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B BARIKE
3rd 일상다반사에도 예외는 있다
결국 숙제는 해가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야단을 맞고 다음에 해올게요, 죄송합니다, 의 어투를 반복했다. 즉, 정형화된 패턴은 깨지지 않은 것이다. 남우현의 덕일까?
오늘은 수연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반 아이들 틈에 섞인 나는 마치 돌연변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수연은 넘치는 환호에 감사하며 나를 보고 웃어보였다. ‘일순, 사고회로 모두 정지’. 나는 얼어붙은 동상이었고 그녀는 생기로운 여고생이었다. 우리의 150일은 같았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두 갈래로 나눠진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택해버렸다. 우리는 너무 달랐다. 그리고 난 오늘도 나무 밑동에 앉아 잠시 숨을 추스린다. 지금까지의 질주가 헛되지 않기를 빌며.
§
“야! 공!”
주번일을 끝내고 하교를 하는 길이었다. 남색 체육복의 제비떼 중 하나가 공을 내 머리에 명중시키고야 말았다. 순간 띵- 해지는 느낌에 공이 날아온 곳을 쳐다보았다. 제비떼 무리에서 빠져나온 제비 한 마리가 있었다. 근데… 낯이 익었다.
“야, 괜찮… 어? 너 어제 그 여우?”
“아… 안녕하세요.”
나는 왜 이 꼴에 안부를 묻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앞, 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그 말은 분명 여우. 여우였다. 여기서 잠깐 짚고 갈 것은, 난 분명 그에게 꼬리를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성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여우?!
“근데요… 제가 왜 여우에요?”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냈다. 예상대로 당황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뒤에선 친구 제비 한 마리가 ‘새꺄! 빨리 와!’라며 그를 재촉한다. 그는 답하라는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답답한 놈들아! 니네 먼저 하고 있던가! 미안. 너 방금 뭐라 했는지 까먹었어.”
“제가 왜 여우냐고 물어봤는데요.”
“어……. 여우같이 생겼잖아.”
잘생기면 잘생겼지 닮은꼴이 여우라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그래도 학원 선생의 ‘너 이명박 닮았다’보다는 나은 정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적잖이 당황한다. 생각보다 순둥이 기질이 있어보였다. 은근히 말이다. 이제 그의 친구들은 그를 신경쓰지 않는 듯해 보였다. 그때,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혁준이냐.”
“나 지금 애들이랑 축구하고 있는데. 어. 장동우도 있어.”
“지금 오라고? 그래.”
그리고 다음에 이어진 그의 한마디를 계기로 내 일상은 송두리째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너 심심하지.”
“네?”
“난 심심한데. 같이 어디 좀 가자.”
그리고 우리는 어디 가냐는 제비떼의 말을 무시하고 체육복을 챙겨, 횡단보도를 건넌 뒤, 도시의 외곽으로 나가더니 문닫은 상점들이 즐비해있는 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6시, 노을이 뒤를 비추었다. 설마 납치는 아니겠지.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는 내 손목을 잡고 《BARIKE》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하얀 시멘트로 칠해진 벽은 꽤 깔끔했다. 텅 빈 지하실의 입구엔 카운터로 보이는 높은 책상이 있다. 그 위엔 온통 동그라미인 명렬표. 그런데 가장 밑의 이름은 ‘최민현’이었다. 우리반 남학생의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동명이인이겠지. 생각은 치부됐다. 그가 날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앉던가.”
그가 날 쇼파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손을 씻으러 옆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렸다. 필요에 따르면 서있어도 좋다는 말과 동일했기에 난 마음껏 개조된 듯한 지하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벽의 정중앙에는 게임기와 연결된 자그마한 TV가 놓여져 있었고, 그 옆의 쓰레기통에는 과자 봉지들이 꾸깃꾸깃 밟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넓고 낮은 갈색 책상-감자깡도 올려져 있었다. 꿀꺽.-과 쇼파가 순서대로 놓여있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텅 비어보이거나. 쇼파에 앉았다. 곧이어 그가 손의 물기를 털며 나왔다.
“앞에 과자 있지. 그거 먹어라.”
“진짜요? 먹어도 돼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와 앉았다. TV 소리와 더불어 내가 과자를 뜯고, 먹는 소리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막이 공기를 채웠다. 추측하건데, 그의 뇌는 TV에 집중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하지 않은 남자 둘이 있으면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니까. 내가 용기를 내었다.
“근데… 전 여기 왜 데려오신 거에요?”
“어?”
“제가 왜 여기 있냐구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뭐 그렇잖아요.”
“…그러게.”
그리고 다시 정적.
“너랑 오면 좋을 것 같아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이어지는 정적. TV에선 무한도전이 하고 있었다. 맘 놓고 웃을 분위기가 아님이 원망스러웠다. 감자깡은 비워지니지 오래였다. 어제의 그처럼 나도 다소곳한 봄처녀의 손이 되어버렸다. 그의 다리가 덜덜 떨리고, 내 손은 그의 무릎을 살포시 잡았다. 다리 떨면 복 나가요.
“…진짜야.”
“…?”
“진짜라고.”
사죄와 말씀 |
급하게 쓰느라 내용이 많이 짧아요ㅠㅠ 월요일엔 더 길게 써드릴게요 죄송해요 전편 댓글남겨주신 분들 감사해요 좋은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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