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날과는 달리 공항은 춥고 건조했다.
날씨가 따뜻하긴 커녕 다시금 쌀쌀해져서 옷장에 넣어두었던 코트를 도로 꺼낸 참이었다.
눈 덕분에 비행기가 조금 늦어져서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이 타고 있었을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뜬 전광판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이 안잡혀서 표정관리가 어려운 탓도 있었다.
어제 새벽까지 재민이와 통화를 하며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조심스레 털어놓자 그 애는 한참을 말이 없더니 사실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미안해했다.
'음...사실, 나는 누나같은 상황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아니. 내가 똑같은 상황이었어도 마땅한 답은 몰랐을거야. 어떤 말을 하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는 결국 누나가 결정하는거고, 사람마다 생각도 다 다른거잖아요.'
"...그치. 맞아."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어찌 됐든 누나한테 가장 Best 가 될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응..."
'정 힘들면 내가 있잖아.'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어서,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나재민을 믿고 의지하고 있구나- 싶어 새삼스레 놀랐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재민을 믿는 만큼, 얘도 나를 믿고 있을까?
"어머. 여주야, 너네 부모님 저기 왔다. 언니! 여기야!"
잠시 딴생각을 하며 멍하니 서 있자, 이모가 내 팔을 흔들며 호들갑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시선이 따라간 곳엔 마지막으로 본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부모님이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해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으니 곧 두 분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그 동안 잘 지냈어 딸?"
"으응...잘 지냈지."
엄마가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길에 살짝 움츠러들자 곧 손이 거두어졌다.
이모는 아빠와 어색한듯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우리는 짧은 재회를 끝마치고 이모의 차로 집까지 이동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두 분은 별 말이 없었다.
가끔 이모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내게 시답잖은 질문을 간간히 던지는 것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아서 곧 차 안엔 적막만 내려 앉았다.
뭔가 불편하고 어색한 침묵에 섣불리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이모도 그 공기를 읽었는지 그저 조금 더 차의 속력을 올릴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조금 반갑게 이모부와 동혁이에게 인사를 건넨 두 분은 잠시 시간을 보내도 되겠냐며 이모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곤 나를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엄마랑 아빠가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문자나 전화로 하면 되지."
"음, 그렇게 가벼운 말은 아니라서. 네 얼굴도 볼 겸 해서 온거야."
엄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고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입을 몇번이나 달싹이다가 결국 다무는 것을 보고 아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예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 같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왠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언제가 미리 경험했던 것 같은 기분.
"...엄마랑 아빠. 우리,"
"..."
"...이혼하기로 했다."
그래. 그런 기분을 느꼈던 건, 내가 이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일임을 어느 순간부터 계속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빠의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단어와 내 시선을 피하는 엄마의 얼굴이, 낯설지만은 않았던 거겠지.
그래도.
"...알았어요."
머리가 조금 큰 이후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엄마나 아빠 둘 다 가족보단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래도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하게 힘든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서.
이름만 가족이더라도 어쨌든 나도 남들처럼 돌아갈 집이 있고. 부모님이 있고. 그리고 난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겠지.
"널 미국에 보내고 우리도 많이 고민했어. 하지만 너도 많이 컸고 나랑 네 엄마도 각자 살고 싶은 삶이 따로 있으니까. 더 이상 서로 힘들게 감정 싸움 하면서 함께 하는건 좋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에 남고 싶다면 남아도 좋아. 이모한텐 엄마가 따로 얘기 할거고, 돈도 매달 보내줄거야. 불편하면 다른 지낼 곳 알아봐줄게. 혹시 한국에서 살고 싶으면 따로 집 구해줄테니까-"
"...알았어요. 알았다고. 난 여기 남을거야. 한국 가봤자 내 편은 아무도 없으니까. 두 사람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 의견은 필요 없잖아."
부모님도 부모님의 삶을 살고 싶어 하신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본인의 삶을 열심히,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을 것이다.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여주야.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실 미안할 필욘 없다고 생각 한다. 정말로. 지금까지랑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미안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실 이렇게 될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
"여기까지 힘들게 오게 해서 죄송해요."
그 말과 함께 방 문을 열고 그 곳에서 나와 버렸다.
더 이상은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눈물은 이미 멎었기에 나는 그저 지친 얼굴로 계단을 내려왔다. 아랫층에 아무도 없길 바랬지만 이모와 그대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여주야. 이모가 오늘 맛있는거 해줄테니까. 미안한데 장 좀 봐올래?"
분명 울어서 발갛게 부은 내 두 눈을 봤지만, 이모는 그냥 웃으며 내 손에 돈과 리스트가 적힌 쪽지를 쥐어 주었다.
이미 다 알았겠지. 지금 내겐 가장 필요한 친절에 나는 이모를 한번 꼭 껴안고서 집을 나섰다.
나재민이 너무 보고 싶었다.
"누나!"
"...어."
내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나온게 분명한 듯, 어깨에 걸치듯 후드 집업을 입고 나온 나재민이 내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쪽 팔에 걸려있던 두툼한 코트를 내게 둘러주는게 웃겨서 웃으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왜 웃어요?"
"아니, 너는 이 추운데 후드티 입고 나왔으면서 나는 코트 둘러주냐. 차라리 이걸 니가 입어. 나 긴팔 입고 나왔어."
급하게 나오느라 얇은 가디건만 입고 나와서 재민이에게 부탁했더니, 본인은 따듯하게 입을 생각도 못했나보다.
아까까지만 해도 심히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짐에 나는 이마를 그 애의 어깨에 쿡 박고는 몇번 한숨을 내뱉었다.
"...우리 부모님 이혼한대. Divorce."
"...네."
"미국에서 살지, 아니면 한국에서 살지 물어보더라."
"누나는 어떡하고 싶어요?"
"나는 미국에 있을거야. 한국엔 니가 없잖아."
내 한숨과도 같은 말에 나재민은 그저 어깨를 빌려준 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응."
"내가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 진짜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 엄마 생각은 여전히 나긴 나는데, 점점 옅어지더라구요. 눈물도 서서히 줄었고. 아빠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
"누가 더 슬펐는지 얘기 하자는게 아니라. 지금은 많이 힘들어도, 어느샌가 돌아보면 많이 무뎌져 있더라구요. 그냥. 내가 겪어본게 그랬어요."
나는 나재민의 그런 점이 좋았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며 하고 있다는게 티가 나는거.
내가 자신의 말에 혹여나 상처 받을까 걱정하는게 여실히 느껴져서 나는 그 애의 손을 한번 잡았다 놓았다.
"...응. 나 괜찮아. 사실, 조금은 예상 했거든. 많이 놀라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고마워, 재민아."
"No Problem. 내가 말 했잖아요. 난 늘 누나 편이라고."
울기 싫었지만, 창피하게 그만 눈물이 조금 흘러 버렸다.
고마운 것도 있었고, 또 나재민도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을 만큼 나를 많이 믿는다는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괜시리 헛기침을 하며 코를 훌쩍이는 나를 보던 나재민은 그저 웃으며 내 손을 더 꼭 잡아왔다.
눈물이 날 만큼, 이젠 나재민의 존재가 내겐 큰 힘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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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행복하자...우리.....행복하자....
여주도 아프지 말고...재민이도 아프지 말고오...
힘든 일이 있지만 사이는 더욱 돈독해지는 둘! 을 쓰고 싶었답니다...
만약 아주 혹시나, 제 글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어떠한 의도도 없답니다...
많이 짧은 글이었는데 초록글ㅠㅠㅠㅠ정말 혼또니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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