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Mermaid
정택운이 목소리를 잃었다.
「택운아, 연습 잘 돼가고 있어?」
네가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까닥여지는 고개선이 예쁘다. 귀에 꽂힌 이어폰이 하얗고 기다란 손에 의해 떨어져나오고, 자그만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옮겨져 내게로 향한다. 반대편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을 가로채니 예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미간 찌푸리지 말랬잖아, 주름 생겨. 밉지 않게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네게 핀잔을 주며 한 손가락을 뻗어 찡그려진 미간 사이를 톡톡 친다. 치워, 짧게 내뱉으며 내 손을 쳐낸 네가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아, 그만하고 나랑 놀자. 응?」
「…내놔.」
이리저리 손을 뻗으며 휴대폰을 가로채려는 팔을 재빠르게 피하니 잔뜩 약이 오른 건지 입술을 볼통하니 내밀고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결국은 내 손아귀에서 제 휴대폰을 낚아채고야 만 네가 내심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일시정지되어 있던 화면을 재생시키고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아넣는 너의 입술이 달싹이다 자그맣게 열렸다. 하이얀 잇새로 보드랍고 여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찡그리고 있던 얼굴에 즐거이 혈색이 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너는 아름답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었다. 여자마냥 곡선이 아름답고 웃을 때 눈이 휘어져서 예쁘다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남자로써의 피사체, 너는 신이 빚은 조각마냥 그렇게 아름다웠다. 나는 너를, 아니. 사랑이라고는 정의할 수 없다. 정의하기 싫었다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것은 욕망이었다. 더럽고 타락한, 끈적한 욕망의 결정체였으나 진흙 속에 박힌 진주마냥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묻지 않은 감정 하나쯤은 반짝 하고 빛났을 것이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너를 갈망했다. 나는 너를 탐하였다. 너의 새하얗고 유려한 피부를, 위를 향해 새초롬하니 뻗어 있지만 그 중심은 칠흑같이 검고 그 끝은 붉어 묘하게 애처로움을 일으키는 그 눈을, 곧은 코를, 눈밭 가운데 피어난 장미화마냥 붉고 싱그러운 입술을, 완벽하게 쭉 뻗은 너의 온몸을. 나는 사랑했고 또한 동경했다. 너는 내가 오매불망 원하던 모든 것들의 완전체였으며 유토피아였다.
단 하나, 너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목소리였다.
너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너의 목소리는 분명히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너의 여리고 부드러운 음성을 사랑한다. 너 역시 너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너의 목소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네 인생의 전부가 노래라는 것이 싫었다. 지독하게도 싫었다. 네가 노래를 하지 못한다면, 너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네가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사랑받지도 않았을 테고 너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나의 눈을 바라봐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래에 쏟아부은 너의 땀방울을, 너의 애정을. 나는 온전히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다시 너의 웃는 모습은 내게로 향하지 못했다. 너의 웃는 모습은 그 상대가 내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내게는 굉장히 아팠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라 하며 자신 있게 얼마 남지 않은 첫 콘서트에서의 솔로곡으로 고른 노래를 너는 주구장창 불러댔다. 분명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참으로 좋은 노래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싫었다. 너의 칠흑같이 새카만 눈동자에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비춰지고, 네 입술 새로 내 이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읊조려진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싫었다.
나 많이 아파, 택운아. 나 좀 알아줄래, 응. 너무 아파서 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하면 좋으니.
*
「운아아.」
「…….」
「목 상하겠다. 뭐라도 마셔가면서 해.」
밥도 먹지 않고 너는 노래를 불렀다. 듣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그만 부르라 말했다가는 네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나는 있잖아, 운아. 네가 슬퍼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 이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어, 나 착하지 않니, 내 사랑.
네가 내 손에 들린 물컵을 잠깐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맞아, 너는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참 아름다워. 너의 모든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곧이어 너의 손가락이 나를 향해 뻗어지더니 동그란 물컵을 휘감았다. 컵 안에서 찰랑이는 맑고 깨끗한 물은 너를 닮았다. 차고, 투명하고, 없으면 살 수가 없어. 물이 너의 입을 타고 혀를 휘감는다. 목구멍으로 거리낌 없이 흘러들어가는 물소리가 꼴깍 꼴깍 귓가를 울렸다. 제법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한 컵을 비워낸 네가 컵을 다시 내 손 위로 올려놓았다.
「시원하지?」
「…….」
「알았어, 열심히 해.」
너의 까닥이는 고개만을 평생 바라보다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네가 대답하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두 눈의 초점은 오롯이 나를 향해서만 맞춰져 있는. 동그란 고개와 목선이 공기 중을 가르고 살짝 움직이는 그 순간은 나를 굉장히 황홀하게 만든다.
응, 택운아. 열심히 해….
*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회사뿐만이 아니라 너의 가족들과 멤버들도 전부. 너는 쓰러졌고,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 회사 측에서는 숨기려 꽤나 노력을 한 모양이지만, 요즘 세상은 빠르다. 순식간에 매스컴은 도배되었고 병원 앞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팬들로 인하여 꽉 막혀버렸다. 침대에 누워 있는 너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얼마나 울었던지 온 몸의 수분이 모두 날아가 버린 듯, 더 울 수도 없을 만큼 메말라 버린 너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네가 아픈 건 싫은데, 운아. 그 와중에도 새하얀 병원복과 너의 모습이 묘하게 어울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뱉어진다. 어쩜 이렇게도 너는.
멤버들과 너의 부모님, 너의 누나들. 너의 어머니는 너 못지않게 눈물을 토해내셨고 너의 누나들은 그런 너의 어머니를 달래며 자기네도 울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와 멤버들은 너의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저희도 뭐라고 설명해 드릴 수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요.」
「하루아침에 멀쩡하던 애 목소리가 사라지다니, 댁들 의사잖아. 좀 어떻게 해 보란 말이야!」
정택운이 목소리를 잃었다. 입을 벙긋거려도 나오지 않는 음성에 또다시 너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너의 어머니는 얼굴을 가리고 병실을 뛰쳐나가셨다.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너의 아버지 역시 병실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누나들은 너의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그 뒤를 쫓았다. 순식간에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깬 것은 나였다.
「재환아. 애들 데리고 잠깐만 나가 있어 줄래.」
「…형,」
「할 얘기 있어서 그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멤버들은 자리를 비웠다. 너와 나만이 남아 있는 병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네 눈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동그란 눈물 방울이 맺혀 위태롭게 흔들거린다.
「택운아.」
「…….」
「나 봐.」
너의 눈동자가 또르르 구르다 나를 향해 멈춘다. 움직임 때문에 맺혀 있던 눈물이 툭 하고 네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멎을 줄을 모른다. 진주가 방울방울 생겨나는 듯한 아름다움에 나는 넋을 잃고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슬픔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눈물을. 슬프고 비극적인 기류와 짠 눈물은 축축했으며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너는 달랐다. 새벽녘의 아직 펼쳐지지도 않은 장미꽃 위에 맺힌 이슬이 땅을 적시듯, 너의 눈물은 청초하였으며 어딘지 모르게 싱그러웠고 아름다웠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또다시 네가 시선을 나에게서 돌렸다. 아, 싫다. 네 눈동자에 내가 채워져 있을 때 네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너는 왜 아직 모르는 걸까.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네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게 하자 너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떠졌다.
「……!」
너는 달았다. 지독하게 달아 혀가 마비될 것만 같은 달큰함이었다. 입술이건 혀건 너의 침이건, 너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달다. 너를 탐하고 너를 가진다는 것은 그렇게도 소름끼치도록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네가 컥컥거렸으나 역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너의 주먹이 가슴팍에 내리꽂히는 것 역시나 좋다고 한다면 너는 나를 미친 놈이라고 생각할까.
네가 나를 억지로 밀어냈다. 그러지 마, 나 속상하게. 너의 얼굴이 유독 새하얘 보였다. 잔뜩 커진 눈망울과 아직 침범벅이 되어 있는 너의 입술은 당황과 두려움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응, 택운아. 말해봐.」
「…….」
「너는 말 못 하는 게 예뻐.」
너의 얼굴에는 곧 치떨리는 배신감이 서렸다. 무엇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거리낌없이 드러난 분노와 두려움은 나를 향했다.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쏟아내고 싶은 건지, 아니면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건지 너의 입술이 벙긋거린다. 움직이는 입모양이 귀여웠다.
뻐끔뻐끔.
문득 네가 인어공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택운아.」
「……,」
「인어공주가 아름다운 이유가 뭔지 알아?」
「…….」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인어공주는 그냥 예쁜 여자였겠지. 하지만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었고, 그래서 특별해질 수 있었던 거야.」
네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인어공주와 네가 정말로 닮았다고 생각했다. 외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너였으나, 목소리의 상실은 너에게 그 이상의 형언할 수 없는 경외스러운 아름다움을 안겨다주었다. 손대어서는 안 될 성녀인 듯, 사랑을 잔뜩 받고 자란 난초인 듯. 티 한 점 묻지 않고 오롯이 깨끗함만을 간직한 새하얀 도화지처럼.
단지 하나가 다르다면,
인어공주는 그녀의 목소리와 매끈한 다리를 바꾸었지만 너는 너의 목소리와 나의 사랑을 바꾸었다.
그게 다였다.
「이제 노래 부르지 말고」
「…….」
「나랑 놀아주라, 운아.」
왜 그렇게 쳐다봐, 내가 뭐 잘못했어? 응, 운아. 나 잘못한 거 없는데, 왜 죄 지은 사람 보는 것마냥 그래.
너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읽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 너의 눈동자가 나를 담고 있고, 네가 나를 향해 있으며, 너의 애정을 그리고 사랑을 나만이 온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졌기에.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나의 인어공주, 평생 노래부르지 못할 나의 아름다운 사람아.
나는 목소리를 잃은 너를 사랑한다.
나의 죄는 너를 사랑한 것밖에 없으니, 너의 목소리와 맞바꾼 이 사랑을 받아다오.
Dear, My Mermaid.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
요즘 많이 뜸했죠, 아니 그냥 아예 안 왔었죠ㅠ^ㅠ
사실 제가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갔거든요.
일주일에 주말밖에 집에 오지 못하는데 그마저도 학원 때문에 아예 인스티즈를 들어오지를 못했네요.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저번에 신청했던 칠대악 웹진이 엎어졌다는 소식이..!
다들 글잡에 올리시길래 저도 오랜만에 글이나 올릴까 해서 올립니다.
이제 쭈욱 글을 웬만하면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입시가 너무 빡빡하네요ㅠ^ㅠ 저 사실 오늘 저녁에 기숙사 또 들어가야 돼요 잉잉
모든 독자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잊지 말아주세요. 꼭 돌아올 거니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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