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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전체글ll조회 323


[EXO/백도] 숨을 끊게

 

 

 

" 사, 살려주세요 …. 제발 …. "

 

여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남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칼을 여자의 배에 꽃았다. 몇 번이고 …. 남자는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않은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집에서 나왔다.

 

 

 

 

 

*

 

 

" 아, 백현아! "

 

저 멀리서 백현을 발견한 경수가 방긋 웃으며 뛰어온다. 좀 피곤한데 …. 경수와 있으면 나까지 밝아지는 기분이지만, 너무 피곤해진다. 경수가 워낙 활발한 게 아니라 계속 ' 매점 가자! 운동장 가자! 체육 같이 나가! 물좀 먹자! 화장실 가자! ' 등등, 여자아이들도 함께 하지 않을 법한 일을 자꾸 나와 함께 하자고 조른다. 귀여우니까 참는거야.

 

" 어, 일찍 왔네. "

 

백현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경수는 다시 한번 희희 웃으며 ' 오늘 좀 일찍 나와봤지. 행운이네! 아침부터 백현이를 다 보고. ' 하며 기뻐했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경수를 보고 백현은 뭐 저리도 좋을까. 하며 의문을 품었다.

 

" …. 백현아. "

 

경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어지더니 제자리에 멈춰섰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뒤를 돌아 ' 왜 그래? ' 하며 태연하게 물었다. 경수는 커진 눈으로 ' 너, 너 뒤에 피가 …. ' 하며 백현의 와이셔츠 뒷 부분을 가리켰다. 아, 씨발. 그 년 존나 짜증나게 하네. 왜 피 튀기고 지랄이야, 진짜 …. 백현은 속으로 어제 죽인 그 여자를 원망했지만, 경수는 백현이 그런 짓을 했다고는 상상도 못한 채 ' 어디 아파? 상처난 거야? ' 하며 걱정스레 물어온다.

 

" 아, 아니야. 어제 코피가 났었는데, 책상에 잠깐 와이셔츠 놨다가 나도 모르게 묻혔나보다. 걱정하지마. "

 

백현의 말에 경수는 안심한 듯이 ' 핏물 잘 안빠지는 데 …. 다른 애들도 보면 나 처럼 기겁할지도 몰라. 특히 나는! 피 진짜 싫어해. ' 라고 말한다. 경수는 백현의 와이셔츠 끝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징그럽다는 제스쳐를 크게 취했다. 백현은 경수에게 대충 ' 왜 싫어하는데 ? ' 하고 물었다. 아, 미스다 …. 방금 질문은 해선 안되는 건데. 경수의 부모님은 경수가 7살쯤 일때, 그러니까 10년 전에 살해당했다. 평소에 원한을 살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묻지마 살해로 추정했다. 아직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고,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살인 사건이 아마 16건이나 더 일어났다고 한 것 같은데. 통도 크지, 어떻게 17건이나 살해를 …. 나도 아직 몇번 못해본 걸.

 

" 미안해. 내가 생각없이 말했네. "

 

백현의 사과에 경수는 괜찮다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지만 경수의 표정에서 속상함과 억울함이 묻어나온다. 하여간, 도경수 연기 진짜 못해. 백현은 경수의 맞은 편에 서서 경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 뭐, 뭐야. 왜 갑자기 그래? "

 

경수가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백현은 그저 경수를 응시하다가, 경수의 양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경수는 아프다며 괴상한 소리를 내댔지만, 백현은 그저 웃으며 놔 주지 않았다.

 

 

*

 

백현의 부모님은 어린 백현을 혼자 두고 가버렸다. 혼자 큰 백현은, 또래보다 월등히 어른다웠고, 두뇌 회전이 빨랐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 ' 사랑 ' 대신에, ' 살인 ' 으로 비어버린 ' 감정 ' 을 충족시킨 것이다. 

 

" 백현아, 뭐해? "

 

멍하니 계획을 세우던 백현의 앞에 갑자기 경수의 얼굴이 나타난다. 백현은 살짝 움찔했지만, 전혀 놀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경수를 보며 ' 아냐, 그냥 멍 때리고 있었어. ' 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백현의 말에 ' 아, 그래? ' 하며 대답한 경수는 이야기 한다. ' 그거 알아? 어제 20대 초반 여자가 살해당했다던데, 수법이 얼마나 잔인한지! 복부를 여러번 찔렀대. ' 하며 은밀하게 소문을 퍼뜨리듯이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은 왠지모를 죄책감에 휩싸였다. ' 아침부터 그런 이야기 하지 말자. ' 라며 백현은 엎드려 잠든 척 했다. 경수는 ' 미, 미안해 ' 라며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

 

 

" 네 녀석, 우리 아버지가 가만 두지 않을거야! "

 

팔과 다리를 속박당한 여성이 남자를 째려보며 말한다.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리고선 여자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너무 가깝게 들이댄 탓인지 여자의 목엔 살짝 피맺힌 생채기가 났다.

 

" 가만두지 않으면, 나를 잡아 죽일거야? 그 전에 사랑하는 따님이 먼저 돌아가실 텐데? "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여자의 복부를 향해 칼을 들이댔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여러번 난도질했다. 여자는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칼에 반사되어 보이는 눈부신 달빛이 백현의 눈을 적신다.

 

 

*

 

 

' 어제 밤 11시경, 끔찍한 살인사건이 한 건 더 발생하였습니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는데요, 대체 범인의 살해동기는 무엇일까요? 김준면 기자. '

' 네, 저는 지금 살해 여성의 주택 앞에 와있는데요. 여성은 살해 당하기 전까지도 극렬하게 저항했다고 합니다. 범인은 아마 계획적 범죄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

' 그렇군요, 피해여성의 아버지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

 

삑 - 하는 소리와 함께 티비 화면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이슈가 없나? 사람 한명 죽였다고 이렇게 계속 내 이야기만 해대니, 지루하다. 이거 원, 앞으로 몇 명 더 희생되면 국가 재난사태라도 선포되겠네. 빈정대던 백현의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이 큰 소리를 내며 울린다.

 

' 뭐해, 백현아? '

 

경수였다. 백현은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알리바이를 만들기 좋은 친구였던 경수이므로, 최선의 방법으로 대답했다.

 

" 나 그냥, 티비보고 있었지. "

 

경수의 제스처가 수화기 너머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항상 내가 무슨 말만하면 그렇게 큰 제스처를 취하곤 한다.

 

' 그럼, 뉴스에 지금 나온 속보도 봤겠네? 어제 또 한명 죽었대. 으으, 정말 무서워. 살인범은 진짜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참, 이해가 안돼. '

 

경수의 말에 백현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술술 ' 그러게, 이해가 안돼. ' 라며 경수의 말에 답했을 백현인데, 오늘따라 입이 열리지 않는다.

 

' 백현아? 들려? '

 

오랫동안 머뭇거리는 백현인 터라, 경수는 수화기에 문제가 생긴 줄 아나 보다. 백현은 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르게 ' 이젠 그만 해. ' 하는 침묵의 목소리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왔다. 지금까지 제일 나를 무섭게 했던 건 떨어져 굴러다니는 피 묻은 목도, 지독한 외로움도 아니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에게 인사해오는 경수의 목소리였다 ….

 

" 아, 응. 아냐. 피곤해서, 이만 끊을게. 안녕. "

 

수화기 저 편에서 경수가 아쉬운 목소리로 ' 피곤할 땐 푹 자야지. 잘자. ' 라며 인사해준다. 백현은 대답하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왜 오늘따라 이렇게 처량한지 …. 구슬픈지.

 

 

*

 

 

오늘 밤은 사냥에 나가지 못했다. 몸이 불에 타는 듯이 뜨거웠고, 누가 망치로 때리는 듯이 머리가 아파왔다. 그 동안 살해했던 여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 너란 애는 정말, 최악! ' ' 끔찍한 살인마. ' ' 필요없어, 죽어. ' 라며 백현을 괴롭힌다. 지금까지 죄책감 없이 살아왔었는데 …. 그 목소리들 중 명확히 들리는 경수의 목소리.

 

' 실망이야, 너란 애는 정말 …. 끔찍해. '

 

백현은 이불을 좀 더 꽉 쥐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 경수야, 미안해. 내가 이런 애라서 …. 미안해.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는데도, 백현의 자리는 주인을 잃은 채 텅 비어있다. 경수는 걱정된 마음에 백현에게 몇번이고 전화해보지만, 받지 않는다. ' 무슨 일이지? ' 요즘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고해서 혹시라도 나쁜 일을 당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경수는 선생님께 ' 배가 너무 아파서요 …. 정말 죄송한데, 조퇴해도 될까요? ' 라며 학교 생활 처음으로 거짓조퇴를 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백현이가 잘못된다면 이것보다 마음이 더 아프겠지. 경수는 백현의 집으로 찾아갔다. 혹시라도 아무 것도 못 먹었을까봐 중간에 죽 집에 들려 전복죽도 함께 사갔다. 맑은 초인종 소리와 함께 경수가 ' 나야, 안에 있어? ' 하며 문을 두드린다. 손잡이를 돌려보니 문이 잠겨있지 않은 듯, 스르르 열려버린다. ' 뭐지? '

 

경수는 백현의 집에 2번째 와보는 것이었다. 저번보다 구조가 많이 바뀐 기분이네. 백현을 찾느라 집 이곳저곳을 다녔다. 하지만, 백현은 아무데도 없었다. 집에 없는건가? 하며 마지막, 백현의 방을 열었다.

 

" …. 백현아. "

 

백현의 방안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여성의 사체가 한 구 있었고, 그 옆에 침대에 기대 거센 숨을 몰아내쉬고 있는 백현이 있었다. 백현의 옆구리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경수는 놀란 눈으로 백현에게 달려가 괜찮냐며 연신 묻는다. 백현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경수가 119를 부르겠다며 휴대폰을 꺼내들려는데, 백현이 경수의 팔을 잡았다.

 

" 하지 …. 마. "

 

백현의 말 소리가 너무나도 작아 경수는 귀를 더 가깝게 대었다. 백현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 하지만 …. 저 사람도 그렇고, 너도 이렇게 다쳤는데. ' 라며 경수는 완곡한 의지를 보인다.

 

" 저 사람, 이미 …. 죽었어. "

 

백현의 말에 경수가 그대로 굳었다. 휴대폰을 꽉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백현은 자신의 피로 얼룩진 손으로, 경수의 손을 잡아줄 수 없었다. 이런 더러운 손이라 미안해. 미안해, 경수야.

 

" 어, 어떻게. 가, 강도가 들어온거지? 응? "

 

경수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백현은 고개를 숙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 내가 죽였어 …. "

 

백현의 말에 경수는 눈물을 한 방울 툭 떨어뜨린다. 백현은 경수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놀란 듯, 경수의 눈물을 닦아주려 하지만, 그러기에 백현의 손은 너무 더럽혀져 있었다. 경수는 소리도 내지 않고 정면으로 숨죽여 울었다.

 

" 왜, 왜 울어 …. "

 

백현이 상처가 고통스러운 듯이 인상을 쓰며 힘겹게 물었다. 경수는 울음에 묻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 왜, 왜 그랬어 …. 왜 …. ' 라며 아예 무릎에 고개를 묻고 펑펑 운다. 백현은 이 상황을 본 경수가 바로 신고하거나, 놀라 도망칠 줄 알았다. 피를 무서워하는 경수니까. 근데, 지금 상황은 …. 백현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 좋아해 …. 좋아했어 …. 아니, 지금도 좋아하는 거 같아 …. "

 

경수는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말했다. 백현은 경수를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 미안해. "

 

백현의 작은 목소리도, 이제 경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뭐가, 뭐가 미안해 …. "

 

경수는 눈물을 닦아내며 백현의 얼굴을 응시한다. 방에선 피 비린내가 진동한다. 지금까지 다친 백현을 보느라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 방엔 이미 죽어있는 사체가 있다.

 

" 좋아하는 사람이 살인범이라서 …. "

 

백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닥과 정면했다.

 

 

*

 

 

백현이 일어난 곳은 흰 천장이 보이는 곳이었다. 천국인가? 생각했지만, 내가 천국에 갈 리도 없는터에, 경수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금방 이 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 …. 괜찮아? "

 

경수는 백현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눈물 자국이 선명한 게, 아마 백현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보다. 사실 백현은 상처입은 곳이 너무나도 아팠지만, 그보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경수가 나를 좋아하는 데 …. 경수가 나를 좋아한다는데 …. 나는 받아줄 수가 없었다. 백현은 대답대신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는 백현의 손을 붙잡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 바보야, 그러니까. 왜 그런 짓을 했어 …. 왜 …. "

 

경수의 말에 백현은 대답했다.

 

" 지금까지 내가 해 온일에 한번도 죄책감이나 후회를 느낀 적은 딱 두 번있었어. 네가 내 방에서 울었을 때. 그리고 지금. "

 

경수는 백현의 말에 크게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백현은 너무나도 미안했다. 사랑할 수가 없어서, 울고 있는 너를 위로해 줄 수 없어서. 너를 자꾸 울 게 만들어서. 

 

" 괜찮아, 경수야. 괜찮을거야. "

 

 

*

 

 

백현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 회복했을 때, 그는 법원에 넘겨졌다. 이미 그가 정신을 잃은 동안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 변백현 ' 이다. 라는 것을 경찰이 밝혀냈기 때문에. 경수는 재판장에서 기도했다. 제발 …. 제발.

 

하지만 신은 경수와 백현의 편이 아니었다.

 

백현은 몸을 들썩거리며 우는 경수를 품에 안아 토닥여줄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와 내가 너무 머니까 …. 나는 너를 더럽힐거야. 나는 널 사랑하면 안 돼.

 

"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 입니다. "

 

재판장의 판결이 내려지고, 재판소 안은 환희로 가득찼다. 아마도 여성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람에겐 자비란 없다. 이런 뜻이겠지. 환호하는 인파들 사이로, 한 소년이 울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하고 슬퍼보여서, 아무도 ' 얘야, 왜 우니? ' 하고 물어보지 못했다.

 

" 배, 백현이 …. 어, 어떡해 …. "

 

경수는 백현을 채 마주치기전에 재판장을 나가버렸다.

바보,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

 

 

아마도, 지금 쯤 백현이는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까. 경수는 자신의 방 침대구석에 누워 벽을 마주보며 눈물 흘리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무능해서, 아무것도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 …. 나는 네가 사람을 죽였든, 심지어 나를 죽인다고 해도 …. 사랑해. 사랑할 거야. 너무너무, 사랑해. 사랑해서 미안해.

 

괜찮아, 경수야. 다 괜찮을거야.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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