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
눈이 하얗게 덮인 날에는
w.1억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
내 물음에 정국이는 테이블 위에 있는 맥주캔을 집어 한모금 마시고선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뭔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있는 정국이에 나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그냥."
"……."
"돈 좋아하고, 형 좋아하고, 엄마 좋아하던 사람이었어."
"……."
"나는 안중에도 없었어. 가수를 한다고 했을 때도 한심하다는 듯이 날 봤었거든."
"…너는 재능이 있잖아! 근데도..?"
"응. 나더러 쪽팔리다고 했는 걸."
"……."
"…날 사랑했다곤 하는데. 모르겠어."
"……."
"그 사람의 대해 좋은 추억이 없었어도, 그 편지를 읽고 슬펐던 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내 손에 쥐어진 편지를 보았다. 진심이 담겨있는 편지.. 그리고 이 편지는 원래 그 날에 주려고 했지만, 그 날에 열쇠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정국이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정국이는 나영희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최초로 아버지를 발견한 것도 나영희라고 한다.
어쩌면 정말 나영희의 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참 무서운 동물이다.
제 51회_
걱정말아요 그대
윤기는 작업실로 올라가려다 회사 안에 있는 카페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힐끔 보았다가 등을 돌렸다.
한발자국 걸었을까.. 그 누군가 분명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라, 윤기는 문을 벌컥 열어 카페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상대로 석진은 따듯한 차를 스푼으로 휘이- 저으며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윤기를 보았다.
윤기는 에?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석진에게 다가갔다.
석진은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은듯 윤기를 올려다보았다. 형.. 뭐야? 윤기는 인상을 쓴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가 뭐야?"
"왜 형이 여기있어?"
"나는 여기 회사 사람인데, 여기 있으면 안 돼?"
"아니.. 그러니까. 지금 형 이틀째 드라마 촬영 다 안나가고 기사뜨고 난리 났는데. 여유롭게 여기서 이러고 있어?"
"왜? 그러면 안 돼?"
"뭐..?"
"나도 한 번 땡깡 좀 부리고 싶어서."
"형 그러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 돼. 그 드라마 남주 경쟁률이 얼마나 쎗는지 기억 안 나?"
"차라리 그랬음 좋겠다."
"형 미쳤어?"
"그런가보다."
"형이 뭘 잘못 먹었나보구나."
"그런가봐."
"당장 가. 촬영."
"오늘만."
"……."
"오늘만 생각할 시간 좀 줘라. 복잡해."
"아니.. 이 형은 진짜."
"정국이는."
"여름이랑 같이 있더라."
"……."
"괜찮아보였어. 걱정하지마."
"응. 내가 누구 걱정할 처지냐. "
"……."
석진은 괜히 스푼으로 차를 휘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뭔 할말이라도 있는지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석진을 본 윤기는
그 옆자리에 앉아 석진의 손에 들린 따듯한 차를 뺏어서는 한모금 마시고서 입을 열었다.
"진짜 형 입에서 개같은 소리 나오기만 해. "
"개소리의 기준이 뭐야. 알고보니 프로듀서 민윤기가 아이돌 뺨치게 잘생겼다?"
"그건 팩트잖아."
"팩트냐?"
"그래."
"그냥 별 거 아니야. 일 좀 쉬고싶어."
"진짜 개.."
"남한테 피해 주기 싫어 이제."
"…드라마 포기? 그게 엄청난 피해지."
그런가.. 그게 엄청난 피해일까? 석진이 정말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윤기는 어이가 없는지 소리내어 웃어보였다.
석진은 또 눈치없게 그런 윤기를 보고 따라 웃어보인다.
이 형은.. 뭔 생각을 하고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니까. 항상 같은 눈을 하고 있으니..
"회장님이 또 우리 회사 주식 다 가져갔더라."
"그러게."
"돈도 많으신 분이 왜 그러신다냐. 좀 물어봐주라."
"내가 회장님 옆에 붙어 다닌다고 해도, 모르는 건 많아."
"그냥 한 소리야…"
"다 알지는 않아."
이 형은 항상 그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항상 같은 눈, 목소리 톤. 화를 낼 때도 항상 같았다.
하지만 유독 나영희 회장의 얘기를 하거나 여름이 얘기를 꺼내면 씁쓸한 눈을 한다.
무언가 형을 꽉 잡고 있는 것일까.. 윤기는 속으로 이 생각을 하며 석진을 보았고, 석진은 이제 가본다며 일어나 등을 돌렸다.
윤기는 잠깐- 하고 석진 따라 일어나 석진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형까지 힘들게 하지마라. 진짜.. 정국이랑 쌍으로 힘들게 하면 나도 힘들다."
"뭐?"
"도망치지마."
"……."
"……."
"나 빨래 해야 돼. 그래서 가는 거야."
"……."
"도망쳤으면 진즉에 떠났어. 그것도 아무도 없는 이름 모를 나라로."
정국이랑 회사에 와서는 pd들은 자신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며 정국이에게 연락을 했다.
뭔가 출연 해줬으면 하는 예능이 있어 기대하는 눈으로 정국이를 보아도, 정국이는 안 할 거라고 굳게 마음을 닫은듯 했다.
요즘 왠지 모르게 조금은 힘들어보이니까 정국이가 하라는대로 맞춰주는 게 맞을 것 같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선 윤기오빠를 보았더니, 윤기오빠는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작업한 노래를 드디어 다음주면 발매한다며 기지래를 켜보이는 윤기오빠에 정국이를 올려다보면, 정국이는 좋지않은지 차가운 얼굴로 윤기오빠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윤기오빠는 얼마 있지않아 나에게 어울리지않게 따듯한 목소리를 내주었다.
"찌라시.. 기사들은 루머라고 대충 둘러대긴 했어. 근데 사생같은 경우에는 애들이 눈치채고 너한테 덤비는 경우 있을 거야.
그럴 땐.. 정국이한테 말고, 나한테 연락해."
"응. 알았어."
"가서 쉬어라. 앞으로 스케줄 없는 거.. 힐링이라고 생각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있지마.
어디 좀 놀러가고 그래. 그래! 해외여행 막.. 그런 거."
"뭔 해외여행이야. 가고싶어?"
"아, 아니!"
아니긴 무슨.. 가고싶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디든 떠나고 싶다.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을 것 같다.
근데.. 뭔 해외여행이냐며 귀찮은듯 나를 쳐다보는 정국이에 고개를 저었더니, 윤기오빠는 별일이라며 날 신기한듯 바라본다.
하긴.. 정국이는 해외여행은 미친듯이 가봤을 테니까.. 지겨울만도 해.
그나저나.. 나는 너랑 어디 놀러갈 수나 있을까. 어딜 나가던 다 너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와 밖에 돌아다니며 웃을 수가 있을까..싶다.
많고 많은 연예인들은 연애를 어떻게 하고 살았대.. 괜히 궁금해져서 턱을 괸채로 눈을 굴렸더니 정국이도, 윤기오빠도 나를 똑같은 표정으로 보고있다.
"왜..?"
"좀 가서 쉬라고! 집 가서 연애질이나 해. 둘다 힘빠져서는.. 어우.."
훠이 훠이- 하며 정국이의 등을 밀어내는 윤기오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손을 흔들었다.
작업실에서 나오자마자 회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놓았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정국이에 나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
내 말에 정국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내가 뭔 말을 할지 궁금하지도 않은지 아무 표정없이 나를 보는 정국이에게 나는 늘 그렇듯 정국에게 웃으며 말을 건낸다.
"나는! 택시 타고.. 따라갈게!"
"……"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잖아. 같이 나와서.. 같이 차 타고.. 집 가고!"
"……."
"나는 너 욕 먹는 거 싫어. 그리고.. 이러는 게 내가 마음이 더 편해!"
"네가 그렇게 따로 가면."
"……."
"내 마음은 편해?"
"……."
"같이 회사에 들어가고, 같이 나오고, 같이 차를 타고, 같이 집에 들어가면 어때. "
"……."
"너무 신경 쓰지마."
신경 쓰지말라며 앞장서 걷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만 있자, 정국이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정국아…."
"…이런 거에 눈치 보지마."
"……."
"안 그래도 나영희 때문에 너 혼자 두는 거 불안한데..."
"……."
"나영희 감옥에 넣을 때까진.. 내 옆에 있어라."
"……."
"응?"
"미안해. 그냥 나는 네가 걱정 돼서."
"손 놓는다."
"……."
"놔?"
"응."
"같이 차 타."
"……."
"알았지."
"응."
먼저 앞장서 나가는 정국이를 따라 나오자 역시나 팬들은 정국이에게 달려들기 바빴고, 나는 도망치듯 차에 올라탔다.
정국이도 차에 타고나서야 차가 움직였고, 차에 달라붙어 신기한듯 소리치는 여자는 예전에 보았던 제주도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어.. 저 친구 오늘도 있네..! 예전에 그 제주도.."
"자주 와."
"그래?"
"착하고 순수한 애들 같더라."
"응?.. 사생ㅇ.."
뭐? 하고 나를 힐끔 보는 정국이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사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분명히.. 사생이라서 나한테 화 냈었는데.. 예전의 일을 떠올려도 기억이 잘 나지않아서 곧 정국이를 빤히 쳐다보았더니
정국이는 나를 바라보고선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하긴.. 많은 팬들을 어떻게 일일이 하나씩 기억하겠어.. 어렵지! 그치..
아무 생각도 없이 서로 앞만 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정국이에게 궁금한점이 생겼다.
정국아 너는 지금 행복해? 내 물음에 정국이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행복하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아마 슬퍼할 것 같다. 내가 옆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는구나.. 하고 말이다.
"왜?'
신호가 걸렸는지 차가 멈춰섰고, 정국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왜 그러냐 물었다.
아마.. 왜 그러냐 묻는 건, 내가 계속 멍때리니까 왜 그러냐는 거겠지..
"아니."
"……."
"그냥.. 너무 추워서."
"추워?"
"응."
"히터 틀었는데.."
알아. 춥지도 않아. 그냥 할말이 없어서 그랬던 거야. 이 말은 하지도 못한채 정국이를 올려보았다.
정국이는 항상 그렇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 표정으로 나를 본다.
가끔은 생각해본다. 채수빈.. 그 여자와 만났을 때도 저런 표정을 자주 지었을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도 조금은 이기적이게 변하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아직은 힘든 정국이를 이해하는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정국이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데에도 시간은 꽤...
"뭐 먹고 들어갈까."
"음.. 아니. 시켜먹자."
걸릴 것 같다.
정국이와 집에 도착해 엘레베이터를 타고선 내렸을 땐.. 집 문앞에 키는 정국이만한 남자가 서있었다.
정국이랑 아는 사이인가 싶어서 정국이를 올려다보면 정국이는 내 손목을 잡고선 문 앞으로 향해, 남자를 무시하고선 문을 열어보인다.
남자는 나를 한 번 보고선 애인이냐 물었고, 정국이는 그 말에 대답을 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눈치를 보며 정국이를 작게 불러보았지만 정국이는 대답이 없다. 곧 문앞에 서있던 사람이 정국이에게 말했다.
"나랑 얘기 안 할 거냐? 이제는 연도 끊으려고?"
"……."
"뭔 일이 있었는지나 좀 듣자. 제대로 좀 말해봐. 아빠 죽고 이제 기댈 사람이라곤 우리 둘뿐이잖아.
형이 부담스럽냐?"
형.. 형이라고 했다. 정국이의 형.. 형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닮아보인다. 정국이는 쌍거풀이 있지만, 형은 쌍거풀이 없다.
그렇다고 성격이 똑같을 것 같지도 않다. 뻘쭘히 서서 정국이를 올려다보면 정국이는 턱짓으로 집 안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
"뭘 먼저 들어가. 같이 들어가서 얘기 좀 해."
막무가내로 조금 열린 집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자연스럽게 거시로 가시는 정국이의 형에 나는 정국이에게 얼른 들어가자며 손짓하며 따라들어섰다.
"3주 뒤에 시상식 있거든. 거기에 올 거지?"
"아니? 내가 거길 왜 가?"
"내가 거길 왜 가 라니..? 이 정도면 엄청 가까워진 사이 아니야?"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일방적으로 따라와도 뭐라고 안 했잖아?'
"뭔 말을 하겠어 내가."
태형이 웃으며 화영의 뒤롤 졸졸 따랐고, 화영은 백화점 앞에서 태형의 앨범을 들고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 옆에 서서 한참을 있다가
뒤를 따라온 태형을 보았다. 태형은 마스크와 모자를 써 사람들이 거의 못알아보는 상황이었고,
화영은 그 여학생들의 어깨를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린다.
여학생들이 고개를 돌리자, 화영이 자신의 뒤로 서있는 태형의 마스크를 벗기고선 말했다.
"김태형 여기."
"……?"
"…메."
여학생 네명에게 둘러싸인 태형이 잽싸게 도망친 화영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학생들이 태형의 앞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나자 태형은 머쓱한듯 뒷머리를 긁어보이며 멀어져가는 화영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 찍어달라는 말에 태형은 학생들 옆에 서서 익숙한듯 브이를 해보였고,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화영은 웃으며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뭔 놈에 옷은 돈이 없어도 사고싶은지."
얘기를 다 듣고나서 정현씨는 못믿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계속 한숨만 내쉬던 정현씨는 착잡한듯 창밖만 바라보다 곧 입을 천천히 열었다.
"한없이 착한분이라 그럴줄 상상도 못 했어."
"믿기 싫음 믿지마."
"아니.. 안믿는 게 아니야. 네가 얼마나 엄마를 따랐는데."
"……."
"잠깐 미국 갔다 온 사이에 뭔 일이 일어난 거야.."
"…가서 아는척 하지마.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내가 여기서 뭐라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정현씨는 그저 미안하다며 고개를 저을뿐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은 정현씨가 이 모든 상황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실제로 뭘 본 게 없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화목했던 가정은 없고, 지금은 제일 친했던 정국이와 나영희가 사이가 틀어졌으니 말이다.
또 정국이와 형은 왜 이렇게 어색해 보이는지 나까지 다 어색해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가운데 껴서는 이 차가운 분위기 속에 나 혼자 하하.. 하고 웃으면 정국이와 형분께서 나를 동시에 쳐다본다.
아, 닮은 곳이 이럴 때 있네. 차가운 저 표정 말이야.
"근데.. 회장님은 왜 정국이한테 이런 집착 증세를 보이는 걸까요."
"애정결핍..처럼 보이죠? 처음에 우리집 들어왔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소유욕도 있는 것 같고.. 그것도 유독 정국이한테만."
"아.."
"내가 알기론.. 정국이만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죽었대요. 여자친구 운전 실수로 가드레일 박았는데.. 여자친구는 살고? 아들은 죽고.
정국이를 진짜 아들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죠. 예전엔.. 그래서 유독 둘이 친해보여도 별 말 않았고."
"……."
"아빠도 엄마가.. 아니 새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만난 거니까."
"……."
"미국 갔다왔는데 애가 왜 이렇게 갑자기 우울해져있고, 말도 잘 안하나 했어. 근데.. 그런 일들이.."
정현씨는 한참을 정국이를 쳐다보았고, 정국이는 팔짱을 낀채로 창밖을 보았다.
정현씨가 가고, 테라스에 나와 허공을 보고있는 정국이에게 물었다.
"왜.. 형한텐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아빠가 너만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까지도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너를 믿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야?""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하는 거 티나겠지."
"…응. 벌써부터 거짓말 하려는 거 티나는 걸."
"어. 형은 예전부터 그랬어. 내가 뭔 말을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내 편에 서있어주지 않았어."
"……."
"그래서 여태 형한텐 내 얘기를 한 번도 안했어. 거의 처음이야. 이렇게 주절주절 뭔가를 형한테 얘기한 거."
"응. 잘했다."
"응. 잘했어."
"정국아."
"응."
"……."
"……."
"아니야."
"……"
아니라는 내 말에도 정국이는 궁금하지도 않은지 나를 보던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진짜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어떻게 찾아왔대? 내가 좋다며? 그럼 이런 모습도 좋아해줘야지."
"완전 억지야. 그거!"
화영은 옷을 고르다가도 고개를 돌려 태형을 보았고, 태형이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자, 화영은 작게 웃어보였다.
뭔가 강아지 같기도 하고..
"왜 웃어?"
"재밌잖아. 앞으로 나 따라올 때마다 학생들 앞에서 확! 모자도 벗겨버린다."
"누구는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누구는 즐기고 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예요. 그쪽 짝사랑 해본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 항상 그래. 더 노력 해봐."
자- 하고 화영이 쇼핑백을 들이밀자 태형은 콧방귀를 끼다가도 그 쇼핑백을 받아들고선 화영을 졸졸 따랐다.
화영이 앞장서 걷다가 예쁜 시계를 보고선 멈춰서서 입을 떡 벌리고 서있었고, 태형은 화영의 옆으로 서서 같이 시계를 보았다.
"갖고 싶어?"
"비싸. 그리고 끼면 불편하단 말이야."
비싸다며 화영이 먼저 또 가버리자 태형은 시계 가격을 보았다.
십만원이 뭐가 비싸다는 거야.. 하며 태형은 시계를 급히 계산해서는 화영의 뒤를 쫓았다.
백화점에서 나와서 태형이 데려다준다고 하자, 화영은 짐도 있으니 그럴까? 하며 먼저 차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또 귀여워서는 태형이 웃으며 차 문을 열어주자 화영이 올라탔다.
"날씨 더럽게 좋네. 여름이가 완전 좋아하겠다."
"이 날씨가 좋은 거야?"
"눈 올 것 같잖아. 눈 오는 거 여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정국이는 눈 엄청 싫어하는데.. 커플이 같은 계절 좋아해야 좋대."
"왜? 그런 게 어딨냐. 여름이도 겨울은 좋아해!"
"몰라. 그래야 천생연분이라나. 근데 둘은 정반대네.. 성격도 정반대."
"그러네. 반데네.. 근데 난 여름이 좋던데."
"나도."
"왜냐고 안물어?"
"왜 좋아하는데?"
"내가 노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래야 짧은 치마, 바지 입고 나시 입고 다니지."
"워후."
집앞에 도착했는제 태형이 차를 세우자, 화영이 손에 쇼핑백을 잔뜩 쥐고선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태형이 웃으며 말했다.
"비싸다고 시계도 안사고, 무슨 옷들을 그리 샀대?"
"시계 살 돈은 없고,옷 살 돈은 있어. "
"그런 게 어딨어?"
"모든 사람들은 거의 다 그래."
"아, 이거! 이거 가져가."
태형이 급하게 불러 시계를 건내주자 화영은 그 시계를 보고, 태형을 보고 그렇게 몇 번을 번갈아보다가 물었다.
"뭔데."
"시계."
"이걸 왜 나한테 주는데."
"갖고싶다며."
"갚고싶은 거랑 누가 사줬음 하는 거랑 똑같아?"
"선물! 이깟 십만원짜리 시계! 내가 몇백개는 사주지!"
"……"
"왜..?"
"이깟 십만원? 미안한데. 난 누가 시계 사주는 거 엄청 싫어해서. 그깟 십만원짜리 시계 못 사는 사람들 엄청 많아."
"…어?"
"별.."
시계를 받지도 않고 화영이 웬 쇼핑백을 하나 던져주고선 가버렸고, 태형은 야아!!하고 화영은 부르다가도 쇼핑백 안을 보았다.
웬 후드티.. 큰 사이즈로 산 걸 보니 내 건가.. 괜히 기분이 조금은 좋다가도 화영이 화를 내고 가버리자 태형은 따라 내리려다
금방 빌라 안으로 들어가버린 화영에 아오! 하고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그 순간 머리로 클락션을 눌러버렸고, 태형은 놀라서는 심장부근에 손을 대었다.
"아니.. 근데 이게 저렇게 화낼 일인..가.."
"뭘 하시길래 이렇게 바뻐?"
"바빠 죽어. 시상식 때문에."
"시상식이 왜."
"석진이형은 또 뭔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드라마 안할 것 처럼 행동하지. 시상식에서 정국이 노래 못 할 거 생각하면 착잡하지."
"형은 왜 그러고, 정국이는 왜 노래를 못 해."
"그냥 사정이 생겨서."
"아, 시간이 안맞는대? 웬일이래. 정국이만 출연한다고 하면 1시간에 30분은 다 정국이로 채워준다는 사람들이."
"그냥.. 아, 몰라. 그냥 정국이는 시상식 안보내고.. 석진이형만 보내려고.. 석진이형은 mc까지 맡았으니까."
"이미 기사는 정국이 나온다고 난리나서 팬들 기대하잖아. 객석들도 다 정국이 팬들인데. 안오면 텅텅 비어."
윤기는 복잡한지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고선 턱을 괸채로 남준을 보았다.
아직은 정국이가 남한테 들키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남들한테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도 뒤늦게 정국이 증상을 알았다. 혹시 정국이가 다른 병도 앓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 막막해졌다
"그냥 1분이라도 괜찮으니까 내보내. 안 그래도 정국이 요즘 스케줄도 없었잖아."
정국이가 소리를 잘 못듣는데 노래 몇곡을 어떻게 부르냔 말이다.
"아니야."
윤기는 정국이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만 계속 하다 남준의 말에 작게 웃으며 고갤 숙였다.
"노래가 대수야.. 다들 정국이 얼굴만 봐도 좋아해. 한참 쉬었잖아."
그래. 맞는 소리긴 해.
윤기 오빠 전화에 정국이는 대충 대답만 하다 끊었고, 나는 웬 전화냐며 정국이 옆에 앉아서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정국이는 뭔 생각을 하는지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정국이의 어깨를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한 번더 물었다.
"웬 전화냐구."
"아, 응."
"응?"
"뭐가."
"무슨 전화야~ 윤기오빠 아니야?"
"어. 맞아."
"뭔 생각을 그리 하길래 그래?"
"회사에 좀 오래. 할말 있다고."
"회사?"
응. 하고 정국이가 내 볼을 한 번 만져주고선 일어났다. 따라 시선을 돌리니 내 앞머리를 헝클어주고선 방으로 들어간다.
같이 가! 하고 따라 들어가려고 하면 정국이는 문을 화 닫아버린다. 아아! 열어줘 하고 문고리를 잡아 돌려 밀면
정국이고 안에서 못열게 문을 막고 있다. 열어라! 하고 소리치자 정국이가 정말로 문을 열었고, 그 상태로 정국이한테 안겼다.
아, 이건 일부러 안긴 거다. 괜히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있었더니 정국이가 내 양볼에 양손을 올려놓고 자신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완전 못생겼네."
"와.. 진짜 사람이."
"예뻐."
"……."
"정말 예뻐."
"수..빈씨 보다..?"
"응."
"…와."
"왜."
"바로 대답할 줄 몰랐거든.. 당연히 나는 수빈씨가 더 예쁘다고 생각해서.."
"수빈이는 예뻐. 너는 귀엽고."
"헐.. 남자들은 귀엽다고 하는 게 못생겨서 귀엽다고 해주는 거랬어!!"
"아닌데. 넌 정말 귀여운데."
"치.."
"난 너랑 만나는데. 누가 예뻐보이겠어. 네가 제일 예뻐."
"크으으.."
꼭 이렇게 정국이는 어느때에 뜬금없이 나를 설레게 한다. 네가 채수빈씨와 어떤 사랑을 했는지 눈에 잘 보일만큼 말이다.
정국이가 옷장에서 옷을 골라 입는동안, 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어보았다.
'김석진' 별 반갑지 않은 아련한 그 이름이 왜 화면에 떠있는 걸까. 거절을 누르고 다시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받지 않는 게 맞는 거겠지만.. 정국이 앞에서라면 더 받지 말아야 할 전화다. 딱 고개를 들었는데 윗옷을 벗고있는 정국이에 급히 눈을 가렸더니
정국이는 셔츠를 입고선 단추를 채우며 날 보고 작게 웃어보였다.
"맨날 보면서 부끄러워하냐."
"야아! 누가.. 누가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해!"
"여기 너랑 나밖에 없는데."
"아니이..!"
"바로 대답할 줄 몰랐
정국이 여름을 집에 데려다주었다. 집까지 들어가는 걸 본 후에야 정국이 차를 움직였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본 여름이는 으구.. 하며 한숨을 쉬다가도
침대에 누워서 쒸익쒸익 화를 내는 화영이를 보며 왜 그러냐 물었다.
여름이의 물음에 화영은 아까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었다. 김태형이 글쎄 시계를 사주면서 뭐라는지 아냐?
"뭐어? 이깟 십만원.. 십만원이 옆집 개이름인가아.."
"그래! 그거에 빡이 도는 거야. 진짜 말이야 방구야.. 나 자존심 쎈 거 알지! 어!"
정국은 회사에 들어섰고, 경비원분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정국도 같이 고갤 숙여 인사를 했다.
다른 연습생들도 정국을 보고선 허겁지겁 인사를 하기 바빴고, 정국은 그게 익숙한듯 인사를 받아주고선 회사를 둘러보았다.
여기 처음 왔을 땐 되게 초라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큰 건물로 바뀌고, 연습생들도 많아졌네.. 괜히 연습실을 들여다본 정국은 작게 웃어보였다.
아직 중학생인 애들은 티가 났다. 어린티 말이다. 아직은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 그런데 너희는 왜 여기와서 이러고 있는 거니..
춤을 알려주던 호석이 문밖으로 서있는 정국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어보였고, 정국도 손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발걸음을 옮겨 작업실로 향한 정국은 작업실 문을 벌컥 열었다. 윤기는 밤이라도 샜는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채로 쇼파에 앉아 정국을 올려다보았다.
정국은 그 모습이 마냥 웃긴지 작게 웃으며 윤기에게 말을 건냈다.
"잠을 못잤으면 잠을 좀 잘 것이지. 나는 왜 불러."
"여름이는."
"목소리 들으니 무거운 얘기일 것 같아서. 집에 데려다주고 왔어."
"눈치 하나는.. 뭐라도 좀 마실래?"
"아니."
"그럴줄 알고 가만히 앉아있잖냐. 여기 앞에 앉아."
윤기의 말에 정국이 윤기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보였다. 윤기는 흐음.. 하고 한참 정국을 바라보다 웃어보였다.
정국은 그런 윤기의 모습이 조금은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가는지 따라 작게 웃어보였다.
윤기는 사실 정국이 먼저 말해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아무말도 않고 정국을 바라보아도, 정국은 자신의 손끼리 장난치기 바빴다.
그러다 윤기는 콧잔등을 긁으며 입술을 열었다.
"내가 먼저 말할까. 아니면 네가 먼저 말할래."
"뭘."
"뭐겠어."
"뭔데."
"언제부턴데."
"……."
"너 귀 안들리는 거."
윤기의 말에 정국은 장난을 치던 손가락들을 가만히 두고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윤기를 보았다.
윤기는 평소보다 조금은 더 진지한 표정으로 정국을 보았다. 정국은 그런 윤기의 모습이 어색한지 작게 웃어보인다.
"좀 됐어."
"좀 돼? 언제."
"2년 됐어."
"아예 안들려?"
"아예 안들리면 어떻게 사냐. 일시적으로 가끔씩 안들려."
"못고친대?"
"아니."
"……."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래. 계속 그러다 평생 못들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왜 말 안했는데."
"형은 왜 이제 눈치 챘는데."
"…야."
"나 사람 알아 보는 것도 힘들어."
"뭐?'
"안면인식장애."
"……."
"내가 아픈 건.. 다 스트레스 때문이래.
이젠 냄새로 구분을 해. 사람들을 보면 얼굴에 물음표가 써져있어."
"……"
"나 너무 살아서 민폐인가."
"너 그래서 그때 유미누나가 아는척 했을때 못알아봐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된 거야.. 전정국.."
"지금 제일 답답한 건.."
"……."
"여름이까지 가끔 못알아보겠어서.. 답답하고 미치겠어."
마른세수를 하는 정국이를 한참 보던 윤기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여름이 편의점 가려고 잠깐 나왔을까.. 익숙한 사람이 빌라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자
여름이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항상 왜 뜬금없이 나타나, 뜬금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왜 여기있어."
"…집에 있었네. 연락은 왜 안 돼."
"왜 여기 있냐구."
"보고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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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정국이가 스트레스로 얻은 병이 드뎌 나왔꾼요!!!
그래여!! 스트레스는 모든 만병의 원이이이인!!!이래여!!! 스트레스 받지 마이소오오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