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은 나와 달랐다. 직위도 나이도 그리고 국적도. 그는 중국인이었다. 정확히는 중국에서 온 중국어 선생님. 루한의 눈은 예뻤다. 그의 눈이 예쁘단걸 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한의 눈은 신기했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중국어 시간이 더이상 지루하지 않게 된 것도 그 눈을 한번 더 보겠다고 눈을 뜨고 수업을 듣는 것도 전부 다 그의 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예쁜 루한, 루한. 루한을 처음 본 날, 그의 유창한 한국말에 되려 놀란건 우리였다. 중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말은 우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루한은 첫 수업 이후로 우리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가끔 어른들보다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들의 통찰력은 예리했다. 루한은 정말 좋은 선생이었다. 루한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는지. 루한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수업의 반을 아이들과 시시콜콜한 대화 따위를 하며 보냈다. 어쩔땐 작은 사탕이나 캬라멜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루한이 좋은 선생님을 넘어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입엔 루한에 대한 칭찬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루한은 영악했다. 루한은 아이들을 다스릴 줄 아는 영악한 사람이었다. 루한은 자기 자신을 철저히 은폐하며 작은 난쟁이들의 선망 어린 눈동자를 즐길 줄 아는 영악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의 눈동자에 비친 루한은 그래보였다. 그런데 루한은 그런 나 조차도 다스릴 줄 아는 영악한 사람이었다. 루한은 사고의 범위에서도 우리를 훨씬 앞질러 있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시작은 여느 때와 같은 중국어 시간이었다. " 세훈? 세훈아. " 여전히 지루한 중국어 시간의 반은 쓸모없단 것을 알기에 잠시 잠을 자려 했었다. 선잠에 빠지려던 순간 가까운 곳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루한이란걸 알아챘다. 루한은 한국말을 잘해도 항상 발음이 어눌했으니까. 상체를 일으켜 루한을 보니 루한은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루한과 눈을 맞췄다. 쌍꺼풀이 진 눈과 긴 속눈썹이 예쁘다고 생각할 무렵 루한이 웃었다. 아, 그 순간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예쁘다. 루한의 눈이 예쁘게 접혔다. 루한의 웃음에 당황했다. 그러니까 잘 웃기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루한은.. " 세훈아, 피곤해? 조금만 참자. "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루한이 또 웃어보였다. 그는 내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뒤돌아 교탁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웃었다는게 중요했고,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는 게 중요했다. 루한이 두드리고 간 어깨가 간지러운 것도 같았다. 그렇게 루한의 눈이 예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각했다. 내가 루한의 눈에, 웃음에 휘말려 루한을 선망하는 난쟁이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내가 루한의 그 눈에, 웃음에 욕망을 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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