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과 내가 친해지게 되는 데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어쩌다 마주치는 그 아이의 시선 속에 호의가 섞였다는 걸 눈치가 빠른 나는 금새 알아챘거든.
처음에는 정말 무심하고 건조했던 그 아이의 표정이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풀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눈이 마주쳐도 질색하며 고개 돌리지는 않게 됐었어.
물론 나는 낯을 조금 가리는 편이고 워낙에 성격이 소심하기도 해서,
그러다가도 금세 고개를 돌려 마주치는 시선을 피하곤 했었지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
오세훈이 나를 싫어하진 않는다는 걸.
만약 그 아이가 나를 싫어했다면 매일밤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예쁜 눈웃음은 없었을 거야.
내 아이를 버렸던 오세훈과 대학 선, 후배로 다시 만난 썰 02.
그리고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어.
학원이 끝나는데 소나기로 보이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라고.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학원에서 집이 삼 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소나기니까 언젠가 그치겠지 싶기도 하고,
기말이 얼마 남지 않았기도 해서 그냥 학원에서 밀린 문제집이나 풀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어.
나가봐야 비만 맞는데 그냥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가 비 그치면 나가야겠다 싶었었거든.
그래서 대충 자리에 앉아서 수학 기출 문제지를 풀고 있었지.
어려운 문제들이랑 씨름도 좀 하고,
그동안 안 했던 공부들도 겸사겸사 하면서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까 어느새 빗소리가 좀 그친 듯 싶었어.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일어서는데 내 바로 뒷자리에 오세훈이 있더라.
엎드려서 제 팔에 얼굴을 묻고 자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 뒤통수만 보고서 그 아이가 오세훈이라는 걸 금세 눈치채고 말았어.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수 많은 고민들이 스쳐갔는지 너흰 모를거야.
아마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날 휩쓸고 지나갔던 건 내가 이미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영어 단과를 하는 앤데 얘가 왜 수학 교실에 있지?
왜 내 뒤에 있지?
수업은 진작에 끝났는데 집에는 안 갔나?
비가 와서 안간 건가?
.
.
.
그렇다면 자기 교실에 있으면 되는데 왜 우리 교실에?
.
.
.
왜 또 하필이면 내 뒤에?
솔직히 그때는 나도 어렸으니까 헛된 상상에 바람들에 별의 별 걸 다 떠올리면서 망상을 하기도 했었어.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데 얘가 나 좋아하나 싶기도 하고, 그럴리 없겠지 하면서도 내심 기대하게 되고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
입다물고 그냥 가던 길이나 곱게 갈까?
아니면 지금 이 아이를 깨워서 집에는 안 가냐고 말이라도 좀 붙여볼까?
한참을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용기가 안 생기더라.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고 아는체를 한다는게 나한테는 참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아이의 뒤통수만 쳐다보다가 그대로 가방을 매고 밖으로 나왔어.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흔히 그러는 것처럼
잠에서 깬 오세훈이 날 부른다거나 하는 소설 속 스토리를 바랐었는데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런 일은 일어나지가 않더라.
학원이 끝나면 늘 보이던 그 뒷모습을 못 보는게 전분데 괜히 마음이 횡했어.
늘상 혼자 걷는 길이지만 늘 보이던 그 뒷모습에 의지하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어쩐지 뭔가 잃은 것처럼 허전했었지.
고작 같은 시간에 학원이 끝나는게 전부고,
저만치 앞에서 나한테 뒷모습을 보이는게 전분데..
내가 왜 그토록 그 아이를 생각하는지.
생각해 보면 내 첫사랑은 참 예고없이, 뜬금없게도 찾아왔던 것 같다.
***
다음 날은 학원에 가니까 거짓말처럼 오세훈이 우리 교실에 있었어.
수학 단과반에도 친구들이 있었는지 문 앞에서 큭큭거리며 웃고 있는데, 내 자리 바로 뒤에 앉는 남자애랑도 뭔가 속삭이면서 한참을 그러고 있더라.
학원에 친한 애들이 없던 나는 또 혼자서 문제집을 풀면서
'어제는 쟤때문에 교실에 왔던건가 보다, 말 안 붙이기를 잘했네.' 하면서 이것 저것 잡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얼굴 앞으로 쑥하고 밀려든 그 얼굴이 내 문제집을 가리키면서 말하더라고.
ㅇㅇㅇ, 너 여기 틀렸어.
말했듯이 난 정말 소심하거든.
학원에 이렇다할 친구도 없고 조용한 편인데.
오세훈이 내 이름을 알고있었어.
나조차도 어디가 틀린건지 모르고 끄적이던 삼각비 문제를 진지하게 설명하던 오세훈은,
멍한 내 표정이 답답했는지 마침내는 내 손에 들려있던 샤프까지 자연스럽게 슥하고 빼가더니 내가 알아볼 수 있게끔 깔끔하게 문제를 풀이해놓고 가더라.
오세훈이 수학 영재였다는 사실은 그 후에 알았어.
그 아이가 나가고 난 뒤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여자애들이 몰려와 오세훈과 아는 사이냐며 이것 저것 뱉어놓고 가는 소리들을 듣고서야 알았지.
오세훈은 수학 영재고,
근처 남중에서 알아주는 전교 일등에,
운동도 잘 하고,
죽여주는 여자친구가 있다.
***
나는 오세훈이 보인 호의를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그냥 멍청한 내가 답답했나 보다.'
'뻔히 보이는 문제를 붙잡고 있으니 바보같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억지로라도 오세훈이 나한테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
그런데도 계속 생각이 나는 거야.
"귀엽네. 열심히 해."
멍청한 표정으로 오세훈의 손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너무나도 다정히 말해줬던 그 모습이.
그래서 오세훈이 다가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어.
나는 이미 오세훈을 너무 많이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 뒤론 금방이었지.
오세훈을 좋아하던 나, 내가 싫지않았던 오세훈.
내가 그 아이에게 가졌던 감정은 오세훈이 나를 생각했던 감정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았으니까.
그래서 우린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
***
오세훈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업 내내 마음이 뒤숭숭했던 나인데 여느 때와는 달리 오세훈이 먼저 말을 걸더라.
"어제는 왜 안 깨우고 갔어?"
나는 오세훈이 나한테 하는 말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또 멍청하게 입만 벌리고 있었어.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뒤를 돈 오세훈이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더라고.
"니 뒤에 있었잖아. 못본 건 아닐 거 아냐."
.
.
.
"나는 너 기다렸는데."
.
.
.
"왜 안 깨우고 그냥 갔어?"
장난기가 가득 묻은 그 얼굴에.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말을 거는 그 모습에.
나는 오히려 더 넋이 나갔던 것 같아.
***
세훈아.
너는 나한테 왜 그랬어? 왜 나한테 그랬어?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암호닉
(진짜 격하게 크게 많이 정말 심하게 매우 넘치게 내 사랑 먹으세요♥)
마지심슨 소보루 라즈베리 고구마파이 그린 케로로초코빵 시카고걸
뽀로로 하얀쥐 세모라떼 이리오세훈 에이드 가란 민트쿠키 쪼아 두부콩 축구와세수
(아련....)
오늘은 이 정도면 길다!!
시간도 이틀밖에 안 걸렸어요!! 길..어.. 요........ 저번 편에 비하면........
ㅜㅜ
능력없는 자까라 미안해, 내 사랑 독자님들ㅜㅜ
와타시가 지루한 과거 이야기 꼭 다음 편 안으로 끝내 줄게요ㅠㅠ....★
암호닉 분들 다 고맙구요, 저조차도 민망한 제 글에 댓글 좀 달아주시고 가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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