냐 그렇게 됐잖아요!!!!!!!!!”
쩌렁쩌렁 울리고 지랄이야, 시끄럽게. 무슨 말인지도 도통 모르겠고, 단지 나 때문에 기록을 향해 달려가던 질주가 멈췄다는 사실만 알겠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성종이 먹고 남은 것같이 보이는 빵봉지가 널부러져 있다. 접수받는 카운터 위엔 명렬표가 놓여져 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하얀 시멘트로 칠해진 벽지는 날 정신병원 환자로 만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때, 진동이 울린다. 이성종이 전화를 받는다.
“네, 형. 3호선? 에. 에. 알겠어요. 여기 남우현도 있는데.”
빡.
“아야. 남우현 형 데리고 가요? 에. 네. 알겠어요.”
“왜, 뭐라는데.”
“심심하면 나오래요. 하나 더 왔다고. 형은 아까 한 탕 뛰었으니까 발 닦고 잠이나 자래요.”
주민엽의 전화라고 추측한 증거는, 발 닦고 자라는 말 때문이었다. 입만 열면 그 소리. 또 그 소리. 귀가 닳도록 들었으니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성종이 “나 나가요! 발 잘 닦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문을 닫는다. 콰앙-.
심심한데 뭐 하지. 이러라고 만든 클럽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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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오자마자 컴퓨터 키고 심심해서 몇 자 써내려갔어요 아마 이런 식의 전개로 봐선 -시험기간은 제외하고-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인피니트 팬픽 뿐만 아니라 팬픽 써본 경험이 없어서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데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댓글 남겨주시면 더 조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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