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동아리 홍보 기간. 새하얗게 페인트 칠 되어있던 벽은 동아리 포스터로 가득 메워져있었다. 매 쉬는 시간마다 신입생 반에 들어와 홍보하는 선배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은 부장 선배가 잘생겼거나 예쁘면 이유 막론하고 지원 하곤 했는데 방송부가 그 예였다. 방송 부장 선배가 잘생겼다는 소문 하나로 각 층마다 구비되어 있던 방송부 지원서는 구경할 새도 없이 동이 났다. 이름이 뭐라더라, 이태용?
"얘들아, 지금까지 우리는 댄스 동아리 나인이었고 지원서는 교탁 밑에다 둘게. 끼쟁이들이 많이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면접 날 보자!"
댄동 선배들이 문을 열자마자 물 밀 듯이 다음 동아리가 들어왔다.
"아니 이걸 내가 왜 하냐고오."
맑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고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안녕! 혹시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학생 있니? 아 좋아하지 않아도 돼. 들어와서 좋아하면 되는 거고. 아아 우리는 사진 동아리 픽셀이야. 일단 나는 픽셀 대장이 아닌데 여기 서있어,, 대장님은 사정이 생기셔서 못 오셨어. 지원서는 나인 위에 올려둘 테니깐 나인보다 먼저 신청해야 한다? 난 2학년 2반 이동혁이니깐 궁금한 점 있으면 아무 때나 와도 돼. 매점에서 많이 보자 친구들! 그럼 다시 안녕~~!"
급조한 멘트가 티가 난 탓일까, 픽셀 선배들은 단체로 얼굴이 빨개져 교실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이후에도 기억 안 날만큼 많은 동아리들이 다녀갔다. 도대체 어딜 가야하는 거야? 흥미있는 분야도 딱히 없고 내 취향의 잘생긴 선배도 못 찾았다. 그래, 애들이 잘 안 들어가는 동아리에 신청해서 프리 패스하자. 급히 반 분위기를 살폈다. 아직도 방송부 이야기다. 방송부 말고 또 뭐 있었더라? 걸어다니는 각목인 내가 나인을 신청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태생이 문과여서 과학 탐구 동아리도...(이하 생략) 나 이렇게 흥미도 없고 재능도 없는 사람이었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ㄱ, 아! 픽셀, 픽셀이 있었다. 교탁으로 뛰어갔다. 선배들에겐 슬픈 사실이지만 그 자리 그대로 놓여있었다. 간다, 픽셀.
📷픽셀 지원서📷
이름: 김여주
학번: 1305
지원 사유: 사진 찍는 걸 좋아합니다.
(신입생다운) 포부: 많이 부족하지만 선배님들께 사진 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아름다움을 담겠습니다!
픽셀 지원자가 너무 없어서 면접도 안 본단다. 면접 날이 사라짐과 동시에 첫 출사 날이 잡혔다. 그 사이, 동혁 선배와 연락을 하며 말을 섞게 되었다. 사실 좀 많이 친해졌다. 낯가리지 않는 둘이 만나면 나이, 성별 불문하고 이렇게 된다.
"여주 매점 고?"
"갑시다."
고등학교는 참 좋다. 학교에 편의점 급 매점이 있는 점은 삶의 질을 증폭시키지... 암 그렇고말고. 나는 갓 데워 뜨거운 햄버거를 이리저리 식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선배 근데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뭥?"
"대장님이 누구예요? 면접도 취소돼서 얼굴도 못 봤는데. 심지어 이름도 몰라요."
"아 정재현?"
"이름이 그거예요? 정재현 선배?"
한 입 가득 음식이 들어간 선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배는 픽셀 신입생이 나밖에 없는데 환영 인사도 안 오나? 응??? 막 꽃다발 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갑자기 내 정수리 위로 정체 모를 체온이 느껴졌다. 누가 손을 올린 듯했다. 뭐지? 뭐야? 맞은편 동혁 선배의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 커졌다.
"미안해, 내가 너무 바빴다."
차분한 중저음이었다. 뒤를 돌아 보았다. 여긴 분명 지하여서 빛 들어올 틈이 없을 텐데 주위가 환해졌다.
![[NCT/재현] 픽셀1: 사진부 정재현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8/03/10/3/2816def31d1f02f60fa6bf3f36c90afc.gif)
정재현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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