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to the 각
"아 시원하다"
갓 대학생으로 보이는 듯한 한 남자가 건물 옥상 난간에 다리를 흔들며 아슬하게 걸쳐앉아있었다.
따스한 봄 햇살을 한 껏 받으며 앉아있는 남자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옥상에 있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우리가 이맘때쯤 만났나?따스한 봄날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피식웃었다. 아까와는 다른 쓴 웃음이었다. 아니 울지못해 웃는 미소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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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이제서야 고3이 된 나는 오지 않아도 되는 입학식 날 기어이 학교에 나와 뒷뜰에 있는 벤치에 누워있었다. 3월의 봄바람을 즐기고 있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감고 있던 눈을 떠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니 나를 빤히 보고있는 너가 있었다.
귀여운 너의 모습에 난 그때 피식웃고 말았다.
"이 학교는 외부인 못 들어 오게 한다고 했는데.."
사복을 입고 온 나를 외부인으로 본 너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 크기로 내게 말을 했다. 그게 얼마나 귀여워보이던지.
이 학교 생활 2년동안 본 적 없는 너가 궁금해서 너의 가슴팍에 있는 명찰을 보니.
'김성규'
명찰색깔을 보니 신입생이었다. 어느새 내 앞까지 온 너는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예뻐보였다.
학교 교복 색깔인 베이지 색과 너무도 잘 어울려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가 이렇게 이뻐도 되나'
영양가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아직도 나를 쳐다보는 너의 시선이 느껴져 난 가볍게 웃으며 너에게 물었다.
"그럼 넌 입학식 안하고 왜 여기 있는데?"
내가 이런 질문을 할 지 몰랐는지 약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내 질문에 대답을 했다.
"저...길을 잃어버렸어요"
너의 그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하는 너의 모습에 나는 심장이 갑자기 거세게 뛰는 걸 느꼈다. 정말 그 느낌은 생소했었는데.
"그렇구나,이리로 와. 내가 데려다 줄게"
난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고 내게 다가오는 너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리곤 슬쩍 너를 보니 귀까지 빨개진 채 어쩔줄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내 손을 꼬옥 잡은 채로.
* * *
오늘 점심시간 선도를 서야하는 나는 내 친구 호원이와 함께 다른 때보다 일찍 급식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퍽
"아.."
"아 죄송합니다!앞을 잘 못봤어요!!
저기서부터 친구들과 다투면서 줄 먼저 서겠다고 달려오던 니가 나와 부딪혔다.
"어..?"
그리고 사과를 한 동시에 내 얼굴을 본 너의 표정은 정말 볼 만 하였다.
"같은 학교 선배였어요..?"
그러면 나는 토끼같이 눈을 땡글하게 한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응 성규야 . 잘 지냈어?"
* * *
어느새 난 너를 친한후배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형!!이거 사탕 드실래요?"
"어..?아냐 너 먹어"
딸기우유를 빨대에 꽂아 쪽쪽 빨아 먹으면서 살짝 눈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딸기맛 사탕을 내미는 너의 모습에 아찔해져 난 휘청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한계다,정말.
갖고싶다, 김성규
내가 잠시 날 컨트롤 할 동안 너는 딸기사탕을 입에 넣고 갑작스레 내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리곤 멍해져있는 내 얼굴에 다가와 고개를 살짝 틀어 입을 맞추었다.
그때까지 굳어있던 난 얼른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너를 밀어내려했지만 니가 딸기사탕을 내 입으로 건네주는 순간에 난 머릿속에서 이성이 끊기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난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너를 벽에 밀쳐 널 더 깊숙히 탐했다.
매점 뒤라 사람들이 없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아무튼 우린 그때 딸기사탕을 다 먹어버렸다.
내 생에 가장 맛있고 달콤한 딸기사탕이었다.
* * *
어느 비오는 날이었다.
난 집에서 커피를 타 비오는 창밖을 보며 니가 뭐하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띠리링
너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느새 만면에 웃음이 번진 난 문자를 확인했다.
<형 진짜 천둥이 무서워서 그러는데 지금 빨리 저희 집으로 와주세요>
난 바로 외투를 집어들고 집을 나왔다.
-띵동띵동
"성규야!!문열어!형이야!"
-철컥
문이 열리자마자 넌 바로 내게 안겨왔다.
"많이 무서웠어?"
울었는지 눈이 약간 빨겠다.
"왜 이제 왔어요.."
너는 운게 창피했는지 내 손을 꼭 잡고 집안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내게 오렌지 주스를 주고 나와 같이 쇼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정말 무서웠는지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내 팔을 놓지않았다.
그렇게 너의 행동을 요목조목 뜯어보다가 너가 갑자기 텔레비전을 꺼서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난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왜?재미없어?"
"...부모님은 제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시작한 너의 과거사에 난 입을 꾹 다물수 밖에 없었다.
"잠깐 할머니댁에 가셨던 부모님께 빨리 오라고 재촉했던 건 저에요"
"..."
"원래 옛날부터 비오는 날을 싫어했는데 마침 그 날 비가왔거든요. 그래서 엄마아빠보고 빨리 오라고 재촉전화를 했어요.."
대충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지 예상이 간다...
"내일 오겠다는 부모님을 기어이 졸라서..하..집에 오는 길에.."
"...힘들면 말 안해도 돼"
너는 어느새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내가 눈물을 닦아주며 말하자
"그냥..형한텐 모든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애써 웃으며 말하는 너가 너무 이뻐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너의 볼을 쓸면서 키스했다. 너는 울면서 나를 받았다.
"성규야"
"..."
"사랑해"
"..나두요"
......그리고 그 날밤 난 너를, 넌 나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 * *
<..벌써 3번째 연쇄살인 사건입니다. 주민여러분은 더욱 조심해주시길 바랍니다.>
....
"흐흐윽...성규야.."
너는 내 곁을 떠났다.
난 그저 너의 영정사진 앞에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형이라 부르며 내게 달려올 거 같은데. 날 보며 웃어 줄 것 같은데. 내게 딸기를 먹여줄거 같은데. 내게 입맞춰 줄 것 같은데. 나랑 사랑을 나눌 것 같은데
넌 왜 저 사진안에 있는거니. 니가 죽은 거 아니잖아.
왜 저기 너희 누나가 울고 있어? 아 슬픈일 있나보다.
성규야 니가 와서 위로해줘야지 어딨는거야
.....하
"....젠장!!!!!!왜!! 왜 하필!!!김성규 너냐고!!....하..."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피부에 와닿는 현실에 나는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그놈의 연쇄살인범이 뭐라고. 씨발 내가 그 새끼 죽일거야
왜 나에게서 너를 뺏어가는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난 더이상 장례식장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성규의 마지막 장례식에도 같이 있지 못했다.
..같이 있으면 너가 죽은 걸 인정하는 거잖아...
* * *
니가 죽은지 반년 쯤 지났을까.
집으로 택배하나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김성희.
성규야 너희 누나가 무엇을 보냈을까..
택배를 열어보니 작을 쪽찌가 보였다.
<남우현씨. 성규도 이게 남우현씨가 갖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할거에요>
그리고 또 다른 상자가 있었다.
이건..MP3??
새거 같은데..난 얼른 포장을 풀어 기계를 켜봤다.
재생목록에는 하나의 노래밖에 담겨져 있지않았다.
이승철 - Never ending story
다른 게 없나 상자를 살펴보는데 하늘색의 편지지가 팔랑 떨어졌다. 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다.
"..흡"
오랜만에 보는 너의 글씨체.
[My lover
형!안녕??처음으로 편지 쓰는건가??아 은근 떨리네.
이렇게 편지를 쓰려고 하다 보니까 형이랑 함께 있었던 일이 막 떠오르네. 쓸거 많겠다!
이 MP3 내가 형한테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야 이제 선물 많이 챙겨줄게! 기념일도 꼭꼭 챙겨줄게.
형은 받기만 해도 돼.
암튼 이 노래 알지??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야! 이제 형도 좋아해야돼~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거 비밀인데 내일이 우리 200일이야! 이제 좀 상황파악이돼?? 이거 200일 선물이야
아 200일 되기 30분 남았다! 난 지금 형네 집앞으로 갈거야! 내일 아침에 보면 깜짝 놀랄거야!! 이거 받으면 나한테 와서 착하다고 뽀뽀해줘야돼??
아 내일 기대된다~~ 그럼 난 이제 나갈게!!
PS-나도 이제 반말 쓸꺼야! 형이랑 더 가까워 보이잖아!]
편지지는 점점 내 눈물로 젖어갔고, 내 마음도 점점 젖어갔다.
아 나 때문이구나. 나 보려 오려다가 그 쓰레기같은 새끼한테 당한거구나.
....시발. 행복해도 모자랄 애가 나 때문에 저기 하늘나라에 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사랑한다 말해줄걸. 많이 놀러나갈걸...
뽀뽀 많이 해 줄걸.. 200일을 만들지 말걸, 아니 그냥 처음 그 때 학교를 가지 말걸. 니 고백 거절할걸..
내 머릿속을 꽉 채우는 후회에 난 더이상 서있을 수 없었다.
"성규야...하윽...왜...나때문에..젠장!!!!왜..니가...!!!!!!!"
난 주저앉아 오열을 토할수 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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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주머니에서 한 MP3를 꺼내 귀에 이어폰을 끼웠다,
그리고 재생목록에 하나 밖에 없는 노래를 재생시켰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꺼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남자는 그 노래를 따라불렀다,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옥상에서의 노랫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옥상난간 위에는 노래가 틀어져있는 MP3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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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완전 불쌍하다"
"진짜 아련하다"
"선배 이거 실화에요??"
한 남자를 둘러싼 여자남자 후배들이 물어왔다.
선배로 추정되는 그는 웃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아아 선배~~~"
남자는 답해달라고 졸라대는 후배들을 무시하고 대학교를 나와 차를 올라타 한적한 시골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금 후배들에게 지어줬던 미소를 지운지 오래였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국화 꽃다발을 들고 공동묘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란히 있는 두 묘지앞에 꽃다발을 놓고 입을 열었다.
"야 잘있냐?"
남자는 털썩 주저앉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나 이호원이다 임마. 내 목소리도 잊은건 아니지??"
호원은 묘지 주변을 정리하고 잡초도 뽑으면서 그들을 향해 씁쓸한 웃음을 보내줬다.
"야 남우현 김성규씨! 이제 둘이 같이 붙어있으니까 좋냐? 완전 깨가 쏟아지겠다?? 부러워서 눈물이 다 나온다.진짜..."
호원은 옛 친구의 안타까운 사랑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진짜...진짜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해라"
-End-
아아아아 드여 다 썼다!!조각글 쓰려고 했는데..어쩌다보니..쩝!