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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백도] Some Day 16 (집착남 변백현X철벽남 도경수)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0/0/a001d7b110970d0b195d1e2ed0601fa0.png)
Some Day:: 16
(변백현X도경수)
침대에 누운 백현의 안색이 잔잔해지자 경수는 그제서야 작게 숨을 돌렸다.
집에만 들여보내놓고 가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정신을 놓친 사람처럼 축 늘어진 몸과 초점을 찾지 못하는 눈.
젖은 옷에 찬바람이 닿아 퍼렇게 질린 입술.
그 모습이 너무도 처연해서 경수는 도통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반 강제로 백현을 욕실로 밀어 넣고 나서 현관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샤워 가운만 걸치고 욕실에서 나온 백현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뉘였다.
경수의 시선이 잠든 백현에게로 가 닿았다.
감은 두 눈 주변이 아직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너도 울 줄 아는구나.
침대 옆에 서서 잠시 백현을 내려다보던 경수가 씁쓸히 웃었다.
백현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쯤 경수는 한 중년 남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손님인가 싶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대문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들려오는 대화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백현의 무너지는 모습을 본의 아니게 보고 말았다.
경수는 저를 앞에 두고도 서글프게 울던 백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처럼 제 옷깃을 꾹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던 모습.
그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와 저도 모르게 등을 토닥였더랬다.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아까 들은 이야기의 정황상 가정사가 좋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사연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사연이 많았네.
경수가 백현의 얼굴을 눈으로 가만히 훑었다.
자는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성격과는 다르게 유순한 얼굴이 더욱 도드라졌다.
경수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상처가 너무 많아서, 따가운 가시로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헛웃음이 배어나왔다.
그렇게 미워 보였던 백현에게 작은 정이 뻗는걸 느낀 것이다.
이렇게 물러 터졌으니 항상 당하고 살지.
혼자 고개를 작게 저은 경수가 이만 가봐야겠단 생각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이불 밖으로 드러난 손이 안쓰러웠다.
하얗게 핏기가 가신 손이 시리고 추워보여서 경수는 작게 한숨을 지었다.
"가지마……."
잠시 망설이던 경수가 백현의 손 위로 이불을 끌어당겨줄 때였다.
백현이 경수의 손을 꽉 그러쥐었다.
동시에 잠긴 목소리로 전해져오는 가지 말라는 말에 경수가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살짝 손을 비틀어 빼내려고 했으나 백현은 경수를 놓지 않았다.
당황한 경수의 눈이 백현의 얼굴로 향했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시간이 멈춘듯했다.
여전히 시선은 백현의 얼굴로 고정된 채였다.
백현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베개를 적셨다.
보는 사람이 다 마음이 아플 만큼 백현은 두 눈을 감은채로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경수는 멍하니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꽉 잡힌 손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워졌다.
무겁고 축축한, 하지만 조금은 따뜻한 공기가 방 안을 감돌았다.
창 밖에 내리는 비는 조금씩 멎어들고 있었다.
***
돌아온 평일, 백현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등교했다.
1교시가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백현은 주말 내내 한바탕 감기 몸살을 앓고도 꾸역꾸역 학교에 나왔다.
손으로 한쪽 머리를 매만지며 교실로 걸어 들어온 백현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경수는 지난 주말 일로 백현을 보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꿉꿉하게 느껴졌다.
몰래 백현의 안색을 살피던 경수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도경수."
티나게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은 백현이 경수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고마웠어."
백현의 손이 경수의 머리를 감싸듯 쓰다듬었다.
경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간의 기억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반사적 행동이었다.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에 경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작게 미소 짓는 백현의 얼굴이 보였다.
경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쿵쿵. 급격히 빨라진 심장박동에 경수가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상하고 껄끄러우면서도 간질거리는 듯한 이상한 기분에 경수의 표정이 애매하게 굳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이기 싫어 경수는 백현에게서 고개를 더 멀리 돌려버렸다.
백현은 오늘도 역시 저를 외면하는 경수의 모습에 쓰게 한숨을 뱉었다.
고마웠다는 거, 진심인데.
백현은 지난 주말 느닷없이 찾아온 아버지로 인해 분명 많이 힘들었다.
가슴이 온통 산산 조각나 부서져 내리는 만큼 아팠다.
또 다시 찾아든 트라우마에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통스러워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러나 그 불안함을 덮어준 작은 손이 있었다.
제가 먼저 끌어당겨 잡은 손이지만 그 손을 타고 전해진 온기는 마음속을 녹였다.
경수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잊을 수 없는 온기는 내내 백현의 손을 맴돌았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온 머릿속을 잠식하려 할 때면, 백현은 경수를 떠올려내며 견뎠다.
그 날 우산을 씌워줬던 것이, 앓아누운 자신을 간호해 줬던 것이
그저 불쌍한 어떤 것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었다고 해도 백현은 행복했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상처의 틈이 경수의 작은 호의로 천천히 메꿔지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백현과 경수가 함께 교실을 나섰다.
어딜 가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것은 어느새 일상으로 굳어졌다.
경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체념 상태였다.
백현의 감당 안 되는 성격을 이긴다는 건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있어 경수의 의사는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모든 권한은 대부분 백현에게로 치우쳐져 있었다.
경수는 언제부턴가 백현이 가자는 대로, 하자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그게 그나마 쉬운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항해봤자 긁어 부스럼 내는 꼴 밖에는 되지 않았다.
때린다던가, 만진다던가 그런 도저히 참기 힘든 것들을 제외하고는
그냥 순순히 백현의 말을 따라서 별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쪽이 낫다고 깨달은 지가 오래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경수는 익숙하단 듯 백현의 집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앞장서 걸어 나가는 경수를 잠시 쳐다보던 백현이 발걸음을 빨리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야."
백현은 오늘따라 경수의 모든 것이 거슬렸다.
아침부터 대놓고 시선을 피하질 않나, 자꾸 떨어져 걸으려고 하지를 않나.
지난 주말 말없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경수의 모습에 작은 희망을 가진 것도 잠시였다.
조금은 거리가 좁혀졌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멀어진 듯 행동하는 경수의 모습에 백현은 마음이 답답했다.
"그렇게 싫어?"
"…뭐가?"
"나랑 우리집 가는 거."
그제서야 경수가 눈을 마주쳐왔다.
"왜 물어봐."
"뭐?"
"싫다고 하면."
"……."
"그러면 그냥 보내줄래?"
"……."
"아니잖아."
경수는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백현의 약한 모습을 봐서 그런 걸까.
자꾸만 마음이 어느 한 곳으로 뻗어나가려고 했다.
언제부턴가 경수를 괴롭게 해온 애매한 감정들.
그래서 경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냉담하게, 조금 더 매몰차고 각박하게 백현을 마주했다.
"도경수."
경수의 식은 표정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백현이 말을 꺼냈다.
"싫으면, 그렇게 해."
"어?"
"가라고. 가서 쉬어."
경수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표정이나 말투로 봐서 비꼬는 건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진심이라기엔 믿기지가 않았다.
"……대신 오늘만."
백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만, 이라고 해도 백현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다가 손 쓸 수도 없을 만큼 완전히 끊어져 버릴까봐 두려워서.
어쩌면 정말로 잠시나마 쉬게 해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
"……."
"진짜 가도 된다니까?"
"…혹시 어디 아파?"
경수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게 당연했다.
이렇게 순순히 보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현실성 없는 상황에 잠시 벙쪄있던 경수가 발꿈치를 살짝 들고 백현의 이마에 손등을 가져다댔다.
"……."
작은 손이 이마에 닿음과 동시에 백현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백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발꿈치를 들고 직접 손으로 이마를 짚어주는 모습이 미치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토록 작은 손길에도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백현이 경수를 재촉했다.
"……가라, 빨리."
머뭇거리는 경수를 보니 당장이라도 안아들고 집으로 데려가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한입으로 두말 하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백현은 다시 한 번 경수의 등을 떠밀었다.
"나 진짜 가?"
"확 그냥. 마음 바뀌기 전에 가."
"어? ……어."
그제야 경수가 서둘러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수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낯설고, 또 찜찜했다.
…이런 날도 있구나.
경수는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백현에게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기를 그토록 바랬는데,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집으로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정작 그 순간이 오자 후련하기는커녕 도리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혼란의 연속 안에서 그 무엇도 정답을 찾지 못하는 제 모습이 한심스럽고 답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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