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 side B-
"나랑 사귀자."
시끌벅적했던 복도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다. 친구들과 떠들던 학생들, 선생님의 부름에 달려가던 학생들, 모두의 고개가 복도의 끝 쪽 방향을 향해 돌려졌다. 그곳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세로로 1미터가 넘는 크기였다. 창문을 통해 학교 안까지 발을 뻗은 햇살이 한 쌍의 남녀를 비추고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를 한 소년의 머리 위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 고개 숙인 소녀의 어깨 위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사귀자는 말을 건넨 사람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소년의 얼굴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3초 정도 소녀의 눈을 맞춰줬다. 마치 고백을 여러 번 해본 듯한 눈빛이었다. 풋풋함보다는 능숙함이 읽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저 소년이 애써 수줍음을 감추고 있다고 멋대로 판단했다. 소녀는 그 생각에 더 설레었는지 고개를 숙였고 소년은 소녀의 반응을 살피는 일에서 흥미를 잃었는지 자신들에게서 조금멀리 떨어져 있는 초록색의 게시판을 응시했다. 그리고 시선을 옮겨 복도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우습다. 구경거리에 다 똑같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는 모습이. 옅은 비웃음을 눈에 담은 채 복도의 반대쪽 끝을 쳐다봤다. 멀어서 눈을 찡그려야 했다. 하지만 곧 인상을 풀었다.
소년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비슷한 체구의 소년이 서 있었다. 그의 표정 역시 멍청했다. 그러나 조금 달랐다. 다른 아이들은 놀란 표정이라면 그 소년은 충격을 먹은 표정이었다. 동그란 눈이 조금 더 커지고, 손끝은 티가 나게 떨렸다. 소년과 눈이 마주친 후 티도 안 나게 뒷걸음질을 했다. 필사적인 것처럼 보였다. 발을 거의 질질 끌다 싶이 뒷걸음질을 하더니 곧 몸을 돌려 계단 쪽을 향했다. 그의 걸음은 급해 보였다. 소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소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양손을 허리 뒤로 잡고 뒷짐지는 자세로 상체만 기울여 소녀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러나 소녀의 귀엔 소년이 한 말이 정확하게 들렸다.
"싫나 보네. 나 간다."
손을 주머니에 꽂고 망설임 없이 소년이 사라진 곳을 향해 조금 급하게 걸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급정거한 버스처럼 몸이 흔들렸다. 가만히 서서 허공을 응시하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소녀는 소년이 떠난 이후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녀의 주위엔 그 짧은 사이에 다가와 캐묻던 친구들이 붙어 있었다.
"나중에 전화나 문자로 그때 떨려서 말을 하지 못 했다, 이런 말하지 마."
이번엔 친절하게 귓가에다 소녀만 들리도록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어서 도망친 소년을 찾으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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