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하루 24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정당화 된다.
1.
현재 한국에서 범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살과 피를 뜯고싶은 얄팍한 인간들을 1년중 오직 한 날만 코 박고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오늘. 모든 죄가 허용되는 날. 힘이 있는 자는 쾌락을 맛보고 한 없이 나약하고 추잡한 사람들은 한계를 맛본다.
매년 5월 1일.
가정의 달에 뜬금 없이 끼어있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민석이 가장 피하고 싶은. ‘리벤지 데이’
5년 전, 한국의 범죄율이 최고치를 다달했었다. 최고 일주일에 사망사고 82건, 성범죄 300여건, 폭행, 도난 등 범죄의 범위도 꽤나 다양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불안함과 초조함은 더해갔고, 사람들은 더욱 더 이기적이게 변하고 있었다. 여자아이 혼자 밖에 놔 두는 경우는 일절 없었으며 심지어는 학교까지 자퇴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부에서는 처벌을 강화하며 범죄자들을 사형까지 했지만 잘 줄어들지 않는 범죄율에 한국 정부는 약간 또라이 같은, 또 병신같은 법률을 내 놓았다. 1년에 단 하루 24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정당화 되며 아무리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다음날의 처벌은 없다. 유가족들의 항의가 거세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않는 날. 범죄자도 다음 날이면 능청스럽게 웃으며 유가족에게 인사를 건넬수 있는 날.
2.
민석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티비에서는 차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린다. ‘한국의 범죄율이 낮아진 이유죠, 리벤지 데이. 즉 복수의 날이 올해에도 찾아왔는데요. 이번에는 어떤 큰 이슈가 있을지, 어떤 파티가 있을지 박찬열 기자 현장에서 보도해주시죠.’ 민석이 신경질적으로 티비를 꺼버렸다. 미친새끼들 자기들은 아주 행복한가봐.
다시 한번 확인차로 민석을 방 문을 꼭꼭 걸어잠궜다. 민석의 축축한 손을 잡고 있던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 망울이 어룽어룽 눈 안을 반짝거렸다.
“오빠아…….”
“괜찮아, 괜찮을거야 오빠 있잖아 그치?”
“…….”
티비 속 뉴스에서는 아나운서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자, 이제 십분이 남았는데요! 하며 입을 연다. 잠깐 눈을 감았다. 4년 전 부터 실시한 리벤지 데이. 민석은 꼼짝 말고 집 안에 있어야만 했다. 부모님까지 작년 이 날에 보내드린 민석은 명치 부근에서 따뜻하게 퍼지는 분노와 두려움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번졌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고통의 신음소리와 아버지의 마지막 비명 소리, 여동생의 실신. 다시 한번 그려지는 그 날에 민석은 눈을 벅벅 비볐다. 마음만 먹으면 민석도 가뿐히 살인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방긋 방긋 갓 담근 김치를 나누어 먹던 이웃들이 오늘은 미친 듯, 한 손에는 칼자루를 들고 나를 맞이할 수도 있다. 휴대전화도 조용히 꺼둔채 민석은 집안에 모든 불을 소등했다.
민석의 여동생 나이는 17살. 한참 어여쁜 나이었다. 피부도 보들보들 하니 두부 같이 희었고 팔 다리도 길쭉 길쭉하여 꼭 미스코리아에 나가야한다며 어머니가. 만약 이번 리벤지 데이에 민석마저도 숨통이 끊긴다면 한참 어리고 작고 예쁜 여동생을 이 더러운 각박하고 내숭으로 가식으로 가득찬 사회에 버려둬여한다. 혼자. 혼자. 나름 오빠라며 여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민석이 침을 한번 삼켰다. 겁이 났던것이다. 언제 쥐새끼마냥 들어와 제 배때지에 칼을 꽂아 넣을지 모른다.
‘지금 막 11시 58분을 달리고 있는데요, 복수심에 눈이 불타오르는 모든 분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주세요! 우리함께 외칠까요? 하나 둘 셋!’
팟-하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져버렸다. 어두컴컴하게 불이 다 꺼진 동네에서 급하게 거는 시동소리, 구두를 질질 끌며 집으로 들어가는 여대생, 그리고 가까이선 옆집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조바심에 조용하게 다시 한번 문고리를 확인했다. 침을 한번 꿀꺽삼킨 민석이 살며시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5월 1일. 24시간, 1440분. 민석은 방안에 웅크려 1440시간을 눈을 감고 있어야했다. 베란다 넘어 높고 갈라지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시작한지 몇분이 됐다고, 벌써. 차게 식어 땀이 뻘뻘나는 손을 마주 잡았다. 제발, 제발! 점점 더 초조해져 민석은 아랫입술을 당겨 꼭꼭 씹었다. 여동생의 손이 파르르 떨려온다.
“나 봐.”
오빠니까. 나는 네 오빠니까. 민석이 눈을 감았다 떴다. 긴 속눈썹 끝에 달린 눈물이 이윽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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