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안일한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이동혁에게 나재민이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리의 연애를 비밀로 한답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티를 내지 않았는데, 그걸 조금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사실 학교가 넓고 겹치는 수업이 많이 없어서 의외로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기에 그 애가 인기가 많은 걸 체감 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하필 오늘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영어 수업을 끝내고 걸어가던 복도에서 락커에 비스듬히 기대있는 나재민을 발견하곤 아는 척 하려는 찰나, 며칠 전 프랑스에서 전학 왔다는 인형같이 생긴 금발 여학생이 웃으며 나재민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게 말로만 듣던 플러팅인가.
왠지 나도 모르게 끼어들면 안될 것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그 두 사람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금발 여자애(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름이 스텔라라고 했다)는 완벽하게 패이는 보조개를 뽐내며 예쁘게도 웃었고 나재민은 그 애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아. 보지 말걸 그랬다.
급격하게 밀려드는 후회와 뭔지 모를 짜증에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아왔다.
"누나 뭘 그렇게 봐?"
"어? 아. 동혁이네. 아니야. 아무것도 안보고 있었어."
"뭔데~ 아, 나재민? 와, 쟤 또 데이트 신청 받나보다."
"...또?"
"엉. 최근에는 쟤가 하도 다 거절하니까 조금 뜸해졌는데 나재민 원래 일주일에 최소 네번씩 고백받았어."
"...인기 진짜 많네."
"근데 더 문제는 쟤는 별로 이렇다 할 거절을 안해서 여자애들이 다 오해했다니까. 자기랑 사귀는 줄 알고. 나재민 완전 나쁜 남자."
원하지 않았는데 들어버린 남자친구의 과거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 이동혁 진짜.
물론 이제는 나랑 사귀니까 나재민을 당연히 믿지만, 그래도 질투가 나는건 어쩔수가 없는 일이라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재민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재민이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흰 스트라이프 셔츠에 안경을 걸친 패션마저 너무 멋있어보여서 두배로 속상했다. 내 눈에만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그 애를 피해서 이동혁에게 수업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말을 하곤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수업 같은건 없었는데. 그냥 못난 마음으로 나재민을 볼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 애를 피해버렸다.
못났다, 김여주.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게 못내 속상했다.
"너 여주 누나랑 싸웠냐?"
"...Why would I?"(내가 왜?)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내가 웃으면 마주 웃어줘야 할 누나가 굳은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멀어지는 그 뒷모습이 평소보다 냉랭해서 나는 의아한 듯 물어오는 이동혁에게 얼빠진 대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누나 영어 수업 끝나면 수업 없는 걸 알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혹시 화가 났나? 왜 화가 났지?
"하긴. 너랑 누나가 싸울 건덕지가 뭐가 있어. 야 근데 방금 그 여자애랑 뭔 얘기 했냐?"
"걔 재스퍼랑 사귀잖아. 이번주에 걔 생일인데 혹시 재스퍼가 뭐 좋아하는지 아냐고 물어보던데."
"헐, 그럼 고백 받은거 아니었어?"
"...뭐?"
"난 너 또 고백 받은 줄. 누나가 신기하게 쳐다보길래 너 원래 인기 많았다고 말해줬거든."
아. 그래서 아까 그렇게 날 피했구나.
아주 잠깐 허튼 소리를 늘어놓은 이동혁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얘가 무슨 죄가 있겠냐고.
"...누나 어디 간다고 말 했어?"
"그냥 수업 있다고만 했는데?"
"넌 진짜, 아오. 이동혁 진짜 짜증나."
"엥? 나 왜! 뭐!"
절규하는 이동혁을 뒤로 한 채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왜 그런 오해를 한 걸까. 누나를 안 이후로 다른 사람은 쳐다도 안봤는데.
난 김여주 밖에 없다고 나름 열심히 어필했다고 생각 했는데, 아직 믿음을 주기엔 많이 부족했나보다.
카페테리아 부터 학교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어디 숨은건지 도통 보이지가 않아서 답답하던 찰나 도서관 가장 깊은 구석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누나."
깜짝 놀란 얼굴이 눈에 가득 찬다.
이렇게나 예쁜 사람을 두고 내가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리가.
"누나. 왜 나 보고 도망 갔어요."
"...그냥..."
"그냥 아니잖아. 나랑 스텔라 보고 무슨 생각 했어요?"
"걔 이름이 스텔라였냐...몰랐네."
작게 궁시렁거리는 부루퉁한 얼굴이 귀여워서 작게 웃으니 노려보는 눈길이 따라왔다.
"누나."
"...뭐."
"좋아해요. 많이."
"그래."
"나는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부루퉁한 얼굴이 빨개졌다. 다 알고 왔구나, 싶은 표정이라 더 웃음이 나왔다.
안그럴거 같아서 질투라니. 진짜 귀여워.
"나한테도 얼른 좋아한다고 말 해줘요."
"...좋아해. 나재민."
"나는 누나가 생각 하는 것 보다 더 김여주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기. Okay?"
"...알았어."
아직도 발그레한 두 볼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추니 누가 본다며 깜짝 놀라 나를 밀어낸다.
사실 누가 봐도 상관 없는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삼키며 괜히 웃었다.
누나가 들으면 화 내겠지,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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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디 짧은 재민이 시점!
오글거리지 않으려 노력했는데...역시 오글거려요...그래도 연애는 조금의 5글거림이 있어야 설레는 법...제 손을 희생하겠슴다...
그리고 혹시 나는 이런 상황이 보고싶다, 하는 게 있으시면 저한테 댓글로 알려주세요...뭘 써야 할지 고민이라...ㅠㅠ
진짜ㅠㅠㅠㅠㅠ초록글 정말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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