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말을 많이 하지도 않고, 나서서 약자를 괴롭히지도 않고, 덩치가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생긴 게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민윤기는 그냥 평범했다. 녀석의 생활은 양아치 집단에 껴 있는 놈이라고 생각지도 못 할 정도로 도덕적 규범 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말하는 목소리도 말투도 거칠고 과격한 그 집단 사이에서 홀로 차분했다. 사실은 그 집단을 벗어나 전체적인 학교 속에서도 차분한 편에 속하는 애였다. 말이 없었고, 눈빛이 서늘하며, 늘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떨어져 옅게 호흡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상하게 민윤기를 무서워했고, 두려워했고, 피했고, 싫어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그 민윤기에게 아무 감정이 없음에도 그냥 민윤기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피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따라할 뿐이었다. 민윤기가 속한 집단 외 모든 학생들이 민윤기를 그렇게 여겼다. 사실 그 집단 속 아이들도 민윤기가 좋아서 함께 하는 건 아닌 듯했다. 무서워서 아무 말 못할 뿐. 하지만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평범한 민윤기에게, 왜?
신경이 쓰였다. 왜? 왜? 왜? 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은 때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는 한다. 신경쓰면 안 되는 거였다. 애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없지는 않을 테고, 분명히 있을 그 이유는 심상치 않을 것이며, 그걸 내가 알 필요는 없는 데다, 무엇보다 민윤기는.
무엇보다 민윤기는.
조금 무섭기 때문이다.
이유없이.
버스에 올랐다. 민윤기가 이유없이 무서운 이유는 그 서늘한 눈빛 때문일 것이라 예상한다. 괜히 사람을 싸하게 만들고 웃다가도 정색하게 만드는 그 눈빛. 버스가 천천히 흔들리며 주행하기 시작한다. 어제부터 민윤기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하지만 새학기가 시작한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음에도 민윤기와 대화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자리는 늘 멀리 떨어져있었고, 민윤기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로 나가기 때문이다. 난 그냥 반 안에 앉아있는다. 그러다 반에 찾아온 애들과 대화하거나, 자거나. 민윤기보다는 내가 더 평범할지 모른다. 민윤기. 요즘들어 생각의 시작과 끝은 늘 민윤기가 되고는 한다.
학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이미 등굣길엔 학생들이 가득했다. 저 멀리 학교 앞 편의점에 분명 민윤기가 속한 집단으로 보이는 양아치 무리가 한데 모여 있었다. 민윤기가 스치듯 보인다. 잠깐 보다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교문을 통과한다. 종이 치기 직전이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고, 민윤기는 편의점 문을 연다. 딸랑이는 소리. 나는 계단을 오른다. 민윤기는 아이스크림을 계산한다. 내가 교실에 도달해 창 밖으로 편의점을 바라보았을 때, 종이 쳤고, 민윤기는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이제 1교시 중간 쯤에 반 안에 들어올 것이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언뜻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다.
"자리 바꿀 거야. 1분단 왼쪽 줄부터 와서 제비 뽑아."
조회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자리 바꿀 때 늘 쓰던 하얀색의 통을 들고 오셨다. 그제서야 난 지금이 6월의 첫째 주 첫날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리는 늘 달의 첫째 주 첫날에 바꾼다. 하나하나 줄을 서 제비를 뽑기 시작했다. 칠판에 크게 그려진 좌석표에 하나하나 번호가 채워진다. 4분단 맨 오른쪽 줄인 나는 계속 기다려야 했다. 민윤기는 교실에 없으니 남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었다.
민윤기는 분명 아이스크림을 물고 반 안에 들어올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니까. 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까 누구나 알 수 있다. 민윤기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민윤기는 아침마다, 점심마다, 그리고 하교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왜 그렇게 좋아할까? 민윤기를 생각하면 꼭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만 같다. 사실 궁금한 게 너무도 많았다. 말하다 보면 끝이 없을 정도로. 언제부턴가 그랬다. 난 자꾸 민윤기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질문. 그게 사실은 민윤기가 무서워서. 이유도 없이.
"4분단 오른쪽 줄, 나와."
순식간에 내 차례가 왔다. 하지만 이미 자리의 대부분은 채워져 있었다. 앞에 자리 애가 번호를 뽑고, 남아있던 8개의 자리 중 하나가 채워졌다. 내가 뽑았을 때, 지각한 녀석이 들어왔고, 난 34번 자리였다. 35번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순간, 손 끝이 약간 떨렸다.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내 옆자리가 비어 있다.
오른쪽 줄 전체, 그리고 지각한 남자애가 번호를 뽑을 때까지 35번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35번 자리에, 민윤기의 번호가 들어찼다. 8번. 민윤기.
8번,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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